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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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낮에 너무 심심하더라구요. 왜 그럴 때 있잖아요. 기꺼이 혹은 습관적으로 하던 일들이 모조리 하기 싫을 때 말이에요. 그럴 때면 망연자실해집니다. 시간이 멈추고 모든 의미가 사라진 듯 아주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요. 외부와 연결되었다는 느낌이 전혀 없이 고립된 것 같기도 하구요. 이럴 때면 심심함을 넘어 무언가 두렵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합니다. TV를 볼까, 옷정리를 할까 생각하다 아무 것도 손에 잡히지 않아서, 그림판에서 낙서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던데요.
처음에는 이것저것 끼적거리다가 단순하나마 스토리를 가지고 그려 나갔습니다. 에고~~ ‘그렸다’고 하기가 민망한 수준입니다만, 저 낙서그림이 기분을 전환시키는데 막강한 위력이 있더라니까요. 얼마나 걸렸을까요, 조그맣고 단순한 화면이지만 구상하고, 색깔도 만들어 보고, 이리 저리 글씨를 배치하는 사이에 그 낯선 기분이 사라졌습니다. 나는 다시 홀가분한 마음이 되어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놀이의 힘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정신분석학자인 융의 사례가 떠올랐습니다. 예전에 읽은 것이라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융은 혹독한 중년의 위기를 치렀다고 합니다. 여자문제를 포함하여 갖가지 문제를 싸안은 융은 어떤 호숫가에서 돌집을 짓고 혼자 생활을 하기에 이르렀다고 하네요. 그 때 융을 구원해 준 것 중에 아주 유치한 놀이도 있었다고 합니다. 돌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는데요, ‘놀이가 동물적인 에너지를 복원시켜 주었다’는 해석이 제게 각인되어 있네요.
놀이는 재미있는 것이지요. 이해관계와 상관없이 그저 마음이 쏠리는 것입니다. 어린 아이로 돌아가 맘껏 내면을 발산하는 일이기도 하구요. 놀이는 우리의 직관을 해방시켜 숨통을 틔워주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얼마나 홀가분하게 놀고 있는지요? 그러고 보니 앞서 말한 ‘일시적 공황상태’는 재미있게 놀아본 지 오래 되었을 때 나오곤 하는 증상이로군요. ^^
그러니 잘 노는 것이 잘 사는 것과 다름없는데, 나의 놀이능력은 형편없이 취약합니다. 읽기와 쓰기, 산책 달랑 세 가지 뿐이니 말입니다. 이래서야 성장한 자녀가 떠난 뒤의 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을지요. 나의 정서적인 건강을 위해서 또 이다음에 봉사할 밑천을 키우기 위해서 놀이 영역을 키워 나가야겠습니다. 살아볼수록 논리 이전의 ‘동물적인 에너지’의 중요함을 새록새록 느끼고 있으니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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