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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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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1일 23시 16분 등록

내가 미희(가명)를 처음 만난 건 지난 2006년, 미희 나이 만 14세 때였다. 미성년자임을 애써 감추기 위해 진한 화장기에 짙은 갈색으로 염색을 하고, 연신 줄담배를 피워대는 모습이 영락없는 어른 모습 그대로였다. 가출해서 친구들과 어울리다 용돈이라도 벌 요량으로 티켓 다방에 발을 딛게 되었고, 미성년자 단속에 걸린 것이 계기가 되어 나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이다.

나와의 만남을 계기로 티켓 다방을 탈출(?)할 수 있었던 미희는 그러나 가출 후 1년이 넘도록 티켓 다방 일을 해온 상태에서 정상적인 생활에 쉽게 적응을 하지 못했고, 다시 성매매 시장으로 재유입 되는 악순환을 계속 반복했다. 그 과정에서 임신까지 하게 되고, 아직 미성년 딱지도 벗지 않은 16세에 첫 출산까지 하게 된 것이다.

미희처럼 성매매 청소년들이 처음부터 성매매 시장으로 유입되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 어떤 이유에서건 가출을 감행하고, 가출이 출발점이 된다. 부모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고, 하기 싫은 공부 압박에서도 벗어날 수 있고, 자기와 비슷한 처지의 또래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다는 단순한 생각으로 가출을 감행한다. 그러나 가출은 부모와 학교로부터 보호받던 삶에서 스스로 생존을 배워가야 하는 정글의 삶이요 길거리의 삶임을 머지않아 깨닫게 된다.

거리생활은 음주, 흡연, 외박, 혼숙, 성 경험 등 소위 비행문화를 자연스러운 습관으로 바꿔 놓는다. 담배를 사서 피워야 하고, 함께 어울릴 친구들과의 술 값, 노래방 값이 필요하다. 집에서 갖고 온 돈은 금세 바닥이 나고, 친구들에게 꾼 돈도 갚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당장 오늘 저녁 끼니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데 아르바이트비는 금방 동이 나고 쥐꼬리보다 적다. 이 과정에서 왜곡된 성 경험으로 인한 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개방적 태도는 성을 사고파는 물건으로 간주하게 되고, 성을 제공하고 돈을 요구하는 대가성 성관계는 너무나도 당연한 필수 코스가 된다.

그러나 ‘대가성 성관계’는 단순히 돈을 버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자신의 성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인식하게 되면서 성은 더 이상 소중하고 지켜야 할 그 어떤 가치도 아니며, 사랑과 감정, 느낌의 복합체가 아닌 빨리 해치워버릴 어떤 행위와도 같은 것이며, 무엇보다도 가진 것 없는 청소년들이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일자리가 되는 셈이다.

성의 대가성은 청소년들이 거리생활을 유지하는 강력한 수단이자, 쉽게 성매매 시장으로 유입되는 블랙홀과 같은 것이다. 블랙홀의 유력은 대단하다.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재워 줄 뿐 아니라 돈까지 벌 수 있는 블랙홀에서 빠져 나오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설사 빠져 나온다 하더라도 가진 것 없고 갈 곳 없는 그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얼마나 있겠는가? 쉽게 돈을 벌 수 있고, 쉽게 자신들을 받아 주는 성 시장을 다시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매매에 유입된 청소년들은 필연적으로 심각한 외상후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외상후스트레스는 쉽게 치유되지 않는다. 그 후유증은 수 년, 혹은 수십 년을 간다. 평생 지워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청소년들이 성 시장에서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 정신적 공황과 혼란, 자신은 불결하다는 생각과 사회적 낙인감 등으로 정상적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성 시장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 되풀이 되는 것이다.

미희의 경우처럼 청소년들은 아직 가치관 형성이 확고하지 않고, 괴테의 말처럼 질풍노도의 시기를 보내는 만큼 가정과 학교, 사회적 차원의 예방과 개입이 중요하다. 특히 예방적 차원의 노력은 청소년들이 그릇된 길로 가지 않도록 사전에 막는 것인 만큼 더더욱 중요하다. 특히 교사나 지역의 사회복지관 종사자, 사회복지전문요원, 청소년 관련 단체 종사자 들은 빈곤 가정이나 학교 부적응 청소년들을 비롯한 고위험 대상자들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만큼 이들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된다.

아울러 이들 고위험 대상자들에 대해서는 조기에 발견해 적절한 개입과 조치가 신속히 이루어질 수 있는 구체적인 시스템 개발이 시급하다. 조기 발견과 개입, 적절한 조치가 복합적으로 작용할 수 있는 서비스 체계 구축이 이루어져야 한다. 또한 의뢰된 청소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서비스 계획이 이루어져야 하며, 개인 상담이나 집단 상담, 가족 개입, 부모 상담 등의 교육이 이루어짐으로써, 가출이 자칫 성매매 시장으로 발을 헛디디는 불행한 계기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다시 미희 이야기를 해야겠다. 오랜만에 미희에게서 연락이 왔다. 16세에 첫 아이를 낳은 아이가 얼마 전 다시 둘째를 낳았다며 자랑차 연락을 해온 것이다. 첫 아이를 낳을 때는 아이가 아이를 낳는 어쩐지 슬프고 우스꽝스러운 상황이었지만, 이제는 아이가 아닌 어엿한 엄마로서 둘째를 낳은 것이다. 내 딸이 손자를 낳은 것처럼 기뻤다. 그러면서도 가슴 한 구석 쓰리고 아픈 마음을 지울 수 없었다. 안타까움에 눈물이 날 뻔했다. 가족이든 학교 선생님이든, 아니면 우리 사회 어느 누구라도 미희에게 조그마한 관심이라도 줬다면, 도움의 손길을 조금만 빨리 내밀었다면 그렇듯 일찍부터 굴곡 많은 삶을 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

관련 업무 종사자인 나 자신부터 부끄럽고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나도 한때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학교 납입금을 제때 내지 못해 수치심과 패배감으로 가출을 수없이도 생각했다. 육남매의 맏이로 홀어머니 밑에서 변변한 소득도 없는 가난한 시골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언감생심, 차라리 집을 떠나 대처에 나가 돈이라도 벌어야겠다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이런 나를 잡아준 것은, 학교 친구들을 비롯한 담임선생님, 그리고 학교 선생님들의 각별한 관심과 지원이었다. 도시락을 싸가지 못한 나를 위해 친구들이 돌아가며 도시락을 싸다 주기도 하고, 담임 선생님께서는 친구들 몰래 얼마간의 돈을 쥐어준 적도 여러 번 있었고, 버스비가 없어 걸어다니는 나와 동생들을 위해 학교 차원에서 자전거를 사주기도 했다.

이들의 관심과 지원이 있었기에 이후에도 비록 일을 하면서 공부를 해야 하는 처지였지만, 나는 배움에 대한 끈을 놓지 않았고, 대학을 마치고 대학원 과정도 두 군데나 마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어린시절 내가 겪었던 좌절과 어려움을 자산으로 지금은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이 모든 것이 작은 관심과 사랑으로 가능했다. 앞서 말했던 조기 개입과 적절한 조치, 구체적인 서비스 구축과 개발이 사회적 차원의 관심과 배려라면, 내 어린 시절의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작은 관심과 사랑은 사회적 차원의 것을 가능하게 하는 작은 씨앗이 될 것이다. 모두가 소중하고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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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10.07.01 23:26:41 *.197.63.9
클릭을 하는 순간 뭐가 턱 올라와 깜짝 놀랐다. 음~ 뜨겁게 필을 받는 군. 이열치열의 좋은 현상이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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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
2010.07.02 11:12:11 *.35.254.135
오랜 세월 지지받고 치유받아야 어느 정도 괘도에 오르는
그녀들을 지원하는 일이 버겁고 이열치열을 넘어 폭발직전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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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산
2010.07.02 14:15:15 *.131.127.50
고생이 많으시군요.
위로밖에, 별로 드릴 말이 없네요..
그리고 고맙디는 ...
아직도 세상에 희망이 있어서 고맙다는 말이
정말 기쁘게 나오는 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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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
2010.07.03 04:59:15 *.180.75.152
제게 주어진 소명이라고 생각하고 걸어가면서 황홀감을 느낄때가 많아요
그러나 고단하여 진이 빠지기도 합니다.
격려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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