
세상에 없는 계절 by Sasha
예술가라면 새롭게 창조하는 인생은 조각조각을 조합하거나 돌을 깎아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차라리 자신의 음률을 따라 작곡하는 음악과 같다. 중간지대에서 창조적으로 산다는 것은
도전과 실수를 통해 즉흥적으로 시도하고 길을 찾는 것이다.
그러나 음악을 작곡한다는 것은 적극적인 은유이다.
[프롤로그]
여름과 가을 사이, 가을과 겨울 사이, 2분음표와 4분음표사이, 온음표와 페르마타 사이 ..
수많은 사이에 대한 고찰이 필요했다. 'Limbo' 중간지대라는 말로 지금의 상황을 표현할 수 있음에
조금은 마음이 가벼워졌다. 멈춰있지만 멈춰있는 것이 아니고 무한한 창조성으로 가득하다는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난 하나의 희망을 보았다. 변화와 전환의 차이를 이해하게 되자,
난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지금까지 우유부단함으로 자신의 중간지대를 비난했었다면
삶은 디지털이 아닌 아날로그였음을 이해하게되면서 전환에 대한 이해를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온전히 느끼게 되었다. 그러자 얼굴에 미소와 함께 온전하게 가을에서 겨울로 이어지는
풍경을 담아낼 수 있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는 내게 없던 계절이 보이기 시작했다.
[Passing by Limbo World]
나는 그 당시 하고 있는 일에서 더 이상 의미를 찾지 못하고
몇 년간 새로운 것을 찾으려고 여러가지 방법을 시도하고 있었다.
나는 ‘전환의 부족’ 상태였고, 따라서 좀 더 심오하고 절실한 전환을 원하고 있었다.
오후 6시 오늘도 퇴근한다. 퇴근이라는 이외수의 시가 문득 떠오른다.
날마다 오후 여섯시부터 길을 잃어 버리는 당신-이외수
열정의 방향이 표류하고 있다. 사실 마음 속에서는 진심으로 나의 열정을 바칠 곳을 찾고 있다.
6시 칼퇴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 제대로 된 곳에 열정을 바치고 싶은 사람이였다는걸
얼마전에야 알게 되었다. 내가 온 열정과 신념을 다해서 머물고 싶은 일이 있다면 6시 퇴근이 무의미해질 것 같다는 생각. 난 지금까지 나 자신을 오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어쩌면 퇴근 후의 그 수많은 활동들도 그러한
열정의 보금자리를 위한 물색의 시간은 아니였나하는 생각이 든다.
의미 없는 곳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던 것은 아주 오래된 것 같다.
하지만 섣부르게 지금의 안락함을 버릴 용기가 없어서 오늘도 나의 열정은 표류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다양한 방법의 시도는 열정이 안착할 새로운 목적지를 위한 몸부림이였던 것 같다.
내 인생의 선장은 내 자신이건만 퇴근 후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는 나의 모습은 마음이 아프다.
원래 계획되어 있던 약속을 취소하고 오늘은 혼자서 좀 조용하게 걷고 싶다.
선장이 방향감각을 상실하면 배는 연료만 낭비할 뿐 바다위에서 표류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방향성 없는 열정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몇 년에 걸친 힘빼기에서 난 터득하고 있었다.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갈 때즈음에 지금의 이 상황이 창조성으로 충만해지고 있는
지금의 과정이 바로 중간지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전환이 제대로 일어나야 하건만 난
어떻게 변화를 일으킬까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경복궁 돌담길 위로 보이는 하늘은
더 높고 깊어짐을 통해서 언제인가보이는 노오란 잎사귀들은 자신의 색을 변화시킴으로서
가을을 온전하게 맞이하고 아니 지나보내고 있었다.
난 내 자신이 때가 되었음에도 놓지 못하고 있음을 느꼈다. 무언가를 놓치 못하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일 수 없음도 이 자연의 변화를 통해서 알게 되었다.
그래서 늘 내 자신을 양분하여 버릴 수 없는 인생 두개를 살고 있었던 것 같다.
낮에는 박과장으로 밤에는 사샤로 변신하면서 하나의 인생을 쪼개어 살고 있었다.
마치 슈퍼맨이 위기의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옷을 갈아입고 출동하듯이 난 나의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
퇴근마다 옷을 갈아입고 요술공주 밍키처럼 변신에 성공하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그것이 온전한 전환이 아닌 전환의 부족임을 알게 된 것이다.
삶의 양분이 아니라 하나에서 또 다른 새로운 세상으로 이동.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아가는 길로 인식해야 하는 것이였다.
삶을 이해하고자 하는 대상에서 가슴으로 느끼고자 하는 대상으로 여기 되자
내게 또 다른 선물이 찾아왔다. 뜻밖에도 내 안에 숨어 있던 다양한 자원들이 내 앞에 펼쳐졌던 것이다.
오랜만의 걷기 산책을 통해서 난 가을 바람을 그 향기를 하늘의 구름을 만나고 있었다.
'가을하늘은 높고 푸르다'라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내 스스로의 감각들을 통해서 가슴으로
온전하게 그 모든 것들을 느끼고 있었다. 선물처럼 그렇게 풍경과 내가 하나되는 과정을 경험한다.
지금의 나는 퇴근길의 방황을 경험했던 박과장도 다양한 활동을 통해서 벗어나고 싶던
세상으로부터의 변신을 했던 사샤도 아닌 온전한 그 자체였다.
내 인생의 선장으로 그 중간지대를 건너고 있었다.
마치 미세하지만 어제와 오늘 사이에 수많은 차이가 존재하듯이
그 이어지는 사이의 이야기들을 선장님은 이해하기 시작했다.
삶은 음악처럼 흐르는 것이지 디지털 시계의 숫자가 넘어가듯이 단순히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주변의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 귀를 기울였다면
지금은 내 안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그 음악에 더 많은 마음을 기울이고 있다.
이미 오래전 시작되었던 음악인데 이제서야 들리다니
1악장이 끝나고 2악장의 시작인가 보다. 그것은 두려워할 대상이 아닌
흐름에 대한 인식이였다. 반복을 통해서 1악장을 완벽하게 연주한다고해도 내 음악의 완성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당신 자신의 생각을 믿는 것, 즉 당신의 마음속에서 당신에게 진리인 것이 모든 사람에게도 진리임을 믿는 것,
그것이 천재성이다. 당신의 보이지 않는 확신을 말하라 그것이 우주의 감각이 될 것이다. -랄프왈도에머슨
- 선택은 언제나 의지의 결과이다.
- 선택이 인간을 인간답게 한다.
- 선택한 길과 선택에 의해 창조된 인생이있을 뿐이다.
지금 난 내가 선택한 인생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
항해를 위한 나만의 지도를 그리고 있는 중이다. 그것은 누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 날의 산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나의 보이지 않는 확신을 말하는 방법으로
글을 통한 지도를 그리고 있다. 의지를 제대로 보고 그것을 선택하고 그 길을 걸어가면
새로운 인생이 창조되는 것이다. 이 길이 아닌가 생각해서 항해를 위한 운전대를 놓는다면
달라질 것은 없다. 중간지대의 시간에 감사한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확고히할 수 있음에
새로운 길에 마음을 열 수 있음에 난 기쁘다. 누군가가 선택해준 것이 아닌 마음속에서의 울림을 따라
음악을 완성해간다고 생각하니 절로 휘파람이 나온다.
이제 분리되었던 삶이 아니라 온전한 삶으로의 이행이다.
사이사이를 이어 음악이 되게 한다.
난 이제 내 인생의 선장이다.
http://www.youtube.com/watch?v=QLyn1rLI61s&NR=1&feature=fvw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