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북

연구원들이

  • 한명석
  • 조회 수 2808
  • 댓글 수 4
  • 추천 수 0
2006년 5월 19일 03시 29분 등록


<1> 저자 소개 - 유홍준

- 1949년 서울출생
- 미술사 전공
- 1993년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전국민의 답사시대를 열다
- 40세에 완당을 본격연구하기 위해 성균관대 동양철학과 박사과정에 입학, 10년 만에 박 사과정을 수료한 후 <완당평전>을 저술하다
- 영남대, 명지대 교수를 거쳐 현 문화재청장, 인세수입으로 20억을 신고하다


<2> 소감

1.
내 집에서 예산 추사고택은 20분 거리이다. 단아한 한옥 앞 뜰의 작약<모란?>이 좋아서 자주 가곤 했는데, 물론 추사에 대해 아무 생각도 없던 때의 이야기이다.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완당평전 2권을 읽고난 지금은? 글씨(書)에 대해 말할 수 없는 애정이 생겼다. 깜짝 놀랄 만큼 현대적이고 변화무쌍한 추사의 글씨 앞에서 놀랄 뿐이다.
또 하나, 완당의 삶이 우리 시대에서 그다지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느낄 때, 살아있는 역사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된다. 불과 세 분을 거쳐 우리에게로 전달되는 완당의 기질.
“위창 노인이 역매 어른에게 그렇게 들었대요.” 705쪽

2.
나는 평소에 서예와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의 기질을 낯설게 생각해 왔다. 성격 급하고 호흡이 짧은 나로서 감히 넘볼 수 없는 끈기와 승부근성을 가진 사람들로 여겨왔다는 얘기이다. 자연히 서예를 접해본 적도, 관심을 가져본 적도 없었다. 이제 그 많은 완당의 글씨 하나하나가, 저마다 아름다운 것을 볼 때, 서예의 예술성에 대해 겨우 깨닫는다.

단아하고 기품있으며 164쪽, 도형적이고 435쪽, 멋스러운가 하면 455쪽, 날렵하다. 459쪽. 현대적이고 551쪽, 회화적이며 556쪽, 가는가 하면 563쪽, 두텁다 571쪽. 유독 힘찬 것과 621쪽, 힘차고도 호방한 것과 659쪽, 거친 듯 풀려난 것과 717쪽, 대담하고 723쪽, 섬세한 것 725쪽, 기묘하면서도 아리따운 것과 677쪽, 천진난만하여 724쪽, 드디어 춤추는 것 745쪽,이 어떻게 한 개인의 작품일 수 있는지 불가사의할 뿐이다.

나는 그 중에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날의 푸른 산’이라는 뜻을 가진 <부람난취- 745쪽>와 힘차면서도 멋스러운 <잔서완석루>가 제일 좋다. 577쪽
완당의 난초그림 <불이선란>도 최고이다!

3.
번창한 집안에서 수재로 태어나, 그 재주만큼이나 오만하고 성격이 강하여 적을 많이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두 번이나 유배생활을 한 완당이, 말년에 도달한 허허로움이 가슴에 스민다.
복사꽃조차 맘대로 웃지 못하고 눈물 흘리게 했던 말년의 외로움과 병환이 709쪽, 완당을 끌고 간 곳은 소박한 일상생활의 행복이다. 745쪽

최고 가는 좋은 반찬이란 두부나 오이와 생강과 나물
최고 가는 훌륭한 모임이란 부부와 아들딸과 손자

그러나 그 소박함은, 처음부터 한정지어진 단순성과는 다를 것이다. 이른바 대오하고 보니 대오하기 전과 같다, 는 차원이 아닐까. 말하자면 처음부터 졸<拙>한 것과 불계공졸<不計工拙>의 졸<拙>이 같을수는 없는 것이다.

한평생을 살아내고 겨우 얻은 알맹이를 지킨다? 일가를 이룬다는 것이 그런 것이 아닌가 싶다. 이제 좀 더 집약해서 나의 알맹이를 걸러내는 일에 매진해야 할까 보다. 겨우 나의 졸<拙>을 지키는 일 - 수졸<守拙>이 평생의 과업임을 알았으므로. 713쪽

4.
간송미술관에 가 보고 싶다.



<3> 내가 저자라면

역사는 두 번 왜곡된다고 김세걸선생님이 말했다. 기록될 때와 해석될 때. 역사의 기본적인 팔자가 왜곡이라면, 전문서적이 아니라면, 조금은 재미있게 해석되어도 좋지 않을까?
여기에서 ‘재미있다’는 것은 해석하는 사람의 관점이다. 고미숙이 자기 입맛대로 연암을 살려냈으되, 재미있어서 더욱 인상적인 것처럼 해석하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과감하게 취사선택되어도 좋겠다는 생각이다.

아무런 강약이 없이, 연대기에 따라 완당의 선진학자 교류와 교우관계에 대해 서술한 부분을 읽는 것은 많이 힘들었다. 그리고 남은 것도 없다. 그나마 내가 <금빛 기쁨의 기억>과 <열하일기>에서 기본적인 오리엔테이션을 받은 덕분에, 있는 힘을 다해 읽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완당의 삶과 서체의 변화에 대해 논하자면 불가피한 부분도 있었을 것이고, 또 완당의 학문에서 교우 및 사제관계가 중요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상당히 지루하고 또 내 인생에 도움이 된 바가 없다.
심지어 저자 유홍준의 문체조차 저 <문화유산답사기>의 자신만만하고 명쾌하며 때로 화려하기까지 한 것에 비해 지나치게 무미건조하게 느껴진다.

달리 어떤 방식이 가능했을까? 첫째, 도록이다. 완당의 글씨는 보고 또 봐도 좋으니, 과감하게 도록중심으로 기술하되, 교우관계에 잔 가지를 쳐서 굵직한 부분만 서술하고, 나머지는 각주로 처리해서 더욱 심도있게 알고자 하는 독자만 접근하도록 하는 방법이 있겠다.

둘째, 완당평전을 관통하는 관점의 강조이다. 어차피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가 아니고, 일어난 일을 해석하는 관점의 문제이다. 모든 일을 평균적인 톤으로 기술하는 것만이 사실에 충실한 것은 아니다. 또 사실에 충실한 것만이 유익하고 훌륭한 저서가 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완당에 대한 자료를 이만큼 집대성한 것이 기념비적인 일인지는 몰라도, 독특한 재해석으로 색깔을 넣게 하지는 못하였다.
저 유명한 글귀 “일독이호색삼음주”를 보나, 마음내키는대로 호를 만들어 쓴 점으로 보나, 난초그림과 시를 보나, 완당도 한 풍류 했던 것같은데, 살아있는 인간으로 생생하게 그려내지 못한 것같다. 관점과 강약... 그것이 서운하다.

<4> 책에서 인용한 부분

16-정옥자교수는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지적 활동을 오늘날의 대학문화에 비교하여 문사철을 전공필수로 하고 시서화를 교양필수로 삼았다고 했는데 추사는 이 모든 분야에서 올 에이를 받고도 남음이 있는 분이었다.
20-누군가가 러시아 문학을 말하면서 러시아 문학사는 톨스토이라는 거대한 봉우리를 정상으로 삼고 거기에 올라 산마루에 다다르면, 그순간 저 멀리 도스토예프스키라는 거봉이 다시 나타나게 된다고 했는데 추사 김정희는 정녕 그런 모습이다. 모르긴 몰라도 조선시대 사상과 학문의 세계에서 다산 정약용이라는 실학의 정상에 올라서면 저 멀리 추사 김정희라느 거대한 산이 또다시 나타나는 것과 같다. 이처럼 추사는 모든 면에서 오르기 힘든 높고 아득한 산이다.
24-만년에 바다를 건너갔다 돌아온 다음부터는 구속받고 본뜨는 경향이 다시는 없게 되고 여러 대가의 장점을 모아서 스스로 일법을 이루게 되니 신이 오는 듯, 기가 오는 듯, 바다의 조수가 밀려오는 듯 하였다. - 박규수
92-이렇게 옹방강은 늙음을 잊고 추사는 젊음을 잊으며 마음과 마음이 통하였으니 후지츠키는 이 만남이야말로 한중 문화 교류사에서 역사적으로 특별히 기록할만한 일이라고 했다.
104-추사는 매너리즘에 빠져 있던 조선 서화계에 우봉 조희룡, 소치 허련, 고람 전기 같은 중인 출신 서화가들에게 고차원의 문인적 이상이 담긴 글씨와 그림을 지도하며 예단을 이끌었다. 이리하여 조선 지식인 사회 한쪽에서는 고증학과 금석학에 기반을 둔 신선한 학풍과 미술사조가 생겨났다. 이를 후대 사람들은 ‘완당바람’이라 불렀으며 이렇게 일어난 완당바람은 날로 그 세를 더하여 가히 일세를 풍미하게 된다.
143-한 사람의 사람됨은 그의 벗을 보고도 알 수 있다는 옛말이 아니더라도, 한 사람의 삶을 복원하는 데서 교우관계는 그의 인생관은 물론 그의 정서, 나아가서는 학문과 미술에 대한 성향까지 엿보게 한다. 완당 역시 그가 교류한 인사들을 보면 세상사에 대한 그의 폭넓은 관심, 단호하면서도 결단성 있는 행동, 잔정이 많은 섬세한 성격까지 두루 살필 수 있다. 청나라 연경의 학예인들과 교류한 것은 예외로 치더라도 최소한 세 부류로 나누어볼 수 있으니 하나는 정통 사대부 문인들이고, 둘째는 완당 일파라 불러도 좋을 학예의 문인 제자들이며 셋째는 스님들이다.
174-완당의 장년과 중년 글은 이처럼 화려하고 장쾌하며 대단히 자신만만하고 현학적이다. 그래서 그를 무척 싫어하는 적이 자연히 생기곤 했다. 이처럼 자기의 지식을 드러내놓고 과시하는데 질시하는 사람이 생기지 않고 배기겠는가
179-완당은 <시경>이라는 글씨를 새긴 병풍바위 오른편에 <천축고선생댁>이라는 각자도 생겼다. 천축고선생댁이란 “천축나라-인도의 옛 선생댁”이라는 뜻으로 ‘석가모니 집’ 다시 말해서 ‘절집’이라는 말이다.
434-기교를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화로 돌아가게 하고
녹봉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조정으로 돌아가게 하고
재물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백성에게 돌아가게 하고
내 복을 다하지 않고 남김을 두어 자손에게 돌아가게 한다
439-특히 큰배 갑판 밑에서 사는 쥐는 항시 갑판 마루의 삐꺽 소리마다 수염이 쭈뼛쭈뼛 움직이기 때문에 부드러움과 강함이 고루 갖추어져 있다. 그런 배에서 잡은 쥐의 수염만으로 만든 붓이 일품 서수필이다.
455-내 글씨는 아직 말하기에 부족함이 있지만 나는 70평생에 벼류 10개를 밑창 냈고 붓 일천 자루를 몽당붓으로 만들었다
467-자기 자신만을 위하여 썼다는 것, 울적한 심사를 달래려고 썼건 그걸 쏟아내려고 썼건, 원래 예술로서 글씨란 남을 위하여 혹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쓰는 것인데 이제는 그런 제3의 계기를 차단해버린 셈이죠. 즉 자기 멋대로, 맘대로 해도 누가 뭐랄 사람도 없고, 부끄러울 것도 없었던 것이죠. 그러니까 그런 괴이한 개성이 나온 거 아니겠어요
475-우암은 늙은 유배객이면서도 죽던 당년까지 생강을 심었다는 것이다
629-서쪽 밭에 봄이 오니 어여쁜 게 봄이로세
바람 불 때 바람 불고 비 올 때 비가 오네
육국 정승의 황금도장 그게 뭐람
성동 쪽 두 이랑의 밭보다 못하네
659-만 그루 기이한 꽃에 천 이랑 작약 꽃밭
별장을 가득 두른 시누대에 책상 위 반을 채운 책
682-평생을 버티고 있던 힘이
한 번의 잘못을 이기지 못했네
세상살이 삼십 년에
공부한다는 것이 복임을 바로 알았네
709-뜨락의 복사꽃 눈물 흘리니
어찌 가랑비 내리는 때문이겠소
주인이 병에 잠긴 지 오래라
봄바람에도 감히 웃지 못한다네
712-완당은 과천시절로 들어서면서 비로소 자신이 스스로 허물을 벗었다고 권돈인에게 자신감을 표하였으며, 그 경지를 “잘되고 못되고를 가리지 않는다”고 는 불계공졸이라고했다. 이 말이야말로 ‘추사체’의 본령을 말해주는 한마디이다.
강상시절에 완당이 글씨에서 새롭게 발견한 경지는 怪의 가치였다. 즉 개성의 구현이었다. 그런데 과천으로 돌아온 지금 완당은 졸함을 말하고 있다. 기교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기교를 감추고 졸함을 존중하는 것이니. 이는 곧 노자가 말한 大巧若拙 즉 ‘큰 재주는 졸해 보인다’는 의미의 졸이다.
713-완당은 그 괴가 결코 의식적인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개성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완당은 이를 虛和라고 했다.
714-흥을 타고 갔다가 흥이 다하여 돌아왔을 뿐이다. 어찌 꼭 만나봐야 그 흥이 있겠는가
780-山嵩海深 - 산은 높고 바다는 깊네






,
IP *.199.135.69

프로필 이미지
꿈꾸는간디
2006.05.19 08:16:48 *.200.97.235
간송미술관이 6월 4일까지 무료로 개방한다고 합니다.
4호선 한성대역에서 내린다지요. 저는 31일 방문하려고요. 혹시 가실분 있으신가요?
프로필 이미지
꿈꾸는간디
2006.05.19 08:19:12 *.200.97.235
자세한 정보는 연합신문이나 제 홈피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idgie
2006.05.19 09:36:33 *.72.66.253
차마시러 저의 집에 오세요. 간송에 오실수 있으시면
02-747-9226
프로필 이미지
미 탄
2006.05.19 12:45:38 *.81.61.79
지방에 살다보니, 큰 맘 먹어야 나들이 한 번 가지요. 두 분 고맙습니다. 이선이씨 , 맞지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