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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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뜩 흐린 어느 날 이었습니다. 기분도 날씨처럼 구겨져 있었습니다. 한번 자신이 불행하다고 생각이 드니 그렇게 우울할 수 없었습니다. 우울함과 비관적인 생각은 비 오는 날의 부침개 냄새처럼 금새 전염이 되나 봅니다. 인감을 떼러 방문한 동사무소도 그랬습니다. 점심 시간은 다 되가는데 긴 줄의 앞에 서 있는 아저씨는 직원과 실랑이를 끝낼 줄을 모르고 있었습니다. 포기하고 털썩 자리에 앉아 옆에 있는 책을 집었습니다.
책장을 휙휙 넘기다가 눈에 뜨는 글이 보였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행복하여라’ 는 글이었습니다. ‘에이 안 그래도 기분 별로인데, 이런 상황에 누가 행복하담…’ 하는 생각이 먼저 든 것이 사실이었습니다. 글의 내용은 ‘있어야 할 것’과 ‘있는 것’의 간격을 좁히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내가 생각하는 이상과 현실이 다르기 때문에 행복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에게 ‘있어야 할 배우자’는 능력 있고, 돈 잘 벌고, 잘 생기고, 집에 오면 자상하고, 부엌일에 요리도 잘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눈을 돌려 ‘있는 배우자’를 보면 무능하고, 돈 못 벌고, 키 작고 못생긴데다, 텔레비전이나 보고, 부엌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런 남편을 가만 둘 여자가 어디 있겠습니까? 사사건건 잔소리를 하고,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있어야 할 배우자’에 ‘있는 배우자’를 맞추려 애쓰겠지요. 그러니 큰 소리가 나고 다툼이 일어나고 불행이 잉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행복이라는 것은 바로 이러한 ‘있어야 할 것’과 ‘있는 것’ 사이의 거리를 좁혀 나가는 것입니다.
집에 있는 ‘있는 배우자’가 생각이 나서 슬며시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혼의 위기까지 갔다가어느날 우연히 사 가지고 온 아내가 좋아하는 귤 한 봉지에 화해한 부부의 이야기나, 신랑이 너무 미워서 신랑이 아니라 모르는 아저씨가 우리 가족을 위해 생활비도 주고 한다고 생각하니 신랑이 너무 고마워졌다는 중년 부인의 위기 극복 이야기를 보면 부부 사이라는 것이참으로 쉬우면서도 어려운 사이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있는 배우자’가 ‘있어야 할 배우자’와 달라 괴롭다면 삼국유사의 ‘조신의 꿈’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있어야 할 배우자’라는 것이 혹 조신의 꿈속의 일과 같은 것은 아닐런지요? 내가 마신물이 단약수도 썩은 해골물이 될 수도 있는 것은 마음 먹기에 달린 것은 아닐런지요?(元曉大師님의 一切唯心造) 글로는 이렇게 적고 있지만 마음먹는 다는 것에서 자주 지고 있는 제가 부끄럽습니다. 비록 동사무소에서 인감증명은 떼지 못하고 나와야 했지만 슬슬 개는 날씨처럼 슬며시 나오는 웃음에 기분도 개어 가고 있습니다.
☞ 위의 사진은 조신의 꿈의 배경인 낙산사의 의상대 일출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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