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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19일 19시 41분 등록

프로메테우스의 공간.JPG

 

새벽녘 버스를 타고 업무차 강원도 외진 산골에 도착하니 반기는 건 휑한 바람의 차가움이다.

겨울은 추워야 제 맛이 난다지만 그래도 동장군을 맞이하노라면, 자연스레 옷깃을 추스르고 용의 하얀 입김과 함께 시린 손을 호호 비비게 된다.

어느 잠시 쉴 곳이 없을까. 적당한 곳을 찾다가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니, 그곳엔 어릴 적 낯익은 기억속의 하나를 끄집어낸 듯, 기다란 연통의 위용을 자랑하는 난로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오랜만에 만난 그 시절 친구처럼.

 

어릴 적 겨울은 지금보다 더추웠던 것 같다.

학창시절 주번의 필수 임무 중에 하나는 주전자에 물을 기르고 난로의 불을 꺼뜨리지 않는 것이었다.

친구들은 등교후 누구나 할 것 없이 일용할 양식의 차가운 금속성의 도시락을 앞 다투어 꺼내어 난로위에 얹어 놓는다.

“오늘 너는 무슨 반찬이고.”

“나, 오늘 계란 싸왔데이.”

“잘됐다. 그럼 혼자 먹기 없기다.”

수업 분위기만큼 따사로움의 밥알 빨간색 온도계는 점점 올라갔다.

쉬는 시간. 친구들은 밀린 잠을 청하는 와중에 나는 나무를 받으러 가야한다.

“선생님예, 나무 가지러 왔심데이.”

“저기 있다. 축축한 것 말고 잘 골라 가래이.”

한 아름 나무를 챙겨서 아궁이 속으로 하나둘 집어넣는 엄숙한 의례를 치르다보면 어느새 고대 제사장의 신분으로 돌아간다.

우가우가^^ 주문을 외우고

붕가붕가^^`````````````````````````````````````````````````` 휘파람을 날리며

마법의 손으로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다시금 재현시킨다.

둘러싼 이들의 열광적인 환호성속에 의례가 정점에 이르면 화마는 에너지를 세상 밖으로 배설 해댄다.

시린 손, 창백한 얼굴, 차가운 발을 동동 구르던 동심들은 다시금 빨간 내면의 욕망을 회복해 낸다.

그리고 이어지는 한마디.

“야, 주번 불꺼드리지 마래이.”

 

추억의 그림자는 어느새 연탄의 시간으로 바뀌어져 갔지만 나의 첫기억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일산화탄소의 매캐한 기운이 밤새 함께한 어느 날.

“와이래, 기운이 없누. 일나보래이.”

의식은 있는데 사지가 힘이 없다. 왜 이러지.

“아이고. 큰일났데이. 빨리 동치미 국물좀 가져오래이.”

마침 들른 옆집 아줌마의 도움으로 우리는 어슴푸레한 광명을 찾을 수 있었다.

 

그 후 누나와 나는 가위 바위 보를 해서 새벽녘 누가 일어날 것인가를 결정하고, 당번은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목숨을 걸고(?) 연탄을 갈았다.

“귀찮아 죽겠데이. 연탄 안가는 방법 없나.”

그런데 이런. 늦잠을 잤다. 일어나보니 까만 연탄은 본래의 형상과는 달리 어느새 한민족의 순결하고 고고한 마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큰일났데이. 우야면 좋누. 엄마가 알면 큰일 날 낀데. 나는 맞아 죽었데이.”

긴급 처방으로 번개탄을 어렵사리 구해 불을 살려내기 위한 필사적인 몸부림을 쓴다.

쭈그리고 앉아 껴져가는 불씨에 연신 커다란 부채의 바램을 부쳐대며 결사항전을 하노라니 매캐한 연기가 온몸을 감쌌다.

“살아야 될 긴데. 살아야 될 긴데.”

천진한 소년의 간절한 바람인지 다시금 불씨는 영광의 모습으로 재현을 해댄다.

살을 맞대는 가족 모두가 방 하나에 일상을 누이며 숙식을 함께 자는 집안에서는, 연탄이 거룩한 생명이요 내일 새로운 부활의 삶이었다.

차디찬 방을 데우고, 불을 피우고, 음식을 만들고, 생존을 하게 하였다.

그러노라니 그 불씨의 당번인 제사장은 책임이 막중할 수밖에 없었다.

생명을 다한 연탄은 일생을 달리하며 하나둘 쌓인 그 무게는 어느덧 빨간색 대야를 한껏 채운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언제나 그렇듯 정해진 시간 고단한 희망의 음률. 쓰레기차다.

부리나케 일어나 운동화를 꺾어 신고, 사는 게 그렇듯 힘에 겨운 대야를 질질 끌며, 소진을 다한 어제의 역사를 뒤로하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다.

“아저씨예, 이것좀 받아 주이소.”

숨을 헐떡이며 건네어진 과거를 함께 동고동락했던 그것은 새로운 공간으로 이동을 한다.

어디로 가는 걸까.

누구를 만나게 되는 걸까.

어떻게 되는 거지.

소년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차가운 현실의 바람이 몸서리를 치게 만들기에 언제나 그렇듯 다시금 현재의 집 그곳으로 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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