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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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저자에 대하여
희안한 그래서 뛰어난 작가, 피터 드러커
어떻게 자서전을 이렇게 쓸 생각을 했을까? 감탄스럽다고 해야 할지, 놀랍다고 해야 할지. 그저 말문이 막혀 어디서부터 무엇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이번이 24번째 책인데 (아니, 벌써!), 모든 책들이 제 각기 나름의 어려운 점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드러커 교수의 자서전은 가장 난감한 책 중의 하나인 것 같다.
흔희들 ‘자서전’하면 우선 1인칭 관점에서 저자 스스로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기대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일 것이다. 나 역시 당연히 이 책을 집어 들 때까지만 해도 그러했고, 그래서 내심 기대가 되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허나, 첫 페이지부터 저자는 허를 찔러 들어온다. 할머니라니! 그것도 엉뚱하기도 하고 어처구니없기도 한 할머니의 얘기를 펼치다니!
책을 읽다보면 구성뿐 아니라, 표현에 있어서도 드러커 교수가 뛰어난 작가임을 엿볼 수 있는 구절들이 많이 등장함을 느꼈을 것이다. 가령:
전쟁이 끝나고 여성 근로자들을 내보내야 할 시기가 되자 많은 여자들이 자살을 시도했고, 그 가운데 상당수가 목숨을 잃고 말았다. 닉 드레이스타트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안은 채 눈물을 머금고 자기 사무실에 앉아 있었다. “신이시여, 저를 용서하소서. 저는 저 불쌍한 영혼들을 실망시키고 말았습니다 (561).
앨프레드 슬론 편에 등장하는 닉 드레이스타트에 관한 이야기인데, 그야말로 드러커 교수 자신이 드레이스타트인양 상황묘사나 심리 묘사가 드라마틱하다.
아마 내가 다른 사람을 지루하게 만든다는 사실에도 신경조차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현상은 전문적인 작가가 별 생각 없이 빠져들게 되는 위험이다. 나는 자신을 지루하게 만들 수 있는 위험을 감당하고 싶지 않았다 (181).
그 자신이 엘자와 소피 편에서 밝히고 있듯이, 그리고 엘자 선생이 작문에 소질이 있다고 간파했듯이, 드러커 교수는 작가이다. 그것도 스토리텔링에 재능 있는.
구경꾼, 관찰자 그리고 통합자
드러커 교수는 스스로를 구경꾼이자 관찰자라고 묘사한다. 그리고 자신이 관심 있는 것은 조직이나 기업이 아닌 조직과 기업을 구성하는 “사람”에 있음을 거듭 강조하고 있다.
Management is about human beings
어쩌면 드러커 교수의 경영 사상이나 전체적인 관심 전부를 요약한 핵심적인 한 줄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인지, 그에게는 도대체 영역이나 경계가 보이질 않는다. 시대도 자신이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드라마틱한 사건들도 연결되어 있다.
사회주의 이야기를 하는 가 싶으면, 어느 새 자본주의로 넘어가 있고, 세계 1차 대전 이야기를 푸는가 싶으면 공황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가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니 구루라고 평가 받는 것은 너무도 일반적이고 대표적이기에 더 이상 강조가 필요치 않는 부분인 것 같고, 그저 내가 자서전을 읽으며 놀라웠던 것은 대단원의 인문학 통섭이었다.
그런데 만약 저자가 여러 인문학 분야를 대충대충 알고 지나치는 정도라면, 그는 결코 경영학의 구루가 되지 못했을 거란 생각이 든다. 그가 현대 경영학을 탄생시킬 수 있던 가장 큰 핵심은 다름아닌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여러 분야에 걸친 인문학을 섭렵하고 통합하며 발생한 결과라 여겨지기 때문이다.
드러커 교수의 말처럼 어떤 일을 추구함에 있어 결과를 힐긋거리는 것은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저 스스로를 평범한 인간의 흐름에 내맡기는 일일뿐.
사명감. 이것을 지니고 전진 또 전진하는 것만이 우리 스스로를 평범의 대열에서 끄집어 내어 무언가를 이룬 사람의 반열로 올려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조차 필요 없는 일임을 일깨워준 책이다..
3부 내가 저자라면
주제:
이 책은 사회적 초상화를 제공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하다 (17).
그러니까 이 책은 단순히 한 개인이 자신의 업적이나 성취 과정을 혹은 성공 비법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드러커 교수의 책들과 비교해도 경영 지식이나 방식을 설명하는 그 어떤 책들보다 작가적 요소가 강하게 드러나는 책이다.
구성:
여기서는 주로 내가 살아온 삶의 순서에 따라 인물들이 등장한다 (21).
그래서 읽다 보면 어느덧 근대 서구의 역사책을 읽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내가 기존의 책들 혹은 정통 역사 책들을 통해서는 알지 못했던 사실까지 엿볼 수 있어 좋았다.
보완점 평설:
보완점이 아니라, <내가 저자라면>에 들어가기에 앞서 나의 무지를 고백하는 편이 좋을 것 같다. 사실 난 이 책이 어려웠다. 낯설었다고 표현하는 것이 조금 더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자신 있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풀 수 있는 책이 아니다.
1차 세계 대전 이전의 오스트리아 실상, 드러커 교수 개인적 관점에서 바라 본 프로이트. 폴라니가 사람들의 이야기며 반체제 영국 인사. 대공황기의 미국 이야기 등.
이 모든 것들에 있어, 내가 정말이지 표면적으로 알고 있던 세계에 대해 드러커 교수는 나를 사정없이 한 단계 더 깊이 끌고 들어갔다. 그래서 자서전이란 형식을 띄고 있는 책임에도 불구하고 쉽게 넘어가질 않았다. 그리고 더 큰 고민은 지금까지 내가 즐겨하던 <내가 저자라면>의 주제별 재구성이 이번만큼은 강하게 도전을 받았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참으로 난감하게 만드는 대단한 석학이시다, 라는 말밖에는 할 말이 없다..
<드러커 교수를 구성하는 원소들>
할머니의 지혜
물론 할머니는 결코 ‘똑똑한’ 사람이 아니다. 지적이지도 않다. 생각도 단순할 뿐만 아니라 융통성도 없었다. …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는 할머니가 지식이나 영리함, 지능이 아니라 일종의 지혜를 가졌던 것이 아닌가 생각하지 시작했다 (62).
현대인들이 착각하는 것 많은 사회적 오류 중의 하나가 지식= 지혜를 동일시 하는 점이 아닐까하는 생각이고, 이건 스스로 지식을 많이 쌓았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일수록 더 강하게 나타나는 현상인 것 같다.
지식인들 중에 지혜로운 사람들도 있을 수 있지만, 지식을 갖춘다고 전부 지혜로워지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할머니의 이야기를 가장 처음에 배치한 드러켜 교수는 스스로 금세기 최고의 지식인이기도 하였지만, 지혜의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기울였음에 틀림이 없다. 그러니까, 어느 순간부터 세상을 바라보는 “통찰”이 가능했으리라..
완벽한 사회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게 한 폴라니가 사람들
완전한 사회 대신 적당하고 견딜 만한, 그러나 자유로운 사회를 받아들이자는 것이 <산업인의 미래>에 녹아 있는 내 의도였다 (310).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를 초월하는 대안을 찾으려 했던 명석한 폴라니 집안의 실패 역시 절대적으로 옳은 사회의 시대가 종말을 고할 것에 대한 예고일 수도 있다 (311).
물론 드러커 교수가 단순히 폴라니가 사람들 때문에 완전한 사회에의 기대를 저버렸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는 스스로 그러한 생각을 만들어 가고 있었을 터였고, 거기에 가장 적절한 예로서 폴라니가 사람들의 실패를 제시했음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사회에 대한 드러커 교수의 관점이다. 뒤에 가면, 저자는 “공동체”와 “공익에 대한 기업의 의무”는 상당히 강조하는 반면, 어떤 주의나 완벽한 사회에 대해서는 기대하지 않음을 드러낸다.
한 독립체로서 개인을 바라보고, 다양성을 최대한 수용하는 공동체 형성. 드러커 교수의 경영 사상의 기본은 결코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님을 다시 한 번 생각했다.
드러커 교수가 생각하는 이상적 리더상: 천재가 아닌 노력형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자 진짜 ‘지도자’는 일반적인 통념과는 전적으로 다른 모습이며 다르게 행동한다. 그는 사람들을 카리스마로 이끌지 않는다. …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노력과 헌신으로 이끈다. 모든 것을 손아귀에 집중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팀을 구성한다. 조종이 아닌 성실성으로 지배한다. 영리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정직하다 (339).
미국의 천재 외무장관 키신저가 실패작이라고 거침없이 표현하면서 밝히는 리더에 관한 그의 생각이다. 진리는 단순하고, 동서고금 어디서나 통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칠 수 있는 시원한 한 줄기 맑은 물과 같은 말이었다.
무관심. 악보다 더 무서운 20세기 병
가장 커다란 죄는 20세기에 새로 나타난 무관심의 죄, 아무도 죽이지 않고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지만 오래된 찬송가 구절처럼 “그들이 내 주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고 증언하길 거부한 저명한 생화학자의 죄가 아닐까? (364).
드러커 교수는 악을 자신의 야망에 이용하는 것보다, 더 나쁜 것을 막기 위해 악과 손잡는 것보다 더 큰 죄를 20세기의 “무관심”이라고 표현했다.
지금이 21세기이기는 하지만, 대개 우리들은 20세기 끝자락에 태어나 20세기 사상의 영향아래 성장하고 살아가는 세대이다. 이런 우리 스스로에 묻고 싶다. 도대체 무관심이란 녀석은 어디에서 왔으며, 왜 생겨났을까?
우선 관심과 무관심의 경계선은 “사랑” 혹은 “애정”이란 녀석이 쥐고 있을 것 같다. 이성 간에도 “관심이 있다”라는 표현은, 애정의 시작으로 간주하는 것처럼, 관심이란 행위 자체가 어느 정도 애정에 준하는 행위라 할 수 있겠다.
현대인들은 바쁘다. 현대인치고 바쁘지 않다는 사람이 거의 없다. 그러면서 어느 새 우리의 관심은 사람이 아닌 다른 것들로 옮겨 가고 있다. 일. 성과, 돈. 심지어 아파트나 주식으로까지. 그러니까, 사람이 아파트 한 채 만도 못한 세상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파트를 사기 위해 성공하려면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니까, 앞다투어 인맥관리 잘 하는 법에 관한 책을 사려고 몰려 간다. 세상은 참 어리석음이 돌고 도는 요지경이다. 이제 그만 눈을 뜨고 싶다…
양심 그 자체, 브레일스포드
노엘 브레일스포드는 절대로 권력자가 아니었다. 그는 양심이었다 (367).
브레일스포드에게는 영국의 인도 통치가 인도를 위해 좋은 것이냐 나쁜 것이냐가 요점이 아니었다. 그에게 인도의 독립은 영국의 양심 문제였다 (379).
이것이 후에 드러커 교수의 삶에 그대로 반영되어 나타난다.
공황기의 미국에서 인종차별은 백인은 물론 대부분의 흑인들 사이에서도 당연한 현상으로 간주됐다. … 내게 있어서 인종차별은 속죄와 참회의 대상이다. 흑인은 실제 존재하는 사실이고, 대공황보다 더 중요하며, 더 오래 지속될 현상이다 (639).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국은 노교수의 양심을 닮지 못했다.
“… 미국이 마지막 최선의 희망으로 여전히 남기를, 그리고 길고도 헛된 제국의 명단에 또 다른 항목으로 등록되지 않기를 말입니다.” 나는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리고 그 뒤로도 아메리칸 드림을 그렇게 간결하면서도 뚜렷하고 감동적으로 요약했던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그 기도가 수포도 돌아갔음을 알았다 (694).
일본이 진주만을 공습하다!. … 순수의 시대가 끝난 것이다. 불과 몇 주일 만에 미국은 자신의 존재 의미와 신념을 배신하고 ‘열강’으로 가는 길을 선택했다 (695).
공황기의 순수했던 미국이, 유럽인들도 홀딱 반하게 만들었던 순수한 열정의 나라, 미국이 제 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지구상의 초강대국가로 역사 속에 그 모습을 서서히 드러내려 하는 것으로 이 책은 끝을 맺고 있다.
할머니의 지혜에서 시작한 이 책을, 미국의 어리석음으로 끝마치는 구성. 그것이 결코 단순한 우연이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역시 드러커 교수는 뛰어난 인문학자이자 작가이다…
마치며..
이제부턴 드러커 교수의 경영학 책도 달리 다가올 것 같다. 다른 책들조차 한 걸음 더 깊이 있게 다가갈 수 있도록 해주는 저자의 자서전. 힘들었지만 좋은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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