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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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의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읽었다.
다 읽고나니 새벽이었고 식탁 위엔 휴지가 잔뜩 쌓여 있었고 눈과 코는 빨개져 있었고 꾹꾹 눌린 가슴은 터질 것 같았고 그래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오늘 하루도 어딘가 에선 새 생명이 힘찬 울음으로 호흡을 시작하겠지.
또 어딘가 에선 긴 사연을 간직한 누군가가 호흡을 멈추겠지.
산다는 건, 숨 쉰다는 건, 축복일까?
지난 26일 수요일 오전 10시에 법원에서 판결이 있었다.
4년 전, 엄마와 둘이서 손잡고 병원에 가셨던 아빠는 마지막 인사를 어느 누구와도 나누지 못하고 MRI 촬영 전 2차에 걸친 바륨 투여 후 영영 눈을 감으셨다.
그 이후로 무던히도 기다려왔던 가족들에게 판사는 기각되었다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말을 들려주었다.
병원의 과실이 없다는 것은 환자가 잘못했다는 말인가?
의사도 사람이니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인가?
환자가 특수한 경우여서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인가?
‘기각되었다’는 그 짧은 말을 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상상도 어렵다.
아빠…
첫딸인 나를 아주 많이 예뻐했다는 아빠를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내 기억 속의 아빠는 술에 취해 있었고 밥상을 던졌고 엄마를 때렸다.
나는 아빠의 고함소리를 들으면 까무러쳤고 그렇게 내 기억은 구멍이 나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나에게 아빠는 참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오래도록 누구에게도 얘기 해보지 못했다.
며칠 있으면 아빠의 호흡기를 빼 드렸던 날이다.
그 무섭던 아빠가 중환자실에서 아무런 의식 없이 호흡기에 의지해 누워계시던 마지막 모습이 생각난다.
아빠도 그때 나를 보셨을까?
황망하게 가신 분. 꿈속에서도 말없이 계신 분. 가끔은 떠나셨다는 걸 기억해봐야 하는 분. 아직도 무서움이 남아 제대로 된 눈물도 전하지 못한 분.
아빠… 기각됐어요.
이제 와서 아무 소용없는 얘기지만, 그 병원에 가는 게 아니었나 봐요.
돈 아끼지 말고 큰 병원으로 가시지 그랬어요.
이제 와서 아무 소용없는 얘기지만, 그때 그 의사들 멱살이나 잡아볼 걸 그랬어요.
그 사람들에게 욕이라도 한 마디 해줄 걸 그랬어요.
그렇게라도 해볼 걸 그랬어요.
그때도 지금도 나는 아빠를 떠올리면 그저 멍하다.
내 구멍 난 기억만큼 그저 아득하다.
기억하고 싶은데. 이해하고 싶은데. 용서하고 싶은데.
이제 난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는데. 아무데서나 까무러치지 않는데.
뭐가 두려워서 계속 얘기하지 못할까.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할까.
판사양반, 그거 다시 읽어나 봐요.
당신 그거 읽어본 거 맞아?
당신은 나처럼 기억하고 말고 할 거 없잖아.
있는 그대로 판단해 줘야 하잖아.
우리 아빠가 병원에서 의사가 놔 주는 주사 맞다가 그냥 갑자기 숨을 거뒀다니까.
내가 암말 못한다고 당신까지 말 짧게 하면 안 되지.
내가 당신까지 이해하고 용서해야 한다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나는 지금 흐르는 이 눈물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아빠의 자리보다 더 크게 뚫린 엄마의 자리를 메우고 나면 알려나.
아니면 내가 좋은 엄마가 되면 알려나.
내가 죽기 전엔 그걸 알려나.
나는 잘 모르겠다.
산다는 게 뭔지, 난 살수록 잘 모르겠다.
삶은 축복이라는데 아무래도 난 바본가보다.
IP *.239.124.243
다 읽고나니 새벽이었고 식탁 위엔 휴지가 잔뜩 쌓여 있었고 눈과 코는 빨개져 있었고 꾹꾹 눌린 가슴은 터질 것 같았고 그래서, 잠을 잘 수 없었다.
오늘 하루도 어딘가 에선 새 생명이 힘찬 울음으로 호흡을 시작하겠지.
또 어딘가 에선 긴 사연을 간직한 누군가가 호흡을 멈추겠지.
산다는 건, 숨 쉰다는 건, 축복일까?
지난 26일 수요일 오전 10시에 법원에서 판결이 있었다.
4년 전, 엄마와 둘이서 손잡고 병원에 가셨던 아빠는 마지막 인사를 어느 누구와도 나누지 못하고 MRI 촬영 전 2차에 걸친 바륨 투여 후 영영 눈을 감으셨다.
그 이후로 무던히도 기다려왔던 가족들에게 판사는 기각되었다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말을 들려주었다.
병원의 과실이 없다는 것은 환자가 잘못했다는 말인가?
의사도 사람이니 실수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라는 것인가?
환자가 특수한 경우여서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인가?
‘기각되었다’는 그 짧은 말을 나는 아직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더 이상의 상상도 어렵다.
아빠…
첫딸인 나를 아주 많이 예뻐했다는 아빠를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내 기억 속의 아빠는 술에 취해 있었고 밥상을 던졌고 엄마를 때렸다.
나는 아빠의 고함소리를 들으면 까무러쳤고 그렇게 내 기억은 구멍이 나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 나에게 아빠는 참 무서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런 나를 오래도록 누구에게도 얘기 해보지 못했다.
며칠 있으면 아빠의 호흡기를 빼 드렸던 날이다.
그 무섭던 아빠가 중환자실에서 아무런 의식 없이 호흡기에 의지해 누워계시던 마지막 모습이 생각난다.
아빠도 그때 나를 보셨을까?
황망하게 가신 분. 꿈속에서도 말없이 계신 분. 가끔은 떠나셨다는 걸 기억해봐야 하는 분. 아직도 무서움이 남아 제대로 된 눈물도 전하지 못한 분.
아빠… 기각됐어요.
이제 와서 아무 소용없는 얘기지만, 그 병원에 가는 게 아니었나 봐요.
돈 아끼지 말고 큰 병원으로 가시지 그랬어요.
이제 와서 아무 소용없는 얘기지만, 그때 그 의사들 멱살이나 잡아볼 걸 그랬어요.
그 사람들에게 욕이라도 한 마디 해줄 걸 그랬어요.
그렇게라도 해볼 걸 그랬어요.
그때도 지금도 나는 아빠를 떠올리면 그저 멍하다.
내 구멍 난 기억만큼 그저 아득하다.
기억하고 싶은데. 이해하고 싶은데. 용서하고 싶은데.
이제 난 아무도 무서워하지 않는데. 아무데서나 까무러치지 않는데.
뭐가 두려워서 계속 얘기하지 못할까.
왜 아무 말도 하지 못할까.
판사양반, 그거 다시 읽어나 봐요.
당신 그거 읽어본 거 맞아?
당신은 나처럼 기억하고 말고 할 거 없잖아.
있는 그대로 판단해 줘야 하잖아.
우리 아빠가 병원에서 의사가 놔 주는 주사 맞다가 그냥 갑자기 숨을 거뒀다니까.
내가 암말 못한다고 당신까지 말 짧게 하면 안 되지.
내가 당신까지 이해하고 용서해야 한다면 너무 심한 거 아니야?
나는 지금 흐르는 이 눈물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아빠의 자리보다 더 크게 뚫린 엄마의 자리를 메우고 나면 알려나.
아니면 내가 좋은 엄마가 되면 알려나.
내가 죽기 전엔 그걸 알려나.
나는 잘 모르겠다.
산다는 게 뭔지, 난 살수록 잘 모르겠다.
삶은 축복이라는데 아무래도 난 바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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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기원
삶은 오묘한 그 무엇이라 생각됩니다.
그것을 안다면 그때 그순간에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언제나 알수없는 그 무엇에 매료되고 화내고 흥분하며 살아가는 것 이라 생각됩니다.
그 과정에 분명한것은 우리의 마음이 순간순간 판단을 내리면서 시간을 소비하는 것...
가능하면 선하고 긍정적인 판단을 할 수있게 깨어있어야하겠지요?
그 판사는 분명 그순간 어떤 환경때문에 깨어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김미영선생님께서는 여러가지로 깨어있었지요?
지금 이글을 올렸던 순간은 더욱 더 삶을 잘 알수있는 것이지요.
많은 생각들, 눈물, 회한,.....
산다는 것이 뭔지 잘 모를 수록 알고싶은 욕구가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가 바보임을 아는 바보는 천재입니다.
늘 깨어있어서 알 수있는 자신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그것을 안다면 그때 그순간에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터인데...?
언제나 알수없는 그 무엇에 매료되고 화내고 흥분하며 살아가는 것 이라 생각됩니다.
그 과정에 분명한것은 우리의 마음이 순간순간 판단을 내리면서 시간을 소비하는 것...
가능하면 선하고 긍정적인 판단을 할 수있게 깨어있어야하겠지요?
그 판사는 분명 그순간 어떤 환경때문에 깨어있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김미영선생님께서는 여러가지로 깨어있었지요?
지금 이글을 올렸던 순간은 더욱 더 삶을 잘 알수있는 것이지요.
많은 생각들, 눈물, 회한,.....
산다는 것이 뭔지 잘 모를 수록 알고싶은 욕구가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가 바보임을 아는 바보는 천재입니다.
늘 깨어있어서 알 수있는 자신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구본형
유용주라는 내가 잘 모르는 작가가 이런 글을 써 두었군요.
"여기 불을 피워 삶을 녹이는 사람이 있다. 삶은 그 자체로 놓아두면 도대체 뻣뻣하고 딱딱해서 쓸모가 없을뿐더러 깎을 수도 다듬을 수도 휠 수도 없으며 볶거나 데치거나 삶거나 구워 먹을 수가 없는 아주 지독한 놈이다. 가만 놔두면 금방 곰팡이가 슬고 쉬어 빠져서 그냥 내다버릴 수밖에 없는 게 삶이라는 놈이어서, 요놈은 그저 아침저녁으로 뜨거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린다......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면서 관념에 빠지지 않는 것, 싫증을 내지 않는 것, 울화를 쌓지 않는 것, 늘 새로운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 그것을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어머니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여기 불을 피워 삶을 녹이는 사람이 있다. 삶은 그 자체로 놓아두면 도대체 뻣뻣하고 딱딱해서 쓸모가 없을뿐더러 깎을 수도 다듬을 수도 휠 수도 없으며 볶거나 데치거나 삶거나 구워 먹을 수가 없는 아주 지독한 놈이다. 가만 놔두면 금방 곰팡이가 슬고 쉬어 빠져서 그냥 내다버릴 수밖에 없는 게 삶이라는 놈이어서, 요놈은 그저 아침저녁으로 뜨거운 맛을 봐야 정신을 차린다......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면서 관념에 빠지지 않는 것, 싫증을 내지 않는 것, 울화를 쌓지 않는 것, 늘 새로운 마음으로 다가가는 것, 그것을 쓰다듬고 어루만지는 어머니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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