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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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겠다 했다. 강연을 하겠다 했다.
이것은 나의 심장에서 나온 말이었다.
아주 어렸을 적부터 막연하고 당연하게, 이를테면
점심은 육개장을 먹겠다, 내일은 영화를 보러 가겠다 라는 식의 일상적인 대화처럼.
내 눈동자는 아마 조금 흔들렸던 것 같다.
내 목소리도 평소보다 조금 더 낮고 느릿했던 것 같다.
의심했던 적은 없었다. 두려웠던 적도 없었다.
길지 않은 내 삶, 그 2/3 만큼의 시간 동안 바라고 원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내 앞에 앉은 중년의 남자는, 웃는다.
입은 웃지만 눈이 웃지 않는 걸 보니 이것은 가짜 웃음이다.
예상한 결과지만 나는 남자처럼 웃을 수가 없었다.
심장에서 나온 말이었는데, 내 말이 저 남자의 심장을 거치지 않고 허공으로 흩어졌다.
나는 어금니를 꼬옥 깨물었다.
무엇을 쓰고 싶냐고 묻는다.
"수필도 좋고, 소설도 좋아요. 몇 개 습작이 있구요."
"아이구, 진짜 소설 쓰고 있네!"
남자는 그걸 농담이라고 내게 지껄였다.
우리는 깔깔깔 웃었다.
배꼽이 빠진다고 웃어 제꼈다.
남자는 이제 진짜로 웃고 있었다.
나는 진짜로 울고 싶었다.
그래, 나는 지금 소설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멀지 않은 미래에 진짜 소설을 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때엔 -
내가 진짜 웃게 될까 이 남자가 진짜 웃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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