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재우
- 조회 수 3815
- 댓글 수 0
- 추천 수 0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신동엽 詩選集
신동엽 지음/창작과 비평사
1. ‘저자에 대하여‘ - 저자에 대한 기록과 개인적 평가
신동엽(1930. 4. 7 ∼ 1969. 8.18)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답하려 할 때에 우리들의 답은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우리 자신이 처해있는 시대적 위치를 반영하게 되는 것이고 또한 자기가 살고 있는 사회를 어떠한 관점에서 보고 있는가 라는 보다 광범한 문제에 대한 우리들의 답의 일부를 이루게도 되는 것입니다.
<역사란 무엇인가> 中 - E.H.Carr -
위는 E.H.Carr가 쓴 <역사란 무엇인가(길현모 譯)>에 등장하는 글이다. ‘역사란 무엇인가.’ 역사는 우리 시대를 비쳐주는 전신거울과도 같다. 거울 속에 비춰진 우리는 비록 좌, 우가 뒤바뀐 형태로 드러나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우리 앞에 서 있는다. 하지만 좌, 우가 바뀌어짐에서 알 수 있듯이 거울 또한 스스로를 완벽하게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도구는 아니다. 자신을 완벽하게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것은 바로 ‘상대방’이다. 이 상대방의 눈이 그리고 상대방의 관점이 어쩌면 올바르고 객관적인 역사일지도 모른다.
카의 말처럼 역사에는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우리 자신이 처해 있는 시대적 위치를 반영하게 된다. 그리고 자신의 관점 또한 부지불식간에 자신의 삶 속에 녹아들어있으며, 때에 따라 노출되거나 표현되는 형태로 드러나게 된다. 시는 자신의 관점을 은유적으로 잘 표현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이다. 어떤 때는 지극히 객관적으로, 어떤 때는 대단히 감정적으로 표현될 수 있으며, 강렬하거나 부드럽게 자신을 담을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다. 이러한 시에 자신의 시대적 위치, 시대적 상황을 표현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역사에 책임을 지고, 그 역사와 함께 하려는 강력한 사명의식을 띤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며, 시를 통해 목소리를 높이고, 온 몸을 휘저으며 때에 따라 피를 토하는 주장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신동엽. 그는 그런 시인이었다. 시와 함께, 시를 통해 그리고 시를 남겨두고 세상을 한스럽게 등질 수 밖에 없었던 아쉬움의 시인이었다. 그의 시는 자신의 평범한 감정, 일상 그리고 자유로움을 여유로이 표현하고 표출하는 가벼운 도구가 아니었다. 그의 시는 그가 세상의 어처구니 없는 불합리성, 비인간성, 사상의 비평등성과 사투를 벌이기 위해 필요한 무기였다. 그는 외로운 투사였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시는 더욱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무너지지 않는 벽을 자신의 주먹으로 계속해서 내리칠 때 터져나오는 핏방울의 선홍색 빛깔이 바로 그의 시의 전체적 톤이다. 선명하고 처절하고 아련하며 슬픔이 잠겨져 있다. 그 때문인가. 그의 생애는 더욱 안타깝기 그지없다.
시인 신동엽은 1930년 8월 18일 일제치하의 식민지 시기에 충남 부여읍 동남리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독자였던 그의 부친 신연순은 전처 소생의 남매가 있었으나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사망하였기 때문에 신동엽은 자연스레 2대 독자가 되었다. 그의 부모는 아들인 그에게 많은 기대를 하였다.
그는 어려서부터 친구들과 뛰어 놀기보다는 혼자서 생각에 잠겨있는 시간이 많았다고 한다. 머리는 비상하여 1937년 부여 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졸업할 때까지 6년간 1등 자리를 놓지 않았다. 대학교를 진학해야 했지만 가난한 집안 형편상 그는 학비가 들지 않는 전주 사범대학에 진학하였는데, 당시 사범학교는 학비를 모두 관에서 지원해주었기 때문에 경쟁률이 매우 높고 인기가 많았다.
학교에서 기숙사생활과 함께 식사도 제공을 해주었지만, 당시 일본은 태평양 전쟁을 일으켜 전시체제였기 때문에 일본인, 한국인 모두 극도의 절제된(가난한)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그가 있던 전주사범대학 또한 관에서 모든 것이 지원되었지만, 사실 제대로 먹고 지내기가 어려웠다. 그런 상황을 안타까워하던 그의 아버지는 학교에 사식원을 제출하기도 했지만 모두 거절당하였고, 결국 그의 아버지는 아들을 위해 한달에 서너 차례씩 집에서 만든 음식을 자전거에 싣고 부여에서 전주까지!! 왕복하였다고 한다. 대단한 부정임과 동시에 그에게 거는 기대가 얼마나 컸는 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1945년 일제 패망 후 미국과 소련으로 인해 나누어진 남과 북의 분단상황과 남한만의 단독 선거, 단독 정부 수립등은 단일 민족간의 내분을 불러 일으키게 된다. 이러한 시기에 명확한 이유가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는 다니던 사범대학에서 쫓겨나고 마는데, 아마도 당시 정황상 남한 단독선거 반대 시위 및 단독 정부 수립 반대 동맹 휴학에 참여하였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집으로 돌아와 머물던 중, 다행히 퇴학에도 불구하고 그의 초등학교 교원 자격은 인정되어 근처 초등학교에 발령을 받아 부임하게 되나 사흘 만에 그만두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버린다. 그 초등학교에 전주사범대학 시절 대립했던 사람이 먼저 근무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공부를 더 하기로 결심하고, 아버지에게 등록금을 얻어 평소에 관심이 있던 역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배워보고자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하게 된다. 하지만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고향인 부여로 피난갔다가 인민군에게 발각되어 7월부터 9월 15일까지 강제부역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인천상륙작전에 의해 인민군이 퇴각하자 부산까지 피난갔다가 그 곳에서 12월에 국민방위군으로 강제 징집당하게 된다.
이 국민방위군은 중국군의 갑작스런 참전으로 인한 전세의 밀림으로 서울을 다시 빼앗기게 되자 혹시라도 인민군에게 젊은 사람들을 넘겨주게 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들을 자신의 휘하에 두고자 급조해 낸 일종의 예비군과 같은 조직이었다. 12월이란 한겨울에 소집된 장정들에게 제대로 된 피복이나 식량조차 공급되지 못했고, 그 결과 징집된 50만명 중 5만명이 굶어죽거나 얼어죽고 무려 전체의 80% 가량이 폐인이 되고 말았다.
다음해 2월 그는 국민방위군에서 해제되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지만 이미 몸은 상할대로 상해있었고, 배고픔을 견디지 못한 그는 살아있는 민물게를 그대로 잡아먹다가 그만 간디스토마에 걸리고 만다. 이때 간에 큰 문제가 생겨 결국 그는 40세란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는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석림(石林)이란 필명으로 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를 응모하여 입선하게 되는데, 이때 그의 건강은 이미 간디스토마가 발병하여 각혈과 고열에 시달리는 중이었다. 그는 자신의 어려운 건강상태에서 더더욱 힘있는 시를 썼던 것이다. 이때 조선일보에서 예심 심사위원을 맡았던 시인 박봉우는 그의 시를 심사하며, 본심 심사위원에게 “굉장한 장시입니다. 문단이 깜짝 놀랄겁니다.”라며 추천했다고 한다.
생전 남긴 저서로는 1963년 <산에 언덕에>, <아니오> 등을 담은 시집 『아사녀』가 있으며, 1975년 유고 시선집 『신동엽 전집』과 1980년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가 있다.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大地
서화
당신의 입술에선 쓰디쓴 풀맛 샘솟더군요. 잊지 못하겠어요.
몸냥은 단 먹뱀처럼 애절하구, 참 즐거웠어요.
여름날이었죠.
꽃이 핀 고원을 난 지나고 있었어요. 무성한 풀섶에서 소와 노닐다가,
당신은 가슴으로 날 불렀죠.
바다 언덕으로 나가고 싶어요.
밤 하늘은 참 좋네요. 지금 지구는 여행을 한다나요?
관좌성운 좀 보세요. 얼마나 먼 세상일까요……
기중 넓은 세상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그럼 그의 밖곁엔 다시 또 딴 마당이 없는 것일까요?
자, 손을 주세요. 밤이 깊었어요.
먼저 쉬이세요. 못 잊으려나봐요.
우리가 포옹턴 하늘에 솟은 바위, 그 밑에 깔린 구름,
불 달은 바위 위에서 웃으며 잠들던 아무 것도 걸치지 않았던 당신의 붉은 몸.
언제여든 필요되거든 조용히 시작되는 그 서무곡으로 백학의 대원 휘파람 하세요.
돌아가 묻히겠어요, 양달진 당신의 꽃가슴으로, 아마 운명인가봐요.
그럼 안녕히.
제1화
그늘 밑 꽃뱀 얽혀 있는 산중에서 산삼을 찾고 있었네.
그날 삼은 보지 못했으나, 여인을 만나 정성을 다한씨 심거 주었네.
나락이며 보리며 목화씨며 경지에 뿌리고 돌아다녀도 아무도 마다하네.
지구는 이미 먼저 나온 사람들이 한 몫씩 논하갖고 말아버렸데.
땅 한번 디뎌도 세금이 쫓아오데. 바람 마시는 값으론 코를 베어주었네.
억광 하늘 아래 절름거리며 지나간 초라빛 나그네 하나 있었다니라.
하여 앞도 뒤도 없는 이야기 몇 맏, 노변에 뿌려놓고,
억광 하늘 아래 신명은 처음으로 그 곳서 빛나,
뻗은 무지개 우주를 벗어나 스러져갔다니라.
이르노니,
지금 예까지 와 있는 역사의 중량이여.
당신의 보따리 속에 든 인구며 곤충이며 전통이며 운명이며,
한데 묶어 머리 이고 하늘향 앞발 한번 버팅겨보시지.
짓궂은 이야기다.
허허만년
초원이 있고, 냇물이 있고, 양달이 있고, 독사가 있고,
암과 수 쌍쌍이 엉켜 새끼 치곤 죽어져갔다.
제2화
간밤에 밟히워 간 가난한 목숨들의 명복을 위하여,
지금 어디선가 아우성치고 있을 못된 아귀들의 진혼을 위하여.
그리고는 내일날 태양빛 찬란히 빛나 있을 사형집행장, 꽃바람 부는 교외,
잔디밭 언덕으로 끌려나갈 아름다운 인류들의 눈물을 위하여.
내 동리 불사른 사람들의 훈장을 용서하기 위하여.
코스모스 뒤안길 보리 사발 안은 채 죽어 있던 누나의 사랑을 위하여.
감옥 돌 묻으러 갈 꽃상여의 길닦이를 위하여.
아프리카 사막서 일사병으로 눈먼 식민지 병사들의 월급봉투를 위하여.
그리고는 먼 훗날, 당신이 서 있을 대지를 쪼개고 솟아나올
시생대 암층 깊숙이 우리의 대서사시를 새겨넣기 위하여.
제3화
내가 온달 때 당신은 구름 덮으시더라.
나는 원시. 그래서 당신은 멀리 있어야
잘 생각난다 이렀더니, 싫어도 당신은 끄덕이시더라.
무엇을 너는 내게 요구코 있는 건가.
나의 간 말인가?
금닛발 말인가?
귀 말인가?
옛날엔 명실상부 직업전투가가 있었삽니다.
이 기 저 기 팔려다니며 성문지기, 호랑이잡이,
이마에 뿔 돋치고 양 어금니 째져나온 불쌍한 종족들이 살었댑니다.
오늘날 그들은 출세도 했습니다.
내성에 들어와 옥좌를 마련코, 부족 눕혀 구중궁궐 쌓올리고
백성 목덜미 위 군림하여 천하를 호령하고,
나도 물론 蠻族戰爭엔 나가보았습니다.
창 들고 도끼 들고 코걸이 하고 귀걸이 하고,
닥치는 대로 대갈통을 바수어 함지박처럼 머리에 엎어쓰고,
가슴팍을 꿰어선 나무에 매달아 두고.
못난짓 버릇 가운데 몸을 담그고
오랜 세월 숨 쉬어간 사람들이여,
도끼는 신기해도
손재주가 만든 것이며,
비행기는 비싸도
땅에서 뜨는 것이다.
떡쇠의 입에는 쌀이 하루 세 사발,
수상님의 대장에는 비계가 하루 세 사발,
대헌장은 존엄해도 개호지의 안경이다.
못난짓 버릇 가운데 몸을 담그고
오랜 세월 버둥겨 간 사람들이여,
까마귀는 내려와 선달이 가슴 위에
구데기를 쪼아서 주둥일 닦을 게고
장군님의 존안 위에 평소히 앉아서
누깔을 빼먹고선 갸웃거릴 것이다.
내 고향에 피는 꽃은 무슨 꽃일까.
봄, 갈, 여름, 내 생지에 펴나는 꽃은
무슨 꽃일까. 두견이, 패랭이, 들국?
거짓말이다. 그런 꽃은 내 고향 산천에
펴나지 않는다.
들길을 가로질러 달구지가 지나갔다.
낯익은 얼굴들이 호박처럼 매달려
메마른 돌밭 위에 부숴져가고 있었다.
벗이여, 눈보라 쌓이는 밤
이리의 겨드랑에 손을 넣으면,
다스운, 다순 피가 안 돌고 있을 것인가.
벗이여, 광막한 원시림.
인간 된 거죽 홀홀이 찢어 던지고
산돼지 되어 두더지처럼 살아갈 순 없단 말인가.
아름다운 바람 하늘 높이 흘러가고
억만년 햇빛 머리 위에 퍼 붓는다.
어데를 흘러가는 싸움떼이게
그 많은 다툼에도 시비가 남았느뇨.
어데를 흘러가는 목숨들이게
양뿔이 빠지고도 꼬리마저 잘려 있느뇨,
하면, 오늘밤을 어떻게 할 테란가.
‘박애’로운 폭약이여, ‘정의’로운 침략이여.
메마른 공분모가
화려한 문명시엔 유세스런 장막이고, 이도령은 당신에
호랑이굴 아구리에 네 다리로 막고 서서
꽂혀 오는 화살은 등가죽으로나 헤이고?
산과 산,
산과 산,
모과나무 가지엔 무엇이
걸레처럼 발기발기 찢어져
걸려 있었고,
돌벼개,
바위 그늘,
땀으로 세수하다
이슬에 목 축이며
동으로, 서으로,
남으로, 북으로.
오늘에 미친 사람
내일로 바람자케,
내일로 죽힌 사람
모레에 환생하케.
하여 원수로 죽은 사람
원수로 더불어 복수케 하며,
독엔 독으로
창엔 창으로
바퀴엔 바퀴로,
태앙 밑에 있고 싶은 자 있게 하고
없고 싶은 자 없게 하라.
싸우고 싶은 자 저희끼리 싸우게 하고
독존하고 싶은 자 철창 속에 독존케 하라.
투구를 쓰고 싶어 하는 자
쇠항아릴 만들어 깊숙이 씌워주라.
영웅이 되고파 서두르는 자 로케트에 매달아
대기 밖으로 내던져버리라.
무엇이 남겨졌고
무엇이 돌아갔는가.
빛나는 여름,
구슬 뿌리며
산맥을 넘어간,
소녀들의
흰 발이여,
지금은 바람 잔
언덕 위,
패랭이,
민들레,
들노래처럼
사라져간
그리운,
이름,
이름이여.
제4화
어두운 대지 한 가닥 서기 있어, 무릎 모두우고 일어 앉는 그림자,
헝클진 앞가슴 아무려 여미며 비녀는 입에,
두 손은 머릴 간조롱이고,
동트는 대지 계곡과 들녘에 한 올기 맨발 번 육혼은 살아.
태백줄기 고을고을마다 강남제비 돌아와
흙 물어 나르면, 산이랑 들이랑 내랑 이뤄
그 푸담한 젖을 키우는
울렁이는 내 산천인데……
맛동마을 농사집 태어나 말썽없는 꾀벽동이로
딩굴벙굴 자라서, 씨 뿌릴 때 씨 뿌리고
걷어딀 때 걷어딀 듯, 이웃 말 어여쁜 아가씨와
짤랑짤랑 꽃가마도 타보고,
환갑잔치엔 아들 손주 큰절이나 받으면서
한평생 살다가 묻혀 가도록 내버려나주었던들.
흙에서 나와
흙에로 돌아가며,
영원회귀 운운 이야기는 없어도
햇빛을 서로 누려 번갈아 태어나고,
자넨 저만큼,
이낸 이만큼,
서로 이물을 두고
따 위에 눕고,
사람과 사람과의
중복됨이 없이,
흙에서 솟아
흙에로 흩어져 돌아갔을,
인간 寄生을 모를
사람들.
산정의 제왕……
얼마나 좋은가.
그리고 나의 발 아래 저렇게 많이
산의 경사를 쫓아 무진한 돌들이
천꼴 만색으로 붙어 있지 아니한가.
대지에도 지열도 영천도 솟는다 하데마는,
짐이 디디고 있는 이 산은 인육으로 구축된
말하자면 기생탑일세.
해서 그들의 등가죽엔 강물이
흐르지 않는단 말야.
헌데 건 그렇고, 우스운 이야기는
따에 붙어 사는 그 버섯들의 살림살이 말일세.
그들이야말로 이런 따위,
저희끼리 눈감고 아옹하는 격,
왕궁과 통치권엔 아랑곳 없으니까.
2차대전 저물어가기 얼마 전의 이야길세.
두만강변 어느 촌락을 지남 길
한 할아버지로부턴 이런 이야길
들은 일이 있네.
우리하고 글쎄 무슨 상관이 있단 말요.
왜 자꾸 와 귀찮게 찝쩍이냐 말요.
내 멀쩡한 사지로 땅을 일쿼서
강냉이, 고구마, 조를 추수하고
옆 마을 해삼장 점북과 바꿔오구,
시집보내구, 장가보내구, 잘사는데,
글쎄 뭘 어떡하겠단 말이랑요.
그러나, 그들의 마을에도, 등가죽에도,
방방곡곡 뻗어온 낙지의 발은
악착스레 착근하여 수렁이 되었나니.
그렇다 오천년 간 萬主義는
백성의 허가 얻은 아름다운 도적이었나?
제5화
가리워진 안개를 걷게 하라,
국경이며 탑이며 어용학의 울타리며
죽가래 밀어 바다로 몰아넣라.
하여 하늘을 흐르는 날새처럼
한 세상 한 바람 한 햇빛 속에,
만 가지와 만 모래를 한 가지로 흐르게 하라.
보다 큰 집단은 큰 체계를 건축하고,
보다 큰 체계는 보다 큰 악을 양조한다.
조직은 형식을 강요하고
형식은 위조품을 모집한다.
하여, 전통은 궁궐 안의 상전이 되고
조작된 권위는 주위를 침식한다.
국경이며 탑이며 일만년 울타리며
죽가래 밀어 바다로 몰아넣라.
제6화
없으려나봐요. 사람다운 사낸. 어머니, 어쩌면 좋아요.
이 숱 많은 흰 가슴, 텃집 좋은 아랫녁,
꽃잎 문 입술…… 보드라운 대지 누워 허송 세월하긴,
어머니 차마 못 견디겠네요.
황원 말발굽 달리던 황하기 사내 찰코 그립어요.
어데요? 그게 어디 사람이에요? 기술자지.
어데? 그건 뭐 또 사람이에요?
제2급 齒車라고 명패까지 붙어 있지 않아요? 어머니두.
저건 꼭두각시구, 저건 주먹이구, 저건 머리구,
별수 없어요, 어머니, 저 눈먼 기능자들을
한 십만개 긁어모아 여물 속에 쓸어옇구
푹신 쪼려봐주세요. 혹 하나쯤 온전한
사내 우러날지도 모르니까.
해두 안되거든 어머니, 좋은 생각이 있어요.
힘은 좀 들겠지만 지상에 있는 모든 숫들의 씨
죄다 섞어 받아보겠어요. 그 반편들 걸.
욕하지 마세요. 받아 넣고 정성껏 조리해보겠어요.
문제없어요, 튼튼하니까!
제길할, 빈집뿐일세 그려, 주인은 없는데
하인 객들이 얼싸붙고 닭 잡아라, 절 받아라, 난쟁이니 썅.
비로소, 말미암아, 바야흐로다?
거북등에다 집 짓고 늘어붙는 소라.
잠자는 코끼리 등에 올라 국경을 그어
놓고 다퉈쌓는 개미떼.
깊은 지옥의 아구리에 백지 한 장 깔고
행복한 곰의 눈.
쇠기둥과 가시줄로 천당을 지어놓고
문 지키는 수고.
귀부인 발톱에 매니큐어를 칠해주고
밥 얻어먹는 전문가.
해 저문 바닷가의 구두수선가씨,
단에 위의 이발사선생,
산록의 수렵가박사.
그만 돌아들 오시지,
삼간초옥 등 비친 창문이 기다리고 있는데,
매미는 언제까지 뜻 모를 소리만 울어예는가.
온실 속서 울어예는 매미는 무엇을 먹으려고
살아쌓는가.
노동은 머리 위에 나비꽃이나, 한 마리 매미를 달기 위해,
열두 해 긴긴 세월 밭 가는 돼지?
돼지는 노래하라,
밭을 갈면서,
씨를 뿌리라 한 알 한 톨
피맺힌 말쌈으로,
돼지는 말씀하라,
밭을 갈면서,
예보하라, 날씨도,
실업케 하라, 왕도.
한 알 한 톨,
피맺힌 말쌈으로.
후화
숱한 봄, 여름, 가을, 잊혀진 세월
양지바른 분지 잡초의 떼는
무성케도 이루어 쓰러져 갔다.
무너진 살림살이 해마다 쌓여
마흔아홉 두께의 비옥한 층을 입었을 때,
그곳에선 육신 같은 미끈한 줄기가
아름다운 향기를 사지에 뿌리며
하늘거리는 요화처럼 돋아나고 있었다.
한 그루 불전을 꽃피우기 위하야
선사 오천년은 묻히어 갔고.
한 그루 피어난 성서의 지층에는
구십구억 창세인민의
몸부림 든 사상이 썩어 있었다.
우리들이 돌아가는 자리에서
무삼 꽃이 내일날 피어날 것인가.
잡초의 무성을 나래 밑에 거느리며
칠천년 늙어온 몇 그루 고목,
당신네 말쌈도, 지혜의 법열도,
문명의 행복도, 그대네 작업도,
늘어붙어 지층 이룰 갑충의 무덤.
정신을 장식할 백화만상이여
몇만년 풀밭 이룬 人種의 가을이여.
흐무러지게 쏟아져 썩는 자리에서
무삼 꽃이 내일날엔 피어날 것인가.
우주 밖 창을 여는 맑은 신명은
태양빛 거느리며 피어날 것인가?
태양빛 거느리는 맑은 서사의 강은
우주 밖 창을 열고 춤춰 흘러갈 것인가?
<朝鮮日報?1959년 1월>
風 景
쉬고 있을 것이다.
아시아와 유우럽
이곳 저곳에서
탱크 부대는 지금
쉬고 있을 것이다.
일요일 아침, 화창한
도오꾜 교외 논둑길을
한국 하늘, 어제 날아간
이국 병사는
걷고,
히말라야 산록
토막 가 서성거리는 초병은
흙묻은 생고구말 벗겨 넘기면서
하루삔 땅 두고 온 눈동자를
회상코 있을 것이다.
순이가 빨아준 와아샤쓰를 입고
어제 의정부 떠난 백인 병사는
오늘밤, 死海 가의
이스라엘 선술집서,
주인집 가난한 처녀에게
팁을 주고.
아시아와 유우럽
이곳 저곳에서
탱크 부대는 지금
밥을 짓고 있을 것이다.
해바라기 핀,
지중해 바닷가의
촌 아가씨 마을엔,
온종일, 상륙용 보오트가
나자빠져 뒹굴고,
흰구름, 하늘
제트 수송편대가
해협을 건너면,
빨래 널린 마을
맨발 벗은 아해들은
쏟아져나와 구경을 하고,
동방으로 가는
부우연 수송로 가엔,
깡통주막집이 문을 열고
대낮, 말 같은 촌색씨들을
팔고 있을 것이다.
어제도 오늘,
동방대륙에서
서방대륙에로
산과 사막을 뚫어
굵은 송유관은
달리고 있다.
노오란 무우꽃 핀
지리산 마을,
무너진 헛간엔
할멈이 쓰러져 조을고
평야의 가슴 너머로,
고원의 하늘 바다로,
원생의 유전지대로,
모여 간 탱크 부대는
지금, 궁리하며
고비사막,
빠알간 꽃 핀 흑인촌,
해 저문 순이네 대륙
부우연 수송로 가엔,
예나 이제나
가난한 촌 아가씨들이
빨래하며,
아심아심 살고
있을 것이다.
<現代文學?1960년 2월호>
山에 언덕에
그리운 그의 얼굴 다시 찾을 수 없어도
화사한 그의 꽃
산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맑은 그 숨결
들에 숲속에 살아갈지어이.
쓸쓸한 마음으로 들길 더듬는 행인아.
눈길 비었거든 바람 담을지네.
바람 비었거든 인정 담을지네.
그리운 그의 모습 다시 찾을 수 없어도
울고 간 그의 영혼
들에 언덕에 피어날지어이.
<詩集 阿斯女?1963년>, 중학교 교과서 수록詩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사월도 알멩이만 남고
껍데기는 가라.
껍데기는 가라.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껍데기는 가라.
그리하여, 다시
껍데기는 가라.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아사달 아사녀가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만 남고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52人詩集?1967년>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 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건, 지붕 덮은
쇠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
티 없이 맑은 구원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아모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高大文化?1969년 5월>
빛나는 눈동자
너의 눈은
밤 깊은 얼굴 앞에
빛나고 있었다.
그 빛나는 눈을
나는 아직
잊을 수가 없다.
검은 바람은
앞서 간 사람들의
쓸쓸한 혼을
갈가리 찢어
꽃풀무 치어 오고
파도는,
너의 얼굴 위에
너의 어깨 위에 그리고 너의 가슴 위에
마냥 쏟아지고 있었다.
너는 말이 없고,
귀가 없고, 봄(視)도 없이
다만 억천만 쏟아지는 폭동을 헤치며
고고(孤孤)히
눈을 뜨고
걸어가고 있었다.
그 빛나는 눈을
나는 아직
잊을 수가 없다
그 어두운 밤
너의 눈은
세기의 대합실 속서
빛나고 있었다.
빌딩마다 폭우가
몰아쳐 덜컹거리고
너를 알아보는 사람은
당세에 하나도 없었다.
그 아름다운,
빛나는 눈을
나는 아직 잊을 수가 없다.
조용한,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다만 사랑하는
생각하는, 그 눈은
그 밤의 주검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너의 빛나는
그 눈이 말하는 것은
자시(子時)다, 새벽이다, 승천이다.
어제
발버둥하는
수천 수백만의 아우성을 싣고
강물은
슬프게도 흘러갔고야.
세상에 항거함이 없이,
오히려 세상이
너의 위엄 앞에 항거하려 하도록
빛나는 눈동자.
너의 세상을 밟아 디디며
포도알 씹듯 세상을 씹으며
뚜벅뚜벅 혼자서
걸어가고 있었다.
그 아름다운 눈.
너의 그 눈을 볼 수 있은 건
세상에 나온 나의, 오직 하나
지상의 보람이었다.
그 눈은
나의 생과 함께
내 열매 속에 살아남았다.
그런 빛을 가지기 위하여
인류는 헤매인 것이다.
정신은
빛나고 있었다.
몸은 야위었어도
다만 정신은 빛나고 있었다.
눈물겨운 역사마다 삼켜 견디고
언젠가 또 다시
물결 속 잠기게 될 것을
빤히, 자각하고 있는 사람의.
세속된 표정을
개운히 떨어버린,
승화된 높은 의지의 가운데
빛나고 있는, 눈
산정(山頂)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의,
정신의 눈
깊게. 높게.
땅속서 스며나오듯한
말없는 그 눈빛.
이승을 담아 버린
그리고 이승을 뚫어 버린
오, 인간정신 미의
지고한 빛.
<詩集 阿斯女?1963년>
3. ‘내가 저자라면’
왜 그는 시를 써야만 했을까
이 시선집(詩選集)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이다. 그는 처음부터 시를 쓰지 않았다. 일제 식민지하, 1945년 광복 후 남한과 북한의 분단현실,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 그리고 1950년의 북한의 무략침범으로 인한 6.25사변. 전쟁기간 동안 인민군에 잡혀 강제노역, 그해 12월 이승만정권의 잘못된 정책에 의한 국민방위군에 강제 징집되어 몸은 상할대로 상하고, 결국 굶주림 때문에 얻게 된 병, 간디스토마.
그는 간디스토마로 인한 각혈과 고열에 시달리며 시를 쓰기 시작했다. 그 결과 나온 작품이 바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였다. 그는 왜 이러한 어려운 상태에서 시를 쓰기 시작했을까? 왜 건강할 때는 시를 쓰지 않고 몸이 상할 대로 상한 상태에서야 비로소 시를 쓰기 시작했을까?
역설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맞을 듯 싶다. 그가 건강할 때 그는 간접적 저항 도구인 시로써는 성이 차지않는 뜨거운 피의 젊은 청년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행동하고 실천하고 강력하게 저항하고 투쟁하는 것이 그의 젊음과 일치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병을 얻은 후 몸은 그의 말을 듣지 않았지만, 그의 정신은 더욱 높고 깊어졌으리라 생각된다. 그의 사상은, 그의 국가에 대한, 민족에 대한 사랑은 더욱 지고지순해지며, 뜨거워졌으리라 보여진다. 그의 뜨거운 피는, 열정은 그를 투병생활 가운데서도 가만 놓아두지 않았으리라. 그 때문에 그는 그의 모든 마음을 담아 시어에 담기 시작한 것으로 판단된다. 그만큼 그의 시는 뜨겁고 강렬하며 구구절절 피가 끓는다. 그와 동시에 애절한 아쉬움, 아련함, 안타까움이 집힌다. 하나가 높아지면 하나는 낮아지는 법. 그는 건강을 잃었지만 더 높은 정신세계를 얻었다. 더 강한 투쟁심을 얻었다.
그의 사진을 보라. 그의 사진에는 웬지 모를 슬픔이 묻어나온다. 어쩌면 시대가, 시대의 흐름이 그를 온전히 평범한 인물로 살지 않도록 안정적 삶의 자리에서 그를 밀어냈는 지도 모른다. 어쩌면 반대로 그가 시대의 흐름을 참지 못하고 그 흐름을 온 몸 던져 막기 위해 스스로 떨쳐 있어난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무엇이 중요하랴. 그는 순국지사도 아니요, 나라를 구한 애국자도 아니건만 일반인들의 가슴에 안타까움으로 남아있는 작은 영웅이다. 그의 소리침은 핏발 선 날카로움이요, 앞장 서 동참을 요구하는 한줄기 강한 빛이었다. 죽어가는 순간까지 민족의 안녕을 위해, 역사의 회복을 위해 나오지 않는 쉰 목소리로 소리쳐 소리쳐 부르던 절규의 파편이었다.
이제 그의 모습은 더 이상 볼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남긴 시(詩)로써 그를 만나 볼 수 있다. 그의 정신은 그가 남긴 많지 않은 시상 속에서 느낄 수 있고, 만질 수 있다. 민족 영웅으로 유명하지 못하나, 그의 삶은 그가 이 세상에 남긴 그의 시로 인해 지지 않고 계속 사람들의 마음 속에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그가 남긴 시 중에서 <만약 내가 죽게 된다면>을 하나 더 골랐다. 가슴 아픈 구절이 많다. 내가 죽더라도... 눈물 대신 조국에 정열을 바쳐달라는 그의 주문은 그가 결코 죽지 않고 우리 마음 속에 살아있으려는 그의 의지를 보여주는 듯하여 더욱 가슴 아프다.
만약 내가 죽게 된다면
잔잔한 바다와 준험한 산맥과 들으라
나의 벗들이여
마즈막 하는 내 생명의 율동을
미웁던 것이나 귀엽던 것이나
이제는 잘 있으라 나는 가련다
생각하면 나는 얼마나 많은 사랑의 법열과
또한 얼마나 많은 인간의 추악을 보았단 말인가
단풍든 고덕산에 함께 올라
저 멀리 서해바다와 저 멀리 지리산 줄기를 더듬으며
소리 질르며 놀던 학우들의 이름이여
아츰 저녁으로 웅장한 한강철교를 지나 통학할 때
시대의 풍운아처럼 차린 청년에게
수집은 추파를 던지던 수많은 여생도들의
인사 없이 사귀인 그리운 얼굴들이여
첫사랑의 불타는 정열을 나에게 쏟아주고
그리고 이내 나를 배반하고 가버린
요염한 눈 모습이여
가시지 못할 내 마음의 여신이여
단장의 비명을 울리며 전기고문 받던
그래도 나에게 위한을 잊지 않던
이름없는 영웅 내 감방의 친구여
나는 추억하나니
괴로웠던 것이나 행복했던 것이나
이제 와서는 내 마음을 현혹케 하는
온갖 영상들
꽁지벌레처럼 쫓아다니는 학정자의 학살을 피하여
서울로 망명할 때
남부여대의 피난민이 오르내리는 천안고개
호젓한 소롯길에서
우리 함께 붉은 까치밥을 따먹으며 길을 걷던
영리한 소녀 잊지 못할 얼굴이여
불덩어리 번갯불처럼 쏟아지는 기총소사 밑에서
나의 팔에 안겨 언덕을 넘어서던
누나 잃은 소년이여
까무러쳤던 얼굴이여
탈옥수의 심정으로 채쭉에 끌려 남하할 때
찬 눈을 뭉쳐 먹어가며 넘던 문경새재 고개에서
기한과 피로에 반죽음이 되어 조국을 원망하던
낯설은 수만 청년의 떼직이여
눈보라 휘몰아치는 날
낯선 집 돌각담 밑에 내 지쳐 쓰러졌을 때
행주치마 바람으로 나와 깜밥과 동김치를 쥐어주던
따뜻한 인정의 아가씨여, 따뜻한 아가씨의 얼굴이여
다만 만백성이 만백성을 위하여 평화스러이 노래 부르며
일하는 아름다운 나라가 보고 싶었기에
불태워 보낸 젊음이었노라, 혀를 깨물어
분류처럼 내달려온 젊음이었노라
피비린 낙동수를 반참삼아
주먹밥 먹던 교육대에서
탐욕의 희멀건 눈으로 가련히 두리번거리던
무고한 젊은이의 피눈물이여
조선 사람들의 병들었던 모습이뎌
나는 회상하나니
이 온갖 희락과 질곡의 골짜기를
그리하여 또 다시 만날 수 없는 인연의 벗들에게
상상 속에 향연을 베풀어 호소를 보내나니
사람과 소가 죽어 나자빠져 뒹구는
낙동강 나루터에서나
눈물을 짜가며 건너던 뼈시린 냇물에서나
하루하루의 피곤을 풀어보는 주막집에서나
알지 못하는 새에 정의가 깊어가던 해후의 길벗
그 처녀들의 환영이여
경부선 열차지붕
싸장사하는 수많은 전재민들 틈에 끼여 된서리를 맞아가며
또는 시나브로
인가와 도로를 피하여 밤을 새우던 산중에서
우러러보던 별이여, 눈물로
우러러보던 북극성이여
한강 보오트장에서 화창한 남산공원에서
그대들이 마주친 인상깊은 미모의 대학생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여, 사모해서는 아니될
그를 그리워하고 있는 사람들이여
지금쯤 어디메 산맥에서 푸른 영을 타고 있을
맥고모자 그늘 아래 웃음 웃던 얼굴이여
오다가다 말없이 지나친 듯 얼굴들
내 시 낭독에 우레 같은 박수를 보내주던 군중들
개가 아는 그리고 내가 모르는
온갖 연분 있는 사람들의 심장이여
나는 가련다
아름다운 처녀지 우에 자유스러이 피어나려던 내 청춘은
노망든 독재자와 이방권력에 의하여 무참히
꺽이어버렸다
초야의 신부처럼 감격에 부풀었던 나의 희망은
억울히도 짓밟혀버리었다.
자유로운 하늘이여
자유로운 원시림이여
공화국기와 태극기가 번갈아 올라가는
죄없는 나의 고향 아득한 한촌이여
나는 본 일이 있는 그리고 비록 나를 못 봤을지언
하나도 아니요 백도 아니요 십만도 아니요 더 많은
그리운 사람들의 마음이여
나의 발바닥과 손길과 숨결이 스쳐간
나무며 돌이며 벌판이며 아름다운 강산이여
들으로 마즈막 하는 내 생명의 율동……
지금도 살육의 재단에서 고혈에 포화가 되어
수무족도하는 여름밤의 부나비떼를 보노라
그러나 들으라 나의 벗들이요
먼동 트는 대지요
내 그대들의 추억을 지니고서 어찌 미련없이 떠날 수 있겠느냐
그러나 벗들이여 나는 똑똑히 보았노라
산월달이 된 자유의 여신을
그리하여 탄생될 자유의 여신을 그대들에게 부탁하며
나의 청춘은 어린 산야를 위하여 피가 되려 하노라
독재정치의 희생이 된 내 생명은
신성한 평화를 위하여 주춧돌이 되어지리라
들으라 잊지 못할 나의 벗들이여
나를 추모하는 뭇 벗들이여
나 대신 그대들의 정열은 갓난 아들 조국에 바치라!
이것만이 내 생명의 율동이 요구하는 벗들에 향하는
마즈막 바램이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