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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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과학 기사가 신문 첫 면을 커다랗게 장식하는 일이 있었다. 바로 "현대 물리학의 근간, '불확정성의 원리', 결함 있다" 라는 기사였다. 과학 기사가 이렇게 중요하게 취급되는 경우는 드문 경우라 눈에 확 띄었다. 반사적으로 ‘이게 무슨 뜻일까? 그래서 세상이 바뀌기라도 한다는 말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고, 공학도인 난 나름 이 기사를 유심히 찾아보았다. 과거에도 ‘빅뱅’ 같은 우주의 기원이나,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 나름 책을 찾아보며 공부를 해본 적이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내가 사는 이 시대의 발견을 동시대인으로서 이해해 보고 싶은 마음에서다. 그러나 이해하고 싶어도 이해 할 수 없는 것들도 많은데, ‘현대 과학’이 그 중 하나다.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도 말했듯이 ‘양자역학’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 않을까 싶다. 나를 포함해 대중의 과학에 대한 인식이 거의 '뉴턴'에서 멈추었고, 현대 과학의 언어가 너무 난해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여기서는 이 발표가 나에게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보고자 한다.
그래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의를 집고 넘어가자면, ‘불확정성의 원리’란 미세한 입자의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정확하게 측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왜 정확한 측정이 불가능 한가하면, 그건 입자를 ‘측정하려는 행위’가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이는 아인슈타인이 상대성이론에서 '관찰자의 입장에 따라 동일한 현상에 대한 관찰 결과가 서로 다를 수 있음'을 보여준 것과 맥을 같이한다. 이러한 과학의 발견은 '무엇인가를 안다는 것에 근본적인 한계가 있음'으로 다가왔다.
이번 신문 기사의 초점은 이 불확정성의 원리가 틀렸으므로 양자역학의 기반이 흔들린다는 것인데, 실제 전문가들이 말하는 바는 그렇지 않다. 전문가들은 '양자역학이 틀렸다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할 수 없다고 생각한 측정을 할 수 있게 됐고, 양자역학의 가능성이 커졌다는 의미'라고 해석한다. ‘불확정성의 원리가 제시하는 측정의 한계’가 이번 실험으로 ‘그 한계가 틀렸으며 그 이상으로 측정가능’하게 되었다는 얘기다. 이 말은 불확정성의 원리가 틀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불확정성의 원리의 정확도를 높인 것이다. 여기까지도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냥 ‘불확정성의 원리도 보다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발표의 핵심이라는 것만 기억하자.
불확정성의 원리는 인류에게 과학의 신비로운 면을 보여주었다. 모든 것을 정해진 틀 안에서 정확하게 측정하려는 합리적인 과학의 틀이 무너진 것이다. ‘불확정성’이란 고정된 것이 없다는 것이고, 예를 들어 ‘빛이 파동이기도 하고, 입자이기도 하다’는 애매한 관념을 낳았다. 이러한 변화는 인류의 합리적인 정신에도 큰 충격을 주었다. 과학의 세계에도 ‘알 수 없음이 진실’이라는 선문답 같은 명제가 성립하는 것이다.
과학의 대중화에 이바지한 천문학자인 '칼 세이건'은 이렇게 말했다.
“이 세계는 더할 수 없이 아름다우며, 크고 깊은 사랑과 선으로 가득한 곳이기 때문에, 증거도 없이 예쁘게 포장된 사후 세계의 이야기로 자신을 속일 필요가 없다. 그보다는 약자 편에서 죽음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생이 제공하는 짧지만 강렬한 기회에 매일 감사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칼 세이건의 유작 <에필로그> 중)
이젠 더 이상 과학자가 보는 세상이라고 수학공식처럼 무미건조한 것만은 아니다. 과학자의 눈으로 똑바로 쳐다본 세상이 그 어떤 이데올로기보다 경이로우며, 그것을 통해 살아있음의 기쁨을 더 강하게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이제 근대 과학이 만든 세계관이 느리지만 뿌리째 변화하고 있다. ‘불확정성의 원리’에서 알 수 있듯이, 애매함이 본질이다. 정해진 것은 없다. 우리 주변 세계를 답이 정해져 있는 객관식 문제로 보지 말고, 답이 없는 주관식 문제로 바라보자. 평범한 일상에서도 특별함과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말라버린 경이감과 사라진 삶의 신비를 되살리는 길은 바로 우리 발밑에서 시작될 것이다.
<사라진 신비를 어디에서 찾을까, 사진/양경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