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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님, 보험 하나 드시죠.”
“내성격 알면서 그러니. 싫어하는 것 알잖아.”
한두 번쯤 보험 가입에 대한 권유를 받아보지 않은 분은 없을 것이다. 한 다리 건너면 그쪽에 종사하는 분들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고. 그러면서도 나는 보험이라면 일종의 알레르기 환자처럼 거부감을 가졌었다. 사고가 일어나야 보상 금액이 나온다는 것도 그러하였지만 왠지 생돈 들어가는 기분이랄까. 그랬던 내가 스스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
어느 날 마늘님이 나에게 한마디를 건넨다.
“승호씨. 우리가 죽으면 사후에 누가 잊지 않고 제사를 지내줄까.”
누가 제사를 지내주냐구? 그렇지. 우리 외에는 아무도 없구나. 울적한 기분이 듬과 함께 하나의 묵직함 하나가 박히는 것이 건강하게 오래 살아야 되겠다는 의무감 이었다. 말 그대로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될 때까지. 그럼에도 사람 일이란 것이 예기치 않은 변수가 일어나는 법이기에 그제야 보험 생각이 떠올랐다. 함께 살을 맞대고 살았던 배우자에게 그래도 무언가 조금이라도 줄 수 있는 어찌 보면 선물과도 같은 개념인 것이었기에 나는 자의로 가입을 신청 하였다.
“선배님 웬일이래요. 손사래를 치던 분이.”
남남으로 만나 한평생 회로하며 부부라는 인연으로 맺어가는 관계지만 살다보면 때론 여러 상황들이 벌어지곤 한다. 남편 사업의 부도로 인한 집안의 몰락, 한쪽의 사별에 따른 이별의 아픔, 이혼 등. 그로인해 일반적인 생계의 역할이었던 남자 대신에 생업의 전선에 뛰어드는 여성들이 많아졌다. 그래서인가. 이를 대변하듯 63년 이후 처음으로 50대 여성 취업자 수가 20대 여성 취업자 수를 넘어섰다는 기획재정부와 통계청 자료가 최근 발표 되었다. 즉, 여성 취업자 1000만 명 시대에 일하는 50대 엄마가 20대 딸보다 많아졌다는 내역이다. 이는 베이비부머(55~63년생) 효과와 가장의 실직, 20대 자녀의 구직난이 이중삼중으로 겹쳐, 생활비와 자식의 용돈을 충당하기 위해 취업 전선에 내몰린 경우를 뜻함인데 시대의 현상이긴 하지만 왠지 마음이 가볍지 많은 않다.
“00 거래처를 방문해 주셨으면 합니다.”
한겨울의 추위가 맹위를 떨치던 그날. 어스름한 새벽녘 버스에 몸을 실었다. 히터를 틀어도 몸의 떨림은 좀체 가라앉지 않아 외투를 여미고 자리에 앉자 차창 밖의 풍경이 시간의 태엽을 풀어 놓는다.
000 사장님. 오픈한지 일 년이 넘은 분이다. 그럼에도 영업부에서 방문 요청이 들어온 이유는 매출 실적도 거의 없어, 앞으로의 사업 진행 타당성에 대한 의뢰를 요청한 때문이다. 어쩌면 금일 나와의 미팅결과에 따라 사업 포기까지도 생각하여야 하는 터였다.
세 시간여를 돌고 돌아 도착 하였다. 하늘 눈발이 날리는 가운데 찾아간 매장은 현재의 상태를 말해주듯 분위기가 을씨년스럽다. 추위의 온기를 녹여주려는 듯 작은 난로를 켜지만 속내만큼 왠지 아리다. 평소 코빼기도 보이질 않던 본사 직원 중의 한사람이 방문하니 그녀는 내심 불안한 눈치이다. 과거의 풍상을 말해주듯 거친 손으로 태워준 차 한 잔을 마주하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말문을 열었다.
“설 명절은 잘 보내셨나요.”
“예.”
겸연쩍은 듯 헛기침을 해보지만 마음이 휑하다.
“사업 시작한지 해가 넘어가는데 어떠세요. 처음 의도대로 잘되시는지.”
침묵을 지키던 그녀는 작정한 듯 이야기의 물꼬를 튼다. 단란한 가정을 지키던 그녀에게 시련이 찾아온 것은 5년전 이었다. 남편의 병세가 심해 병원의 정밀검진을 받은 결과 암으로 판명이 되었다. 처음에는 그리 심하지 않아 보여 병원에 입원을 하였으나 차도가 없었다. 그런 와중에 벌어놓은 돈으로 약값이며 병원비가 한푼 두푼 나가다보니 어느새 바닥이 보인다. 어쩌나. 어떡해야 하나. 자식들 학원 보내는 것은 아예 꿈도 못 꾼다. 생계를 책임지고 무언가의 일을 모색하던 중 본사와 인연이 다았다. 사정을 감안했는지 초도물량에 대한 입금은 누계로 상환을 유예 하였으나 그것도 힘들었던 듯하다.
“어떻든지 사무실을 잘 운영해 보려고 하였으나…….”
말을 잇지 못한다. 그렇게 병상에 앓던 남편은 그녀와 자식들을 뒤로하고 몇 달 전에 세상을 떠났다. 힘들었던 과정이 생각나는지 그녀의 눈망울에는 눈물이 글썽글썽하다.
이야기에 젖어들다 보니 오래전 영업부 시절 한분의 사업자 얼굴이 겹쳐졌다.
“승호씨. 00 거래처 장기 미수액 상환이 기한내로 되질 않고 있는데 만나고 난후 대책 및 보고서를 올려줘.”
미팅장소로 초대된 곳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있는 강남 성모병원 중환자실이었다. 그녀의 남편이 위암 말기로 6개월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것을 언 듯 들은 터라 작정은 하였으나 그래도 그렇지 어찌 이런 곳에서 돈 이야기를 해야 할까.
“미안합니다. 남편이 나으면 어떡하든지 미수는 상환하도록 하겠습니다. 염치없지만 이왕 사정을 봐주시는 김에 몇 달만 더 융통을 주셨으면 합니다.”
남편의 곁을 떠나지 못하고 생의 끝자락을 어떡하든지 놓지 않으려는 본능의 몸부림이 그대로 베어 나오는 듯하였다. 어쩔 수 없었다. 간호에 지쳐 헐떡이는 삶에 지쳐 몸이 야윌 대로 야위고, 이제는 눈물조차 말라버린 눈망울이 배어 있는 상대방에게 어찌 돈을 갚으라는 모진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
“승호씨. 어때. 돈은 언제까지 어떻게 갚는데?”
“저…….”
“왜그리 뜸을 들여."
"만나서 사정을 들어보니 딱하더라고요. 조금 더 상환유예를 주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뭐야? 누가 그런 이야기 하라고 당신을 보낸 줄 알아. 미수 금액을 알고도 그래.”
대학에서 럭비를 전공 하였다는 덩치 좋은 채권팀 김 모 과장의 얼굴은 붉으락푸르락 해진다. 하지만 한성격하는 나도 이에 지지 않는다.
“아니. 그럼 사정 뻔히 아는데 병원 그런 곳에서 어떻게 미수 이야기를 해요. 그래도 그렇지. 사람이 인지상정이라는 게 있지 않습니까?”
“XX야. 그럼 금전 상환 못하면 당신 월급에서 깔 거야.”
“제가 책임질게요. 책임지면 되잖아요.”
그다음 사정은 난리가 났다. 갑자기 무언가 나의 얼굴로 날아오는 물체가 있었으니.
정신을 다시 차려보니 그녀의 쓰라림은 계속되고 있었다. 그런데 어쩐다. 나도 그때와는 달리 나이를 먹었고 어찌되었든 이제는 현실로 돌아가 본론의 주제를 꺼내어야 하는데.
“저희 사업을 유지하시려는 의지는 있으신지요.”
그녀는 올 것이 왔다는 느낌이랄까. 단호한 모습으로 돌변한다. 기회를 달라는. 자신도 이사업을 계속해야 하느냐는 생각이 드는 눈치였지만 그렇다고 다른 뾰족한 수는 없어 보였다.
“만약 지금 사업을 그만두셔야 한다면 어떤 대안이 있으세요.”
염려스러운 마음에 오지랖 넓게 신경을 써본다.
“사실 제가 한식 요리사 자격증이 있어요. 그래서 친척 한분이 돈을 융통해 줄 테니까 시장 구석에 자그마한 국수집이라도 차려보라는 권고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솔깃했지만 그것이 현재 제 몸이 그만큼 따라줄 것 같지 않아요.”
그랬다. 병간호다 집안일이다 뛰어 다니다보니 그녀의 몸도 말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 첫째딸 결혼식의 대사까지 치렀으니.
“본사에 내세울 입장은 아니지만 그래도 현재 이사업이 저에겐 적성이 맞는 것 같아요. 조금만 더도와 주시면 올 한해 다시 한 번 해보겠습니다.”
적성이라? 그렇다면 매출이 그 모양인가라는 말이 입속에 맴돌았지만 사정을 아는 터라 차마 그러질 못하였다.
“예전 양궁 국가대표 감독에게 이런 질문을 하였던 적이 있습니다. 세계 최고인 여자 양궁 선수들 가운데에서도 누가 탑클레스 입니까. 그분은 이렇게 이야기 하였습니다. 열심히 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하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메달 색깔이 달라지는데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 대단한 사람은 즐기는 사람이더군요. 그런데 그보다 더 대단한 사람이 있으니 누구냐 하면 바로 질긴 사람이랍니다. 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사람에게는 세상 어떤 것도 두려울 것이 없을 것 같습니다. 저의 경우에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암담한 가운데 어머니께서 저희 삼남매의 생계를 책임지셔야 할 때, 아무래도 생존에 대한 욕구와 책임감을 느끼셨던 것 처럼요.”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말이 없다.
어떤 내용의 보고서를 올려야하나. 하루의 끝자락 서울로 돌아오는 버스 안은 어두운 분위기로 가득하다.
나의 어린 시절 어머니의 18번 멘트는 운명과 팔자란 단어였다.
팔자. 팔자. 나는 그 단어만 들어도 주눅이 들고 숨이 턱턱 막혔었다.
남편 복 없는 여자는 자식복도 없다고 하였다.
하루하루 사는 게 왜이리 힘드냐고 하였다.
그럼에도 어머니는 아침이면 생업의 전선으로 나아가 하루 그리고 날마다를 싸워나갔다.
여자는 약하지만 어머니란 존재는 강하다고 하였던가. 책임감이든 본능이든 어떻든지 목숨 줄을 이어나가야만 하였다.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어떤 일이든 여성들이 남성과 가족을 대신해 투쟁의 전선에 뛰어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경력이란 것을 뒤로하더라도 사회의 또 다른 벽을 넘어야 하고, 여성이라는 통념을 깨어야 하기에 이중 삼중고의 어려움을 뚫어야 하는 것이다. 뒤척이는 밤 피곤함에 절어 자고 있는 또 하나 나의 운명을 들여다본다. 달이 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