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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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in
( 시 속으로)
< 서 문>
학생들이 내게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는 “수학 공부가 살아가는데 필요한가요?” 이다. 그들은 돈 계산을 위한 사칙연산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실용성을 따지는 것이다. 학생들이 생각하는 수학은 일상 생활에 많은 도움을 주지 않지만 대학을 가기 위해서는 점수를 잘 받아야 하는 과목일지 모른다. 그러면 수학 선생인 나는 수학에 대한 편협한 생각을 조금이나마 변화 시키고 싶어 그들이 잘 받아들이지 않는 말을 하곤 한다.
“수학 공부를 하면 논리력, 계산력, 이해력이 발달되고 우리 삶에 필요한 사고 능력이 배양되지. 그 뿐만이 아니야. 방대한 양의 자료들을 분석하고 정리할 때 수학적 사고는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지. 길이나 양을 잴 때도 필요하며, 합리적인 소비생활을 위해서도 수학이 필요해. 수학이 가진 정신도야성이 너희들의 뇌가 명석해지도록 도와주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뇌가 잘 작동할 수 있도록 돕는거야. 그리고 수학은 기초학문이란다. 너희들이 알고 있는 많은 철학자들은 대부분 다 수학자란다. 모든 학문의 기초가 되는 수학을 배우는 것은 인간답게 살기 위한 기본이랄까? 심미성까지 이야기하면 수학이 얼마나 위대하고 우리 삶에 꼭 필요한지 알게 될거야.” 하지만 이런 설명은 ‘소 귀에 경 읽기’ 격이다. 학생들은 자신의 삶에 적용되지 않는 이차방정식, 함수 등의 내용을 배워야 하는 수학 과목이 그저 싫기만 할 뿐이다. 안타깝다.
그런데 시를 채집하면서 나는 나의 시에 대한 생각이 학생들의 수학에 대한 생각과 다르지 않음을 깨달았다. 나도 늘 실용적인 것들을 쫓아갔었다. 책을 고를 때도 주로 자기계발서를 선택해 읽으며 내 삶에 필요한 부분들을 적용시켰다. 실생활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지는 책들을 사 본 것이다. 특히 2010년 너무 한쪽으로 기울어진 독서를 하다보니 책 내용이 다 비슷하고 마음에 큰 감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멀미가 났다. 풍요로워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책에 소개된 지침들을 지켜내지 못하는 나의 삶에 실망했다. 지금 당장 내 삶에 적용되지 않아도 나를 성장시키고 성숙하게 하는 다른 종류의 책들이 읽고 싶어졌다. 수학의 필요성을 점점 깨달아가는 학생처럼 나도 문학이 내 삶에 얼마나 필요하고 소중한 것인지 체험하고 싶어진 것이다. 그때 ‘시’가 내게로 왔다.
시 한 편은 우리에게 못가본 길을 가게 하고, 보지 못했던 그림을 볼 수 있게 한다. 우리들의 가슴에 질문을 던진다. 우리들의 영혼에 속삭이며, 삶을 잠시 멈추고 들으라 한다. 시는 진정한 삶을 살도록 우리를 자극한다. 삶에 뿌리를 둔 시들이 내 삶을 성장시킨다. 이전에는 스스로에게 던지지 못했던 질문들을 받게 되고 생각해 보게 되었다. 당장 내 눈에 보이는 어떠한 결과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시는 내 삶을 풍요롭게 했다. 내 정신을 따뜻하게 했고, 내 마음을 울렸다. 시는 내 인생에 꼭 필요한 수학과목 같은 것이 됐다. 내 정신은 고양 됐으며 내 마음은 깊고 넓어졌다.
학교 도서관으로 향한다. 코드번호 811번으로 시작되는 책장으로 간다. 한국시가 나를 반겼다. 정말 많은 시집들이 내게 ‘이제 오느냐, 기다렸다.’고 속삭인다. 방대한 양의 시집들을 보고 놀란 가슴을 숨기지 못했다. 욕심이 생겼다. ‘다 읽어보고 그 중에서 좋은 것들을 골라야지.’ 얼토당토 않은 계획이었다. 한 편 한 편 마음에 새겨 읽는 것은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했다. 다 읽고 싶은 마음을 내려놓고 나와 지금 만나게 되는 시들과의 인연을 소중하게 여기기로 했다. 내 방에서, 학교 교정에서, 도서관 귀퉁이에서 만나게 된 시들과의 인연을 놓치지 않고, 하나 하나 나와 함께 호흡하며 읽히는 단어들과 문장들을 마음에 새기기로 했다. 그러니 마음을 쿵 울리지 않아도 사뿐이 내 마음에 내려 앉는 시들도 만날 수 있었다.
'시in'은 모두 4부로 이루어졌다. 엮은이의 마음으로 나누었다.
1부는 시를 읽으며 사랑을 느낀 것들로 엮었다. 나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이 시로 프로포즈 받았으면 좋겠다. 그러면 이 시로 답해야지.' 라는 생각을 했다. 아름다운 시들은 사랑이 사랑되게 알려주었다. 꿈을 사랑할 수 있게, 연인을 사랑할 수 있게, 나를 사랑할 수 있게 그리고 사랑을 사랑할 수 있게 내 마음에 핑크빛을 선물한 시들이 모여있다.
2부는 첫눈에 반한 시들을 모았다. 한 번 읽었을 뿐인데 내 마음에 길게 여운을 남긴 시들이다. 눈물을 그렁 그렁 맺히게 한 시들이 2부에 옹기종기 모였다. 몇 번을 다시 읽고 반하고 싶은 시도 한 자리를 차지했다. 행복한 비밀이 담긴 공간에 나그네도 지나가게 아내도, 아들도 지나갈 수 있게 길을 내어주었다.
3부는 인생에 지침이 되는 시를 위한 공간을 마련했다. 지금이 가장 아름다운 때라고 일러주는 시가 내 마음에 박혔다. 희망을 진실하게 노래하며 진정한 여행길이 올라선 나를 응원해주는 시들이 이 공간을 차지했다. 여행길을 가다가 너무 욕심을 내지 말라고 욕망을 하늘 끝까지 올려도 다시 내려올 수 밖에 없는 그네 같은 인생에 대한 것도 빼놓지 않았다. 절제와 즐거움이 공존하는 이 공간의 말씀을 마음에 새겨 잊지 않아야겠다.
4부는 나를 돌아보게 하는 시들을 불렀다. 어린 시절을 추억하며 귀뚜라미도 만나고 지금 하고 있는 독서의 의미를 생각해보기도 했다. 이 시들을 읽으면서 나의 직업, 신앙, 비전에 대해 질문을 받게 되었다. 시 속에서 답을 찾기도 했다. 지금 내 삶이 어떠한지 볼 수 있었다.
우연 처럼 만나 운명처럼 ‘내 인생 첫 번째 시집- 시in’에 실린 시를 써준 시인들에게 고개 숙여 감사함을 표한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는 ‘인간은 젊어서 시인이 아닌 사람이 없다.’고 했단다. 33편의 시들을 엮어 시집을 만들고 나니 내가 시인이 된 듯한 기분이 든다. '시in'을 만들면서 힘들어하는 후배를 위해 시 한 편을 썼다. 그 시를 쓰며 서문을 마친다.
마음
최 세 린
우리는 늘 하나의 마음으로 살아갈 수 없다.
흔들릴 때도 있고,
딴 길로 갈때도 있으며,
바르게 갈때도 있고,
갈팡질팡 할때도 있다.
딱딱 할때도, 말랑 할때도
그러나 마음이 어떠하든지 너무 괴로워 하거나,
너무 방치하지는 말자.
그저 그 마음을 정직하게 내어 놓으며
지금 이 시간이 내게 필요한 과정임을 인정하고
묵묵히 과정 안에 충실해보자.
그 과정이 잘 지나가고 나면
결실이 맺어져야 할 때
좋은 열매 맺을 수 있으리.
바람을 타듯,
물 흐름에 마음을 맡기고 둥둥 떠 가듯이
그렇게 내 마음도 흘러 갈 수 있게 정직해지자.
사랑하는 사람아
네 마음도 곧 깊이 잠겨 그 안에서 풍성해지겠지.
나는 아직 가지 못한 그 마음길 경험하고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