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심신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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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탄생>을 읽고 나니, 천재들이 경험한 13가지 생각 도구 중 나에게 적합한 몇 개의 도구를 선택해 이것을 습득하고 연마하는, 나에게 남겨진 실천의 과제를, 어떻게 하면 잘 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보통 사람인 나의 생각을 개발하고, 시각화하고, 상품으로 만들고,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전적으로 내 개인의 의지와 능력인 것이고, 이를 어떻게 나만의 것으로 만들지를 생각하고 찾아내면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저자가 우리나라에 초청돼 어느 강연회에서 "창조는 상자 밖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상자 내부에서 일어난다는, 내가 들어가 있는 상자가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창조의 시작이다."라고 말한 것에서 힌트를 얻었다. 내가 서 있는 위치에서 나 자신을 들여다보고, 내 생활을 들여다보고, 내 생활습관을 점검하면서, 내게 아이디어를 준, 내게 영감을 준, 내가 에너지를 집중한, 내가 가진 것 중에서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것에 주목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의 습관에 초점이 맞춰졌다. 잘만 활용하면 창의성의 도구로, 창의성의 재료로, 충분히 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걷기*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한다. 걸으면서 볼 수 있고 배울 수 있다. 한 때는 걷기에 중독돼 왕복 3시간이 넘는 거리를 거의 매일같이 걸어다닌 적도 있었다. 그 때 보았던 보도블록의 모양, 바람에 뒤섞여 흔들리는 나무의 그림자, 담벼락의 패턴 등은 내게 발견이었고 당시 내 작업에 상상을 불러일으키는 소재가 되었다. 지금도 길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옷에서 보이는 특이한 질감, 쇼윈도에 전시되어 있는 물건들, 거리의 간판, 색다른 구조의 건물, 독특한 공간 등 이 모든것이 지금 나의 생각에, 내가 하는 일에 영향을 주고 있다.
생각해 보면 별 느낌없이 무심히 지나쳤던 것들보다는 색이든, 형태든, 디자인이든 무언가에 끌려 호감을 느끼고 다가가 주의깊게 관찰한 것들이 나에게 영감을 주고 내 작업에, 일에 소재가 되고 쓰이는 확률이 높았다. 그래서 <생각의 탄생>에서 '수동적인 보기'가 아니라 '적극적인 관찰'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의견에 나는 100% 공감한다.
나는 왠만한 거리는 걸어서 다닌다. 걸으면서 보고, 보면서 관찰하고, 관찰하면서 발견하는 기쁨을 맛 보았다. 걸으면서 유심히 살펴보면 이따금 낯선 공간에서 반짝이는 빛이 보이기도 하고 제대로만 본다면 나의 관찰 능력을 개발시켜 줄 수 있고 나의 창의적 도전과제를 해결해 줄 아이디어가 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책과 자료*
"아이디어는 어느 날 '딱'하고 떠오르는 것이 아니다. 아이디어의 반은 책과 자료에서 나온다."
내가 대학교 1학년 때 연세가 지긋한 노교수님께서 수업시간에 하신 말씀이다. 콤파스와 같은 제도기구를 가지고 정밀하게 그림을 그리면 되는, 실기 위주의 수업이었는데 교수님께서는 본 수업은 대충 하시고 학생들에게 일주일 동안 전시를 관람하고 모은 팜플렛이며 관심있는 주제에 관한 자료를 스크랩해서 가져오게 해 매주 검사하셨다. 또 이번 주에는 무슨 책을 읽었느냐며 정작 수업과는 별로 관련도 없어 보이는 과제와 질문으로 학생들을 곤란하게 하셨다.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학교에 갔을 때, 작업에 대한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못해 고민하다가 창고에 보관해 두었던 박스 안에서 그때 모은 자료를 발견하고는 까맣게 잊고 있던 교수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박스에서 찾아낸 자료는 시간이 오래지나 당장 쓸모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것이 단초가 되어 ‘아이디어의 반은 책과 자료에서 나온다’는 교수님의 말씀을 깊이 새기게 되었고, 자료를 찾고 모으고 노력하는 과정을 거쳐야만이 빛나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 또 내가 독립해 예전에 하던 일에서 범위를 넓혀 일할 수 있게 된데에는 누구한테 배워서, 모든 걸 직접 경험해서가 아니라 많은 자료를 가지고 나의 부족한 부분을 메꾸고, 안 보던 책들을 꺼내어 보기도 하고, 새로운 책과 자료를 보면서 내 머릿속의 아이디어와 자료를 연결하고 결합하는 조립의 과정을 거쳐야 더 좋은 제품, 남과는 다른, 차별화된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도 책을 읽다가, 잡지를 뒤적이다가 눈에 띄는 기사나 사진은 오려서 보관해두고 호기심이 생기는, 나중에라도 혹시 필요할 것이라 생각되는 주제가 있으면 보다 자세히 자료 조사를 하곤 한다. 길을 걷다 본 장미에 꽂히면 장미에 관한 책을 읽고 그 속에 호기심을 끄는 부분이 있으면 관련 책을 찾아 읽기도 한다. 사실은 당장 필요하지 않는 것들이 더 많다. 모든 걸 직접 경험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지만 직접 파고들지는 못하더라도 책을 통해, 자료를 찾는 습관을 통해, 꾸준히 다른 이들의 사례를 보고 무언가 알아서 그것들을 연계시킬 때 새롭고 창의적인 것들이 나올 수 있었다.
*수집벽*
나는 어떤 물건에 꽂히면 그걸 집중적으로 모으는 것을 즐긴다. 같은 디자인의 다른 칼라, 같은 아이템의 다른 버전, 컬렉션?시리즈별로 모으는 것을 좋아한다. 여행을 가면 주로 걸어다니면서 오래된 공간, 가게 같은 데 들어가 거기서 예쁜 것, 특이한 것, 브랜드 있는 컬렉션 같은 것들을 보고, 사기도 하고 그런 게 재미있다.
또 서점에 가는 것도 좋아한다. 서점은 내가 좋아하는 놀이 공간이기도 한데 서점에 가서 인테리어 서적을 섭렵하고 그 중에서 반짝이는 몇 권을 사가지고 오는 재미를 찾아낸 이후로는 다른 책에 비해 구입 비용이 몇 배이상 들어가는 외서를 구입하기 위해 다른 곳에 쓸 돈을 아끼고 아껴 여기에 투자한다. 내가 좋아하고 내가 지향하는 분위기를 연출하는 유럽의 한 출판사에서 나오는 인테리어 시리즈는 신간이 나올 때마다 꼭 구입하고 일본에서 출간되는 파리의 이모저모를 사진으로 짜임새 있게 구성한 포켓북 사이즈의 책은 파리의 깊이있는 문화와 생활을 동경하는 내게 마치 그 곳을 여행하는 듯한, 그 곳에서 살고 있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의 즐거움과 만족감을 준다. 프랑스의 일러스트 작가, 레베카 도트르메르. 그녀의 아름답고 환상적인 색에 반해 그녀의 그림책은 모두 가지고 있고, 보태니컬 꽃그림의 대가 피에르 조셉의 장미꽃 시리즈, 백합꽃 시리즈를 구성한 아주 오래전에 출간된 책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요즘 전문서적이나 고가구, 빈티지 카메라, 와인까지, 자신이 모으는 모델을 구입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고 비싼 경비를 들여 해외까지 나가는 이들을 두고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들을 이해한다. 나 역시 수집하는 시리즈의 새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접하면 하루라도 먼저 보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설레고, 마음에 드는 옷이나 가방, 신발은 그 당시만 꾹 참고 빠져나오면 되는데 내가 꽂힌 책과 일러스트, 그림들은 잠자리에 들어서도 계속 생각나고, 일년에 몇 번 꾸지 않는 꿈에서도 보인다. 구하기 어려운 것은 인터넷으로, 경매를 통해서, 해외로 나가는 인편이 있으면 부탁해서라도 꼭 손에 넣어야 마음이 놓인다.
당장 쓸 것도 아니고 남에게 드러나 보이지도 않는, 하나 밖에 없다고 자주 꺼내어 보지도 않는 것들이 뭐가 그리 좋다고 모으고 모아데는지, 이거 살 돈이면 좀 더 여유있는 생활을 즐길 수 있을텐데 하는 생각이 들다가도 나의 수집벽은 여전히 그칠줄을 모른다. 습관이 되다못해 중독에 가깝다.
그러나 머리가 복잡할 때, 스트레스가 쌓일 때, 아이디어가 잘 떠오르지 않을 때 나는 무조건 걷기도 하지만 그동안 수집한 책과 그림들을 꺼내보며 휴식을 취하기도 하고, 예전에 보지 못했던 새로움을 발견하기도 하며 전혀 기대하지 않은 그림에서 아이디어를 얻는 의외의 소득을 올리기도 한다. 어렵게 구한 꽃그림에 액자를 끼워 디스플레이한 것이 좋은 반응을 얻어 일하는데 있어 나의 가치를 높여주기도 하고, 내가 좋아하고 내가 끌리는 것을 모으는 작업이 계속 되다보니 이것들이 알게 모르게 서로 조화를 이루면서 나의 생각에, 내가 하는 일에, 영향을 미치고 나만의 특별함을 만들어 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제일 좋은 것은 나에게 정서적인 포만감을 안겨준다는 것이다. 나를 마음의 부자로 만들어 준다. 습관이자 놀이이자 취미활동도 되는 셈이다.
열심히 일하면 월급이 나오는 일반적인 무대가 아니라 열심히 하다보면 돈이 들어올 수도 있는 장담할 수 없는 무대에서 일하고 있다보니 당장은 필요 없어도, 쓰여질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더 많이 보려고 애쓰고, 더 많은 자료를 찾고 모으고, 내 관심의 영역을 확장하려고 노력한다. 물론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 이렇게 한 분야에서 조금씩 범위를 넓혀가며 일하고 있는 것은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걷기와 자료 찾기, 중독성 강한 수집벽이 나의 재산이고, 이 습관만이 나의 가능성과 창의성을 키워줄 보물이라는, 믿음의 끈을 한시도 놓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는 꼭 한 번은 쓰여질 것만 같은, 왠지 그럴것만 같은 가능성을 믿기 때문이다.
내가 습관에 주목하게 된 것은 일상적이고 작은 것에서 발견하는 기쁨을 맛 보았고, 상상력?창의성이라는 것도 평소 생활에서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메모를 하고 기록해 두는 습관도 좋고, 손을 가만두지 못해 무언가를 끄적이는 낙서하는 습관도 좋고, 놀이에서 힌트를 얻어도 좋고, 취미가 습관이 되어도 좋다. 부지런히, 잘만 찾아보면 내게도 꽤 쓸만한 창조적 습관들이 많다.
내가 가진 창조적 습관들을 생각의 도구로, 생각의 재료로 최대한 활용한다면 보통 사람인 내게도 발견이 나타날 수 있고, 이 발견을 현실화하는 창조적 발명을 낳을 수도 있다. 오히려 평범한 보통 사람인 내가, 나의 습관에서 조그만 단서를 포착해 거기에 에너지를 집중한다면 천재, 그들처럼 커다란 창조를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다. 창조의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
꿈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내게 전하는 용기이자 희망의 메시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