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경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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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햇살처럼 따갑던 토요일 오후, 그녀를 데리고 성북동 나들이를 나섰습니다. 많이 와보진 않았지만 내가 아는 성북동은 참 아기자기한 동네입니다. 서울의 오래된 부자들이 살고 있다고 들었지만, 큰길 뒤쪽으로 숨겨져 있는지 부촌(富村)의 느낌은 별로 나지 않았고 중간 중간에 보이는 옛 기와 지붕이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 했습니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성북동길의 맨 위부터 훑어 내려와 보기로 했습니다. 만해 한용운 선생이 머물던 심우장부터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 옛집까지가 오늘의 탐방 코스입니다.
<심우장(尋牛莊)>

동네가 익숙치 않아 어르신께 위치를 물어보니 ‘큰 소나무가 마당에 있는 집’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마침 다시 보니 자세하게 푯말이 붙어 있더군요. 안내판을 따라 성북동 언덕길을 조금 올라가 보니 허리를 두어 번 꺽지게 꺾은 큰 소나무가 있는 집이 보였습니다. 아주 아담한 집 한 채가 남쪽을 등지고 돌아 앉아 있었는데 만해 선생이 조선총독부가 보기 싫어 북향 터로 잡은 까닭이라고 하더군요. 정면에 걸려 있는 현판은 위창 오세창 선생의 솜씨라고 합니다. 한번에 알아 보는 안목은 없지만, 들으니 반가운 이름이군요. 바로 옆에 살림집이 있어서 자세히 들여다 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성북동 이재준가>

심우장을 뒤로 하고 이번에는 조금 아래 쪽의 이재준 생가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오기 전에 미리 덕수교회 안에 있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덕수 교회를 찾아 내려갔습니다. 마침 교회 안쪽으로 표지가 되어 있길래 들어가 보았는데, 깊숙한 안쪽에 큰 기와집이 보였습니다. 이재준 생가는 원래 조선시대 상인인 이종석의 별장이라고 합니다. 훗날 소설가 이재준이라는 이가 살게 되어 이재준가 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부자집을 한번 보겠다는 심산으로 찾아 왔는데, 아쉽게도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덕수교회에서 개조하여 수련원으로 쓰고 있는 모양이었고, 자물쇠까지 채워져 있어서 담장 사이로 빼꼼 훔쳐보고 내려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집도 조금 정비를 한 모양인지 옛집 같은 느낌은 없어졌습니다.
<성북동 이태준가>

덕수교회 건너편에 이태준가가 있습니다. 이태준가는 월북한 소설가 이태준이 살던 집으로 현재 그의 증손녀가 수연산방(壽硯山房)이라는 이름의 전통찻집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이 동네의 여느 집들처럼 크지 않고 아담하였는데 댓돌이 높아서인지 본채가 마당보다 훌쩍 높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기품 있게 보이더군요. 온 김에 집안에 들어가서 시원한 오미자 차를 한잔 시켜 먹었습니다. 집안에서 앞뜰을 바라보니 느낌이 또 달랐습니다. 특히 반쯤 방 밖으로 빠져 있는 베란다(한옥의 명칭을 잘 모르겠네요) 같은 곳이 참 좋아 보였습니다. 앞뜰을 보고 즐기기에는 한옥만한 곳이 없습니다.
<최순우 옛집>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최순우 선생이라고 하니 잘 모르겠는데,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의 저자라고 하니 언뜻 생각이 났습니다. 이 집에서 그 원고를 썼다고 합니다. 대문에 들어서니 작은 정원과 우물이 보이고 그 너머로 ‘ㄴ’자의 안채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옛 집을 보다 보면 간혹 여기처럼 ‘오수당(午睡堂)’이라고 붙여 놓은 현판이 눈에 들어 옵니다. ‘낮잠 자는 곳’ 이라는 이름도 이름이지만 그만큼 삶을 여유 있게 대할 수 있었던 옛 사람들의 생활이 부러워 졌습니다.
문득, 작년에 충남 예산의 추사 고택에 갔던 기억이 났습니다. 차분한 분위기와 여유로운 공간 배치가 구경 온 사람들로 하여금 가슴을 풀고 호흡을 고를 수 있도록 해주던 곳이었습니다. 또, 때마침 내리던 비 속에서 우리는 옛집이 가지고 있던 진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집이 빗방울을 모으기도 하고 퉁겨 내기도 하면서 만드는 소리, 그 낭랑함을 모두가 숨죽이며 듣고 나서 뿌듯해 했습니다.
한창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종종 옛 것에 대한 얘기를 듣습니다만 그것이 좀처럼 우리 가슴에 가까이 다가와 울리지는 못합니다. 아마 그 나이에는 새롭고 신기하고 자극적인 것들을 받아들이는 시기이지 은근하게 찾아오는 부드러운 것들을 맞이하기는 어려운 시기일 겁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이제야 조금 안목이 트인다 싶으면 그러한 것들을 접할 여유를 갖기가 되려 어려워 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게 일부러라도 찾아 가서 보고 느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의 한복판 성북동에서, 여전히 하루하루를 바삐 살아가는 동네 사람들 속에서, 옛 것을 살짝 들쳐보고 온 하루였습니다.
※ 간송 미술관 관람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자주 여는 곳이 아니라 둘러 보려 했는데, 도로변까지 늘어선 줄의 맨 뒤에 서기엔 여유가 너무 없었습니다. 대신 미술관 경내를 한번 둘러 본 것으로 만족해야 했는데, 책에서 만난 간송 미술관의 권위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장소였습니다. 아쉽게도.
IP *.148.19.89
<심우장(尋牛莊)>

동네가 익숙치 않아 어르신께 위치를 물어보니 ‘큰 소나무가 마당에 있는 집’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마침 다시 보니 자세하게 푯말이 붙어 있더군요. 안내판을 따라 성북동 언덕길을 조금 올라가 보니 허리를 두어 번 꺽지게 꺾은 큰 소나무가 있는 집이 보였습니다. 아주 아담한 집 한 채가 남쪽을 등지고 돌아 앉아 있었는데 만해 선생이 조선총독부가 보기 싫어 북향 터로 잡은 까닭이라고 하더군요. 정면에 걸려 있는 현판은 위창 오세창 선생의 솜씨라고 합니다. 한번에 알아 보는 안목은 없지만, 들으니 반가운 이름이군요. 바로 옆에 살림집이 있어서 자세히 들여다 보지 못한 것이 조금 아쉽습니다.
<성북동 이재준가>

심우장을 뒤로 하고 이번에는 조금 아래 쪽의 이재준 생가를 찾아보기로 했습니다. 오기 전에 미리 덕수교회 안에 있다는 얘기를 들은 터라 덕수 교회를 찾아 내려갔습니다. 마침 교회 안쪽으로 표지가 되어 있길래 들어가 보았는데, 깊숙한 안쪽에 큰 기와집이 보였습니다. 이재준 생가는 원래 조선시대 상인인 이종석의 별장이라고 합니다. 훗날 소설가 이재준이라는 이가 살게 되어 이재준가 라는 이름으로 불리우게 되었습니다. 조선시대 부자집을 한번 보겠다는 심산으로 찾아 왔는데, 아쉽게도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덕수교회에서 개조하여 수련원으로 쓰고 있는 모양이었고, 자물쇠까지 채워져 있어서 담장 사이로 빼꼼 훔쳐보고 내려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집도 조금 정비를 한 모양인지 옛집 같은 느낌은 없어졌습니다.
<성북동 이태준가>

덕수교회 건너편에 이태준가가 있습니다. 이태준가는 월북한 소설가 이태준이 살던 집으로 현재 그의 증손녀가 수연산방(壽硯山房)이라는 이름의 전통찻집을 운영하고 있었습니다. 이 동네의 여느 집들처럼 크지 않고 아담하였는데 댓돌이 높아서인지 본채가 마당보다 훌쩍 높은 위치에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기품 있게 보이더군요. 온 김에 집안에 들어가서 시원한 오미자 차를 한잔 시켜 먹었습니다. 집안에서 앞뜰을 바라보니 느낌이 또 달랐습니다. 특히 반쯤 방 밖으로 빠져 있는 베란다(한옥의 명칭을 잘 모르겠네요) 같은 곳이 참 좋아 보였습니다. 앞뜰을 보고 즐기기에는 한옥만한 곳이 없습니다.
<최순우 옛집>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역임한 최순우 선생이라고 하니 잘 모르겠는데,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라는 책의 저자라고 하니 언뜻 생각이 났습니다. 이 집에서 그 원고를 썼다고 합니다. 대문에 들어서니 작은 정원과 우물이 보이고 그 너머로 ‘ㄴ’자의 안채가 자리잡고 있었습니다. 옛 집을 보다 보면 간혹 여기처럼 ‘오수당(午睡堂)’이라고 붙여 놓은 현판이 눈에 들어 옵니다. ‘낮잠 자는 곳’ 이라는 이름도 이름이지만 그만큼 삶을 여유 있게 대할 수 있었던 옛 사람들의 생활이 부러워 졌습니다.
문득, 작년에 충남 예산의 추사 고택에 갔던 기억이 났습니다. 차분한 분위기와 여유로운 공간 배치가 구경 온 사람들로 하여금 가슴을 풀고 호흡을 고를 수 있도록 해주던 곳이었습니다. 또, 때마침 내리던 비 속에서 우리는 옛집이 가지고 있던 진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집이 빗방울을 모으기도 하고 퉁겨 내기도 하면서 만드는 소리, 그 낭랑함을 모두가 숨죽이며 듣고 나서 뿌듯해 했습니다.
한창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종종 옛 것에 대한 얘기를 듣습니다만 그것이 좀처럼 우리 가슴에 가까이 다가와 울리지는 못합니다. 아마 그 나이에는 새롭고 신기하고 자극적인 것들을 받아들이는 시기이지 은근하게 찾아오는 부드러운 것들을 맞이하기는 어려운 시기일 겁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이제야 조금 안목이 트인다 싶으면 그러한 것들을 접할 여유를 갖기가 되려 어려워 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렇게 일부러라도 찾아 가서 보고 느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울의 한복판 성북동에서, 여전히 하루하루를 바삐 살아가는 동네 사람들 속에서, 옛 것을 살짝 들쳐보고 온 하루였습니다.
※ 간송 미술관 관람을 하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자주 여는 곳이 아니라 둘러 보려 했는데, 도로변까지 늘어선 줄의 맨 뒤에 서기엔 여유가 너무 없었습니다. 대신 미술관 경내를 한번 둘러 본 것으로 만족해야 했는데, 책에서 만난 간송 미술관의 권위와는 사뭇 다른 느낌의 장소였습니다. 아쉽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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