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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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나는 간다, 이태리 루카로! 신치의 모의 비행> 서문 쓰기
서문 : 젊음은 위로를 원치 않는다.
“넌 왜 다른 갈매기들처럼 되는 게 그리도 힘든 거니? 넌 왜 잘 먹지도 않니? 넌 너무 말라서 뼈와 깃털뿐이구나!”
“뼈와 깃털뿐이어도 상관없어요. 난 다만 내가 무얼 할 수 있고, 무얼 할 수 없는가 알고 싶어요. 그게 전부에요. 단지 알고 싶을 뿐이에요.”
삶에는 얼마나 많은 의미가 있는가! 하찮은 먹이를 얻기 위해 끝없이 고기잡이배와 해변 사이를 단조롭게 오가는 대신, 삶에는 특별한 존재 이유가 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무지에서 벗어날 수가 있다. 우리 자신이 탁월하고 지성적이며 뛰어난 재능을 지닌 존재임을 발견할 수 있다. 우리는 자유로워질 수가 있다! 높이 나는 법을 배울 수가 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자각하기만 하면.
먹는 것, 싸우는 것, 또는 무리 속에서 권력을 갖는 것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는 생각을 최초로 갖기까지 우리는 얼마나 많은 생을 거쳐야만 하는가. 완전한 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배우기 시작할 때까지 수백 생이 필요하다. 지금 이 생에서 어떤 배움을 얻는가에 따라 우리는 우리의 다음 생을 선택한다. 아무런 배움도 얻지 않는다면, 그 다음 생 역시 똑 같은 것일 수밖에 없다. 똑 같은 한계, 극복해야 할 똑 같은 짐들로 고통받는. 배우고, 발견하고, 자유로워지는 것, 그것보다 더 큰 삶의 이유는 없다. <갈매기의 꿈> 중
나는 조나단 리빙스턴 시걸과 같은 꿈을 꾼다. 눈 앞에 펼쳐진 파란 하늘과 온 몸으로 받는 태양, 그리고 슬그머니 불어오는 바람과 나를 맡긴 바다가 나를 어디론가 이끌고 있다.
나답게 살고 싶었다. 그게 전부였다. 스무살까지는 부모라는 배에 대학이란 닻을 달고 달렸다. 꿈꾸던 ‘독립’과 함께 대학생활을 시작하면서 이제는 ‘나 답게’ 살아봐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대학이란 배에 ‘대기업’이란 닻을 달고 스펙쌓기의 항로를 따라 가고 있을 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라는 닻을 달고 달리기 시작했다. 그래서 내 마음이 이끄는 대로 음악동아리, 학회, 학생회 활동에 전념했다. 하지만 결국 대학이란 내 배의 종착지 역시 ‘대기업’이 될 수 밖에 없음을 졸업하는 시점이 되어서야 깨닫고 말았다. 그렇지만 내 배에는 4년간 다른 친구들이 쌓아 올린 것들이 없었다. 그래서 내 배를 정착할만한 기업이 없었다. 결국 내 이력서를 보고 연락이 온 보험회사라는 배에서 사회생활의 첫 항해를 시작하게 된다. 평생 한 배만 탈줄 알았는데 우연히 알게 된 분을 통해 벤처기업이란 배를 거쳐, 두 번째 회사에서 알게 된 분과의 인연으로 라임 파는 세 번째 배까지 타게 된다. 두 개의 배를 타는 동안 내가 달았던 닻에 ‘언젠가 하게 될 내 사업의 꿈’을 그리고 달렸다. 하지만 내가 탔던 모든 배에서 닻은 제대로 올려보지도 못한 채 하차할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 스물 아홉밖에 안 됐어. 뭐든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나이지’ 란 생각으로 내 배의 닻을 올렸다. 하지만 나의 항로는 어디일까? 뱃머리가 향해 있는 곳? 태양이 보이는 방향? 구름이 흘러가고 있는 방향? 과연 어느 쪽이 내가 가야 할 길일까?. 이렇게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른 채 힘껏 노를 젓고 있는 청춘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지난 여름, 열흘 간의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내 인생의 등대에 책임이라는 글자를 떼고 자유라는 글씨를 붙일 수 있는 계기가 찾아왔다. 그리고 나는 어디엔가 있을 자유를 찾아 헤매며, 여전히 방황하고 있다. 스물아홉에서 서른으로 넘어가는 시점에 나는 내 인생의 노를 힘껏 저었다. 그런데 노를 힘껏 저으면 저을수록, 배는 제자리에서 빙빙 돌고 있다는 느낌만 들었다. 그래서 노젓기를 그만두고 바람과 바다의 흐름에 나를 맡기자 신기하게도 새로운 기회들이 나를 찾아 왔다.
자신이 그토록 원하고, 이루고 싶은 꿈을 찾아 그 꿈을 향해 망설임 없이 달려가는 청춘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 이미 꿈을 찾고 주변 사람들의 걱정에도 개념치 않고, 그 꿈을 향해 가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참고 견딜 수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청춘은 정말 복 받은 청춘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 꿈을 찾고 싶어 안달하는 청춘일 것이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는 청춘들에게 기성세대들은 얘기한다. ‘너의 꿈을 찾아 그 꿈에 열정을 쏟아 부어라’고 조언하고, ‘아프니까 청춘이다. 그것도 한 때이다.’라고 위로한다. 그렇지만,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들은 조언이나 위로를 받고 싶은 것이 아니다. 그냥 지금도 잘 살아가고 있다고 인정받고 싶은 것이다.
이 책은 ‘제멋대로’ 살기 위해 결정한 첫 항해지인 이태리 루카로 가는 여정에서 겪는 방황의 기록이다. 내 삶 역시, 바다 위를 떠 돌고 있는 수많은 청춘들의 모습 중에 단 하나일 뿐이다. 나의 이러한 삶이 이미 방황하고 있는 또 다른 청춘들과 방황할 수 밖에 없는 청춘들에게 ‘아,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이 나뿐만이 아니구나?’라는 ‘안도감’을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또한 여전히 사회가 쳐 놓은 울타리 속에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무언가 내면의 꿈틀거리는 어떤 소리를 따라가면서 방황하고 싶은’ 청춘들에게 ‘이렇게 살아도, 살아지는구나?’라는 생각으로 그들이 지금이라도 자신만의 배를 타고 방황의 항해를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불어넣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나는 청춘을 세상을 떠 도는 조각배라고 생각한다. 이 조각배는 비록 지금 불안하게 여기저기 흐르고 있지만, 그렇게 떠돌다 보면 언젠가 자신이 가고 싶은 방향을 찾을 거라 생각한다. 단지 지금 있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노를 저으면, 바다와 바람, 태양 그리고 구름이 항해를 수월하게 해줄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이리저리 방황하는 청춘들에게 조언과 위로를 해주고 싶어 안달이 난 이들에게 괴테가 흥분하여 열광적으로 외쳤던 에그몬트의 말을 빌어 나 역시 이렇게 외치고 싶다.
“자! 자! 이제는 그만둬! 우리들의 운명의 배를 이끄는 ‘때’의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이 휘두르는 채찍질을 당하고 있는 듯이 우리를 이끈다. 우리들은 정신을 차려 키를 단단히 움켜쥐고, 때로는 좌로, 때로는 우로 배를 돌게 하며, 이 돌과 저 절벽을 피해 갈 수 밖에 없다. 어디로 가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 어디서 왔는지조차 생각해 낼 수 없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