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현주
- 조회 수 2530
- 댓글 수 14
- 추천 수 0
루트 번스타인 부부가 공저한 <생각의 탄생>은 현대문명을 이끈 수많은 천재들이 전문가들의 형상과는 많은 괴리가 있다는 걸 알려주는 생생한 체험서였다. 저자는 이 천재들의 입을 빌어 과도한 전문화와 분화에 대한 잘못을 경고하는 동시에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종합적인 이해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역설 한다.
저자가 강조하는 과도한 전문화의 잘못은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고병권)>에서도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우리 시대의 위대한 인물들을 ‘인간만큼 거대한 귀’로 표현한 것이다. 우리 시대 위대한 인물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바로 전문가들이 아닌가. 무언가 한 가지 능력만 있는 사람들. 전문적인 게 뭐가 문제냐고? 그것 자체론 문제도 잘못도 아니다. 문제는 그들이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데 있는 게 아니라 대부분의 것에서 아무 것도 모르고 있다는 데 있다. 한가지 능력만 키우느라 여러 가지 능력을 퇴화시킨 것 그것이 문제인 것이다. “
책을 읽어나가면서 떠오른 흥미로운 생각은 해학과 풍류, 깨달음과 행함을 강조했던 우리역사 속의 선인들이 기능화, 전문화를 강조하던 서구 교육의 훌륭한 보완책이 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었다. 이 생각을 바탕으로 자료를 조사하면서 처음 만난 것은 화담 서경덕이었다.
서경덕은 어릴 때 집이 몹시 가난했는데, 매일 늦으면서도 광주리에 나물을 캐오지 못했다. 부모가 이상히 여겨 그 까닭을 물으니,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한다.
“나물을 캘 때에 어떤 새가 날아오르는데, 오늘은 땅에서 한치 높이로 날고 다음날은 땅에서 두치 높이로 날며 그 다음날은 땅에서 세치 높이로 날 더이다. 날이 갈수록 점점 더 높이 나는데, 저는 이 새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가만히 그 이치를 생각해보았습니다만 끝내 알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매일 늦게 돌아오고 광주리도 채우지 못했습니다” (선인들의 공부법 ? 박희병)
화담 서경덕이 학문을 하는 방법은 루트 번스타인이 통합교육에서 제시한 ‘교육의 목표는 이해에 있지, 단순한 지식의 습득에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의 구체적 모델이 될 만하다. 실재로 화담선생은 자연을 관찰하고, 사색하여 이치를 깨달았다고 한다. “그 학문은, 독서를 일삼지 않고 오로지 사색하는 것이었으며, 그렇게 하여 깨달은 다음 독서를 통해 입증하였다.” 는 예는 직관을 통해 깨닫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설명하기 위해 방정식을 이용한다는 수학자들의 그것과 꼭 닮아 있다.
다산 정약용이 한국 최초로 사진의 원리를 탐구하고 사진 이미지를 구현해내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지? 나는 이번 조사를 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다산은 ‘칠실관화설(漆室觀畵說)’이란 사진기술 이론을 바탕으로 ‘칠실파려한(漆室??眼))이란 기계를 제작했다고 한다.
정약용은 '여유당전서'에서 정양용은 칠실파려안에 대해 이렇게 소개 했다.
"어느 맑은 날 방의 창문을 모두 닫고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모두 막아 실내를 칠흑과 같이 하고 구멍을 하나만 남겨 애체(볼록렌즈)를 그 구멍에 맞추어 끼운다. 투영된 영상은 눈처럼 희고 깨끗한 종이 판 위에 비친다." 결과에 대해 다산은 "세밀하기가 실이나 머리털과 같아 중국의 화가 고개지(顧愷之) 도 능히 그려낼 수 없을 것이니 무릇 천하의 기이한 풍경이다"고 기록했다. (다산의 칠실파려한 ? 사진전시회)
과학자 이면서 철학가, 행정가 이면서 사상가였던 정약용은 ‘교육의 목적은 전인을 길러내는 것’ 이라는 루트번스타인의 통합적 교육 목표에 진정 어울리는 인물이다. 정약용이 정조와 같은 글자 셋을 모아 한 글자로 만든 한자를 누가 많이 아는가 내기 놀이를 했다는 일화는 지식을 놀이로, 놀이를 지식으로 즐긴 선인들의 유쾌함을 엿보게 해준다.
“자네, 길을 아는가.”
“이 강은 바로 저와 우리와의 경계로서 언덕이 아니면 곧 물이지. 무릇 세상사람의 윤리와 만물의 법칙은 마치 이 물이 언덕에 제(際)함과 같으니 길이란 다른 데서 찾을 게 아니라, 곧 그 ‘사이’에 있는 것이네.”(도강록)
고미숙의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에서 연암이 제시하는 길은 자유롭게 변이하면서 만물의 근원에서 노닐 수 있는 능력 이며 ‘가는 곳마다 길이 되는’ 그런 것이라고 해설하고 있다.
조사를 하면서 밀려오는 생각은 루트번스타인이 강조한 ‘전문가가 아닌 전인’이 되기 위한 생각의 도구들을 이미 우리역사(중국의 역사)속 선인들은 실현하고 있었으며 중요하다고 알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마음과 몸이 하나고, 세상의 이치와 사람의 이치가 다르지 않다는 것을 후대에 전하고 있다.
짧은 시간 조사를 하면서 많은 통찰을 얻기에는 부족 했지만, ‘한국역사 속 생각의 탄생’은 21세기가 된 지금 루트번스타인이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 바로 그것을 이미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라는 물음을 내게 던져 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