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단군의

/

1단계,

첫

  • 희동이
  • 조회 수 8448
  • 댓글 수 200
  • 추천 수 0
2012년 5월 4일 23시 21분 등록

1. 새벽시간과 새벽활동

- 기상시간 : 오전 5

- 새벽활동 : 30분 달리기, (미술사 공부, 글쓰기, 영어 학습 중 선택)

 

2. 나의 전체적인 목표

- 묻혀 있던 마음 씨앗 발견하기 : 1단계 100

- 마음 씨앗을 잘 심어서 싹 틔우기 : 2단계 100

- 마음 싹 잘 키워서 열매 맺기 : 3단계 100

- 잘 익은 열매 나눠먹기 : 죽을 때까지

 

3. 중간목표

- 새벽 시간을 내 하루의 중심으로 만들기

- 번잡하지 않게 생활을 단출하게 정리하기

- TV 시청 중단하기

 

4. 목표 달성 과정에서 직면하게 될 난관과 극복 방안

1) 야근 

회사일이 언제나 그렇듯 불현듯 바쁘다가 갑자기 한산해 지는 것이 자신이 시간을 관리하기가 매우 어려운 조직이다.

특히, 회사 내 지위가 올라가면 일반적으로 자신이 관리할 수 있는 부분이 늘어 날 것이라고 하지만 관리할 일 또한 더더욱 늘어나므로 되려 더 빡빡하게 돌아간다.

상사의 다급한 업무 지시가 매일 발생하는 상황에서 연기 되었던 기존 업무가 날 보러 와요 하면서 두더지 놀이처럼 불쑥 불쑥 고개를 내민다. 망치로 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아니되오 ~ 아니되오 ~

아무리 관리해도 어려운 것이 업무량과 시간조절인 것 같다. 그래서 늘 더하려고 하다 보면 늦게 퇴근을 하게 되는 일이 많다. 사실 늦게 퇴근을 전제로 딴짓에 능숙해 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야근을 많이 하면 지치게 마련이고 그러면 피곤해지고 마음은 허전해진다. 이런 허전함을 채우기 위해 야식을 먹거나 (치맥 좋죠!), TV를 보거나 (각종 드라마 너무 재밌어요), Internet (세상은 왜이리 심각한 일이 많은 것이야) 을 돌아 다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이러한 허전함을 없애는 것이 우선인 것 같다. 하루 회사일을 마치면 허전하기 보다 알차게 보냈다는 자기 격려와 만족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방법을 잘 찾아야 한다.

가장 우선 밀려드는 업무와 E-mail 속에서 중요한 일을 잘 분류해서 하루 목표를 명확하게 가져가자. 그래야 내일이 보이고 오늘을 조금이나마 가벼운 마음으로 마무리 할 수 있다. 충만함도 곁들여 얻는다면 퇴근 후 시간도 알차게 편안하게 가족과 보낼 수 있을 것이다.

 

2)

앞에서 말한 허전함 공허함 등의 다소 도회적인 느낌을 받으면 여러 가지를 하는데 그 중에 술을 마시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업무 스트레스도 있을 것이고 일명 사회생활이라는 말로 행해지는 갖가지 술자리에서 정신을 차리고 버티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

최근 한달 전부터 술을 끊다시피 하였다. 우선, 술자리는 만들지 않고, 회식 자리에서는 잔만 받아 놓고, 집에는 술을 사놓지 않았다. 이러한 노력으로 매주 몇 차례 먹던 술을 거의 먹지 않게 되었고, 이로 인해 시간도 벌었다. 좋은 것은 단군의 후예를 지원할 수 있는 마음 가짐도 얻었다.

하지만,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리라 장담은 못한다. 사람 마음이 한결 같을 수 없고 상황이 항상 좋을 수 없으니 한 순간에 무너지면 술이란 게 사람의 정신을 놓게 만들 여지가 크다. 그 동안 술자리에서 뭘 즐겼는지 되새겨 보고 술을 마시면서 얻은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고 술을 안 먹으면서 그러한 것들을 얻을 방법은 무엇인지 당분간 생각해 놓아야겠다. 그래야 술이 목적이 아닌 도구가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3) 번잡한 마음 그리고 욕심

눈이란 게 보라고 있고 귀라는 게 들으라고 있으니 늘 보고 듣는데 문제는 중구난방이고 그때 그때 마음이 쏠려 갈피를 못 잡는 것이다. 오늘의 관심 대상이 내일은 전혀 관심에 들어오지도 않고 불현듯 무엇인가 집착하게 되고 마음 쓴 일은 계속 기웃거려 보게 되고 지나간 일로 다시 돌아가 안주하려는 마음도 생긴다.

사는 게 남과 다르지 않아서 돈도 벌고 싶고 맛있는 것도 먹고 싶고 남들 사는 것, 입는 것, 즐기는 것 다 해보고 싶은 게 틀린 것은 아니다. 문제는 그 안에 내가 있느냐이다. 살다 보니 40을 넘겼는데 부끄럽지만 이 부분에 대해 아직도 번잡하기만 하다. 욕심도 정리가 되지 않으니 내 욕심인지 그냥 남들 욕심인지 구분이 아직 안 된다.

마음이 단출해야 키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살면서 늘 마음에 두는 말은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인데 마음도 욕심도 여기 저기 기웃거려서는 크게 키울 수 없지 않을까?

이번 100일의 여정에서 버릴 것들을 잘 골라서 버리면 가장 크게 얻는 것이 될 것 같다.

 

5. 목표를 달성했을 때 내 삶에서 일어날 긍정적인 변화 묘사

1) 생기 넘치고 마음이 편안하고 하루를 알차게 보낼 수 있을 것 같다.

 

6. 목표를 달성했을 때 나에게 줄 보상

1) 변경연 시칠리아 연수 동행 

IP *.68.174.24

댓글 200 건
프로필 이미지
2012.07.20 01:01:26 *.70.144.140

새벽에 출근해서 새벽에 귀가해버렸다.

아~~ 정말 바쁜하루였다. ^^

프로필 이미지
2012.07.20 06:15:44 *.35.252.86

시칠리아로서의 여정을 앞두고 업무 챙기시느라 바쁜 일정을 보내구 계시군요.

업무 챙기시는 것도 좋지만... 건강도 잘 챙기시기를~!

 

얼마전 '呼' 와 관련된 비속어 어플에 대해 피드백 주신에 다시금 감사드려요!

나중에 알고나서 "깜놀"했음 ㅋ

프로필 이미지
2012.07.20 06:33:58 *.70.144.140

그 걸 본 저는 얼마나 깜놀했겠습니까? 처음에는 농담인 줄 알고 좀 웃다가 좀 심각하게 적은 글을 보고 아하 이건 아니구나 했답니다.

어쩌면 시칠리아 가기전에 사우디에 다녀올 지도 모르겠네요! 헐~~~

프로필 이미지
2012.07.20 10:31:29 *.91.142.58

ㅎㅎㅎ 물의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힘이 되는 멘트와 많은 조언 주심에 감사드려요 *^^*

프로필 이미지
2012.07.20 06:31:27 *.70.144.140

[단군일지]
● 일차/날짜 : 75일차 / 2012년 7월 20일
● 취침/기상시간 : AM 2:00 / AM 4:30
● 활동시간 : AM 4:30 ~ 5:30 + a
● 활동 내역: "인생이란 무엇인가"로 새벽열기"

● 만족도 : 3
● 몰입도 : 3

"살생은 모두 혐오스러운 것이지만, 그중에서도 먹기 위해 하는 살생이 가장 혐오스럽다.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죽일 것인지 생각하거나 죽인 생물을 어떻게 먹으면 가장 맛이 있을지, 또는 어떤 양념을 하면 좋을지 등등 여러 가지 취향을 시도하면 할 수록 더욱 더 혐오스러운 것이 된다." - 골드슈타인 -

 

"다른 생명이 고통그러워하는 모습을 보고 괴로움을 느낄 때, 그 괴로운 광경에서 눈을 돌려, 그 장면에서 달아나고자 하는 순간적인 감정에 빠져서는 안된다. 반대로 괴로워하는 것에게 달려가 그것을 구할 방법을 찾는 것이 옳다" - 톨스토이 "인생이란 무엇인가?"에서 -

 

늘 음식을 먹으면서 생각하는 것이 있다. "너의 생명을 내 헛되이 하지 않아야 하는데 너를 먹는 나는 그렇지 못하구나, 오늘도 너를 먹는 나는 너희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게 하리라" 하지만 정작 이 생각은 괴로운 광경에서 눈을 돌리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같다. 나의 어릴적에 어머니의 물음에 이렇게 대답한 적이 있다. 내가 때리면 그아이가 아프잖아 그래서 난 때리지 않았다고 그리고 몇대 맞고 왔다고. 초등학교 2? 3학년때의 일인가? 난 그런 연민이 가득한 아이였었다. 어느덧 세월이 나를 메마르게 하고 있지만 내안의 연민은 달라지지 않았으리라. 슬픔은 늘 그렇게 나에게 다가 왔다.

프로필 이미지
2012.07.22 15:21:33 *.94.41.89

[단군일지]
● 일차/날짜 : 76일차 / 2012년 7월 22일
● 취침/기상시간 : PM 12:00 / AM 4:30
● 활동시간 : AM 4:30 ~ 6:30 + a
● 활동 내역: 명상 및 대화

● 만족도 : 3
● 몰입도 : 3

새벽에 일어 나 있으니 어머니께서 일어나서 말을 붙여오신다. 여행 간다며 올해 날삼재인데 여행가서 혼자다니지 말고 몸조심하라 신다.

네... 몸조심할께요. 아들은 이런 저런 이야기로 말을 돌린다. 걱정 그만하시라고 하지만 일찍 돌아가신 아버님이 어머니와 내 대화의 중심에 계신다. 왜 그렇게 일찍 돌아가셨단 말인가? 아버님이 돌아가신 나이가 바로 올해 내 나이이다. 내가 생각해 보면 이나이는 정말 여러가지를 조심해야하는 것같다. 사회생활에서 부터 사사로운 개인 생활에 까지 그런 여러가지를 그저 오래 삼재니까 혼자다니지 말란 말로 마무리 하신다. 살다보면 내 몸이 내 몸이 아닐 때가 있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고 서로에게 의지하고 서로의 지지자가 되며  서로를 응원하고면서 서로에게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떠날 수 없는 것이 바로 우리의 삶이다.

프로필 이미지
2012.07.22 21:40:29 *.35.252.86

맞아요.. 올해가 날삼재라구 하네요.

저는 지난 2년 삼재 제대로 치뤄서 삼재의 위력(?)을 익히 실감하구 있답니다. ㅎㅎㅎ

 

물론 다 생각하기 마음먹기 탓이지만,

그래도 '꺼진 불도 다시보고, 돌다리도 두들겨 건너는' 마음으로 항상 조심 또 조심하세요.

특히, 타지나가시면 물조심 건강조심하시구요.

프로필 이미지
2012.07.25 08:50:00 *.94.41.89

[단군일지]
● 일차/날짜 : 80일차 / 2012년 7월 25일
● 취침/기상시간 : AM 2:00 / AM 4:30
● 활동시간 : AM 4:30 ~ 6:30 + a
● 활동 내역: "인생이란 무엇인가"로 새벽열기"

● 만족도 : 2
● 몰입도 : 2

 

일이란게 한꺼번에 쏟아진다. 해외 통신 사업자 초빙해서 기술 미팅을 5일간 진행하고 있는데 주말 사우디 출장 준비와 진행하던 업무와 겹쳐서 사실 꼼짝하기 힘들다. 정신을 차리고 하나씩 풀어보지만 여간 어려운게 아니다. 사우디 출장이 8월3일까지이고 8월4일 시칠리아로 바로 떠난다. 아 일정이 이렇게 빡빡하게  돌아갈 줄은 꿈에도 몰랐다. 아침에 일어 나는 것만도 기적이다.

프로필 이미지
2012.07.25 13:06:34 *.91.142.58

무척 바쁜 일정을 소화해내구 계시는군요..

그럼, 우리의 등산 모임은 시칠리아 여행 이후 좀 선선해진 때로 잠정 연기하는 걸로!

 

무리한 일정 중에 건강 잘 챙기십시오!

프로필 이미지
2012.08.20 17:59:24 *.94.41.89

200일차 신청을 하고 입금을 하였다.

사고쳤다. 우짜노! 와그라노~~ 우얄라꼬@@옴마야^^

 

프로필 이미지
2012.08.21 09:58:55 *.91.142.58

Good job! Way to go~buddy  ^^

 

프로필 이미지
2012.08.23 04:23:45 *.70.144.140

무작정 떠난 변경연 연수 동행기 (이스탄불 로마 시칠리아 로마)

 

(1) 출발전

 

인연과 우연은 다른 것인가? 단군의 후예를 통해 변경연와 연을 맺고 이를 통해 우연히 시칠리아 여행을 신청하게 되는 것은 우연인가? 필연인가? 이런 만남들은 앞으로 어떤 세계를 열어 줄 것인가? 기대되는 여행 미지의 지역에 대한 갈망이 있다.

 

여행 신청 후 출발일만 기다리고 있는데 신청 인원 중 일부 취소가 있어서 3명의 자리가 빈다는 연락을 받았다. 우와 집사람과 아이랑 가면 좋겠다 싶어서 문자로 로이스님께 연락해 놓고 집사람과 상의해 봤다. 집사람은 한시간 후에 답을 준단다. 돌아온 답은 이번에는 혼자 놀다 오라고 한다. 집사람 보기에 내가 그렇게 놀아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는 가보다. 그래 가서 실컷 놀다 오마 나중에 후회하기 없기다.

 

여행이란 것이 뭘 알고 가면 그래도 좀 친숙하지 않을까? 그래 이탈리아 라고는 로마에서 비행기 경유하면서 하루 잠자본 것밖에 없는데 이참에 관련 책좀 읽어 보자. 인터넷 서점을 뒤져 몇권의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다. 우선 이탈리아에 대해 도시별로 정리되어 있는 일생에 한번은 이탈리아를 만나라를 통해 이탈리아라는 나라가 어떤 나라인지 약간은 맛을 봤다. 여러 도시/지역의 집합이고 독특한 생성 발전 과정을 거치 각자의 도시들은 지방색을 넘어 독립적인 문화를 간직한 나라나 민족처럼 비춰졌다. 우리나라 처럼 이쪽도 지방색이 장난이 아니겠는 걸 아무튼 이탈리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된다. 다음은 시칠리아에 대해 쓴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다큐멘터리 작가가 다시 찾은 시칠리아에 대해 기행문으로 써내려 갔다. 시칠리아라는 낯선 곳을 따뜻한 사람들이 사는 새로운 곳으로 나에게 소개해 줬다. 다음은 모파상의 시칠리아” 19세기의 시칠리아를 방문하게 해줬다. 마지막으로 신화의 섬 시칠리아를 통해 예술적 관점에서 시칠리아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대부의 섬 시칠리아 아 난 아직 대부를 다보지 못했네 언제가 보면 좋을 것 같다.

 

사전 모임과 느낌

 

7 28일 토요일 시칠리아 연수 사전모임이 있었다. 장소는 홍대입구역에 있는 반야라는 곳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평범한 음심적은 아닌 듯 아우라가 드리워진 이름이다. 마침 오늘 사우디 출장이 잡혀서 출장준비를 마치고 반야를 찾아 길을 나섰다. 마치면 바로 공항철도를 이용해서 인천 국제 공항에 갈 수 있으리라!

 

출장 회의자료 준비를 할 것이냐 사전 모임에 참석할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사전 모임에 가서 흠뻑 에너지를 받아서 출장을 가면 현지에서 잘 대응할 수 있을 것이고 후회가 없겠다는 생각에 모임 장소로 가기로 결정하였다.

 

홍대 입구역에서 반야를 찾는 것은 이 여행이 보통여행이 아니라 꼭꼭 숨어 있으니 잘 찾아와 보시오 하듯이 어려웠다. 우선 문자로 전달 받은 출구 번호가 잘못되어 근처를 약간 헤매다 건물 벽에 쓰여진 반야라는 글귀에 더운 날씨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입구로 향했다. 아차! 팔 물건 있으면 가져오라고 했는데 아무것도 가져온 것이 없네! 사실 고민을 해봤지만 책꽂이에 있는 책말고는 가져올 것이 마땅찮아서 그냥 빈손으로 온터였다. 가끔 선물 교환하거나 책 교환을 하게 되는 일이 있는데 요즘은 이도 부쩍 부담스럽다. 왜냐하면 읽은 책에 묻어 있는 감흥을 책을 줘버림으로써 잃어버리는 느낌이들기 때문이다. 가져간 물건이 없으니 어쩔 수 없다하고 주위를 살피고 문을 열고 들어선다.

 

벌써 대부분의 사람이 모여있고 신영길 이사께서 여행지를 조목 조목 설명하고 계시고 미리 마련된 빵이며 음료를 모인 분들이 나누어 먹고 있었다. 뭐랄까? 예상했던 것보다 연령대가 높다? 아이쿠 이거 잘못하다가는 노친내 단체관광버스에 쓸려다녀야 하는 건가? 불현듯 암담함이 스쳐갔다. 잠시뒤 여행을 총괄하는 로이스님이 말을 걸어왔다. 동희씨? 일단 그외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왠지 이름 한번 불러 줬을 뿐이데 모든 낯선감이 한꺼번에 사라지는 느낌이 었다. 방금 가졌던 생각들이 모두 사라지면서 뭔가 있을 것 같은 느낌이 온몸에서 달아 올랐다. 뭐지? 뭐지? 낯설면서 친숙한 느낌? 말하기 힘든 낯선감이다. 중간에 본 여행의 핵심인 구본형 선생이 들어오셨다. 오늘 처음 뵙는 하지만 10년을 넘께 그리던 분이시다. 키는 크지 않으나 다부진 몸을 가지신 것같다. 움직임도 다소 느리고 시선도 빠르게 움직이지 않는다. 이미 모든 것을 파악한 듯한 표정은 좌중의 모든 사람들을 압도하고 있다. 이런 포스는 어디서 오는 걸까? 궁금할 따름이다. 많은 책일 읽으시고 또 많은 책을 쓰시는 분이라 예상은 했지만 아직 그 깊이를 가늠할 바가 없다. 정작 내 깊이가 없으므로 견줄 것도 없다.

 

설명이 끝나고 가볍게 준비된 저녁을 준다. 앞에 서서 빨리 먹기 서먹해서 뒤늦게 줄을 섰더니 맛있어 보이는 것은 이미 바닥이다. 역시 먹는 것 앞에서는 체면은 사치다. 밥이랑 처음 보는 몇몇 국수 요리 (스파게티?)를 집어들고 빈자리를 살폈더니 한자리 빈다고 오라고 한다. 언제 봤다고 그냥 오라고 하는지? 이분들은 나름 열린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마침 앉은 자리는 나중에 알게되었지만 좌경숙 선생님 앞이다. 와인도 한두잔 하고 받아온 식사도 맛있게 아무생각 없이 먹었다. 아 사우디 출발 시간이 다가온다. 갑자기 당신에게 시칠리아 연수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던지고 나보고 말하라고 한다. 오마이 갓 준비안된 상황인데 처음 보는 사람들 앞에서 뭔 뚱딴지같은 질문을 주신단 말인가? 아 침착하자? 생각나는 것 뭐 없나? 맞다 얼마전 써두었던 물방울을 울거먹자. 내용을 외워서 말하기는 어렵고 느낌만 이야기 해보자.

 

인생은 물방울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떨어질 때만 온전히 그 모양을 유지할 수 있지요

짧은 인생이지만 이렇듯 움직일 때만 그 존재를 가질 수 있는 것 그것이 인생이라고 봅니다.”

 

낯선 모습과 긴장한 목소리 우라질 너무 거창했다. 분위기 싸하다. 아무튼 몇몇 분이 끄덕이며 받아 준다. 일단 넘어가자. 여긴 질문을 불쑥 불쑥할 수도 있는 분위기 구나! 시간이 다되었다. 이제 출장길에 올라야 할 시간이다. 로이스님에게 출장간다고 말하고 길을 나서는데 이런 경험 처음이다. 낯선 곳에 불쑥 들어가서 밥먹고 출장간다고 짐챙겨서 공항으로 떠나는 나는 정말 뭔가? 그래도 에너지를 좀 받은 것같다. 출장 길도 좀 가벼울려나~

 

일주일간의 사우디 출장을 마치고 83일 복귀하였다. 생각했던 바와 같이 에너지가 중요했다. 출발전 시칠리아 사전 모임을 통해 에너지를 받고 가서 그런지 출장지에서 자료 작성 및 미팅은 잘 마무리 되었다. 역시 사람은 에너지가 중요하다. 8 4일은 이제 기다리고 기다리던 시칠리아로 출발이다. 아침에 회사에 들러서 출장 결과를 보고하고 집으로 와서 풀었던 짐을 다시 싸서 출발한다. 들뜬다. 어떤 여행이될까?

프로필 이미지
2012.08.23 13:03:32 *.90.175.137

와~~ 재밌어요.!!!  이렇게 긴 글을 쉬지않고 읽기는 오랜만 ㅋㅋ

다음도 기대됩니당^^

프로필 이미지
2012.08.23 14:44:17 *.91.142.60

오~호 희동님!

 

오늘 새벽에 이런 장~~문을 남기셨군요 ^^

넘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제가 원래 visual 한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인데

희동이님의 친절하고 디테일한 묘사와 곳곳에 스며있는 세밀한 감정표현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처럼 선명하게 visualize 되는군요.

앞으로도 시작될 9박 10일의 여행기가 넘넘 기대되네요!

프로필 이미지
2012.08.24 04:13:29 *.70.146.41

첫째날 : 8 4 

 

공항에서의 밤 8 30분에 모두 만나기로 하였다. 우선 로이스님으로 부터 컵을 하나 선물 받았는데 시칠리아 가서 포도주 먹을 때 사용하면 좋다고 한다. 그리고 레몬님에게서 목에 걸쳐서 목을 시원하게 해주는 천으로 된 제품을 선물 받았다. 사전 모임 후 처음이라 뭐라 말붙이기가 어렵다. 우선 로이스님이 챙겨오신 라면등 먹을 거리 짐을 같이 옮겨 주기로 하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 짐들을 비행기에만 실어주면 끝나는 줄 알았다. 과자가 있는 큰 박스, 컵라면 박스, 햇반 등이 있는 박스 총 3개를 매일 버스에 넣었다 뺐다 하는 일이 이후로 계속되었다. 뭘 알고 덤벼야지! 난 그렇고 로이스님은 이걸 어떻게 들고 다니려고 짐을 꾸리셨는지 다소 의문이 들었다. Boarding pass를 받고 짐을 붙이고 일주일 전 사우디 출장 때 들어갔던 친숙한 검색대를 지나, 후다닥 입국 심사를 마치고 터키로 향하는 비행기는 건너편 터미널이라 작은 열차를 타고 이동했다. 출국 gate로 가기전에 라운지로 달려갔다. 같이 가신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아직 저녁을 제대로 못먹어서 배가 고픈 탓에 라운지로 올라가 5분만에 볶음밥이랑 컵라면을 긴급 흡입하고 gate로 달려 갔다. 잦은 출장으로 인해 공항에서 라운지를 이용하지 않으면 왠지 손해보는 느낌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특별한 일도 아니다.

 

1-1_인천국제공항.jpg

<사진 한젤리타>

 

탑승 시간이다. 비행기에서 신재동님, 소풍님이랑 같이 나란히 앉았다. 서로 알지 못해 그냥 서먹하게 눈감고 있다가 영화를 찾아 보았다. 마침 보고 싶었던 대부 시리즈가 있었다. 이야 딱 맞는 선택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 길로 그냥 대부 3편을 일부 장면들은 건너 뛰면서 시칠리아 주요 장면 위주로 내리 보았다. 시칠리아를 떠나 돈 콜리오네로 이름이 바뀐 사연이 특이하고, 알파치노가 시칠리아에 숨어 지내다 사랑을 하고 떠나게 되는 일, 나이 들어 다시 돌아와 시칠리아를 배경으로 말년의 풍경 극장에서의 딸의 죽음과 홀로 맞이하는 죽음. 그에게 가장 소중했던 가족을 지키기 위해 분주했던 그였지만 딸을 지키지 못했던 비극적 결말. 따뜻한 햇볕을 맞으며 정원의자에서 눈을 감으며 임종하는 가족도 없이 강아지만 옆에 둔 채 쓰러지는 모습에 인생 무상함을 느꼈다. 사이 사이 시칠리아 풍경이 나오는데 올리브 농장, 시골 마을 풍경, 기차역, 막시모 극장 등이다. 아 시칠리아에 가면 볼 수 있으려나? 비행기는 서서히 이스탄불에 도착하고 있었다.

 

둘째날 : 8 5일 (1/2)

 

새벽 5시경 비행기는 이스탄불 국제 공항에 도착하였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입국 심사다. 한국 사람은 그냥 통과다. 여행전 다녀온 사우디는 외국사람의 방문을 환영하는 분위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을 이슬람의 종주국이라 자존심이 세기도 하지만 돈도 많아 아쉬운게 없어서고 관광객들이 들어와서 사회에 혼란을 주는 것을 꺼린다고 한다. 따라서, 입국 심사가 매우 거만하고 자기들 마음대로다 줄을 세웠다가 바꿨다가 일을 하다가 심사대를 닫았다가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린 끝에 입국 심사를 완료한 경험에 비추면 터키는 완전 한국 입국 심사와 같은 수준이다. 여권을 주면 그냥 돌려 주는 수준이랄까? 아무튼 기분 좋은 입국이었다. 공항 로비로 나오자 신기한 표지판을 만났다. 이게 뭔고? 아무리 봐도 도무지 정체를 모르겠다. 신이사님에게 물어 보니 터키의 눈이란다. 행운을 준다고 한다. 나중에 보니 갖가지 보석을 이 문양을 이용해서 만들어 팔고 있었다. 터키의 눈으로 행운을 득템하고 대합실로 나왔다. 이스탄불 공항에는 나름 재미 있는 것들이 있었다. 인천 공항에도 없는 재활용 쓰레기통이 있고 미팅 포인트 메모지 붙이는 곳도 있고 마지막으로 동전을 넣으면 눌러서 이스탄불 방문 기념품으로 만들어 주는 기계도 있었다. 동전은 가지고 가도 환전이 안되니 나름 재미있는 구상이다. 하나 도입해서 인천 공항에 넣자고 하면 화폐 훼손한다고 난리 날것이다.

 

1-3_터키의 눈.JPG

<사진 이동희>

 

1-4 이스탄불 공항.jpg

<사진 이동희>

대합실로 나와 보니 우리 비행기는 이스탄불 공항에 한 시간 일찍 도착했단다. 비행기를 나름 타본 사람으로서 연착을 하면 했지 1시간 빨리 도착하는 일은 처음 격어 본다. 터키항공의 실력인지? 아니면 원래 예측을 잘못한 것인지? 아니면 연착을 고려하여 스케쥴을 그렇게 짜는 것인지? 아무튼, 1시간 빨리 온 것도 문제다. 버스도 없고, 여행 가이드도 없고, 연락하니 가이드가 깜짝 놀라고, 공항을 둘러보니 딱히 재미있는 것은 없고, 아직 제대로 인사하지 못해 대면 대면한 사람들 사이로 앉을 자리를 찾고 다른 사람 일상사를 훔쳐본 사람처럼 수줍다.

 

1-2_터키공항.jpg

<사진 한젤리타>

 

자 이제 새벽 6시부터 시작하는 터키 이스탄불 하루 여행이 시작된다. 기다리던 버스를 타고 처음 도착지인 Calata 다리로 이동하였다. 이동하는 내내 바닷가를 낀 해안 도로를 드라이브 하는데 햇빛이 노랗게 이스탄불 새벽을 밝히고 있었다. 라마단 기간이라 도로 옆 공원에는 이슬람인 들이 밤새 먹고 놀다간 흔적과 때때로 아직도 누워 잠자는 사람들이 보였다. 난 라마단이 어떤 것인지 사우디에서 절실히 실감했으므로 그들을 이해한다. 해 뜬 후에 아무것도 못먹는 특이한 종교 의식이다.

 

버스는 일출로 황금빛으로 물든 Calata 다리 중간에 우리들을 내려 줬다. 이 새벽에 왠 낚시꾼들이 이렇게 많은가?

 

1-6 Calata 다리.jpg

<사진 이동희>

멀리 보이는 아침 햇볕을 기억하며, 새벽부터 모여서 멍 때리고 있는 젊은 이들도 군데 군데 서성이고 있다. 정말 고기가 잡힐까? 고기 밥을 쓰는 먹잇감을 보니 전문 낚시꾼들인 것 같은 데 잡은 물고기는 못 봤다. 한참을 아침 일출을 구경하고 있는데 사람들이 모두 다리 한쪽의 모스크가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첫 날부터 낙오하면 재미 없잖아! 후다닥 뛰어서 뒤를 쫒아 갔다.

 

모스크가 있는 쪽은 지하도를 지나 잠시 걸어 가야 했다. 모스크 앞에 다다르자 와 비둘기를 기르는 것인지는 몰라도 마당이 모두 비둘기 들이다. 써니 누님이 후다닥 비둘기들 사이로 달려들자 이넘들이 난리를 피우며 날아 오르기 시작했다. 경치 좋다만 먼지와 비둘기 거시기 냄새때문에 후다닥 물러서고 말았다. 그림과 현실은 늘 차이가 있다.

 

1-7 비둘기.jpg

<사진 이동희>

 

비둘기때를 피해 골목으로 들어가니 작은 동물들과 화초를 팔고 있었다. 물론 새벽에 손님은 없고 문을 막 열고 있었다. 모스크 뒷편을 휙 돌아 사람들을 따라가는데 한 곳으로 사람들의 발길이 수렴 되고 있었다. 뭔가 냄새가 난다. 후다닥 달려가 보니 역시, 배고픈 자들이 찾아 다니는 오래된 빵집이었다. 윈도우 앞에는 작은 2인용 탁자들이 놓여 있고 몇 커플이 빵이랑 차로 아침을 먹으면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1-5 Calata 다리 빵집.jpg

<사진 이동희, 한젤리타, 세린>

 

빵집으로 들어가니 난리도 아니다. 아마 빵집 주인은 새벽에 벼락부자되는 느낌이었을 것이다. 아니면 늘쌍 이 시간에 관광객을 노리고 문을 일찍 여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 팀으로 좁은 가게 안은 바글바글하다. 만두맛이 나는 빵은 아침 식사로 최고였다. 물론 난 얻어 먹었다. 늦게 들어가는 바람에 따로 살 필요가 없었다는 변명을 약간 해 볼뿐이다. 특이한 것은 터어키 과자인데 젤리 같은 것으로 콩이랑 피스타치오 등을 싸말아서 작게 썰어 먹는 것같았다. 하나 맛을 보니 너무 달지 않아 딱 좋았다. 작은 걸로 두박스 사서 넣어 놓고 주위를 살피러 나와 보니 구본형 선생님과 재용씨가 바깥 탁자에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와 연구원은 이렇게 아무 곳에서나 대작이 가능하구나! 나도 연구원 해볼까? 사실 구본형 연구소에서 첫 연구원을 뽑을 때 지원서를 쓰러고 마음만 먹고 정작 지원하지 못했던 아쉬운 시간이 있었는데 그 때 지원하고 합격했었다면 아마도 난 창립 맴버의 지위를 갖고 이 자리에 있지 않았을까?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은데! 잠깐 엉뚱한 생각을 접고 돌아갈 시간이 다되어 다시 다리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1-8 다리로 돌아오면서.jpg

 <사진 이동희>

 

나도 사진 찍히고 싶은데 찍어달라고 할 사람이 없네. 아직 서먹하여 찍히는 사람도 찍는 사람도 약간 어색하다. 저사람이 왜 자꾸 사진을 찍을까? 그러게요 나중에 사진 나오면 좋으면서!

 1-9 다리로 돌아오면서2.jpg

<사진 이동희>

 

버스에 올라타니 신이사님께서 선택을 하라고 하신다. 블루모스크와 소피아성당을 이미 방문해본 사람들이 있으니 이 분들은 배를 타고 유람을 하는 코스를 즐길 것이라고 한다. 난 블루 모스크와 소피아 성당을 못봤으니 배타고 유람하기는 글렀다. 아쉽게도 구본형 선생은 배를 타러 가신단다. 나중에 점심 먹기전에 이곳에서 다시 합류할 예정이란다. , 이제 이스탄불 여행의 블루칩인 블루 모스크와 소피아 성당으로 출발이다. 그거 아나? 사진기를 연신 눌러 대었지만 건진 사진들이 많지 않다는 것! 사진도 많이 찍어봐야 느는 것이 맞는 것같다. 계속 눌러 눌러!!

 

 

프로필 이미지
2012.08.24 06:17:32 *.35.252.86

희동이님!

 

멋진 시칠리아 여행기 1탄 넘 즐겁게 잘 감상했습니다 ~ 그야말로 '즐감' 그 자체네요 d^^b

터키에 한번도 가 본적이 없는 저도 마치 터키 공항에 도착하여 Calata 다리를 거쳐

빵집까기 들러본 것 처럼 넘 친절하고 세밀한 묘사에 감사드려용!

 

가장 마음에 와닿는 문장은 "그림과 현실은 늘 차이가 있다"는 것과

"연구원 지원해볼까" 입니다.  같이 9기 연구원 지원해보아요~ㅋ

 

사진들도 넘넘 멋져요~ 지금까지의 사진도 넘넘 멋진데 "많이 찍으면 는다"니

대체 여행 후반부엔 얼마나 더 멋진 작품들이 나올지 벌써부터 기대됩니다.

 

앞으로도 2탄, 3탄 기대할게요!

 

100일차 완주파티 이후엔 좀 느슨해져서 아침 기상도 또 기상이후의 아침 활동도...

매우 저조했는데,  이젠 아침에 희동이님의 여행기를 읽는 재미가 활력소가 되어줄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꾸벅

참! 그러고보니 벙개는 내일이군요 ㅋ

내일 뵙겠습니다~~TGIF! 

프로필 이미지
2012.08.24 12:44:38 *.94.41.89

귀하신 독자가 있으니 쓰지, 안그러면 손놓을 뻔했습니다.

읽어 주시니 감사할 따름이죠^^

프로필 이미지
2012.08.25 00:05:48 *.70.146.41

둘째날 : 8 5일 (2/2)

 

1-10 블루 모스크와 소피아 성당.jpg

<사진 이동희>

 

블루 모스크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가 안되어서다. 아직 입장이 안되니 밖에서 기다릴 수 밖에 없다. 가이드는 이때다 싶은지 역사에서부터 이곳 저곳의 내력을 줄줄줄 쉼없이 을퍼댄다. 그거 아나? 들어도 귀에 잘 안들어 온다는 것! 왜냐하면 시칠리아만 공부하고 이스탄불은 공부를 하고 오지 않아 모두 생소한 얘기라 귀에 팍팍 박히지 않더라는 것! 역시, 여행전 사전학습은 필수 코스다. 여행을 즐기려면 공부부터 하시오. 이렇게 거의 30분의 강의를 듣고 지쳐 벤치에 걸터 앉아 블루모스크 입장 전까지 들은 얘기를 기억해 보았다. 터키 국기를 만들 때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들과 별을 국기에 넣으려고 했는데 전쟁 때 많은 젊은이 죽음을 기리기 위해 붉은 색의 터키 국기가 만들어 졌다고 한다. 그래서 터키인들은 자신들의 국기를 대단히 소중하게 생각한단다. 아 반성 반성 나도 태극기 사랑해야지.

 

블루 모스크 개장으로 줄서기 중 소풍님과 대화, 중학교에 재직 중인데 남학생이 수업 중 굳은 장난을 친 모양이다. 학교 생활에 대한 회의가 많은 것 같고 문제 해결이 안되는 것에 대해 답답해 하고 학교 생활을 그만 둘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단다. 여행이 끝나면 결정을 할 것이라고~. 나는 집사람과 사이에 있었던 몇 년간 스쿠버 다이빙 사연을 들려 주었다. 나이 들어서 특히 여성 입장에서 사회적으로 독립하기 어려운 면과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밀고 나가서 돈을 벌 수 있는 수준까지 가는 과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실 집사람이 스쿠버 다이빙 강사인데 몇 년 전에는 꿈도 꾸지 않았던 일이다. 글쎄 감흥이 있는지? 나만 떠들었는지? 처음 대화로는 좀 깊이 있는 이야기인데 첫 대화치고는 좀 엉뚱한 면도 있어 보인다. 여기 여행에 참여한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쉽게 하는 것이 특징이다. 덩달아 나도 내 얘기를 그냥 막 꺼내버리게 된다. 실수나 하지 않게 생각 좀 하고 이야기 하자.

 

1-11 블루 모스크.jpg

<사진 세린>

 

모스크를 들어갈 때는 민소매와 짧은 반바지는 허락되지 않았다. 우리는 파란 치마 또는 스카프를 두르고 모스크 내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모스크 내에는 사람들이 많이 들어차 있어서 복잡하였고 다소 산만하였다. 뭐랄까? 종교 시설로서 엄숙함이랄까? 영혼을 부르는 아우라가 좀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높은 천장의 돔을 네 개의 기둥이 떠받히고 있는 내부 구조는 넓고 웅장하고 하지만 이슬람교 특성상 사람이 동물의 우상을 만들지 않는 탓에 꽃무늬를 비롯하여 다양한 무늬로 장식한 타일들로 둘러싸여 있는 것이 다소 밋밋한 느낌을 낳았다. 황금으로 칠한  곳은 접근할 수 없게 멀리 가이드라인을 둘러 놓아서 가까이 가보지는 못하였다. 아쉬운 점 중에 하나는 바닥에 카페트를 깔아 놓았는데 물을 뿌렸는지? 공항 입국 시 밟는 구제역 방제 카페트처럼 축축해서 양말신고 걸어도 뭔가 느낌은 좋지 못했다. 차라리 타일 바닥이 나을 것 같다.

 

블루 모스크는 소피아 성당을 능가하려고 만들었다는데 안보다는 밖이 훌륭했다. 가운데 문은 신자들만 들어오는 곳이라는데 막상 들어와 보니 중국 관광객들이 단체로 들어온다. 뭐야! 특별 대우인가? 아니면 이슬람 신자들인가? 어딜 가나 중국사람들은 유별나다. 들어 올 때 두른 파란 천이 특이해서 사진을 찍어 달라고 부탁했는데 역시나 흔들려서 사진은 못쓰겠다. 큰 감흥이 없어 대략 둘러보고 나와서 사람들을 기다렸다. 단체 여행에서 모였다 헤어졌다가 반복되니 모이는 시간이 꽤 길다. 역시 나라씨가 늦었다. 이 사람은 여러 가지에 호기심이 많은 것 같다.

 

소피아 성당을 들어가기 전 분수대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나도 찍고 많은 사람들 사진도 찍었다. 역시, 블루 모스크는 햇볕을 받은 모습이 내부 보다는 백배는 멋있다. 반면 아직 들어가보지 못한 소피아 성당은 뭐랄까 여자 같은 느낌이 들고 이쁘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들어가 보면 대단히 감동적이라고 하는데 기대가 크다. 입구에서 가이드가 미리 사놓은 표로 단체 입장 선을 따라 무선 가이드 기기를 받아서 입장했다. 와 금이 막 벽하고 천장에 박혀 있다. 소피아 성당은 콘스탄티노플 사람들에 의해 손수 지어졌다고 하였다. 많은 정성이 깃들여 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1-11 소피아 성당 내부.jpg

<사진 세린, 이동희>

 

이슬람에게 넘겨진 후 건물이 너무 아름다워 부숴지는 것을 피했으나 이슬람 사원으로 쓰이기 위해 벽 위에 덧칠되었고 이것이 다시 발견되어 벗기니 황금 모자이크가 발견되었단다. 블루모스크를 건축가가 지어서 내부에 기둥이 있는 반면에 소피아 성당은 수학자와 기하학자들이 건물을 지어 내부 돔에 큰 기둥 없이 지었단다. 돔으로 된 건물은 공간이 하나로 되어 있고 이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었다. 사실 이층이지 4~5층 정도의 높이다. 내부의 공간은 돔을 중심으로 하나로 통일감을 줄 수 있도록 설계되었고 예배를 드리면 가히 그 느낌이 대단했을 것이다. 소피아 성당은 현재 모스크로도 성당으로도 사용하기 어려운 처지라 박물관으로만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정말 잘 보전되어 있으니 그 자체로 경이롭다.

 

사람들은 저마다 사진을 찍고 가이드의 설명을 듣느라 분주하다. 하지만 설명이 좀 길었다. 그리고 장거리 비행에서 오는 피로감이 있는 듯 모두들 지쳐 있었다. 이층으로 올라가서는 전체를 보고 이내 내려와서 집합장소에서 기다렸다. 기념품 점에서 딸에게 줄 이쁜 지우개를 두 개 사고 물을 사서 마시며 기다렸다. 아 드디어 내가 이스탄불에 오면 봐야할 두 곳을 봤구나. 사람들과 같이 버스를 기다렸다 타고 다리로 이동했다. 배를 타러 갔던 분들은 첫배를 못타고 기다렸다가 탔다고 한다. 몇몇 분들은 배타고 주무셨다는 얘기도 있는데 아마 난 100% 잤을 것이다.

 

점심식사 시간이다. Calata 다리에서 모인 우리는 가까운 터키 식당으로 이동하였다. 여행 와서 첫 식사다. 어떤 음식이 나올까? 케밥, 셀러드, 빵이 나왔다. 식당은 일본 사람과 한국 사람으로 꽉 차서 꼭대기 층에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무지 더운 날 에어컨은 역시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로이스님 앞에 앉아 빵이랑 케밥이랑 무지 무지 맛있게 먹었다. 사진으로 보면 그 맛이 달아날 정도로 단촐한데 역시 사진과 현실은 다를 수 있다는 것. 케밥은 구은 고기라는 메뉴를 통칭하는 것인데 나중에 여러 가지 케밥이  한 접시씩 더 나와 다시 빵을 청해 더 먹었다는 아 정말 배가 고팠걸랑요. 메뉴는 단순했지만 훌륭한 한끼의 점심이었다. 이슬람 국가에서 라마단 기간 낮에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인데 터키는 이 부분에서는 자유로운 면이 있다고 한다. 여행 전 다녀온 사우디는 이스람 종주 국가로 라마단 기간에서는 낮에 상점이 모두 문을 닫는다. 출장 중 점심을 컵라면으로 때우는 일은 잘 없는데 그거라도 없었으면 아마 여행도 못 오고 사우디에서 사망했을 것이다. 사실 라마단 기간에 침도 안삼키는데 이는 못먹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마음으로 그들과 같은 생을 살고 있음을 깨달으라는 뜻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밤에서 새벽까지 상다리 부러지게 먹는 것을 보면 그것도 좀 의심이 가는 바가 있다.

1-20 이스탄불 점심.jpg

<사진 세린>

 

자 이제 로마로 떠난다. 하루에 두 개의 도시를 여행하는 것, 그것도 두 개의 나라에 있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도시들로. 이런 여행은 돈 주고도 못 갈 것 같다. 정말 괜찮은 일정임에 틀림없다. 로마행 비행기는 빈자리가 있어 누어서 갈 수 있을 정도였다. 결국 비행기에서 누워서 코골면서 한숨 잤다. 역시, 피곤하기는 하다.

 

로마 공항에 내렸다. 모든 것이 새롭다. 아 이곳이 로마구나! 도착하자 마자 들른 곳은 금강산이라는 한식당이다. 로마 진입하는 도로 옆이라 관광객 입국/출국할 때 들르기 좋은 위치인 것같다. 오랜 출장 경험으로 물론 맛은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한식이라는 것이 나를 당길 뿐이다. 된장찌개와 반찬들이 나왔다. 된장찌개는 된장믹스에 감자국을 끓였다고 할까? 아무튼 먹자 먹자. 배가 좀 허전해서 밥 한공기를 더 시킬려고 했는데 길수님께서 한 두숫갈 먹은 거라면서 먹던 밥 한 그릇을 주신다. 앗 이런 난감한 상황이 있나? 남이 먹던 밥을 내가 먹는 일은 집사람이랑 딸 밖에 없는데 어쩌나? 먹던 부분을 걷어내고 먹어야 하나? 분위기는 그렇지 않은데. 어쩔 수 없다. 생각을 바꿔야지 이 밥은 새로 시켜서 나온 하얀 쌀로 지은 이밥이다라고 맛있게 먹자. 그런데 정말 맛있었다. 길수님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복 받을 실 겁니다.

 

밥을 먹고 일단 호텔로 출발했다. 그러니까? 이번 여행의 첫 호텔인 셈이다. Domidea라는 이름이다. 어떻게 읽어줄까? 돔아이디어? 도미디어? 아무튼 비즈니스 호텔인데 건물을 개조해서 호텔로 만든 듯하였고 방이 깔금해서 좋았다. 무엇보다 에어컨이 제대로 동작하고 있었다. 모기는 두 마리 잡았지만 말이다. 12시간의 비행과 두 나라를 거쳐온 일정으로 모두들 지쳐 있었다. 이런 와중에 변경연 연구원 8기 분들과 구본형 선생님은 수업을 한다고 한다. 마침 하영목 대표님과 한 방을 쓰게 되었는데 웨버라는 위치이고 알고 보니 반장쯤 되는 것 같다. 사실 내가 아는 코칭 전문가 하영목 대표인줄 알았는데 아는 척했다가 실례를 했다. 하 대표님도 그런 말을 많이 듣는다고 하신다. Naver 검색 순위를 빨리 올리셔야 할텐데 그럴려면 베스트셀러 몇 권 쓰시면 될 것 같은데 회사 대표하시면서 글쓰시기는 무척 어려울 듯 보인다. 호텔로 들어오기전 나라씨가 몇몇분과 같이 로마 시내 놀러가자는 말을 지나가며 들었는데 난 아는 사람도 없고, 그래서 마음 맞춰서 놀러가는데 끼이기도 그렇고 해서 일찍 잠을 청하기로 했다. 흠냐 한 숨자고 나니 하영목 대표님이 들어 오신다. 피곤하신지 곧 주무신다. 아 나도 다시 잠을 청하였다.

 

띠리리리 띠리리리. 역시, 역사는 밤에 이루어 진다. 나라씨의 전화가 왔다. 써니 누님이랑 누구랑 같이 로마 시내 구경갈 건데 같이 가자고 한다. 오 이건 초대장이다. 이세계에서 나에게 온 첫 초대장. 가자는 안 갈 수 있나? 현관에서 나가보니 아무도 없다. 10분을 기다려도 아무도 없다. 잘못 들었나? 조금 있으니 나라씨랑 써니 누님께서 오셨다. 써니 누님께서는 계속 소화제인지 급체약인지 먹었었는데 역시 복통으로 로마 밤 구경에 동행하지 못하겠다고 하신다. 오잉, 나라씨랑 나밖에 없다는 현실을 직시하며 어떻게 할지를 궁리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알지도 못하는 젊은 처자와 로마에서 야심한 밤에 놀러를 나간다? 이건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정이다. 유부남으로서 마누라와 딸이 눈앞을 스친다. 집사람이 했던 말이 생각났다. 혼자 잘 놀다 오시라. 별일 있겠어, 이왕 나왔는데 다시 들어가자고 하기도 그렇고 가자고 하고 택시에 올랐다.

 

처음에는 호텔 카운터에서 알려준 곳으로 향하였는데 택시 기사에게 물어 목적지를 수정하였다. 나라씨는 술과 춤을 원하는 것 같은 눈치다. , 나이트 클럽 이런데를 말하는데 난 나이트 가본지 20년은 족히 된 것 같다. 아무튼 택시기사가 알려준 Campo de flori라는 곳으로 갔다. 특별히 나이트클럽이 있을 만한 분위기는 아니었다. 이 집 저 집 기웃거리다 광장이 나왔다. 동상이 하나 중간에 있고 주위를 와인바들이 둘러서서 손님을 받고 있었다. 12시 가까이 되는 시간에 사람들이 북적였다. 물어보니 2시까지 영업을 하신단다. 일단 나이트는 접고 와인 한잔하고 들어가기로 했다. 와인바중 똘망똘망 재미있게 우리에게 점원이 있는 집으로 들어가 야외 자리에 앉아 와인과 셀러드를 시켰다. 방과 같이 먹는 셀러드는 맛이 좋았다. 와인 또한 맛이 좋았다. 가격은 28유로 정도로 그 집에서 비싼 편이었다. 뭐야 15유로에서 대략 30유로선의 와인이 판매되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먹으면 아마 10만원은 줘야 할 것 같은 맛이다. 이 야심한 밤에 내가 로마에서 뭐하고 있나?

 

나라씨는 여러 가지 이력과 사연이 많았다. 이야기로 풀면 참 할 것이 많아 보였다. 슬픈 가족사를 갖고 있고 그걸 이겨내기 위해 많은 시간을 방황해야 했고 어쩌면 삶의 태도가 이러한 과거에 의해 많이 결정된 면이 있어 보인다. 난 좋은 팀장이 되어 보겠다는 얘기와 지난 얘기들 처음 혼자 여행하게 된 것이며 기대를 이야기 했다. 시간은 2시가 다되어서 와인 바를 나와 택시를 찾았다. 야심한 밤거리인데 사람들은 자유로이 다녔고 서로 별로 부담을 느끼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출장 중 밤에는 늘 조심해서 다녀야 하는데 로마 거리는 그런 면에서 생소했다. 술이 약간 취한 청년들이 지나가면서 큰소리를 질러대고 있는데 마침 그 앞을 지나가야 했다. 어쩔까? 피해갈까? 다른 나라면 다소 조심해야 할 상황이다. 살짝 눈치를 보니 이넘들 자기 기분에 서로 소리치며 놀고 있는 것 같다. 그냥 통과다 나라씨를 데리고 그냥 지나치는데 별일이 없다. 일단 시간도 늦었고 호텔로 돌아가야 할 것 같아 택시를 찾아 탔다. 택시는 콜로세움을 지나 로마 거리를 통과해서 호텔로 우리를 데려다 주었다. 로마 거리는 야간 조명으로 아름다웠다. 물론 나라씨는 택시에서 골아 떨어졌다. 흠찟, 내릴 때는 깨어나 줘야 하는데. 와인 두 병이 좀 많았나? 다행이 호텔에 도착해서 잘 일어 났고, 로비에서 헤어져서 방으로 돌아왔다. 첫 번째 밤을 와인 두 병으로 채웠다. 괜찮은 하루였다.  

 

Camp de Flori.jpg

<사진 이동희>

 

 

 

프로필 이미지
2012.08.25 13:29:44 *.70.146.41

로마

셋째날 : 8 6

 

오늘은 바티칸 박물관과 성 베드로 성당을 둘러보고 나폴리를 통해 시칠리아로 들어가는 페리를 탈 예정이다. 밤 늦게까지 마셨던 와인 탓에 아침을 먹자시던 웨버님의 말씀을 그냥 삼켜버렸다. 아 머리야 다시 잠을 잘 수도 없다. 곧 출발이다. 이런 일정이라면 앞으로 밤에 술을 적당히 마셔야겠다. 겨우 추스려서 정리하고 아침을 먹으러 잠시 들렀다. 다른 분 들은 이미 드신 것 같았다. 어라, 벌써 소문이 다 났네! 어제 밤에 늦게까지 로마에서 와인 먹고 들어온 것이. 이 일로 난 일단 잘 노는 남자가 되어 버렸다. , 평소 이미지는 완전 다른데. 특이한 것은 식당이 전쟁터 같아 보인다. 들리는 말로는 식당 종업원 들이 당황하고 있다는 우리 팀이 아침 식단을 거의 다 먹다시피 한 것이다. 대충들 드시지 우리 팀이 지나간 테이블은 이것저것 수북이 쌓여 있다. 그 틈에 끼여서 콘프로스트를 한 그릇 먹고 나왔다. 출발이다. 짐을 챙겨서 버스에 오르려는데 모두들 어제 이야기를 한마디씩 하신다. 이런, 이제 팀에서 존재감이 생긴 것인가? 나라씨 덕분에 사람들과 할 얘기도 생기고 서먹 서먹한 분위기도 좀 걷혔다.

 

버스는 간다. 이번 여행의 철칙은 버스는 간다이다. 일정에 맞춰 움직여야 하니까. 제시간에 버스는 늘 떠난다. 소풍님이 버스에 옷걸이와 옷을 들고 탄다. 미쳐 짐을 다 못 꾸렸나 보군. 내 앞자리인 관계로 쭉 지켜 보건데 옷을 옷걸이로 선반에 걸치고 옷을 늘어뜨린다. 뭔가? 지금 버스를 세탁소로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빨래한 옷이 아직 마르지 않아 버스 안에서 말려야 한단다. 덕분에 뒷자리에 앉은 나는 앞을 파란 원피스와 하얀 얇은 니트 카디건 커튼으로 가린 채 출발하게 되었다. 어쩌면 매일 이렇게 가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2-1바티칸 박물관.jpg

<사진 이동희>

 

우리가 도착한 곳은 바티칸 박물관이다. 도착했는데 높은 벽이 있고 사람들이 벽을 둘러 줄을 서고 있었다. 곧 개장할 시간이고 월요일이라 사람이 많을 것이라는 신이사님 말을 듣고 줄을 서본다. 와 언제 줄어들지? 아직 뭐라 말할 주제가 없는 상황이라 카메라만 들고 연신 찍어 된다. 벽도 찍고, 줄선 사람들도 찍고, 사실 지금 사진 찍는 것은 나만의 대화인지도 모른다. 특별히 주제가 없는 상황에서 당신을 찍겠습니다하는 것은 말을 거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럼 사람들은 포즈를 취해준다. “네 이야기 합시다라고 말은 하지 않지만 그 순간에 우리는 벌써 한 꼭지 대화를 나눈 것이다. 이분 저분 사진을 찍으면서 그렇게 대화를 넓혀가는 중에 입구에 도착했다.

 

2-2 바티칸 박물관2.jpg

<사진 이동희>

 

입구는 새로운 행성으로 가는 은하철도 999를 타기라도 하는 듯 게이트 통과하였다. 역 대합실같이 입장 티켓을 구입하려는 사람들이 붐비고 난 역시 카메라로 대화를 시도해 본다. 로이스님 찍어 드릴께요. 로이스님 딸인 이쁜 은별씨와 나란히 앉은 사진을 찍어 본다. 구본형 선생님과 연구원들을 사진에 담아 보고 이렇게 몇몇 분의 사진을 찍다 보니 입장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다 같이 무리를 지어 은하철도 999에 탑승하였다. 역시나 바티칸 박물관은 새로운 세계로 안내해 주었다. 일단 숫자로 압도하는 다양한 고대 조각상들, 황금색으로 장식된 실내, 그리고,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말로만 듣던 많은 유물들을 둘러보고 나오는데 드는 느낌은 뭔가 바보가 된 듯하다는 것. 아는 만큼 보인다고 정작 내가 본 것은 무엇인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바티칸 박물관은 사전에 공부좀 하고 다시 찾아야 그 내용의 면면을 보고 감동할 수 있을 것 같다. 다시 오자.

 

2-3 바티칸 박물관 입구.jpg

<사진 이동희>

 

천지창조 그림이 있는 장소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하지만 짬짬이 찍는 사람을 통제하기라 어려운가 보다. 하지만 대놓고 찍는 것은 감시하는 사람을 무시하는 처사인지 제재를 가한다. 웨버님이 아이패드를 들어 열심히 사진을 찍으니 관리인이 우리팀 가이드를 부른다. 모두 나가란다. , 쫓겨났다. 하지만 다들 사진을 한장씩 건졌다는 듯 아쉬움 없이 자를 떴다.

 

2-4 바티칸 내부.jpg

<사진 이동희>

 

은하철도 999는 천지창조 그림을 끝으로 바티칸 박물관을 나와 성베드로 성당으로 향했다. 규모와 관리 상태로 봐서 소피아 성당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역시 사람이 만든 것은 사람이 계속 사용해야 그 빛이 유지 되는 것인가? 아름답고 웅장한 성 소피아 성당은 이슬람 손에 넘어가 제대로 사용되지 않으니 그 느낌이 퇴색되었는데 성 베드로 성당은 그와는 달랐다. 난 어느덧 예배 장소에 두 손을 모은 채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었다. 저희 사업 성공하게 해주세요. 사실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새로 추진하던 사업 계약이 체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역시 기도가 닿았나 보다. 아무튼 기도를 마치고 성당의 웅장함에 감동하여 둘러보며 사진을 찍던 중 다시 버스 떠날 시간이 되었다. 이제 은하철도 999에서 하차할 시간이다. 참고로, 바티칸 박물관 관람은 일단 인파에 떠밀려 관람하게 된다. 가만히 서서 뭔가를 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다음에 개인적으로 올 때는 2일 정도를 할애해서 천천히 감상해 보리라. 마침 신이사님이 나이 좀 들면 여유 있는 일정으로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실 생각이라 신다. 잘되었다.

 

2-5 바티칸 내부2.jpg

<사진 이동희>

 

성베드로 성당 앞 광장에서 모여서 출출한 배를 달래줄 점심 장소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였다. 점심은 피자, 파스타, 셀러드를 먹고 구본형 선생님께서 와인 사주셨다. 나라씨가 옆자리에 앉아서 피자와 파스타를 연신 흡입하고 있다. 나도 질세라 급히 먹고 와인으로 마무리 했다. 이 식당의 주인에 대한 이야기가 재미있다. 남자는 이탈리아 사람이고 부인은 한국 분이란다. 그런데 이 이탈리아 식당 사장이 원래는 날 건달이었는데 한국 부인을 만나서 쉽게 말해 개과천선해서 식당 운영으로 돈을 많이 버셨단다. 어쩐지 들어오는데 안녕하세요 연신 들썩거리며 인사를 해대더라니 아마 한국 사람이 고마운 것이겠지. 아무튼, 한국 여자 자랑도 듣고 성공한 이야기도 들으니 마음이 뿌듯한 것이 점심 맛이 한결 더 났다. 이번 여행에서 첫 이탈리아 현지 음식인데 좀 특이한 것은 한국에서처럼 파마산 치즈를 달라고 해서 받기는 했는데 현지 인들은 즐겨 먹지는 않는 것같았다. , 대부분 셀러드에 올리브유 말고는 치즈나 올리브 등을 얹어 먹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 그런 것은 가격이 좀더 비싼가 보다. 아무튼 맛있는 점심을 먹고 이제 나폴리로 페리를 타기 위해 출발하였다.

 

2-6 로마의 점심.jpg

<사진 이동희, 세린>

 

나폴리 왠지 이름만 들어도 이탈리아가 연상되는 익숙한 지명이다. 피자도 있고 나폴리 근처의 카프리도 그렇고 설래이는 마음으로 나폴리로 향하는데 중간에 고속도로 휴게소?에 잠시 정차하였다. 이탈리아는 법적으로 2시간 이상 연속해서 운전을 하면 안된다고 한다. 참 좋은 점인 것같다. 모든 노동은 일단 인간다운 대우를 전제로 해야 한다. 휴게소에서 50센트를 내고 화장실에서 수건을 적셔서 목에 걸고 나오는데 재용씨가 진열장 물건을 와르르 무너뜨린다. 이크, 조심해야지 다행이 부서진 것은 없다. 이탈리에서는 에스프레소를 마셔야 한단다. 에스프레소는 설탕을 타서 마시는데 완전히 저어 녹이지 않고 몇 번 저어서 밑에 설탕이 남게 하고 마시면 처음은 진한 에스프레소 맛으로 커피의 풍미를 느끼고 마지막에 단맛이 많이 남아 달콤해진다는 것이다. 이런 맛은 입안에 한 시간 이상 간다는데 키스전에 마시면 좋다고 한다. 한국에서의 에스프레소는 어찌나 쓰던지 너무 비교된다. 다시 버스는 나폴리로 향한다. 나폴리에서의 관광은 돌아오는 날 하기로 하고 바로 부두로 가서 페리 탑승을 기다렸다. 처음 타보는 페리는 어떤 느낌일까?

 

2-7 나폴리 페리호.JPG

 <사진 이동희, 세린>

 

페리 탑승 시간이 되었다. 모두들 짐을 들고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랐다. 방 배정이 되고 방으로 일단 이동하였다. 페리호에서는 신이사님과 같은 방이다. 방은 생각보다 작고 보잘 것 없었다. 화려한 페리호를 상상해서 일까? 신이사님께 물어보았다. 창밖으로 보이는 저 호화 유람선의 방도 이러냐고. 신이사님 말로는 특실이 아닌 이상 배에 있는 방은 크기가 작고 비슷하다는 것이다. 그렇군, 이층 침대를 접어 놓고 짐을 풀지는 않고 필요한 것만 꺼내들었다. 오늘 밤은 페리에서 보내고 아침에 드디어 시칠리아의 펠레르모 항에 도착하게 된다.

 

2-8 나폴리 페리호2.jpg

<사진 승욱, 인하>

짐을 챙기고 있으니 나라씨가 짐들어 줘서 고맙다고 먹을 것을 준단다. 신이사님과 나는 나라씨 방으로 가서 가져온 음식 중 몇 개를 받아 왔다. 그 중 두 개는 한국까지 나와 동행했다. 나는 당장 먹을 것을 주는 줄 알았다고 너스래를 떨고 방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나라씨가 콩두씨 전기포트로 간단하게 우동을 끊여왔다. 우와 감동이다. 신이사님과 금강산 식당에서 싸온 조그만 12조각 김밥을 먹은 뒤 출출하던 차였는데 짐 들어준 보람이 있다. 우동을 먹고 나서 뭐할까 생각하다 일단 나폴리 항을 떠나니 항구나 구경하자고 선미로 나가 보았다. 몇몇 분들이 구경을 나와 바람을 쐬고 있고 몇몇 분은 바에 자리를 잡고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나는 한자리 차지하고 앉아 맥주를 마시기 시작했다. 한참을 맥주를 마시고 배 꼭대기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거기서는 8기 연구원들이 구본형 선생님과 같이 사랑 수업을 마치고 별보면 누워있었다. 이걸 일상적인 것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특이한 것으로 봐야 할지? 처음 보는 나로서는 그저 신기할 따름이었다. 마신 맥주로 기분이 좋아진데다가 달도 밝아 기분이 매우 좋았다. 8기 분들 대부분은 다시 각자의 방으로 자러 가고 인하씨와 나라씨와 같이 바다를 보며 노래 부르고 놀며 지중해를 즐겼다. 나중에는 이탈리아 청년과 같이 어울려 이야기 하고 나라씨 노래 듣고 새벽이 되어서 돌아와 잠을 청하였다. 이렇게 두 번째 밤이 지나갔다. 새벽까지 노는 바람에 결국 잠은 얼마 못 잤다.

 

 

프로필 이미지
2012.08.25 17:52:47 *.70.146.41

팔레르모

 

네째날 : 8 7일 (1/3)

 

630분 나폴리를 떠난 페리호는 팔레르모에 도착했다. 어질 어질 부시시 늦게까지 아름다운 지중해의 밤바다에 정신을 놓고를 헤매다 온 터라 정신이 없다. 샤워를 하고 부랴부랴 짐을 꾸려서 2층 로비로 나갔다. 신기한 것은 모든 사람이 멀쩡히 나와 있더라는 거다. 이 사람들 정말 대단한 분들이다. 그렇게 놀고 아침에 아무렇지 않게 나오는 것을 보면 보통 내공이 아니다. 나라씨가 분주하다 어제 같이 놀았던 이탈리아 청년 두 명을 만나야 한단다. 노는 중에 아이폰 우퍼를 놓고 와서 그 사람들이 갖고 있을 것이란 거다. 결국 우퍼는 찾았지만 덕분에 짐은 고스란히 배 안에 있게 되어 누군가 끌고 내려가 줘야 할 판이다. 일행 들이 짐을 나누어 배에서 내렸다. 뭔가 아쉬움이 남는 페리에서의 일박이다. 그래 사진을 한 장도 못찍었구나! 다음에는 작은 똑딱이 사진기를 하나 장만해야겠다. 놀 때 찍을 사진기가 필요하구나.

 

우리는 팔레르모에 내려서 버스에 올랐다. 주세페라는 이름의 기사분이 버스를 몰아 주시기로 하였다. 로마에서도 주세페였는데 이런 우연이 있다니! 좋은 인상의 주세페 기사님 안전운전 부탁드립니다.

 

3-1 막시모 극장.jpg

<사진 이동희, 레몬>

첫번째로 출출한 배를 달래기 위해 우리는 대부 3편에서 알파치노 아들이 공연하고 나오는 길에 총격으로 딸이 죽는 장면이 있는 막시모 극장으로 향했다. 막시모 극장에 내린 나는 출발항공편에서 본 대부가 너무 생생해서 극장 앞에서 딸 매리가 죽는 장면이 자꾸 떠오르면서 나의 딸 지연이도 같이 오버랩된다. 아 소중한 가족을 가업을 위해 평생을 헌신했고 무수히 많은 사람을 죽여가며 지치려 했던 정작 자신의 딸의 죽음을 막지 못해 오열하던 알파치노를 생각하니 울컥하면서 아침 시장기도 잊고 잠시 극장 계단을 바라보았다. 그 때 아침으로 커피와 빵을 먹는다고 한 카페로 모이라고 한다. 난 어제 먹은 맥주로 인해 속이 좀 불편하여 빵으로 아침을 먹는게 부담스러웠다.

 

3-2 막시모 극장 아침.jpg

<사진 레몬>

 

다행이 오랜지 주스가 있어 두 잔을 마시고 속을 달랬다. 이런 곳에서는 카푸치노와 달콤한 빵을 분위기 있게 먹어줘야 하는데 아쉬울 따름이다. 가게에는 젤라또도 같이 팔았는데 우리 중 몇몇은 젤라또를 사서 나눠먹었다. 이탈리아 아이스크림이 유명하다는 얘기는 들어왔지만 현지에서 먹는 맛은 한국에서 먹는 아이스크림과 많이 달랐다. 역시 본토의 맛을 봐야 해.

 

우리는 막시모 극장에 시칠리아를 떠나는 날 다시 올 것을 기약하고 부칠리아 시장으로 출발하였다. 부칠리아 시장은 일반 시장처럼 큰 도로 중간의 사잇길에 길게 형성된 시장으로 처음 간 곳은 생선 가계들이 있고 작은 수도 시설이 있는 공간이 있는 장소였다. 여기서 자유시간을 갖고 각자 둘러보라고 한다. 일단 오늘은 혼자서 시칠리아를 만끽해 보겠다는 소박한 욕심에 일행들이 가는 곳과 다른 곳을 가보기로 하고 큰 길로 나서 골목으로 들어갔다. 역시 시장이었으나 내가 간 곳은 의류 상점들이 많은 곳이었다. 여느 지방 도시 중심가 골목 상점과 큰 차이가 없어서 편안하였다. 특이하게도 인도 사람들이 많이들 와서 장사를 한다는 것이다.

 

3-3 부칠리아 시장.jpg

 <사진 이동희>

 

팔레르모에서 발견한 독특한 표지판들이 있다. 짐나르지 마시오, 톱질하지 마시오, 주정차하면 죽는다잉! 시칠리아 사람들의 유머를 엿볼 수 있는 표지판이었다.

 

3-4 교통 표지판.jpg

 <사진 이동희>

 

돌아갈 시간이 되어 부리나케 모임 장소로 이동하였다. 모임 장소에는 한 시칠리아 사람이 참치 살코기를 말려서 숙성시킨 것을 팔고 있었는데 우리도 관광객이라고 썰어서 보여주며 먹어보라고 한다. 가쓰오부시처럼 보이는데 나름 맛있어 보이나 선 듯 손이 가질 않아 먹어 보지는 못했다. 기회가 되면 다음에 와인 안주로 먹어 보고 싶은 충동이 잠시 들었다. 버스는 우리를 내려준 곳에 주차를 할 수 없어 박물관 근처에 주차를 하고 있었다. 약간의 거리를 걸어서 모두 버스에 모였다.

  

인원 점검을 위해 한 사람씩 번호를 매겨 버스에 오른 뒤 각자 불러 빠진 사람을 확인하였다. 나라씨 차례 대답이 없다. 사람들이 전화를 넣어보니 아직 시장 근처에서 일행들을 놓쳐서 앉아 있다고 한다. 모두들 불편한 기색을 보인다. 신이사님이 직접 가서 데리고 오겠다고 나섰다. 한참 뒤에 뷔이이입~ 뷔이이입~ 전화가 왔다. “오빠 탑있고 성당 같은 건물 앞 카페에 앉아 있어” “신이사님 가셨다” “만났다한참을 기다린 끝에 신이사님과 나라씨가 두 손에 한짐을 들고 나타난다. 뭔가 많이 사온 것같다. 아무튼 오늘도 출발은 나라씨 덕분에 한참 늦어졌다. 우리는 이제 또 하나의 시칠리아 영화 시네마 천국의 배경 도시 체팔루로 떠난다.

 

 

프로필 이미지
2012.08.25 18:08:29 *.70.146.41

체팔루

 

네째날 : 8 7일 (2/3)

 

체팔루로 떠나는 버스 안에서 바다를 볼 수 있었다. 대서양의 물은 색깔이 달랐다 우리 나라의 바다가 녹색 기운이 많은데 비해 이 곳은 파란 기운이 많다. 그리고 매우 맑다는 것이다. 물론 시칠리아 북쪽 해안에 공장과 같은 산업 시설이 없다는 것도 있지만 대서양 바다는 사람을 현혹시킬 만큼의 아름다운 색을 지니고 있었다. 유리 같은 느낌이랄까? 우리 중 누군가는 벌써 이 물에 반해 뛰어들 생각부터 하고 있을 지 모를 일이다. 멀리 체팔루가 보이는 도로 가에 주세페 형님이 차를 대고 경치를 구경시켜 준다. 높은 언덕을 뒤고 하고 앞은 바다 중앙에는 두오모 성당이 우뚝 솟아 있고 옆 해변은 해수욕을 즐길 수 있는 해변이 있다. 오랜지 색 지붕을 하고 오밀조밀 붙어 있는 집들은 주위 색과 조화를 이루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고 있다.

 

3-6 체팔루0.JPG <사진 이동희>

체팔루는 시네마 천국의 배경 마을이라고 한다. 이스탄불에서 로마로 넘어 올 때 이 영화를 비행기에서 다시 봤었다. 토토가 열심히 영화를 보고 꿈을 키우던 그곳 체팔루로 들어가 보자.

 

3-7 체팔루.jpg

<사진 이동희>

 

체팔루 마을 초입은 높은 언덕 옆 길을 통해 접근이 가능했다. 버스는 그 곳까지만 올 수 있고 이후로는 걸어서 마을로 들어가야 했다. 막상 가보니 마을 내는 차로 다니기에는 골목들이 매우 좁았다. 모두들 토토의 마을이라는 호기심에 들뜬 표정으로 마을 중심인 두오모 성당으로 향했다.

 

3-8 체팔루2.jpg

<사진 이동희>

 

이스탄불과 로마에서 웅장한 성당을 많이 봐온 터라 두오모 성당 내부 구경은 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주위를 둘러 보기로 하였습니다. 8기 분들은 구본형 선생님과 같이 위 언덕을 올라 볼 것같고 중년의 두 부부와 일부는 마을 어디론가로 흩어졌다. 난 혼자 체팔루를 걸어볼 요량으로 사람들이 모두 떠나기를 기다렸다. 골목길로 걸음을 때었다.

 

골목을 지나 기념품 가게들을 지나는데 중요한 것은 점심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었다. 오 이런 점심 먹는 것을 어떻게 하지? 아침 팔레르모에서 싸온 빵으로 해결을 할까? 시칠리아에서의 첫 자유식을 빵으로 때울 수는 없지. 이렇게 마음 먹고 괜찮은 식당을 찾아 혼자 기웃거리고 있는데 마침 단풍님 부부 유재경님 부부와 김옥선 누님, 신재동님, 소품님이 앉아 있는 식당을 지나치게 되었다. 막 자리를 잡고 앉으려는 차에 나를 보고 같이 식사하자고 청한다. 내심 잘되었네. 점심 고민 안해도 되겠네 싶어 얼른 앉아서 같이 앉았다.

 

점심으로는 피자, 파스타를 시켰다. 모르고 막시키다 보니 나중에 리조또도 나왔는데 가게에서 화이트 와인을 내 주었다. 첫 자유식은 환상적이었다. 8명이 먹고 100유로 정도 나왔으니 가격도 적당한 게 정말 맛이 좋았다. 피자에 올려진 올리브가 색깔이 좋고 커서 처음에는 포도를 올려 놓았나 하고 신기해 하고 있었는데 먹었을 때 올리브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곳의 올리브는 약간 짭쪼름하면서도 당기는 맛이 일품이었다. 또 피자에 참치가 곁들여져 독특한 맛을 내고 있었다. 유재경씨는 연구원 7기 웨버였다고 하였다. 연구원 생활하면서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하였고 김옥선 누님은 걷기가 취미시고 부산에서 울진까지 걷기를 하신단다. 신재동씨는 프로그래머이면서 사진 작가의 길을 걷고 있고 최근 사진집을 내었단다. 실로 부럽다. 소풍님은 중학교 영어교사로 일한 지 6개월정도 되었다고 하였다. 아직 결혼은 하지 않았고 단풍님은 좋은 남자 있으면 소개 시켜주라고 한다. 식사 중 미남의 식당 점원의 친절한 서빙에 여성분들의 칭찬이 이어졌고 모두들 매료되었다. 집사람 데리고 오면 이탈리아 남자랑 바람 날까 겁이 살짝 난다고 할까? 이쪽 사람들은 기질도 좋고 생김새도 좋고 건강한 것 같아 남자인 내가 봐도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사실은 종업원은 약간 손오공 스타일이었다.

 

3-9 체팔루 식당.JPG

<사진 이동희>

 

점심을 맛있게 먹고 거리로 나와 상점을 둘러보았다. 그러던 중 화장실을 찾게 되었는데 오면서 신이사님께 들었던 그 공포의 화장실이 여기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변기는 있는데 변기에 앉는 뭐랄까 앉는 부분이 없다는 것이다. 일부 식당에서 일부로 그 부분을 떼어 버린다고 하던데 내가 간 식당의 화장실이 그렇게 되어 있었다. 일은 급하고 사정은 여의치 않고 이럴 때 사람은 참 무력해지면서 좌절하게 된다. 이후는 상상에 맡기고 화장실 경험은 여기 소개하는 것으로 마치겠다.

 

이제 체팔루를 떠날 시간이다. 그런데 토토의 극장은 어디에 있고 엘레나의 창문은 또 어디에 있는 걸까? 아무리 둘러봐도 그와 같은 곳은 없었다. 듣자 하니, 체팔루는 배경이 된 지역일 뿐 극장이 있는 광장은 여기에 없다는 것이다. 좀 아쉽다. 그 극장을 보고 싶었는데. 버스로 돌아가기 위해 처음 왔던 곳으로 되돌아 걸어가는데 레몬씨와 콩두씨가 젖은 못으로 언덕 아래 바닷가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 그 사이 수영을 했다는 것이군. 표정들이 무척 밝았다. 지중해에 몸 담그는 시간이 무척 좋았나 보다. 내가 봐도 수영하고 싶은 물인데 오죽했으랴! 알고 보니 나라씨도 다른 곳에서 물놀이를 하고 왔다고 했다. 모두들 지중해에 얼른 몸을 맡기고 싶은가 보다 오늘 최종 목적지인 타오르미나 아래 숙소에는 해변이 있다고 들었다. 오늘 밤 수영을 해볼까?

 

3-9 체팔루 식당2.jpg

<사진 콩두>

버스는 아직 오지 않았고 구본형 선생님과 몇몇 분이 체팔루 마을 초입의 바다가 보이는 식당에서 파스타를 즐기고 계셨다. 뚝배기 같은 그릇에 담겨나온 파스타도 맛있어 보였다. 지중해를 바라보며 파스타와 와인을 한잔 들이키는 식사는 맛을 떠나 운치가 넘친다. 난 그 언덕에 있는 무화가 나무를 발견하고 찬찬히 살펴서 잘익은 놈을 하나 따서 속을 갈라 발갛게 익은 속살을 베어 물었다. 아 이것이 지중해의 무화과 맛인가? 정말 달콤했다. 구본형 선생님이 옆에 오셔서 살피시더니 무화가 하나를 따신다. 내가 보기에 안익은 것인데 역시 드셔보시더니 안익었다고 하셨다. 잘 익은 것 하나 따드릴까? 버스로 가는 길이라 돌아가서 고를 시간이 없어 그냥 버스에 올랐다. 어릴쩍 이모님 댁에는 큰 무화과 나무가 마당에 있었고 가을이면 무화과를 따서 먹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 먹은 무화과로 인해 난 무화과에 대해 매우 친숙한 편이다. 이란 출장이 여러 번 다녀 왔는데 이란에도 무화과가 매우 많이 나온다. 그 곳의 말린 무화과는 그 맛이 일품이다. 지중해에서 맛 본 무화과 역시 그 태양빛 못지 않게 내 입안에 흔적을 남겼다.

 

3-7 체팔루 무화과.JPG

<사진 이동희, 레몬>

 

체팔루에서 타오르미나로 가는 버스에서는 이번 여행에 대해 기대를 묻는 자기 소개 시간이 있었다. 난 이 사람들에게는 어쩌면 이방인인데 우연한 기회로 참여하게 되었고 나에게 내 인생을 돌려주고 싶다는 말과 더불어 여행에 대한 기대가 크다고 말하였다. 내 인생을 나에게 돌려준다. 말이 너무 거창했다 싶다. 솔직한 말로 놀고 싶다는 것이고 잘 놀고 가면 좋겠다는 것이다.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하시고 사진을 찍어주니 어려워 말고 부탁하라 하였다. 이제 내가 손은 내민 샘이다.

 

 

프로필 이미지
2012.08.25 22:18:23 *.70.146.41

타오르미나

 

네째날 : 8 7일 (3/3)

 

타오르미나는 관광객 버스로 직접 갈 수 없다. 고대 침략을 막기 위해 산등성이에 성을 짓고 살았듯이 지금도 외부인의 직접 출입을 막기라도 하는지 중간에 타고 온 버스에서 내려 타오르미나 전용 버스로 갈아타고 올라야 한다. 오르는 길은 역시 가팔랐다. 예전 전쟁을 위해 쳐들어 갔다면 함락하기 힘든 지리적 조건을 가졌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3-10 그리스 극장.jpg

<사진 이동희>

 

우리는 늦은 관계로 문이 닫히기 전에 입장하기 위해 곧장 그리스 극장으로 갔다. 표를 사고 잠시 걸어 올라가는데 벽돌로 지어진 건물을 둘러가는 길이 약간 언덕으로 오르더니 이내 그리스 극장으로 입장하는 문으로 이어졌다. 돌아 보니 지중해가 펼쳐져 있고 멀리 에트나 화산이 보였다. 뒤로는 타우로 산으로 둘러 싸여 산속에 마련된 신들의 비밀 극장을 연상시킨다. 극장 곳곳은 지금도 계속 공연을 하고 있다는 듯 현대식 음향 장치가 무대 주위에 설치되어 있다. 실제로 공연이 있는데 마침 우리가 간 날은 일정이 없는 날이라고 한다. 아쉽다. 공연을 한번 볼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경험이 될 수 있었을 텐데. 올라 오는 길에 포스터를 보니 타오르미나 영화제도 예정되어 있었다. 이 작은 도시는 시칠리의 대표적인 휴양지답게 사람들로 북적이고 다양한 문화 행사도 연중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스 극장 관람을 마치고 구본형 선생님과 같이 시간에 맞춰 출입구에 다시 모였다. 구본형 선생님께서 날씨가 무척 더우신지 모인 4명이 먼저 내려가서 젤라또를 먹고 있겠다고 신이사님에게 이야기하고 우리 4명은 가계들이 있는 아랫 골목으로 내려왔다. 신이사님이 추천해준 젤라또 집이 있는데 막상 정확한 가계정보를 못받고 내려와 버려서 이집 저집 기웃거리다 한 집을 골라 들어갔다. 난 레몬 그라니따, 구본형 선생님은 코코넛 그라니따를 주문하고 샐리님과 웨버님은 아이스크림을 골랐다. 그라니따는 완전히 언 어름도 아니고 그렇다고 지방성분을 많이 넣어 만든 아이스크림과 달리 우리가 자주 먹는 슬러시와 같은 종류의 아이스크림이라고 보면 딱 맞다. 시칠리아 여행은 정말 환상인데 첫날부터 내리쬐는 햇볕은 어쩔 수 없이 우리를 더위로 지치게 하였다. 그라니따는 그런 더위와 갈증에 딱 맞는 냉음료였다. 코코넛 그라니따를 드셔 보신 후 선생님은 아주 맛있다고 새로운 맛에 약간 감탄하시는 듯하였다. 한참 뒤 다른 분들도 신이사님과 같이 내려왔는데 신이사님 표정이 추천한 젤라또 집이 아닌 것이 확실하다. 흠 어쩌랴 이미 먹었는데. 이후로 늦게 내려 오신 분들이 사온 그라니따를 계속해서 나누어 주어 그날 타오르미타의 그라니따를 모두 먹어본 것같다.

 

3-11 그라니타.jpg

<사진 레몬>

 

이제 움베르토 거리에서 쇼핑을 즐길 시간이다. 지금이 하계 시즌 막바지 50% ~ 70% 세일기간 아니 Saldi 기간이다. 세일이란 말에 혹해서 움베르토 거리에서 선물을 고르리라 마음먹고 유심히 다가가 본다. 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브랜드들로 대부분 채워져 있어서 선뜻 골라잡을 수가 없었다. 몇 집을 그렇게 훌터 보고는 여기서는 뭘 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그냥 구경만 하기로 했다. 길을 가다 보니 구본형 선생님과 둘이서 계속 걷고 있었다. 연구원 진행하는 것에 대해 여쭤보니 일단 10기까지 생각하고 있는데 진행해봐야 알일이라고 하신다. 연구원 선발은 지원자들의 특성을 고려해서 팀을 꾸리는 차원에서 어울릴 수 있는 사람들을 구성하신다고 한다. 구본형 연구원은 1기 선발 공고가 났을 때 아주 심각하게 고민했던 것이다. 그 때 지원해서 선발이 되었다면 아마도 내 인생은 이미 많이 달라졌을 거라는 생각을 해본다. 앞으로 9 10기가 남아 있는데 향후 해외 파견을 가고 싶은 맘이 있어 다시 연구원 지원을 주저하게 한다.

 

3-11 움베르토 거리.jpg

<사진 이동희>

 

움베르토 거리에는 시칠리아의 고지도와 사진들 그림들만 전문적으로 파는 가게가 있었는데 고상한 여행을 왔다면 몇 점 사서 집에 가져가고 싶었다. 구본형 선생님과 이런 저런 가게를 구경하며 움베르토 거리의 끝까지 갔다가 시간이 되어 다시 길을 돌아 섰다. 목이 말라 물을 한 병씩 마셨는데 선생님께서 사서 건내주셨다.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주고 받는 다는 것은 많은 감정이 이입되게 하는 면이 있다.

 

3-12 움베르토 거리2.jpg

<사진 이동희>

 

타오르미나의 환상적인 그리스 극장과 움베르토 거리에 매료되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벌써 숙소로 돌아갈 시간이다. 오늘은 타오르미나 앞 해변의 Naxos 거리의 Sporting Baia Hotel에서 묵기로 했다. 이 곳은 전용 해변이 있어 수영도 가능하다고 한다.

 

3-13 Naxos 해변.jpg

<사진 길수>

 

시칠리아의 팔레르모 항에 새벽 6시에 도착한 후 팔레르모의 부칠리아 시장, 체팔루, 타오르미나를 하루만에 돌아보다니 정말 빡빡한 하루 일정이었다. 좀더 시간을 두고 즐겼으면 하는 마음도 있지만 여러 곳을 보는 맛도 이에 못지 않은 것같다. 저녁은 호텔에서 파스타와 돼지고기 스테이스를 먹었다. 정말 특이한 스테이크 였는데 일단 되지고기 목살인지 다리살인지는 모르지만 접시를 채울 만한 고기를 구운 것도 아니고 튀긴 것도 아닌 삶은 후 소스를 얻은 것으로 보였다. 빡박한 일정으로 허기진 배들은 아무도 불평이 없다.

 

난 저녁 먹고 혼자 해변에 먼저 나가 봤으므로 거기에 뭐가 있는지는 알고 있다. 뜨거운 태양이 익히 모래 사장과 따뜻하게 대워진 대서양의 바닷물 그리고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 멀리서 어스름 짖어가는 저녁에 내가 서있었다. 뭘하고 있나? 왜 여기 있나? 그래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이러 저러한 고민들이 잠깐 나를 아무도 없는 백사장에 우두커니 붙들고 있었다. 이제 나에게 나의 인생을 돌려 주겠다던 말을 다시 나에게 하면서 호텔로 돌아 왔었다. 잠시 눈을 붙였지만 결국 그날 저녁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잠을 잘 자게 되었다. 그날 밤에 8기 분들은 역시 사랑을 주제로 수업이 진행되었고 많은 분들이 해변에 나가 수영을 즐기며 여독을 풀었다. 소풍님은 타오르미타를 외치며 많은 분들을 즐겁게 했고 그렇게 즐거운 시칠리아의 첫 밤은 흘러 갔다.

 

프로필 이미지
2012.08.26 11:49:17 *.70.146.41

에트나

 

다섯째날 : 8 8일 (1/3)

 

4 30분이 넘어 잠에서 깼다. 단군의 후예 100 1차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새벽 기상이 아직습관 수준은 아니지만 새벽에 깨는 버릇이 생겼다. 여행 중에도 마침 어제 일찍 잔 관계로 새벽에 일찍 일어나게 되었다. 새벽에 깨어서 뭘할까 궁리를 하다가 어제 밤에 수영을 하지 못한 것이 못내 억울하여 바닷가에 가서 수영을 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어두운 해변길을 따라 모래사장이 해변으로 나아 갔다. 젊은 이탈리아 남자 3과 여자 한 명이 아직까지 놀고 있었고 방금 수영을 마치고 주위를 정리하고 있었다. 호텔의 전용 해변은 배도 없고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바다는 아직 어두워서 하얀 파도만 보일뿐 물의 깊이를 알 수가 없었다. 어디까지 들어가면 될까? 선뜻 발을 담그었다 몇 발 못 들어가고 다시 나왔다. 가만히 의자에 앉아 나를 보았다. 두려운가? 그냥 들어가보면 안 되는가? 왜 주저주저하고 있는가? 사실 깜깜한 물속으로 깊이도 모르고 들어가기란 쉽지 않다. 특히, 어릴적 물에 빠져서 죽을뻔한 기억을 안고 사는 나로서는 무책임하게 깊은 물에 들어가는 것을 매우 싫어한다. 사실 깊어도 발을 딛고 올라오면 2m 이상 물 속에서도 수영은 가능하다. 하지만 나의 그렇지 못하다. 일단 안전한 곳에서 수영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이건 뭔가? 아직 세상 살이를 하면서 큰 도전을 해보지 못한 자의 선택 방법과 다르지 않다. 늘 할 수 있는 것만을 선택하는 것. 난 그런 사람일까?

 

잠시 뒤, 좌경숙 선생님께서 오셨다. 좌선생님은 수영을 매우 잘하셨다. 같이 수영하자고 하시면서 더 먼 쪽으로 들어가셨다. 물론 물은 깊지 않았다. 15M 이상을 나아가도 깊이가 크게 차이가 나질 않았다. 날이 약간 밝아져서 라기 보다 좌선생님과 같이 수영한 탓에 쉽게 물에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난 그런 사람이다. 스승이 필요하고 옆에서 이끌어 줄 사람이 필요하다. 그러면,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을 쉽게 넘어 설 수 있는 사람이다. 마음을 열고 사람들에게 구하면 될 것이다. 혼자서 뭔가 다 하려고 애쓰지 말자. Naxos 해변에서의 새벽 수영은 나에게 길을 알려 주었다. 나의 한계를 안 것이고 그것을 푸는 방범을 명확하게 안 것이다. 한 시간여의 수영을 마치고 6시경에 방으로 돌아 왔다. 이때 한 무리의 사람들이 바다로 새벽 수영을 즐기러 나가고 있었다.

 

4-1 Naxos 새벽 해변.jpg

 <사진 이동희>

 

아침식사로는 일반적인 호텔 조식을 먹었는데 빵을 잘라서 몇 가지 햄과 치즈를 넣고 쨈을 발라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었다. 이를 보던 써니 누님과 옥선 누님께서 하나씩 싸달라고 한다. “왜요?” “점심때 먹게 동희씨 샌드위치 참 잘싸네 하나씩 싸주면 좋겠다그렇게 샌드위치 조리사가 되어 세 개를 더 싸서 하나씩 나눠주고 나도 하나 챙겨 넣었다. 먹게 될지 모르지만 일단 갖고 가보자.

 

오늘은 고대하던 에트나 화산에 갈 예정이다. 버스를 타고 에트나 화산의 케이블카 정류장에 도착했다. 일정은 케이블카로 중간쯤 가소 5Km를 짚차를 타고 올라가서 구경을 하는 일정이다. 일부 사람들은 산에 올라가지 않고 버스 정류장 일대의 카페에서 글을 쓰거나 아래쪽에서 트래킹을 할 예정이란다. 에트나 산은 붉은 빛이 도는 검은 색의 전형적인 화산재를 포함한 토양으로 되어 있다. 밟으면 발이 쑥쑥 들어가고 미끄럽기 때문에 걷는데 조심해야 한다. 케이블카 및 지프 이용료는 51.15 유로이고 에트나산 입장료가 9.35 유로이다. 신이사님 말로는 이것도 아마 마피아가 사업권을 쥐고 있지 않겠나라며 비싸다고 농담을 던지신다. 케이블카를 타고 한참을 오르는데 밖의 풍경은 실로 경이로웠다. 검붉은 화산 토양위로 노란꽃을 피우는 식물들과 이끼들이 산 중턱을 가득 매우고 있어 케이블카를 탄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하였다. 그런데 좀 덥다. 입구 문에 있는 구멍을 빼고는 트인 데가 없고 사진을 찍기 불편하게 아크릴 부분이 모두 노란색으로 되어 있었다. 조그마한 문틈으로 렌즈를 대고 사진을 찍어 본다. 케이블카는 덜커덩 거리며 산 중턱의 도착지점에 다달았다.

4-3 에트나 버스정류장.jpg

<사진 이동희>

 

4-3 에트나 케이블카.jpg

<사진 이동희>

 

케이블카가 도착한 곳에는 버스 정류장이라는 푯말이 있고 사람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부터는 다시 버스를 타고 올라야 한다. ! 버스는 트럭을 개조한 수준이었지만 자리도 많았고 산악 운행에 아주 적합해 보였다. 도로의 대략적인 모양만 보이게 간간이 꼽아 놓은 나무가 인상적이었다.

 4-6 버스 운행중.jpg

<사진 이동희>

 

4-5 버스 안에서.jpg

<사진 이동희>

 

우리의 버스는 에트나 중턱의 정상이 잘보이고 분화구가 있는 지점에 우리를 내려 놓았다. 온통 검은 흙에 멀리 보이는 에트나의 봉우리는 하얗고 노란 머리를 들고 내려다 보고 있다. 마침 이전의 화산 폭발로 묻힌 집의 잔해도 보인다. 화산 폭발이 집 높이로 화산재를 분출했다는 얘기인데 엄청난 양이다. 한참 여름이라 산 정상에는 눈이 없었다. 시원한 바람이 한 낯 더위를 식혀주며 그간 더위에 지친 몸과 마음에 기운을 돋워준다. 에트나는 그리스 신화에서 저승세계를 관장하는 하데스 지상으로 출입하는 입구이고 헤파이토스의 대장간이 있는 곳이라고 한다. 에트나는 활화산이다. 누군가 묻는다. 당신은 활화산인가? 휴화산인가? 사화산인가? 단호히 활화산이라고 답하였다. 난 가슴을 뜨겁게하고 더 열정적으로 살려고 이곳에 왔다. 하지만, 아직 명확한 길을 찾았다고 볼 수는 없다. 계속 찾아 나아갈 뿐이다.

 

4-7 버스 도착.jpg

<사진 이동희>

 

에트나 분화구는 흙을 파서 땅에 손을 대면 온기가 느껴진다. 사람처럼 체온을 가진 에트나는 우리를 품고 세상에서 활화산처럼 살라고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는 것같다. 우리가 둘러본 분화구는 천지연이나 백록담처럼 큰 것은 아니다. 산 정상에 있는 분화구는 아니지만 파인 너비로 보면 적은 규모는 아니다. 옆의 또 작은 분화구에는 바람에 날아가 떨어진 모자와 길안내를 도왔던 나무 막대가 떨어져 분화구의 깊이를 말해 준다.

 

4-8 에트나 분화구.jpg

<사진 이동희>

 

에트나 분화구 관람을 마치고 내려가는 버스에서 구본형 선생님과 8기분들은 5Km를 걸어서 내려간다고 한다. 걸어가는 하산이라 재미 있을 것같아 사진을 찍어 주겠노라고 같이 동행을 하였다. 산이 높아서 경사가 완만해 보였지만 화산재에다 경사가 있어 버스가 다니는 도로가 아니고는 다니기 쉽지 않았다. 처음에는 버스길을 따라 내려가다 굽이치는 도로를 가로질러 가기 시작했다. 나중에서 뛰기까지 하며 산을 타는 즐거움을 마음껏 만끽하였다. 아 달려라 달려! 탁 트인 에트나에서 우리는 자유로운 영혼의 불씨로 우리의 마을에 불을 지펴 영원한 활화산으로 삶을 바꾸고 있었다.

 

4-9 에트나 하산.jpg

<사진 이동희>

 

4-10 에트나 하산2.jpg

<사진 이동희>

 

4-11 에트나 하산3.jpg

<사진 이동희>

 

우리는 5Km의 에트나 하산 질주를 마치고 케이블카 정류장에 도착했다. 시간은 벌써 점심 시간이고 모두 열심히 내려오느라 출출하였다. 구본형 선생님은 에트나 특제 라쟈냐를 시키고 빵들과 음료를 시켜 점심을 먹었다. 난 아침에 싸온 샌드위치를 꺼내어 맛있게 먹었다. 선생님께서 에트나의 라쟈냐가 맛이 대단하다며 와인과 함께 나누어 드셨다. 에트나에서 활화산 같은 하강 질주로 마무리하고 하강 케이블카를 내리자 마자 버스로 달려갔다. 꿈속을 헤매다 온 걸까? 아직도 에트나에서 달리고 있는 느낌은 뭘까? 내 가슴에 작은 불씨가 활화산이 되기를 바란다.

 

 

프로필 이미지
2012.08.28 17:53:53 *.91.142.58

희동이님,

 

멋진 글 감사히 잘 읽고 있답니다.

이제 나흘의 여정까지 잘 읽었네요.

연구원 지원을 망설이는 것에 그런 이유가 있으셨군요.

해외 파견을 갈 수 있는 기회가 되신다면 그 또만 좋은 기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남은 여정의 이야기도 계속 기대할게요~^^

프로필 이미지
2012.08.28 01:12:41 *.70.146.41

천국의 채석장

 

다섯째날: 88 (2/3)

 

제대로 인사도 못나누고 헤어진 듯 아쉬움을 안고 버스는 떠났다. 인생에서 다시 에트나를 볼 수 있을까? 인연이 있으면 다시 보리라! 시칠리아에 꼭 다시 오리라. 그때 다시 에트나를 올라 보리라 등산화를 신고 등산가방을 매고 지팡이를 갖추고 몇 일을 들여 산에 올라 하데스가 드나드는 저승가는 문을 보고 오리라.

 

버스는 시라쿠사에 있는 그리스/로마 극장과 같은 장소에 있는 천국의 채석장으로 향했다. 일정상 에트나를 떠나 화산 폭발로 용암으로 덮였던 적이 있는 카타니야를 들러 보지 못하고 곧장 시라쿠사의 천국의 채석장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관광지에 온 기분을 들게끔 기념품 가계들이 쭉 들어서 있었다. 장시간 이동으로 볼일이 급하신 분들이 있는데 이곳에서는 화장실 사용은 50센트 팁을 내고 이용하는 것이 예의다. 화장실 앞에 지키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험하게 생기지는 않았는데 팁 안주고 가면 쫓아가서 받을 것처럼 처다 봤다. 물론 난 팁도 주고 인사도 나누었다. 좀 우습지만. 입구로 들어서는 순간부터 죽을 것 같은 더위를 느꼈다. 에트나에서 부터 입고 온 긴팔 셔츠를 벗으려고 했지만 팔뚝이 되려 탈 것 같아서 계속 입고 있기로 했다.

 

그리스 극장에 도착했을 때는 정말 눈이 부셨다. 하얀 석회암을 잘 다듬어서 둥그런 의자 구조를 만들고 앞에 무대를 꾸몄으리라 저 멀리는 바다가 보이고 그 사이는 숲으로 정리되어 있다. 무엇보다 하얀 석회암이 뿜어내는 햇볕 때문에 눈을 제대로 뜰 수 없을 정도였다. 지금같이 뜨거운 시간에는 공연을 하지 않았겠지!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제일 관람석 꼭대기에서 한눈에 그리스 극장을 가늠해 보고 뒤에 있는 옛 무덤이었던 동굴로 향했다. 동굴들은 작았고 개방되어 있었다. 안에서 밖을 보니 명암이 대비되어 밖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무덤에서 보다 보니 살아 있는 세상이 저리도 밝아 보이나 싶을 정도다. 날이 더운 관계로 그리스 극장을 구경하던 사람들은 하나 둘씩 무덤 동굴 안으로 모였다. 더운 날씨는 누구도 예외를 두지 않았다. 동굴에 들어간 우리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다같이 부르는 노래에 이탈리아 관광객들이 신기하게 쳐다보며 지나간다. 어떠랴 무덤에서 노래 소리가 들리는 것이 그리고 이곳이 그리스 극장인데 마음껏 노래를 부르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4-12 고고학공원 그리스 극장.jpg

<사진 이동희>

 

무덤 밖을 잠시 둘러보니 정말 특이하게도 극장 뒤편에 동굴 안에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리스 극장 뒷편은 주위에서 언덕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 곳에서 물이 콸콸콸 흐르고 있었다. 아 옛날 시라쿠사 인들은 그리스 극장에 모여 인간을 노래하고 목이 마르면 이 물을 마시고 살아 있음을 느꼈으리라. 물을 받아 한 모금 마셔보고 싶었으나 마셔보지는 못하였다. 물이 흐르는 동굴을 등지고 바라보면 멀리 시칠리아 섬 동편의 지중해가 보인다. 이쪽으로 곧장 가면 그리스와 터키가 나온다. 기원전 그리스 인들이 처음 시칠리아에 정착하여 처음 만든 도시가 시라쿠사이다. 이 도시에는 그리스 인들의 정취가 고스란히 이 극장과 함께 남아 있는 듯 아직도 그리스 극장은 하얀 좌석을 반짝거리며 앉으라 손짓한다. 그리스 극장은 반원형으로 되어 있어 연극이나 공연을 관람하기에 좋은 구조이다. 특히 시라쿠사의 극장은 석회암으로 되어 있어 그 음향 효과가 탁월하다고 한다. 음향학적으로 잡음을 잘 잡아 주고 아래에서 위까지 소리가 잘 전달되는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관객의 입장에서 극장을 보았다면 공연자 입장은 어떨까? 우리는 극장 아래 무대 쪽으로 향하였다. 모두들 더운 날씨에 지쳐 잠시 그늘에 땀을 식히고 이제 공연을 해보기로 했다 짧은 공연 다름아닌 같이 팔짝 뛰는 장면을 찍어 보기로 했다. 하나 둘 셋 찰칵! 나 여기 왔다 간다! 모두들 힘차게 뛰며 에트아 화산에서 받은 기운과 여행의 즐거운 기분을 한껏 표현했다.

 

그리스 극장을 돌아 나오면 뒤편에 천국의 채석장이 자리하고 있다. 이 곳은 시라쿠사의 옛 건물들을 짓기 위해 돌을 채취했던 곳인데 굴들과 긁혀나간 자국들만이 채석장이었음을 말해준다. 그 중 귀퉁이에 하나의 큰 굴이 보이는데 마치 귀를 닮아 있다. 이 곳은 채석장이었는데 지진으로 갈라진 틈이 붙어서 동굴처럼 되었다고 하였다. 이 곳의 특징은 안에서 나는 소리가 잘 전달이 되는 것이 특징이고 특히 큰 소리 보다 잔잔한 소리가 은은하게 잘 퍼지는 곳으로 조용한 노래를 부르면 잘 울려서 아름답게 들린다고 한다. 이런 특징으로 예전 시라쿠사의 폭군인 디온시오스가 반대 세력들을 가두고는 그들의 말을 엿듣게 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디오니소스의 귀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사랑해를 다같이 부르며 소리의 울림을 들어 보았다. 모두 사랑할 것같이 아름다운 노래 소리는 같이 들어온 다른 나라 관광객들의 박수 갈채를 받았다. 나오는 길에 뒤에서 묻는다 넌 무엇을 엿듣고 있느냐?

 

4-13 디오니소스의 귀.jpg

<사진 이동희>

 

디오니소스의 귀에서 들려오는 잔잔한 노래 소리의 여운을 가슴에 담고 로마 원형 극장으로 향하였다. 로마 원형 극장은 가운데 무대가 있고 원형으로 관람석이 놓은 것이 그리스 극장과 다른 형상이다. 그리스 극장은 인간을 노래하고 감동하고 즐기기 위한 반면 로마 극장은 통치를 위한 위락 시설의 성격이 짖다. 때로는 잔인한 검투사들의 피 튀기는 싸움을 때로는 야수들과 사람의 혈투를 보여 주며 주민들의 관심을 이 오락 거리에 붙들어 놓으려는 로마 통치자들의 생각이 다분이 드러나는 모양새이다. 현대도 다양한 스포츠와 오락거리를 제공해야 백성들이 스트레스를 풀어야 사회에 대한 불만이 줄어들고 개인들의 생각이 사회 현안에 집중되는 것을 분산시키는데 때때로 이용되는 것을 보면 고대의 이스탄불의 전차 경기장, 로마의 콜로세움, 이곳의 로마 원형 극장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로마 원형 극장을 관람하고 돌아오는 길에 소풍님의 신발을 보고 놀랐는데 샌달의 끈은 온데간데 없고 목에 둘렀던 천으로 신발을 아예 새로 만들어서 신고 있었다. 에트나에서 멀쩡하였는데 뛰는 사진 찍다가 내려오면서 샌달 끈이 끊겼다는 것이다. 다행히 천이 있고 마침 묶는 방법을 아는 미경님께서 묶어주시니 그리스인의 샌달처럼 쓸만한 것이 나왔다. 이 사람은 이 신발로 시칠리아 여행을 마치고 로마까지 돌아가서야 새 신발을 사서 신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뜨거운 오후 햇볓이 내리쬐는 고고학공원을 떠나기 위해 주차장으로 향하였다. 모두 출발을 위해 자기 번호를 한 명씩 불렀는데 나라씨가 없다. 전화를 해보고 신이사님과 8기 몇 분이서 찾으러 나가셨는데 30분이 넘어서 같이 못오고 찾으러 간 사람들만 돌아왔다. 나라씨는 무슨 연유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길을 잘못 들어서서 다른 문으로 나가 버린 모양이다. 신이사님께서 택시타고 시라쿠사 숙소로 가있기로 약속하고 버스는 출발하였다. 하지만 신이사님의 재치로 일단 고고학 공원 주위를 한번 돌아달라고 주세페에게 부탁을 하였는데 마침 돌아 나가는 길에 나라씨가 더위에 혼자 앉아서 망연자실하고 있었다. 우리는 버스를 세우고 나라씨를 태우고 시라쿠사의 아폴론 신전과 아레투사의 샘을 보기 위해 출발하였다.

 

4-14 로마원형극장.jpg

<사진 이동희>

 

나라씨가 사라지고 사람들이 찾으러 간 사이 많은 사람들이 불평을 하며 어떻게 계속 일행을 떠나 혼자 지체하는지에 대해 저마다 나라씨에게 볼맨 소리를 하고 있었다. 나는 감정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그들을 지켜보며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행동에 대해 어디까지 포용할 수 있을까에 대해 잠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이렇게 좋은 곳에 와서 아름답고 유서 깊은 유적지를 관람하고 좋은 기분들을 가졌을 테데 30분쯤 참아줄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잘챙겨서 다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 아닐까? 잘못은 잘못이지만 이를 보고 수용하는 것은 또 그 것을 바라보는 사람의 못이다. 불편한 마음은 더위로 더해졌을 것이다. 앞으로 나라씨는 계속해서 눈총을 받을지 모를 일이다. 나 또한 이런 시선에서 예외는 아닐 것인데. 같이 앉아 웃고 즐겨도 사람 마음은 참 모를 일이다.

 

 

프로필 이미지
2012.08.28 12:40:11 *.70.146.41

아폴로 신전과 아레투사의 샘

 

8 8 (3/3)

 

고고학공원을 떠나 우리는 시라쿠사 시내로 들어와 오르테지아로 들어가기 전 주차장에 멈추어 섰다. 오르테지아는 시라쿠사의 구시가지로 다리를 건너야 했다. 길을 따라 곧장 올라가니 아폴론 신전을 만났다. 달나라 우주선으로 더 알려진 이름 아폴로를 연상시키는 이름이다. 또 기억하는가? 포도당으로 만든 것을 빨대에 넣어서 한 봉지에 수십 개 포장해서 팔던 그 아폴로 과자. 그렇다. 세상에서 처음 만나보는 신전이 아폴론이라 이미 친숙한 이름에 마음이 더 간다. 태양, 예언, 궁술, 의술, 음악의 신인 아폴론은 그렇게 뜨거운 시칠리아 태양을 뚫고 에트나와 고고학공원의 그리스 극장을 지나서야 만나게 되었다. 난 예측하는 걸 좋아한다. 이러 저러하니 그렇게 될 것이라고 시나리오를 작성해보고 이에 대해 같이 평가해보는 것이다. 제품을 설계하고 시장에 출시하는데 있어서 무엇보다도 필요한 능력이다. 그러한 예언 능력을 갖고 있고 아름다운 리라 연주를 하는 아폴론은 내가 되고 싶은 한량인 것 같다. 그래서, 아폴론은 내 마음을 쏙 빼앗아갈 만큼 매력적이다. 난 소나기 온 뒤 쨍한 햇볕을 제일 좋아한다. 깨끗한 공기에 땅은 촉촉하고 하늘은 청명한데 구름이 흐를 때 쨍쨍한 햇볕이 구름 그림자를 만들며 비추는 오후를 정말 사랑한다. 이런 아폴론도 슬픈 사연이 있는데 다프네와의 사랑이다. 에로스의 장난으로 다프네를 따라다니지만 다프네는 아폴론을 피하기만 하게 되는 운명이 되어 결국 월계수 나무가 되는 다프네를 그리며 머리에 늘 월계수관을 쓰고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예언 능력은 있으나 정작 자신의 앞날을 예측하지 못하는 것은 신이나 인간이나 별반 다르지 않은가 보다. 아폴론 신전은 많이 훼손되어 일부 벽체와 기둥만이 남아 있지만 시라쿠사에 살았던 많은 그리스 인들이 고향 아테네를 그리며 아폴론 신전에서 시칠리아 태양을 축복하고 앞날을 위한 신탁을 받았으리라! 저에게도 아폴론과 같은 능력을 갖게 신탁을 내려 주십시요.

 

4-15 아폴론 신전2.jpg

<사진 이동희>

 

우히히. 아폴론 신전 앞에는 시라쿠사의 어르신 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시다 낯선 동양사람들의 행렬에 관심을 보여 주신다. 말이라도 붙여보고 싶으나 이탈리아 말을 못하는지라 엄두도 못 내었다. 이 번에는 나라씨가 잘 따라와 주고 있나? 둘러보니 써니 누님의 스카프에 묶여서 꼼짝 못하고 따라오고 있었다. 써니 누님이 보다 못해 챙기시나 보다. 아레투사의 샘에 있는 파피루스를 따로 심어서 관광객들을 안내하는 샘물이 독특하다.

 

우리는 오후 늦은 해를 받아 빛나는 아폴론 신전을 뒤로하고 오르테지아의 중심인 두오모 성당으로 갔다. 이곳은 아테네 신전 (로마의 미네르바)을 성당으로 개조하였다고 한다. 사람이 바뀌면 신도 바뀌는 것인가? 이스탄불과 로마 시라쿠사를 거치면서 느낀 점은 사람에 따라 신도 떠다니는 신세라는 것이다. 신이란 사람 이전에 있는 존재들인데 그들을 믿는 사람에 따라 나타났다 사라지니 이는 신이 결국 사람의 영혼 속에 공유되는 존재일 뿐 실존적이지 않다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의 모든 피조물은 사람에 의해 신들에게 바쳐졌고 신들을 기리기 위해 신전, 교회, 성당, 모스크, 절이 지어졌는데 같은 건물도 사람에 따라 다른 신을 모시게 된다면 그 건물로서는 엄청난 수치가 아닐까? 차라리 부셔주면 좋을 텐데. 결국 사람이 만든 것이니 아름다운 신전은 다시 받아들인 신을 모시기 위해 사람에 의해 다시 사용될 뿐이다. 만사가 그저 쓰일 뿐이다. 더위와 갈증으로 그라니따를 사들고 광장에 앉아 사람들이 오가는 것을 구경하고 성당 담너머에 열려 있는 레몬을 구경하고 이탈리아 남자와 한국 여자 부부와 딸의 모습도 보았다. 마침 성당에서는 결혼식을 하였는데 이븐 웨딩카에 여성분들이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4-16 두오모 성당.jpg

<사진 이동희>

 

두오모 성당 옆으로난 길을 따라 바다 쪽으로 걸어가면 아레투사의 샘이 나온다. 바닷가에 접해 있는 이 샘은 아르테미스의 시녀인 아레투사가 그녀의 아름다움에 반해 쫓아 가던 알페이오스를 피해 도망치다 아르테미스의 도움으로 알페이오스를 피했지만 이곳에서 샘물로 변하였다고 한다. 바닷가에 접해 있음에도 이 곳에서는 맑은 담수가 흘러나온다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기라도 하듯 민물 잉어를 풀어 놓고 오리가 살고 있다. 또한, 이집트의 고대 종이로 사용되었던 파피루스가 샘 중앙에서 가득이 자라고 있었다. 샘물로 얼굴을 씻어보고 싶으나 깊어서 다가갈 수는 없었다. 아레투사의 샘을 보고 시라쿠사 해안을 돌아 숙소로 가는 버스로 향했다. 시라쿠사 해변에는 낚시하는 사람과 정박한 배들이 해질녘 황금빛 노을에 젖어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을 만들고 있었다.

 

4-17 아레투사의 샘.jpg

<사진 이동희>

 

일행 중 구본형 선생님과 8기 연구원들은 오르테지아에서 저녁을 따로 먹고 들어오기로 하고 나머지 사람들은 버스로 숙소로 들어왔다. 숙소는 수영장이 딸려 있어서 식사 후 수영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저녁 식사는 파스타와 황새치 통살 튀김이 나왔다. 현지 맥주와 곁들여 먹으니 그 맛이 또한 색달랐다. 나중에 알았지만 황새치 요리는 이곳의 지방음식으로 유명하였다. 식당에서 좌경숙 선생님과 최명애 선생님과 같이 저녁을 같이 먹게 되었는데 살아온 얘기며 좋은 말씀들을 많이 나누어 주셨다. 열린 마음을 갖고 대화하면 늘 마음이 따뜻해진다. 특히 최명애 선생님은 여러 가지 경험이 많으신 것 같고 지금도 현역으로 일을 하고 계신다고 한다. 힘드실 것 같기도 한데 빡빡한 여행 일정을 잘 소화하시는 것을 보니 여행도 체질이신 듯하다. 저녁을 먹고 밖을 보니 풀장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써니 누님, 로이스 누님, 은별씨, 귀담, 규담와 같이 수영을 하고 있었다. 일단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풀장에 뛰어 들어 수영을 같이 즐겼다. 나중에 온 재동형님은 수영이 좀 서툴러서 애만 쓰다 이내 풀장 밖으로 나가서 들어오질 않는다. 승호형님, 하수형님을 포함해서 조촐한 와인 파티를 하며 담소로 시간을 보내었다. 활화산인 에트에서 출발하여 고대 그리스 극장과 로마 원형 극장 디오니소스의 귀를 거처 시라쿠사까지의 짧지 않은 하루 여행의 밤은 그렇게 저물어 갔다.

 

프로필 이미지
2012.08.28 18:48:41 *.90.175.137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해주는 여행기,,, 감사합니다 ^.^

프로필 이미지
2012.08.28 23:21:36 *.70.146.41

피아차 아르메리나

 

여섯째날: 8 9 (1/3)

 

어제까지 하루에 3곳을 둘러보는 강행군을 마치고 오늘 부터는 좀 여유 있는 일정이라 마음이 놓였다. 평소 9시 출발에서 10시 출발로 한시간 늦춰졌고 빌라 로마나를 둘러보고 피아차 아르메리나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아그리젠토로 향하기로 하였다. 시칠리아 도착 후 지금까지 서북쪽 끝인 팔레르모에서 동쪽 모퉁이를 해안 도로를 돌아 타오르미나를 거쳐 시라쿠사까지 왔었다. 모두 해안도시이고 바다의 아름다움을 안고 있었다. 오늘 보게 될 피아차 아르메리나는 시칠리아 내륙 중심에 있는 색다른 곳이다. 이 곳으로 가는 길은 역시 밀밭과 오랜지, 올리브 나무가 많이 있었다. 대부분의 땅은 농업에 사용되고 있고 산업 시설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난 빌라 로마나로 직행하는 줄 알았는데 갑자기 피아차 아르메리나 마을 중심에 차를 세우고 점심 자유식을 먹으로는 소리에 다소 당황했다. 얼떨결에 내려서 주위를 둘러 보니 나라씨가 같이 라면으로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한다. 오늘은 그렇고 싶지 않은데! 난 딱 잘라 거절하지도 못하였지만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우선 사진을 몇 장 찍고 장소를 이동하려고 하는데 나라씨는 한복을 입고 가져온 물건들을 펼쳐서 장사를 하려는 모양이다. 난 이런 부분은 익숙하지 않아서 그만 그 자리를 떠나 두오모 성당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원하는 일이 다르면 어쩔 수 없이 다른 길을 가야 한다. 앞에는 구본형 선생님과 써니 누님이 같이 걸어 가고 계셨고 나는 뒤를 따라 두오모 쪽으로 향했다.

 

5-1 피아차1.jpg

<사진 이동희>

 

두오모 성당 바로 앞의 Floresta 거리에 도달했을 때 앞에 가시던 구본형 선생님과 써니 누님 그리고 김영훈 형님 가족, 재동형님께서 돌아 나오며 식당을 찾고 있었다. 마침 구본형 선생님께서 골목 옆 문에 레스토랑이라고 젹혀 있어 들어가려는데 주인 여자분이 문을 잠그고 나오던 참이 었다. 피자나 파스타 되느냐 점심을 먹으려고 한다고 영어로 이야기하니까? 잘 알아듣지 못하는 듯하면서 피자는 길 밖에 나가면 다른 식당에서 한다고 손짓으로 알려 주었다. 파스타가 되느냐고 물으니 자기 식당에서 된다고 하였다. 우리는 냉큼 그러면 점심 달라며 다짜고짜 들어가자고 하였다. 나가던 주인장은 다시 들어와 주문을 받게 되었는데 메뉴를 봐도 감이 잘 안오는데 일만 구본형 선생님께서 스파게티를 시켰다. 여기서 잠깐 영훈 형님께서 가져온 컵라면을 먹겠노라고 뜨거운 물을 달라고 영어로 몸짓으로 하니 겨우 알아 듣고 물을 끓여다 주겠다 한다. 물은 한솥은 끓여 왔는데 아이들 먹을 것 빼고 두 개정도 만들어서 나누어 먹었다. 오 이 맛이야 그동안 그리웠던 한국의 맛은 컵라면 안에 고스라니 배여 있었다. 큰 받침 접시에 라면을 부어 나누어 먹고는 그 큰 접시의 라면 국물을 들어서 마시는데 그 맛이 일품이었다. 맛있고 유쾌하게 라면을 쓱싹하고는 공모가 시작되었다. 이 좋은 레스토랑에서 컵라면으로 접시를 더럽히다니 주인장 기분이 상할까 잽싸게 휴지로 모두 접시를 싹싹 닦아 놓았다. 음 우리는 아무것도 먹은 것이 없는거야 라며 시치미를 뚝때고 있는데 시킨 파스타가 나왔다. 조개살로 만든 스파게티였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재첩과 크기와 맛이 매우 비슷하였다. 다들 한국에서 재첩으로 스파게티하는 이탈리아 레스토랑을 만들자며 너도나도 이야기 꽃을 피웠다.

 

<사진 이동희>5-2 피아차 점심.jpg

 

띠리리 띠리리 나라씨다. “오빠 어디야! 라면에 점심먹을 건데?,” “그래 난 지금 다른 분들하고 성당 근처 식당에서 밥먹고 있다.” “어 알았어약속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랑 점심을 먹겠다고 작정을 하고 있었나? 아무튼 살짝 미안해지지만 전을 피고 같이 물건을 팔고 있을 수는 없기에 따로 가기로 선택하였던 것이다. 알고 보니 나라씨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맥주를 시키고 점원 아가씨와 친해진 뒤 뜨거운 물을 달라고 해서 컵라면을 데워서 나누어 먹었다고 한다. 역시 이 분야에서는 탁월한 소질을 가졌다. 그렇게 정말 맛있는 점심을 먹고 다시 떠나는 버스를 타기위해 헤어졌던 장소로 다시 내려갔다. 우리가 타고 가는 버스가 정말 은하철도 999  같다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시간되면 차장이 나와서 빨리 오라고 연신 시계보면서 철이와 메텔을 기다렸지 않는가? 오늘 난 철이가 되어 버스에 오른다. 자 이제 빌라 로마나로 출발이다.

 

 

프로필 이미지
2012.08.29 05:35:45 *.70.146.41

빌라 로마나

 

여섯째날: 8 9 (2/3)

 

버스에 내리자 점심을 지난 오후 햇볕은 뜨거웠다. 여행의 중반부를 지나면서 약간의 피곤이 쌓였는지 다들 앉기 바쁘다. 그늘에 있으면 그나마 바람이 약간 불어 견딜 만하다. 빌라 로마나는 700년 전에 만들어진 아주 오래된 저택인데 모자이크가 일품이고 당시의 건물의 배치 및 용도가 잘 드러나게 만들어져 있었다. 역시, 목욕탕은 대단하게 지어져 있었다.

 

5-3 빌라 로마나1.jpg

<사진 이동희>

 

박제의 책 신화의 섬 시칠리아에서 방마다 넣은 모자이크에 대한 설명이 아주 자세히 나와 있는데 그 모자이크 그림들을 실제로 보니 감흥이 새롭다. 비키니만 입고 있는 여성들의 운동하는 그림은 현재의 모습이나 다를 바가 없을 정도이고 다양한 이야기 중 오디세우스가 에트나 산 어딘가에 있는 폴리페모스 동굴에 갇힌 오디세우스가 폴리페모스에게 포도주를 바쳐 술이 취하게 한 뒤 동굴에서 빠져 나온 얘기를 표현한 것도 있다. 빌라 로마나에 많은 그림들이 모두 모자이크로 바닥에 만들어져 있는데 이 정도로 해놓고 살려면 대단한 위세가가 아니고는 어려울 것이다. 위대한 예술을 탄생시키는 것은 그 만큼 많은 사람의 피와 땀을 대가로 치러야 한다는 것이 새삼 상기된다. 후원없이 예술가는 성장하기 어렵기는 예나 지금이나 마찮가지다.

 

<사진 이동희>

 5-4 빌라 로마나2.jpg

빌라 로마나가 던져준 것은 질문은 뭔가? 넌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가? 현세에도 이런 집을 만들고 살아가는 것이 옳은가? 왜 근대에는 이런 집들이 만들어지지 않는가? 앞으로 이런 아름다운 집이나 구조물 또는 예술품은 만나기 어려운가? 예술이 특정 계층에서 소비되던 시절이 지나고 일반인에 위해 또 일반인을 의해 소비되는 요즘은 예술의 방향이 달라져서 어쩌면 고대의 예술품이 만들어지는 시대는 다시는 오지 못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빌라 로마나 감상을 끝내고 나오는데 아코디언 소리가 포함된 음악이 나오는 곳이 있어서 모두 그 쪽으로 하나 둘 모이기 시작했다. 야외 쉼터 옆 한 켠에 마련된 자리에서 시칠리아인 한 분이 음악을 직접 연주하고 있었다. 우리가 음악을 청하자 여러 가지 음악을 연주하여 주었는데 그 흥에 못이겨 우리는 나가서 춤도 추고 기차 놀이도 하고 현지 관광객들과 같이 어울려 춤을 추기도 하였다. 옆 건물에서는 기념품과 식음료를 팔았는데 카페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나중에 나와서 인사하게 되었는데 연주자의 딸이라고 하며 방학이라 잠시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이 아저씨도 독일에서 지금처럼 연주도 하고 음악하면서 음반도 내었는데 나이들어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저녁에는 다른 일을 하고 있고 낮에는 별도 보수를 받지는 않고 사람들이 주는 돈으로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한 개인이 열정을 갖고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데 뭐가 필요할까? 그저 자기 즐겁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될 것 같은데. 이분은 그렇게 살아 온 것 같은데. 난 무엇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이런 질문 들과 함께 막연한 부러움이 생긴다. 우리는 한바탕 신나게 놀고 젤라또와 카페를 즐긴 후 오늘 저녁을 먹을 신전의 도시 아그리젠토로 향하였다.

 

5-5 빌라 로마나3.jpg

<사진 이동희>

 

 

프로필 이미지
2012.08.30 00:15:26 *.70.146.41

아그리젠토 저녁

 

여섯째날: 8 9 (3/3)

 

아그리젠토로 진입할 때 언덕 위에서 헤라클레스 신전이 보이기 시작했다. 와 진짜 신전이 보인다. 신전이 이런 것이었구나! 차가 돌아서 내려가는 바람에 잠시 봤지만 머리에 쏙 들어오는 것이 시라쿠사의 아폴론 신전과는 규모나 원형이 보존된 상태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호텔에 짐을 두고 모두 화려한 저녁을 위해 옷을 갈아 입고 꽃단장을 새로 하고 나오는 모양이다. 아무 생각없이 방을 나와 버렸던 나는 호텔 로비에서 한참을 기다렸다가 서서히 모이는 사람들과 같이 신전이 보이는 아그리젠토 저녁 장소로 향했다.

 

 

5-6 아그리젠토 저녁1.jpg

<사진 이동희>

 

저녁 장소는 진입부터 범상치 않았다. 멀리 신전들이 언덕에 놓여 있고 저무는 해를 받아 온통 황금색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 곳은 모든 것이 황금색이다. 땅도 집도 들도 신전도 노을 햇볕에 황금으로 물든 만찬 장소로 우리는 천천히 들어섰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 수 없지 않는가? 사람들을 불러 놓고 예술사진 한 장 찍어보자고 설득해서 벽에 기대게 하고 사진을 찍어 나갔다. 레몬이 제일 맵시가 좋아 모델로 선발하고 황금색 벽을 배경으로 담쟁이와 문을 포인트로 멀리 헤라클레스를 동경하는 레몬! 뭘 동경하는지는 모르겠고 아무튼 찰칵! 그리고 나서 헤라클레스를 응시하며, 다이아네이라가 되어 헤라클레스가 딴여자를 만나나 안만나나 지켜보는 듯 도도하게 서있는 레몬! 살짝 무서워지네 

 

5-7 아그리젠토 저녁2-1.jpg

<사진 이동희>

 

모두들 황금빛의 저녁 노을이 아까운지 너도 나도 사진 찍는데 정신이 팔려 있는 사이 만찬장 안으로 모두 호출을 받고 들어섰다. 아늑한 언덕 위 식당에서 가장 가까이 보이는 신전은 헤라 그 다음 콩코르디아, 마지막으로 헤라클레스가 보였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아 멀리서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이렇게 전망이 좋은 곳의 식당을 어떻게 예약을 할 수 있을까? 알고 보니 오기 전 주세페의 도움으로 원래 가려고 했던 식당에서 이곳으로 변경을 한 모양이다. 정말 버스 운행도 모자라 이렇게 환상의 저녁까지 선물해준 주세페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아저씨 사랑해요!

 

5-7 아그리젠토 저녁2.jpg

<사진 이동희>

 

우리는 모두 모여 앉아 이탈리아 시간으로는 좀 이른 저녁을 시작하였다. 몰라도 우리가 늦게 도착했으면 식당 주인은 매우 싫어했을지 모르겠다. 우리가 나갈 즈음에도 손님으로 식당을 그득그득 했고 새로 손님들이 속속 도착하고 있었다. 저녁은 바지락 스파게티와 레몬즙을 곁들인 오징어 튀김으로 와인과 함께 맛있게 먹었다. 최명애 선생님께서 모든 여행자의 고단한 휴식을 위해 와인을 쏘시며 흐뭇해 하셨다. 역시! 예술이다.

 

식사가 시작되기전 이렇게 멋진 연수 코스를 만들고 살뜰이 챙겨주신 로이스 누님이 너무 고마워 정말 멋진 사진 찍을 마음으로 모델을 서달라고 요청했다. 잘나와야 될텐데. 어떠세요? 괜찮으신가요?

 

5-11 로이스.jpg

<사진 이동희>

 

시칠리아에 와서 느낀 점은 음식이 단순하다는 것과 일품요리는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와인과 같이 먹으면 그 맛이 100배는 좋아진다. 그래서 이탈리아 사람들은 와인을 술이라 생각하지 않고 음식이라 생각했나 보다. 프랑스 음식도 메디치가의 딸이 프랑스 왕가로 시집갈 때 데리고 간 요리사에 의해 생성 발전하였다고 하듯이 와인 또한 그러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프랑스는 무엇이든 포장하고 의미 부여를 과도하게 하는 반면 이탈리아는 무엇이든 그 자체를 즐기려고 하는 태도가 강한 듯하다. 이탈리아 인의 삶도 그러한가? 음식을 즐기는 식당의 이탈리아 손님들도 저녁을 즐기느라 우리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나 보다. 단 우리가 노래를 잠시 부를 때를 빼고는. 아그리젠토 신전을 바라보며 먹은 그날의 저녁은 황금 궁전의 만찬이었다.

 

5-9 아그리젠토 저녁6.jpg

<사진 이동희>

 

 

5-10 아그리젠토 저녁7.jpg

<사진 이동희>

 

 

프로필 이미지
2012.08.30 22:44:28 *.70.146.41

아그리젠토 신전

 

일곱째날: 8 10 (1/3)

 

반짝 반짝 오늘 아침도 맑음. 여행을 떠나온 뒤 비를 구경한 적이 없다. 정말 맑은 날씨다. 구름 찾기가 더 힘들 정도다. 시칠리아의 여름은 햇볕이 뜨거운 반면 건조하여 그늘에서 쉬면서 바람을 맞으면 약간 시원해진다. 하지만 여행자의 걸음은 오늘도 햇볕으로 뜨거워지고 등에는 땀이 흐른다. 오늘은 드디어 헤라와 헤라클레스를 만나는 날이다. 헤라는 제우스의 부인이다. 헤라클레스는 제우스와 알크메네 사이에서 낳은 아이다. 헤라 입장에서는 낳아온 자식인 셈이다. 그것도 반신 반인으로 말이다. 이런 헤라클레스를 헤라가 좋아할 리가 없다. 그런 헤라와 헤라클레스의 신전이 이렇게 나란히 언덕에 자리하고 있는 이유는 멀까? 아직도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 헤라클레스가 네소스의 독이 묻은 옷을 입고 살이 타들어 가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스스로 불에 타 죽게 되는데 제우스는 헤라클레스의 영혼을 하늘에 올려 별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이후 신이 된 헤라클레스는 헤라의 딸인 헤베와 결혼하였다. 결국 헤라와 헤라클레스는 서로 화해한 사이인 것이다. 헤라클레스는 헤라 + 클레오스가 합쳐진 이름이다. , 헤라의 명예로 풀이되니, 헤라클레스는 헤라의 명예로운 존재였던 것이다. 12업을 해결하고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자식과 처를 죽인 죄를 용서받게 되는 헤라클레스는 전형적인 영웅 탄생의 길을 걸었던 대표적인 신이다. 단군의 후예 100일차 프로그램에서 배운 영웅의 길을 이곳에서 만나게 되었다.

 

6-1 헤라의 신전.jpg

<사진 이동희>

 

헤라는 제우스의 누이이고 아내인데 그리스 신화는 계보가 좀 복잡한 면이 있지만 받아 들이기로 한다. 헤라는 결혼과 가정의 여신으로 숭배 받았다. 에트나 근처에서 대장장이 일을 하고 아름다운 여신인 아프로디테를 아내로 맞이한 헤파이스토스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난 생각해 본다. 고대 그리스인들이 시칠리아에 와서 시라쿠사에 아폴론과 아테나를 모시고 건강과 전쟁에서의 승리를 기원하고 저승을 지배하고 에트나 화산아래 존재하는 하데스를 두려워하며 가정을 꾸리고 열심히 용기를 갖고 살기 위해 헤라와 헤라클레스를 모신 것은 아닐까? 헤라클레스의 뒤에는 제우스 신전이 부서진 채 잔해만이 남아 있는 것을 보니 이 곳에는 많은 신전을 짓고 그리스에 필적하는 또 하나의 그리스를 만들고 살았던 것같다.

 

6-2 그리스 신화 이야기.jpg

<사진 이동희>

 

구본형 선생님의 헤라와 헤라클레스에 역긴 다양한 이야기를 말씀해주시며 신전의 도시 아그리젠토를 마음껏 즐길 수 있게 길잡이가 되어 주셨다. 올리브 나무 아래서 구본형 선생님께 직접 그리스 신화를 듣는 것은 머리 위 올리브 나무에서 잘 익은 올리브를 방금 막 따먹는 것같이 신선하게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았다. 이제 신전은 나의 마음 속에서 늘 나의 미래를 위한 신탁을 내려 주실 것이다.

 

 

6-3 남지중해를 바라보며.jpg

<사진 이동희>

 

구본형 선생님의 맛깔 나는 설명을 듣고 우리는 헤라클레스의 신전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가는 길에는 옛날 성명에 구멍을 내어 매장을 하였던 곳을 보게 되었는데 무덤 그 자체로 보면 위치가 참 좋아 보였다. 묻힌 자는 없지만 죽음이라는 인간으로서 벗어 날 수 없는 삶의 귀로를 걷는 느낌을 들게 하여 빠른 걸음으로 앞선 사람들을 따라 갔다. 그러던 중 마침 멀리 바다가 보이는 자리에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멀리 지중해를 배경으로 폼 잡아 보세요! 소풍님의 양산 소품이 옷 색깔과 잘 맞으면서 멀리 바다 색을 표현해서 황금색 땅과 잘 대비되어 최고입니다. 제 사진은 어때요? 로이스 누님이 찍어줬답니다.

6-6 콩코르디아.jpg

<사진 이동희>

 

헤라클레스 신전으로 가는 길에는 콘코르디아 신전이 있었다. 이 곳은 건물의 외형이 그대로 거의 유실되지 않고 유지되어 있어 신전의 웅장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콘코르디아를 지나 헤라클레스 신전으로 향할 때 나는 문뜩 여신을 발견하였다. 그러는 즉시, 사진기를 눌러 대었다. 레몬님은 오늘도 내 모델 중에 최고입니다. 오늘은 해바라기 같네요! 귀담이는 아름다운 꽃을 사랑하는 아폴론이 될 기질이 다분한 것 같아요. 그리고 제주가 좋아요. 사진기를 맡겨서 이것저것 찍어보라고 가르쳐주면 언제 배웠냐는 듯 금방 사진을 찍네요. 기특한 아이는 방송반에 들어갔다고 하는데 들려주는 얘기가 조금 배우면 어렵지 안다며 대수롭지 않게 얘기한다. 애들은 자기가 잘하거나 특별한 것을 가지면 부풀려 말하는데 이 아이는 이미 어른 같은 말을 한다. 나 같아도 그렇게 말하지는 못할 것 같은데. 되려 부럽다. 귀담이는 헤라클레스가 될지도 모르겠다. 그런 대범함이 그리고 겸손함이 이 아이의 마음에 흐르고 있다. 무지하게 더운 날씨를 뚫고 헤라클레스 신전까지 가기에는 거리가 멀고 태양이 너무 뜨겁다. 길수님, 셀리님, 재용은 그렇게 그늘에서 쉬고 있었다. 내가 다가가 바람아 불어라 하니 바람이 확 불면서 모두 바람을 노래하며 바람을 맞아 들인다. 그래! 난 여기서 헤라와 헤라클레스를 만났다. 그리고 바람에 춤추는 님프들도 같이!

 

6-4 아그리젠토.jpg

<사진 이동희>

 

콘코르디아 신전과 대비되게 헤라클레스의 신전은 그 이름에 걸맞지 않게 많이 훼손되어 있었다. 기둥 8개만이 우두커니 서있는 것이 헤라클레스가 네소스의 옷을 입은 뒤 고통을 참을 수 없어 스스로 불 속에서 자살한 것과 같이 신전은 타다 남은 헤라클레스의 잔해같이 그렇게 그곳에 쓰러져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떤가 헤라클레스는 죽어서 신이 되었고 여신과 결혼하여 잘살았다. 바티칸 박물관에서 본 방망이와 네메아의 사자 가죽을 두른 헤라클레스가 신전에서 나와 죽어야 산다말을 전해주는 듯하다. 오늘 나를 죽이지 못하면 나는 새로운 나를 만나지 못하리라! 다시 태어나는 나를 경험하며 평생을 살아보리라!

 

6-5 헤라클레스를 상상하며.jpg

<사진 이동희>

 

 

프로필 이미지
2012.08.31 20:42:19 *.70.146.41

일곱째날: 8 10 (2/4)

 

신전의 계곡에서 그리스 신화를 흠뻑 즐기고 터키의 계단으로 향하기 점심을 먹기로 하고 아그리젠토 시가지로 발길을 옮겼다. 우리는 버스 터미널에 내려서 자유시간을 갖기로 하고 무리 지어 흩어졌다. 구본형 선생님께서 홀로 전망 좋은 식당을 찾아 슬슬 발걸음을 옮기시고 나라씨는 또 한복을 입고 어딘가로 가고 있다. 콩두씨가 나라씨를 챙기마하고 난 선생님 쪽으로 발길을 옮겼다. 약간 언덕진 곳으로 향하였는데 식당이 있을 것 같지 않은 동네가 나왔다. 몇몇 분이 선생님과 동행하여 떠나고 난 옷 가계에 들러 딸 옷을 보다 살 것이 없어 나와 거리를 걸었다. 그냥 동네 마실 나온 할아버지처럼 어슬렁 어슬렁 걸으며 따가운 햇볕을 피하고 쉴만한 곳을 찾아 다녔다. 마침 아침에 호텔에서 만들어 온 샌드위치가 있어 동네를 거닐며 한입씩 즐겼다. 내가 만들었지만 잘 만들어서 맛이 좋았다. 나름 시간도 벌고 구경하기 좋았다.

 

6-7 아그리젠토 점심1.jpg

<사진 이동희>

 

발걸음을 옮겨 멀리 언덕쪽으로 걸음을 옮기니 신전의 계속에서 보이던 바닷가가 보였다. 안쪽 길은 아름드리 벤자민 나무가 긴 터널을 만들어 주어 뜨거운 오후임에도 그늘진 시원한 거리를 만들어 주었다. 길을 느긋하게 걷고 있는데 건너편에서 써니 누님 일행이 벤치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다가가서 보니 햇반에 고추장 비빔밥을 해서 나누어 먹고, 컵라면에 생수를 부어 햇볕에 끓이겠다고 길가 양지바른 곳에 올려 두었다. 우와 고추장 비빔밥은 맛이 일품이었고 라면은 차마 얻어먹기에 양이 적어 군침만 삼켰다. 타향에서는 언제나 고향 것이 반갑다 그것이 컵라면이고 흔한 고추장일 지라도. 이렇게 점심을 먹고 바다 풍경을 즐기고 다시 버스 터미널로 향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바다 수영을 하게 될 터키의 계단으로 갈 예정이다.

 

6-7 아그리젠토 점심2.jpg

<사진 이동희>

 

 

프로필 이미지
2012.09.03 23:56:27 *.70.146.41

터키의 계단

 

일곱째날: 8 10 (3/4)

 

버스는 어느덧 해변에 다달았다. 높은 언덕 윗길에 주차를 하고 걸어서 내려가야 할 판이다. 우선 사람들이 내린 뒤 몇몇 남자들이 남아 수영복으로 갈아 입고 일행을 뒤따라 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내린 바로 앞은 파도가 낮은 곳으로 파라솔을 쫙 펼쳐놓은 해수욕장이었다. 어디에도 하얗게 반짝이는 터키의 계단 명물이 보이지 않았다. 앞사람들의 뒤를 쫓아 해안 길을 돌아 가니 멀리서 사진 속에서만 보던 터키의 계단이 보이고 긴 해변에 물놀이를 하는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우리 팀은 파라솔 4개를 빌려 가방과 옷들을 보관하고 모두 바다 속으로 첨벙 첨벙 뛰어 들었다.

 

6-7 터키의 계단2.jpg

<사진 신재동>

 

바닷물은 체팔루에서 본 것과 달리 흐렸다. 이유는 이곳이 석회암 지대라 석회암이 물에 녹아 약간 부옇게 흐리고 있었다. 우리는 앞으로 앞으로 발이 닿는 한 멀리 나가 보았다. 거의 100m 이상을 걸어 나갔는데도 가슴 정도 밖에 깊지 않았다. 그야 말로 해수욕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조건인 것이다. 와 하고 달려가서 제일 먼 곳에 한 무리 지어 멀리 지중해에서 다가오는 파도를 맞았다. 난 지중해의 한 가운데 시칠리아 섬의 터키의 계단 해변에 몸을 담그고 있다. 다소 실감이 나질 않을 만큼의 충만감은 내리 쬐는 태양 빛만큼 선명하게 다가왔다. 파도는 멀리서 1.5m 이상 높게 밀려 왔다. 우리는 모두 파도가 밀려 오면 파도가 온다고 외치며 고함을 치며 파도를 반겼다. 한 사람씩 들어서 물에서 뛰어들게 하고 신나게 노니 시칠리아 시칠리아 사람들도 같이 신이나서 파도를 맞으며 흥겨워 했다. 내가 즐거우면 내 옆에 있는 사람이 즐거울 수 있고 우리가 즐거우면 모두가 즐거울 수 있다. 그 사람이 누가 되든! 난 그렇게 즐겁게 살고 있지는 않았는데 그 즐거움이 뭔지 난 기억할 수 있다. 이 기분이 즐거움이라면 난 마흔에 또 하나의 즐거움을 찾은 거다. 와 즐겁다. 이 곳 해변에서는 사진기를 들고 가지 않았다. 왜 놀려구! 정말 잘한 일이다. 

6-7 터키의 계단4.jpg

<사진 신재동,  세린>

 

석회암 언덕은 매끈한 하얀 석회암으로 매우 신기한 곳이다. 구불 구불한 줄무늬를 가진 언덕을 오르면 반대 편 해안이 둘려쳐 보이는 가파른 언덕에 다다른다. 잠깐 정신줄을 놓으면 수십m 아래로 떨어지는 놀라운 곳이다. 놀라운 경치를 구경하고 있는데 어서 집에 가라고 하는지 석회암 모래 가루를 동반한 세찬 바람이 계속 분다. 경치는 좋은데 바람이 많이 불어 눈뜨고 서있기 어려울 정도다. 이 곳 사람들은 이 석회암을 문질러 가루를 만들어 몸에 바르고 맛사지를 한다. 우리의 보령 머드 축제처럼 하얗게 마른 석회가루를 뒤집어쓴 사람들이 눈만 까맣게 하고 우릴 보면 웃어준다. 해질 무렵에는 바람이 거세지고 파도가 높아져서 사람들이 모두 해안으로 나왔다. 마냥 좋을 줄 알았던 바다는 본색을 보이려는 듯 높은 파도로 우리를 물리고 자기들만의 밤을 준비하는 듯하였다. 이내 우리도 짐을 싸서 쫓기듯 이 곳을 떠나야 했다. 터키의 계단에서의 수영은 그 어느 해변에서의 수영과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 내게 선물해 줬다.

 

 

프로필 이미지
2012.09.05 20:48:23 *.35.252.86

모델급 비키니 미녀와의 해변에서의 시간은

 '그 어느 해변에서의 시간과도 비교할 수 없는 즐거움'이 되었겠죠~~ ㅋㅋ

왕 부럽삼!!

프로필 이미지
2012.09.04 01:39:36 *.70.146.41

돈나푸가타, 와인 시음회

 

일곱째날: 8 10 (4/4)

 

우리는 터키의 계단을 떠나 오늘의 마지막 여정인 돈나푸가타 와이너리의 연례 와인 시음회로 향했다. 이 곳에서는 포도의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밤에 포도를 딴다고 한다. 오늘은 그 첫 수확을 기념해서 포도 수확을 TV로 생중계하고 이를 기념하여 와이너리에서는 주민들을 초청해서 와인 시음회를 갖는다고 한다. 처음 접하게 될 와인 시음회라 마음이 설렜다. 돈나푸가타는 터키의 계단에서 멀리 떨어져 버스로 가는 도중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SCIACCA에 들렀다. 이 곳은 시칠리아 남서쪽의 해안 마을이었다. 마침 저녁 노을이 아름답게 드리우고 있었고 마을은 축제가 있는지 일부 경찰들이 도로를 통제하고 있었다. 저녁을 먹으러 들렀지만 이 마을의 저녁 노을 분위기에 압도되어 사진을 우선 찍고 다시 마을 광장을 둘러 보았다. 몇몇 분은 광장 옆 간이 식당에서 음식을 먹고 한쪽은 과일 가게에서 수박과 토마토를 가득 사놓고 과일로 저녁을 먹었다. 밤이면 곧 축제가 시작될 것 같이 음향 시설을 분주히 만지는 기술자가 오가고 몇몇 사람을 벤치에서 축제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가한 저녁을 그렇게 저녁 노을 빛과 같이 지나가고 우리는 돈나푸가타로 출발하였다. 돈나푸가타는 Contessa Entellina에 있어 내륙으로 들어 갔다.

 

6-8 SCIACCA.jpg

<사진 이동희>

 

돈나푸가타2.jpg

<사진 이동희>

 

우리는 돈나푸가타의 포도원을 지나 양조장 앞에서 내렸다. 시음회라 참석한 사람들에게 와인잔을 나누어 주었다. 깨질까봐 목걸이와 같이 주었는데 목에 와인잔을 두루고 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모든 사람이 목에 와인잔을 매고 있는 것을 상상해보면 대략 감이 온다. 우리가 도착하기를 기다린 아시아 담당 책임자 줄리아 라짜리니 우리를 보자 환하게 웃으면서 맞아 주었다. 먼저 와이너리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돈나푸가타는 도망간 여인이라는 뜻으로 잘 알려져 있는 와이너리였다. 도망간 여인은 마리 앙투와네트의 친언니 마리아 카롤리나 왕비인데 오스트리아 공주로 이탈리아 부르봉 왕국 여인이었다. 권력에 관심이 없는 남편 페르디난도 4세를 대신해 섭정하였는데 프랑스 혁명 때 자기 동생이 단두대에서 처형당하고, 나폴레옹의 군대가 나폴리를 장악할 때 마리아 카롤리나는 시칠리아섬으로 도망오게 된다. 돈나푸가타 와이너리 주인 안토니오 랄로의 어머니인 가브리엘라가 마리아 카롤리나가 이 지역으로 도망온 것에 착안하여 와이너리 이름을 돈나푸가타로 지은 것이었다. 이 곳 와인 중 안틸리아는 레이블에 마리아 카롤리나 왕비가 눈물을 흘리며 머릿결을 휘날리는 모습이 담겨 있다.

 

6-10 돈나푸가타.jpg

<사진 이동희>

 

처음으로 우리는 포도원의 포도밭으로 안내되었다. 줄리아는 우리에게 포도를 직접 따서 먹어 보라고 하였다. 포도 품종은 Nero d’Avola로 이탈리아 품종이었다. 포도알은 작았으나 달고 상큼하였다. 우리가 즐겨먹는 포도들하고는 달랐다.

 

6-9 돈나푸가타.jpg

<사진 이동희>

포도를 맛보고 안내에 따라 와이너리를 둘러보는데 오늘 첫 수확을 생중계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포도 밭에서 촬영을 하고 있었다. 간단한 소개가 끝난 후 줄리아는 와인을 들고와서 나누어 주었다. 우리가 가서 마셔도 되는데 무척 친절하게 각 와인을 소개해주고 권하면서 매우 뿌듯해하고 있었다. 자기가 만든 것에 대한 자부심이 없으면 나올 수 없는 그런 표정을 짓고 계속 와인을 바꿔가며 나누어 주었다. 돈나푸가타에는 열종이 넘는 와인을 생산하기 때문에 하나 하나 맛보려고 하니 나중에는 맛을 차이를 느끼기 어려웠는데 그중에 우리는 밀레 에 우나 노테를 가장 맛이 좋다고 꼽았다.  사실 가격도 비싼 와인이었다. 밀레 에 우나 노테 2004년산에 계속 찾아가 마시니 주는 양이 자꾸 줄었다. 2004년 산은 판매되지 않는 와인이란다. 역시, 꾼들은 뭔가 있는 것들을 쉽게 찾나 보다. 그날 밤 우리는 아그리젠토의 신전의 영감과 지중해를 마음껏 즐긴 마음으로 돈나푸가타에서 시칠리아를 마음껏 마시고 즐겼다.

 

돈나푸가타.jpg

<출처 google earth>

 

시간이 너무 늦어서 이제 팔레르모로 시칠리아에서의 마지막 밤을 위해 출발하였다. 그런데 나가는 길이 말썽이다. 돈나푸가타 입구는 180도 회전해서 나가도록 되어 있는데 손님이 많아서 늦게 온 손님들이 길 양쪽에 차를 세우는 바람에 우리 버스는 회전해서 나갈 수가 없었다. 차가 나갈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해서 구본형 선생님은 물론 몇몇 분들과 같이 밖에 나가 포도밭 언저리에서 별을 보며 와이너리를 떠나는 아쉬운 마음을 달랬다. 사온 와인을 나눠 마시며 하늘의 은하수를 바라보면 또 하나의 즐거움에 빠졌다. 다행히 차가 빠질 수 있는 여건이 되어 우리는 늦었지만 팔레르모의 숙소로 돌아 올 수 있었다. 하루를 매일 오늘과 같이 산다면 살만한 인생이 따로 있지 않을 것같이 하루를 멋지게 즐겼다.

 

 

프로필 이미지
2012.09.05 20:54:26 *.35.252.86

은하수를 바라보면 기울이는 와인잔

상상만해도 낭만 그 자체네요~~!

"매일 오늘과 같이 산다면 살만한 인생이 따로 있지 않을 것 같은 멋진 하루"

나에겐 그런 날들이 언제 있었지? 있었던 적은 있었나?? 씁쓸해지는군요.

그래도 멋진 사진과 글을 통해 대리만족 하고 있어요 ^.~

프로필 이미지
2012.09.05 01:22:04 *.70.146.41

팔레르모

 

여덟째 날 8 11 (1/3)

 

 

시칠리아에서의 마지막 하루가 남았다. 인생에도 이렇듯 마지막이 있을 것이다. 시간은 그렇게 기다리지만 어느새 지나가 버린다. 오늘이 그 날이다. 많은 기대와 설렘으로 시칠리아의 팔레르모 항에 도착한지도 7일째가 되었다. 짧으면 짧고 길면 긴 시간인데 길 줄만 알았던 시간이 어느덧 마지막 시간이 되었다. 시칠리아에서의 일주일은 나에게 나의 인생으로 돌려준다는 거창하고 뜻모를 말로 시작했는데 이제 그 뜻이 뭔지 알 듯한데 떠나야 하는 시간이 되었다. 여행이란 이런 건가? 인생이란 이런 건가? 알 듯하면 떠나야 하는 그래서 늘 우리는 뭔가 모른 채 헤매고 찾고 그리고 그 순간의 즐거움과 행복을 모른 채 보이지 않는 또 다른 행복을 찾아 떠다니는 부초는 아닌지 조용한 팔레르모 아침에서 지난 일주일을 돌아본다.

 

7-1 팔레르모 두오모 성당.jpg

<사진 이동희>

 

오늘은 팔레르모의 두오모 성당, 카푸초 수도원, 몬레알레 성당을 보고 나폴리로 떠나기 위해 페리를 탈 예정이다. 아침은 호텔에서 간단한 빵과 음료로 해결해야 했다. 사실 좀 늦게 식당에 갔는데 여러 팀들이 이미 지나간 듯 음식들은 초토화 되어 있고 먹을 만한 것은 거의 없었다. 그 동안 맛있게 먹었던 음식들이 되려 감사할 정도로 아침은 소홀했다. 아 오늘 점심은 얼마나 대단하길래 아침을 이리 먹어야 하나? 우리는 그렇게 아침을 먹고 낯익은 팔레르모 거리를 지나 두오모 성당으로 향했다. 시칠리아의 각 도시는 두오모 성당이 모두 있다. 두오모 성당은 중앙 성당같은 의미인데 각 도시의 중심 지역을 나타내기도 한다. 팔레르모 성당에 들어서는 나는 하나 기억난 게 있었다. 오기 전 일주일간 협상하던 계약 건인데 개발한 제품의 해외 첫 상용화할 수 있는 기회였다. 조용히 앉아 난 기도하기 시작했다. 많은 동료들이 힘들여 개발한 제품입니다. 부디 수출하여 세계시장에서 성공하여 동료들의 고생에 보답할 수 있게 해주십시요. 7년전 이와 같은 기도를 오대산 상원사에서 108배를 하며 했던 기억이 있다. 그 때는 중국에 수출할 수 있게 기도했었는데 사정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 실패했었다. 그 동안 세월이 흘러 여러 가지 여건이 좋아 졌지만 금번 기회만큼은 꼭 해외 수출을 해보리라 다짐해 본다.

 

팔레르모 성당을 떠나 우리는 카푸초 수도원으로 향했다. 이곳은 박제의 신화의 섬 시칠리아 책에서 소개되었던 장소이다. 무엇보다 사람의 인골이 옷을 입은 채 벽에 걸려 있거나 선반에 뉘어 있는 상태로 보관되는 것이 매우 특이한 곳이었다. 사진 촬영은 금지되었다. 들어가서 보이는 곳 마다 사람의 시신들이 보이는데 전시회에 온듯하면서도 숙연해 지는 느낌이 들고 약간 섬뜩하면서 경건해지는 느낌이었다. 이 곳에는 어여쁜 딸을 일고 그 딸을 영구 보관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그 딸의 모습이 썩지 않고 보관되게 한 사람의 이야기가 같이 있다. 돌아보면 그 딸의 관과 보존된 딸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어 딸을 사랑하는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원래 이곳에 걸리거나 뉘여 모셔지기 전에 관에서 이곳 지하에 따로 장례를 치르게 되는데 지질의 덕인지 살을 고스라니 썩고 뼈만 남는다고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냄새가 나지 않게 살이 썩어 없어지기 때문에 옷을 입은 채 인골만 남아 이를 따로 모신다고 한다.

 

7-2 카푸초 수도원.jpg

<사진 셀리>

 

시칠리아 마지막 머무는 날 카푸초 수도원에 들리는 건 의미가 크다. 어쩌면 난 여기에 나를 묻고 가고 싶은지도 모른다. 그 동안 나를 괴롭혔던 많은 고민들 불필요한 습관들 욕심들 그리고 두려움들. 카푸초 수도원의 많은 앞서간 사람들이 내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일까? 마흔을 넘어선 나이에 너도 제대로 살아보고 가야하지 않느냐 하는 것이다. 이 곳에 묻힌 분들은 그나마 사회적으로 성공하거나 인정받거나 사랑받은 사람들이다. 기억되고 기리기 위해 이곳에 모셔진 것이다. 그들의 살아 생전의 이름과 함께. 시칠리아에서 나를 경험하고 나의 인생을 나에게 돌려준다는 거창한 말은 결국 이곳에 나의 과거를 묻고 오늘을 새로이 사는 것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프로필 이미지
2012.09.05 21:03:31 *.35.252.86

아직도 마지막날에 해당하는 2편 더 남아있는거죠?!

매일 매일이 한 폭의 그림처럼... 영화 장편처럼 멋과 맛이있네요.

 

무리한 일정으로 체력적으로도 힘드셨을텐데...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의미와 감동이 있는 여행이셨던 것 같네요.

담에 기회될 때 오프라인에서 일지에 다 풀어놓지 못한 비하인드 스토리 들려주세요 ^^

 

희동이님 여행기 읽으며 느낀 것이 정말 여행 특히, 유럽여행은

사전에 공부를 많이 하고 가야겠구나 라는 걸 새삼 느낍니다.

정말 아는 만큼 보이고 경험한 만큼 이해할 수 있는게 정답인듯~!

저두 변경연 여행에 조만간 조인할 수 있는 그 날을 꿈꾸며... 행복한 설레임으로 조금씩 준비해야겠어요 ^^*

프로필 이미지
2012.09.06 06:47:22 *.70.146.41

몬레알레 성당

 

여덟째 날 8 11 (2/3)

 

카푸초 수도원을 방문하고 다소 숙연해진 분위기 속에서 시칠리아의 마지막 방문지인 몬레알레로 향했다. 몬레알레는 팔레르모의 배후 도시로 농업이 발달하였다고 한다. 서울의 위성도시와 같이 팔레르모에서 멀지 않은 곳이다. 산 중턱에 위치한 몬레알레는 대성당으로 유명하다. 우리는 곧장 몬레알레 대성당으로 향했다. 성당에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푸근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눈에 힘을 빼고 부드럽게 약간 옆을 보는 듯한 이 그림은 이 도시와 잘 어울리는 부드러운 이미지를 나타낸다. 보통의 예수 그리스도는 뭔가 말하거나 보여주는 느낌을 주는데 이곳은 받아주는 느낌이 강하여 모두가 기도하면 이루어 질 것 같은 느낌이다. 잠시, 의자에 앉아 눈을 감고 마음을 모아 본다.

 

7-3 몬레알레 성당.jpg

<사진 이동희>

 

몬레알레 성당을 보고 나온 뒤 난 홀로 거리를 걸었다. 이제 여행의 마무리 시점이니 홀로 이 곳의 정취를 담아 가고 싶은 마음을 안고 성당 뒤편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 곳은 좁은 골목이 있고 잘 다듬어진 성당 뒤 모습을 옆으로 걷는데 지금까지 보지 못한 이쁜 기념품 가게를 발견하였다. 모자이크로 그림을 재현하거나 액세서리를 만드는 곳이었다. 할머니 한 분이 혼자 가게를 지키면서 직접 액자에 모자이크 돌들로 하나씩 하나씩 그림을 완성하고 계셨다. 화려한 색감으로 유명한 고흐의 작품을 모자이크로 만들어 놓은 것은 정말 환상이었는데 가격이 천유로가 훌쩍 넘어 감히 살 엄두가 나질 않았다. 이럴 때는 돈이 좀 아쉽다. 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기념품을 사지 못한 터라 모자이크로 만든 에트나 화산과 거울 그리고 시칠리아 지도를 샀다.

 

7-4 모자이크 기념품.jpg

<사진 이동희>

 

시칠리아 여행에서 에트나 화산은 역시 잊을 수 없는 큰 추억이고 영감을 주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에트나 화산을 작으나마 모자이크로 된 액자에 담아갈 수 있게 되니 두고 두고 이 곳을 추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시칠리아 섬을 모양으로 만든 것은 주요 도시와 화산은 다른 색으로 표시해서 붙인 것이 독특하고 이쁘다. 그리고 이 섬 사람들이 시칠리아 깃발에 넣은 Trinacria 모양의 기념품도 귀엽다. Trinacria는 다양한 모양으로 제작되는데 중앙에 있는 얼굴은 메두사이다. 메두사의 눈을 보면 돌로 변한다는 것을 알고 있듯이 메두사의 얼굴은 전쟁의 여신 아테나의 방패에 붙여져서 사람들의 두려움 샀는데 이 곳에서는 액운을 쫓아 준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또한 다리가 세 개나 붙어 있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Trinacria는 고대 로마시대의 시칠리아 지명이었다. 삼각형을 의미하는데 섬 모양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다리를 세 개 붙여놓고 삼을 표현하는 것이다. 시칠리아 어디를 가든 이 Trinacria는 볼 수 있는데 시칠리아에 정착했던 고대 그리스인 들은 시라쿠사에 아테네 신전을 짖고 모시고 많은 전쟁을 치른 것을 보면 그들을 지켜줄 메두사가 있는 아테나의 방패가 필요했으리라.

 

몬레알레를 떠나 점심을 먹기 위해 다시 팔레르모의 호텔로 이동하였다. 시칠리아에서 먹는 마지막 점심이라니 감회가 새롭다. 하지만 메뉴는 너무나도 특이한 엔쵸비 튀김과 해물 맛이 나는 파스타였다. 약간 비릿하지만 색다른 맛의 파스타 였다. 엔쵸비 즉, 멸치는 바삭하게 튀겨서 나름 먹는데 새로운 맛이었다. 주로 마른 멸치만 볶아 먹거나 국물을 우려 먹는 우리로서는 다소 의외의 음식임에는 틀림없다. 점심을 먹은 우리는 마지막으로 팔레르모를 둘러보기로 하고 막시모 극장 앞으로 향했다. 시칠리아에서 유일하게 두 번 방문하는 곳인데 역시 낯설지 않다. 몇몇 분과 신발 가게를 둘러 보다 소풍과 같이 살만한 센달을 찾아 둘러보다 찾지 못하고 그라니타를 주문해서 먹으며 마지막 시칠리아를 음미하였다. 저녁이 되어 우리는 팔레르모 항으로 가 올 때 탔던 페리에 다시 올랐다.

 

프로필 이미지
2012.09.06 07:05:55 *.35.252.86

이제 시칠리아 여행기는 마지막 한편을 남겨두고 계시는군요...

 

희동님의 여행 후기는 단군일지에 등재되어 있으니 두고 두고 생각날 때 마다 읽어봐야겠어요.

특히, 그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시칠리아 여행을 떠날 기회가 되면 사전 학습용으로다가... ㅋ

 

전 고대유적지나 미술관 등을 찾아 인사이트를 얻어오는  탐방성 여행보다는

주로 리후레쉬나 힐링 목적의 휴식성 여행을 선호하는 편인데

희동님의 글을 읽다보니... 새로운 문물을 접하고 그곳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그런 노력들 속에서 얻게 되는 활력과 에너지 즉, 다른 의미의 리후레쉬와 힐링도 가능하다고 느껴지네요.

 

바쁘게 돌아가는 일정, 그 속에서의 낭만과 에피소드.. 추억들 또 좋은 사람들

여행은 어디로 언제 떠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떤 사람들과 함께 하는가가 매우 중요한 것 같아요.

즐거운 추억 많이 만들고 오신 것 같아서 저도 덩달아 행복합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2.09.06 23:41:32 *.70.146.41

지중해의 잠 못 드는 밤

 

여덟째 날 8 11 (3/3)

 

배는 우리가 탄 후 곧장 떠나지 않았다. 무엇을 기다리는지 멀리 지는 해를 아쉬워하는 듯 배는머뭇 머뭇 그렇게 항구에 묶여 있었다. 바람도 잔잔하여 배는 더욱 미동도 하지 않았다. 무엇을 두고 온 듯한 내 마음도 여전히 팔레르모 항구 너머 시칠리아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오늘 내가 두고 온 이 땅은 무엇인가? 아직도 답은 없다. 그저 몇 일 관광차 들른 동양인의 한 사람 정도가 낯선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떠나기를 주저하고 있는 것인가? 나 답을 찾지 못한 채 물끄러미 바라보던 팔레르모 항 사진을 찍어 둔다. 마음에 새겨 놓기라도 하듯 셔터는 하나씩 하나씩 팔레르모 항의 풍광을 뜯어 내어 내 주머니에 한장씩 훔쳐 놓는다.

 

7-5 페리1.jpg

<사진 이동희>

 

시간이 되었는지 배가 스르르 움직이기 시작한다. 아 이제 정말 떠나는 구나. 이 시칠리아는 내가 찾아온 곳인데 이제 떠나는 곳이 되었다. 나의 마음을 붙들고 있는 것들 아직도 모르겠는 것은 다시 또 올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그런 느낌이 있는 곳에는 늘 다시 찾게 되는 인연이 생겼었다. 이곳 시칠리아도 그러한 것 같다. 다시 오리라 너의 진면목을 제대로 맛보기 위해 너를 모두 마시고 너를 모두 먹어 치우러 내가 다시 오겠다. 너의 진한 육수를 마시고 네가 빚은 포도주로 나의 영혼을 달래리다.  

 

시칠리아를 떠나는 마음은 저녁 시간이 되어 출출한 배를 더욱 못살게 굴었다. 배 안의 식당을 찾아 음식을 먹어 볼 요량으로 줄을 서서 차례 차례 음식을 고른다. 파스타, 비프 스테이크, 치킨, 감자 튀김과 맥주를 차려 놓고 그 동안 함께한 분들과 시칠리아를 떠나는 여운을 달래며 저녁을 먹었다. 해는 지고 노을에 젖은 팔래르모 항이 창문 너머 멀리 조금씩 조금씩 작아지고 있었다. 나는 탁자 위에 놓여진 카메라를 다시 잡고 갑판으로 나가 연신 눌러 대기 시작했다. 어쩌면 아쉬움에 울고 있는지도 이렇게 여행을 제대로 즐겨본 적이 있던가? 푸르른 하늘은 점점 황금 빛으로 변하다 붉어 졌다 어두워지면서 검게 변하고 있었다. 그럴수록 팔레르모 항의 불 빛은 내 마음 속 시칠리아의 추억처럼 선명하게 보였다.

 

7-5 페리3.jpg

<사진 이동희>

 

레스토랑에 모여서 이야기 꽃을 피우던 우리는 식당이 문을 닫을 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 시간이 12시쯤 이었다. 우리는 곧장 침실을 잡지 않은 사람들이 앉아 밤 여행을 하는 PUB으로 향했다. 자리를 마련하고 맥주를 사서 나눠 먹으며 밤을 즐기며 이야기 하였다. 그 때 모두 갑판으로 올라가자고 동의하고 모두 올라갔다. 하늘에는 은하수와 초승달과 샛별이 그림을 그리고 간간이 별똥별이 후두둑 떨어지곤 하였다. 터키 국기에 있던 그 초승달과 샛별을 이곳에서 그대로 보게 될 줄은 몰랐다. 마호메트가 하나님의 계시를 받은 날 밤 하늘에 초승달과 샛별이 있어서 이슬람에서는 초승달을 그들 알라의 상징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바람은 다소 세차게 불었다. 바람으로 치자면 태풍이라도 올 것같이 세게 불었는데 하늘은 너무나 평화롭고 바다는 검고 파도가 거세어서 배에서 비치는 불빛에 비치는 파도는 검은 손인 양 불쑥 우리를 잡아갈 듯 보였다.

 

8기분들과 구본형 선생님은 마지막 사랑 수업을 마치고 다 같이 올라와서 갑판 위에 담요를 깔고 모여서 누워 하늘을 구경하였다. 우리도 같이 옆에 누워 한참을 하늘을 보며 노래를 부르고 지중해 선상에서의 마지막 밤을 즐겼다. 그렇게 갑판 위에서 담요를 덥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꼬박 밤을 새었다.

 

프로필 이미지
2012.09.07 01:30:59 *.35.252.86

드디어.. 마지막 날?!

웬지.. 돌아오는 비행기에서의 몇가지 풍광들이 더 있을 것 같군요.

 아마도 이것이 끝이 아닌 듯 ㅋ

 

문뜩 궁금해졌는데... 갑판 위에서 누워 함께 부른 노래는 무엇이었나요?

밤배? O Sole Mio?? 사공의 노래???  그 곡들이 무엇인지 무~~~지 궁금해지는군요.

저도 함께였더라면.. 밤배와 서시 낭독을 했을 거 같은데 ㅋ

전에 S모사에 있을 때는 회식자리에서 저에게 건배제의 시키면 

대신  건배제의 대신 밤배나 보리수를 부르거나, 시 낭독을 하곤 했거든요 ㅋㅋ

 

정말 낭만적인 여행... 마지막 날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떠나오는 배의 풍광이

너무도 선연하게 눈 앞에 펼쳐지네요... 그 날 그 떠나가는 배 안에 저도 함께 있었던 듯...

 

좋은 글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남은 이야기도... 기대할게요 ^^

 

 

 

프로필 이미지
2012.09.07 22:49:01 *.35.252.86

희동이님!

 

이대로 끝은 아니겠죠?

The Sequel은 어디있나요?? ㅋ

프로필 이미지
2012.09.08 10:32:39 *.70.146.41

내일 올리겠습니다. ^^

프로필 이미지
2012.09.10 07:00:35 *.70.146.41

나폴리

 

아홉째 날 8 12 (1/2)

 

극한의 철야 밀담을 나눈 후 10분간 침대에 누었다가 배가 나폴리 항에 도착하는 바람에 짐을 싸고 배에서 내려야 했다. 이대로는 더 이상 여행이 불가능한 수준이다. 배에서 내리기전 나라의 행적에 대해 사람들이 또 찾는다 짐만 두고 내려라 한번 자리 잡은 마음은 쉽게 바뀌지 않는가? 아무튼 나라는 짐을 가지러 왔고 무사히 내렸다. 문제는 로이스 누님이 안오신다. 아 이게 왠일인가? 밤을 새고 방에 가서 깊은 잠을 자버린 것이다. 한참을 기다리다 찾으러 가려고 하는 찰라 허겁 지급 딸 은별씨와 배에서 나온다. 지금까지 우리를 인솔하고 챙기시던 분이신데 어제는 좀 무리를 하신 것이다. 살다 보면 이런 일 저런 일 다 있기 마련이다.

 

밤을 샌 터라 비몽사몽간에 신이사님이 안내하는 길로 마냥 걷기만 하였다. 옆으로 누오보 성을 지나고 있었다. 노오보 성은 13세기 앙주 왕가에 의해 사용되었다고 한다. 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산 카를로 오페라 하우스가 나왔다. 아주 오래된 그리고 매우 유명한 오페라 하우스를 무감각하게 지나치고 있다. 이곳에서 오페라 한편 정도는 봐줘야 되는데 아쉬움이 크다. 이태리의 건축물은 겉을 볼 때는 다양한 시대적 양식을 알아 보는 재미가 있지만 내부에 들어가서는 나름의 독특한 장식과 배치를 살펴보는 것이 또한 재미인데 나폴리에서는 새벽에 잠시 들렀다 가는 길이라 너무 아쉬움이 크다. 또한 맞은편의 겔러리아 움베르토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는 이른 시간이라 들어가 보지 못하였다.

 

8-0 나폴리.jpg

<사진 이동희>

 

계속 길을 걸어 우리는 큰 광장을 끼고 있는 Piazza Plebiscito와 예전의 나폴리 왕궁이었던 Palazzo Reale에 도착했다. 새벽이라 사람을 드물었다. 몇몇 사람이 개 여러 마리를 데리고 지나다니고 있다. 이 사람들은 개를 이용해 동정심을 사서 구걸을 한다고 한다. 광장을 지나 바다가 보이는 언덕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잠을 못 잔 탓에 현기증이 나서 휘청거리며 바닷가 근처로 갔는데 멀리 보이는 곳이 산타루치아 라고 한다. 노래로만 들었던 그 항구 이름인데 이곳에 있었다니 시칠리아 여행이라 나폴리는 다소 소홀하였던 부분이 아쉽다. 나폴리에서는 가볼 곳이 매우 많다고 들었다. 누구나 알고 있는 봄페이, 카프리 섬 이런 곳들도 다녀와야 하는데 여행의 마지막에 왜이리 아쉬움이 큰지 이탈리아는 정말 매력 덩어리이다.

 

8-1 나폴리.jpg

<사진 이동희> 

 

졸리는 눈이 아니라 거의 정신을 잃은 상태가 되어 다시 광장에서 모였고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카페 GAMBRINUS에서 크로와상과 커피로 아침을 먹었다. 난 주문하는 동안 의자에 쓰러졌고 뭘 어떻게 주문한지는 모른다. 다만 깨어 보니 커피와 빵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곳 주인장이 나와 우리를 반기며 같이 사진도 찍고 내부 구경도 시켜주며 아침부터 환하게 맞아주었다.

 

 

8-2 나폴리.jpg

<사진 이동희>

조개빵이란 것을 먹었는데 겉에 조개 무늬처럼 결이 있고 바삭한 것이 모양과 맛이 매우 특이하였다. 이 빵이 나폴리의 특별한 빵인 것 같다. 아침을 간소하게 먹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하나 둘 들어와 커피와 빵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참 이색적이다. 소위 아침부터 빵하고 커피를 먹으면 건강에 좋을까? 하는 우려를 해보는데 이쪽 사람들 다들 잘 사라고 있는데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다. 아침을 먹은 우리는 오늘의 목적지인 로마로 향해 버스에 올랐다. 다행이다. 잠잘 시간 세시간을 벌었다.

 

프로필 이미지
2012.09.13 05:47:57 *.35.252.86

이러다가 망부석이나 기린목이 되어버릴지두...

Hurry up!!

프로필 이미지
2012.09.14 01:01:37 *.70.146.41

로마

 

아홉째 날 8 12 (2/2)

 

나폴리를 출발한 버스는 눈깜짝할 사이에 로마에 닿아 있었다. 얼마 잔 것 같지도 않은데 정신이 되려 몽롱하다. 점심은 이탈리아 외각에 있는 금강산 한식당에서 먹기로 하였다. 갈 때와는 다르게 뭐든지 맛있다. 아 타향 살이 효과인가? 두루치기를 쌈으로 싸먹으니 꿀맛이다. 로마는 금강산 식후경부터 해야 구경할 수 있는 곳인가 보다. 점심을 먹고 우리는 로마 시내로 출발하였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트레비 분수이다. 로마 시내에 들어 오긴 했지만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면 뭐가 있는지 익히 사전 공부를 하고 오지 않은 터라 근처에 뭐가 있는지 모르고 단지 트레비 분수만을 바라보게 되었다. 사람들은 좋은 날씨 탓인지 인산 인해이고 분수보다 전 세계에서 모인 사람들이 장관을 이루었다. 지난 밤 지중해를 뜬눈으로 새며 지나온 터라 아직도 정신이 개운하지 않은 터라 잠깐 기둥에 기대어 사람 구경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트레비 분수는 18세기에 살비의 설계로 제작되었고 한다.  흰 대리석으로 조각되어 있는 거대한 조각품은 마치 금방이라도 앞으로 튀어 나올 듯이 생생하게 제작되어 있어 흐르는 물과 대비되어 분수가 살아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8-4 트래비 분수.jpg

<사진 이동희>

 

특이한 것은 트레비 분수를 마주 보고 있는 집은 베테통 옷집이란 것이다. 더운 날씨에 가게안에 들어가 땀을 식힐까 하다 이동할 시간이 다되어서 정신을 차리고 몇 장의 사진을 찍어본다. 문득 이순간 한국에 두고 온 가족이 떠오르는 것은 어떤 것인가? 시칠리아에서는 자기 전이나 가끔 생각이 날 정도로 여행에 빠져 있었다면 이곳에서는 절실하게 가족이 보고 싶어 졌다. 한국으로 갈 때가 되어서 그런가? 다음 여행에는 가족과 같이 이곳을 다시 방문하고 싶다는 소망을 품고 사람들을 따라 모른 길을 걸어 갔다.

 

좁은 골목을 이리 저리 따라 가다 보니 탑이 보이고 광장이 펼쳐졌다. 한 가운데는 배 모양의 바르카차 분수가 있어 사람들이 시원한 물을 만지며 더위를 식히고 있고 오른 편으로 스페인 계단이 올려다 보였다. 아 그 유명한 스페인 계단이 이곳이 구나.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 헵번이 아이곳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다지? 그래서 인지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는 바람에 이제는 아이스크림 금지라고 되어 있다. 이 곳 계단에 앉아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안된다. 경찰이 계속 지켜보고 있다.  

 

 

8-5 스페인계단.jpg

<사진 이동희>

 

스페인 계단을 오른 후 우리는 숙소로 향했다. 숙소는 로마의 유적들이 많은 중심가에서 약간 떨어진 주택가에 있었다. 자 이제 헤어질 시간이다. 하루 더 로마에 머물 사람들과 오늘 귀국하는 사람들. 9일동안 같이 동고 동락하며 이스탄불에서 로마로 나폴리로 시칠리아로 긴 여행을 함께하였지만 몇몇은 오늘 귀국하는 비행기에 오르기 위해 숙소에서 헤어졌다. 그 동안의 추억은 계속 남을 것 같다.

 

남은 사람들은 아직 오후 해가 지기 전이므로 짐을 각자 방에 정리하고 로마 구경을 위해 다시 나왔다. 타고 다니던 관광 버스는 귀국하는 사람들을 태우고 공항으로 떠나고 돌아갔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로마 시내를 구경할 참이다. 85번 버스를 타면 시내 쪽으로 나갈 수 있어 우리는 버스 정류장으로 모였다. 그런데 아무데도 버스표를 팔지 않는다. 오늘은 일요일이라 매표소가 모두 쉰다고 한다. 그럼 버스를 어떻게 타란 말인가? 일단 이탈리아 버스체계에서 버스 기사는 공무원과 같이 월급을 받는다고 한다. 그래서 버스비를 내는지 안 내는지 관심이 없다고 한다. 가끔 버스표 검사하는 사람들이 버스에 타서 검사를 하는데 그 분들도 휴일에는 쉴 것이기 때문에 주말에는 버스를 공짜로 탈 수도 있단다. 아이 공짜로 타다 걸리면 무슨 망신일까 걱정을 하면서 버스가 오기를 모두 모여서 기다리고 있는데 드디어 85번 버스 도착하였다. 약간 멋적은 표정들을 하고 모두들 두리번 거리며 버스에 올라 탔다. 버스는 15분여를 달리고서는 콜로세움이 보는 정류장에서 우리를 내려 주었다. 다행이 아무도 버스표에 대해 묻거나 검사하지 않았다.

 

우와 저것이 콜로세움이구나. 이번 여행 시작할 때 로마에 도착한 후 밤에 와인바에 갔다 오는 택시에서 콜로세움의 야경을 보았는데 오늘은 직접 찾아가서 보게 되어 감회가 새롭니다. 

 

8-6 콜로세움.jpg

<사진 이동희>

 

검투사들과 열광하는 로마 시민들 그리고 로마 황제와 대신들이 가득 채워진 콜로세움을 상상하며 영화 글레디에이터의 러셀 크로우가 생각난다. 막시무스가 바람 부는 밀밭을 지나며 바람에 흔들리는 밀을 손으로 느끼며 걷는 장면은 나의 뇌리에 박혀 잊혀지지 않는 평온함과 잔임함이 교차되는 영화 속의 장면이다. 콜로세움은 규모가 대단해서 그 시대 다른 지역 사람들이 로마에 와서 이 경기장을 보았다면 아마 로마를 경외하지 않았을까? 로마 사람들은 그런 콜로세움을 자부심으로 바라보고 그 곳에서 잔인한 검투사의 경기를 보며 인간이지만 인간 이상의 로마 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즐기지 않았을까? 황제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었던 콜로세움은 역시 외관으로만 봐도 커다란 경외감을 주었다. 콜로세움 옆으로는 그리스도교도임을 공언한 최초의 로마 황제인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즉위 10년을 기념하여 원로원이 세원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자그마하게 자리 잡고 있는데 사실 콜로세움의 규모에 눌려 존재감이 다소 떨어졌다.

 

콜로세움 옆 광장 길을 따라 벽에 붙은 돌로 만든 로마 제국 역사를 표현한 그림을 보게 되었다. 시대별로 로마 제국의 규모를 돌로 잘 표현해 놓았는데 이 그림만 보아도 로마인들의 자존심이 높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온 유럽과 북부 아프리카 및 현재의 터키 지방까지 모두 로마 제국의 영토 아래 있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로마인들은 그들이 유럽 문화의 뿌리이고 근원이라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 역사 중 광개토대왕의 영토를 보며 자긍심을 갖는데 로마 제국을 품은 로마인의 자긍심은 대단할 것이라는 것이다.  

8-7 로마제국.jpg

<사진 이동희>

 

콜로세움을 떠나와 우리는 로마 포럼 터를 지났다. 이 곳은 다양한 건물들이 배치되어 있던 역사의 흔적인데 지나갈 때는 사전 공부가 없어 집터와 기둥들 쓰러진 돌무덤들로만 보이고 제대로 즐기지 못하여 아쉬웠다.

 

8-8 로마포럼.jpg

<사진 이동희>

 

로마 포럼을 지나 엠마뉴엘 2세 기념관을 지나게 되었다. 웅장한 하얀 대리석 건물은 주변 건물들에 비해 유난히 하얀 건물로 지어져 도드라져 보였다. 또한, 저녁 햇볕을 받아 노랗게 물들어 가는 모습이 황금으로 지은 기념관처럼 보였다. 로마는 그 자체가 예술품이라는 말이 허언은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많은 옛 건축물들도 아름답고 그 기풍이 대단하지만 일단 로마에 들어서면 그 역사와 예술품 다양한 건물들에 압도 당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8-9 엠마뉴엘 2세 국왕.jpg

<사진 이동희>

 

해가 지고 있어 우리는 총총 걸음으로 나보나 광장으로 향했다. 나보나 광장은 전차 경주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을 광장으로 다시 만들었다고 하였다. 애초에 이 곳은 벤허에서 본 전차들이 경주를 벌이던 긴 트랙이었던 것이다. 긴 광장에 들어서니 세 개의 분수가 있었다. 그 중 가운데 있는 큰 분수는 중간에 오벨리스크가 자리잡고 있다. 광장 주위에는 와인바와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으며 야외 테이블이 저녁 손님을 맞을 준비에 한창이다. 콜로세움에서 나보나 광장까지 걸어서 온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삼삼 오오 짝을 지어 흩어 졌다. 내가 같이 간 사람들은 광장을 벗어난 곳에서 Passetto라는 레스토랑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는 파스타와 피자를 시킨 우리는 기다리는 동안 웨이터와 잠깐 이야기를 하였는데 이분이 시칠리아 출신이었다. 시칠리아 여행을 막 마치고 온 우리로서는 시칠리아 출신이라는 말만으로도 고향사람을 만난 것처럼 반가웠고 친근하게 여겨졌다. 이탈리아 음식은 시칠리아도 좋았지만 로마에서도 일품이었다. 저녁을 먹은 후 아이스크림과 그라니타를 사들고 광장으로 다시 들어갔다. 나올 때는 무심히 나왔는데 그 곳은 화가들과 그림을 파는 상인들이 모여서 성황을 이루고 있었다. 예전 파리의 몽마르뜨 언덕의 성당 옆에 있는 테르트르 광장을 기억나게 하였다. 그곳에도 많은 화가들이 자신의 그림을 걸어 놓고 손님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보나 광장에서 본 그림들은 테르트르 광장에서 본 것들 보다는 수준이 떨어 졌지만 여행자의 운치를 돋우는 데는 충분하였다.

 

8-10 나보나 광장.jpg

<사진 이동희>

 

저녁을 이탈리아 식당에서 맛있게 먹은 우리는 나보나 광장을 떠나 판테온으로 향했다. 로마 여행에서 좋은 점은 대부분의 장소를 걸어서 다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도 골목 골목 찾아 다니는 재미와 함께 말이다. 낮에 다니는 길과 밤에 다니는 길은 또 다른데 판테온에 도착한 우리는 해가 진 후라 황금빛으로 조명한 새로운 로마의 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신들의 신전이라고 불리는 판테온의 내부는 볼 수 없어 아쉬웠지만 판테온 앞의 로톤다 분수에 둘러 앉아 로마에서의 마지막 밤을 아쉬워하며 마지막 여정을 즐겼다. 소풍은 자리를 뜨는 것이 아쉬운지 캄피돌리오 광장으로 가는 일행을 떠나 판테온 앞의 카페에 자리를 잡고 로마의 마지막 밤을 즐기기로 하였다.

 

8-11 판테온.jpg

<사진 이동희>

 

우리는 판테온을 떠나 엠마뉴엘 2세 기념관 뒤편에 자리한 캄피돌리오 광장으로 향했다. 캄피돌리오 광장은 가보면 매우 좁지만 이곳의 바닥 문양을 미켈란젤로가 설계한 것으로 유명하다. 어두운 밤에 도착하여 자세히 살펴 보지는 못하여 아쉬웠지만 그 곳을 걸어 본 것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8-12 캄피돌리오 광장.jpg

<사진 이동희>

 

캄피돌리오 광장을 지나 골목으로 내려가면 Foro Roma를 볼 수 있는 언덕이 나온다. 이 곳에서 바라보면 조명을 비추어 낮에는 잘 드러나지 않던 고대의 건물들이 살아나는 듯 그 모습을 드러낸다. 새턴 사원 기둥을 뒤로 로마 황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의 기념문이 보이고 그 너머 마르티마 교회의 돔이 보인다. 로마의 낮은 하얀색과 푸른 색이면 로마의 밤은 검은색과 황금색이다. 로마의 밤을 한 껏 즐긴 우리는 85번 버스를 승차권도 없이 타고 숙소로 돌아 왔다. 이렇게 이번 여행의 마지막 밤은 깊어 갔다.

 

 8-13 Saturn 사원3.jpg

 

프로필 이미지
2012.09.14 05:25:18 *.35.252.86

이~~야!

금번 여행기 중에서 겨우 그 풍광이 비쥬얼라이즈되는 곳 - Trevi 분수

 

난 유럽은 1994년 정말 무더웠던 여름에 40도가 넘는 로마에서 3일 체류했었는데

희동님 처럼 사전에 예습을 철저히 하고 또 주변에도 많은 지식을 갖은 분들과 함께 한 것이 아니어서 인지

기억나는 것은 트레비 분수에서 동전을 던지며 '소원'을 빌었던 것.

그리고 '로마의 휴일'에 등장에 등장하는 입벌리고 있는 사자상 조각을 직접 본 것 외에 기억이 없네.

그래도 그나마 경험이라고 어떤 장면과 추억이 연상되니까 참 좋다.

 

정말 '아는 만큼 보이고, 경험한 만큼 이해할 수 있다'는 건 진리인 듯.

 

희동이의 여행기 정말 재미있게 읽었고,

특히 시칠리아 여행을 떠날 때는 각 일차에 해당하는 내용을 1부씩 출력하여 갖고 다니며

그대로 따라하고픈 마음이 들 정도로 넘넘 부러운 여행이고, 흥미로운 이야기들이었음.

 

자네 말대로 유일무이한(?) 열혈독자를 위해 잠도 아껴가며 좋은 글 공유해주어

진심으로 감사하네.. 하지만 아직 하루치가 더 남았다는 걸 잊지마시길~ *^^*

 

드디어 금번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대망의 마지막 날 밤이구나.

넘 기대된다... 두~~둥 두근두근 ^^*

프로필 이미지
2012.09.15 01:45:52 *.70.146.41

로마

 

열흘째 날 8 13

 

나폴리로 오는 지중해의 밤을 선상에서 별을 보며 새운 탓에 로마를 뚜벅이로 돌아다닌 후라 로마에서의 마지막 밤은 조용히 쓰러져 잤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하게 빵과 시리얼로 달래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 하루를 보낼 생각에 아쉬움이 커져 갔다. 모두들 짐을 한 곳으로 이동하고 checkout을 하였다. 오늘은 콘도티 거리의 다양한 브랜드샵을 구경해 볼 생각이다. 어제와 달리 오늘은 버스표를 팔고 있었다. 어제와 같이 85번을 타고 10분 정도 지나니 산 지오바니 인 라테라노 교회와 계단 성당이 나왔다. 일행이 내리기에 콘도티 거리를 상상하던 나는 얼떨결에 내려 산 지오바니 성당으로 향했다. 이번 여행에서 매일 본 것이 뭔가 하면 성당이다. 아마 평생 가본 성당을 이번 여행에서 다 가본 것 같다.  상쾌한 아침 공기에 상쾌해진 기분에 산 지오바니 성당 안으로 향했다. 이 곳은 전세계 가톨릭 교회의 중심이 되는 성당으로 312년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했을 때 로마 교황에게 기증했다고 한다. 내부에는 12제자의 조각상이 줄지어 있어 사뭇 엄숙하면서 그리스도의 존재가 현실의 일로 다가 왔다. 기독교에 대해서는 로마와 시칠리아 여행을 하면서 나에게는 좀더 가까이 다가 왔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리스도가 성경에만 나오는 이야기 속의 문제가 아니라 현실에서 몸소 복음을 전하고 실천하며 살았다는 현존하는 인물이며 역사라는 것을 좀더 실감하게 되었다.

 

9-1 san giovanni.jpg

<사진 이동희>

 

산 지오바니 성당을 나온 우리는 계단 성당으로 향했다. 계단 성당이 왜 그러한 이름을 갖게 되었는지 모른 채 나는 일행을 따라 그곳으로 향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사뭇 긴장감이 도는 입구에서 주춤하였다. 이 곳의 계단은 예수가 재판을 받았던 발라도 법정의 대리석 계단을 옮겨다 놓고 나무로 덮어 두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계단은 걸어서 올라 갈 수 없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올라가야 한다. 옆에 따로 있는 계단으로는 걸어서 오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스칼라 산타 (거룩한 계단)에는 인도인 몇 명이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며 오르는 장면이 매우 인상 깊었다. 당장이라도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오르고 싶었지만 기독교도 천주교도 아닌 입장이라 마음이 동하지는 않았다. 스칼라 산타 옆에 있는 일반인이 오르는 계단을 통해 위로 향하였다. 안에는 분리된 방에 제단과 같이 신성한 곳이 있고 접근이 안되도록 앞이 막혀 있었다. 물론 촬영도 금지되어 있었다. 잠시 둘러보고 내려온 나는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힌 예루살렘의 성과 십자가의 위치를 나타내는 그림과 예수상을 같이 보게 되었다. 나는 작은 아집 하나 버리지 못하고 고집 부리고 심통 부리는데 무엇으로 살아가야 하나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밖으로 나오니 구본형 선생께서 앉아서 수첩을 꺼내 뭔가를 적고 계신다. 가만히 다가가서 사진을 찍어 본다. 나를 구원할 것은 무엇이고 누가 도움을 줄 것인가? 구본형 선생이 지난 10여 년간 나에겐 그러한 분이 아니었을까? 단군의 후예 프로그램으로 이끌고 시칠리아 연수에 참여하게 된 것이 무엇 때문이었던가? 가만히 자문해 본다. 나에게도 스승이 필요하다. 평생 기댈 스승이 필요하다. 나를 지켜보고 나를 나무라고 나를 격려해줄 스승을 만나는 것이 나에게 필요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9-2 계단 성당.jpg

<사진 이동희>

 

계단 성당을 나온 우리는 다시 콜로세움을 지나 로마 포럼으로 향했다. 구본형 선생께서는 로마 포럼 입장권을 끊으시고 홀로 입장하시고 나머지 분들은 각자의 길로 향하고 난 로마 소개 책자와 달력 기념품 몇 점을 사고 콘도티 거리로 향했다. 그곳은 스페인 계단이 마주 보이는 곳으로 작은 골목 같은 곳이지만 전 세계 유명 패션 브랜드 샵은 모두 모인 것같았다. 아내에게 줄 선물을 고른 후 로마 공항 출발을 위해 숙소로 돌아 왔다.

 

우리가 로마 시내를 구형하는 사이 나라씨는 가지고 온 몇 개의 옷가지와 버스에서 팔다 남은 간이 음식물들을 모두 싸가지고 산 지오바니 성당 아래쪽에 벼룩시장에서 물건을 팔았다고 한다. 수입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돌아올 때 늦어서 택시를 타고 왔는데 돈이 없어서 택시비를 다른 사람이 내주었다. 그 물건들은 모두 어디 갔는지 아직도 모를 일이다. 또 소풍도 택시를 타고 늦게 도착하였다. 카드가 안되어 현금을 내어 주고 후다닥 내렸다. 모두 모였다. 이제 마지막 짐을 싸고 떠날 차례이다. 난 점심으로 버스에서 샀던 컵라면과 밥을 먹었다. 뜨거운 물은 호텔 카페에서 얻고 식당에서 포크를 구해서 맛나게 베란다에서 즐겼다. 갑자기 비가 내린다. 한 방울도 내린 적이 없던 비가 여행의 마지막 날 살짝 머리위로 지나간다. 어쩌면 이탈리아가 나에게 내려주는 성수는 아닐까? 동희야 너의 죄를 사하노니 앞으로 잘 살지어다.

 

비행기가 내린 인천에서는 비가 내리지 않았다 모두들 공항 입국장을 나와서 헤어지는 아쉬움이 커서인지 선뜻 출발하는 사람이 없었다. 겨우 작별 인사를 나누고 난 공항철도를 이용해 서울역으로 향하였다. 오늘은 단군의 후예 완주 파티가 있는 날이다. 그렇다 난 이번 변경연 연수를 나의 단군의 후예 완주 선물로 주었던 것이다. 서울역에서 택시를 타자 비가 내리기 시작해서 파티가 있는 인사동에 이르니 쏟아지기 시작했다. 장소를 대략 추측하고 여행가방을 끌고 빗속을 뚫고 도착한 곳에는 100일 동안 동고동락한 단군의 후예 7기들이 축하의 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먼 길을 떠났다가 돌아온 사람처럼 편안한 동기들과의 만남 그리고 단군의 후예 프로그램 중 세미나와 좋은 프로그램을 만들어 준 홍승완 선생(?), 청룡부족 수호장 김병진님 그리고 인디언님이 따뜻하게 맞이해준 시간은 2012년에 뭔가 하나 소중한 것을 갖게 된 것 같은 충만감을 주었다.

 

10-1 완주파티.jpg

<사진 인디언>

 

 파티가 끝나고 비가 많이 오는데 우산이 없는 나에게 우산을 편의점까지 가서 사다준 동갑내기 라비나비의 친절함에 억수같이 쏟아 지는 비속에 우산을 쓸 수 있었다. 모두와 헤어진 후 택시를 기다리는데 그 시간에 인사동에는 택시가 없었다.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복잡한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시간도 늦었고 집에서 기다리는 가족이 많이 보고 싶어 모범택시를 잡아타고 단숨에 집으로 돌아왔다. 무엇보다 소중한 나의 가족이 늦은 시간임에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 언제나 내가 돌아올 곳은 이곳이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다. 시칠리아에서 경험한 나를 이제 가족에게 보여 줘야겠다. 밖은 비가 세차게 불어오고 밤은 깊어 갔다.

 

하루를 쉬고 출근한 회사에서는 그 동안 2년여 협상을 해온 계약건이 성사되었다는 소식이 도착하였고 집에는 구본형 선생님의 신작 구본형의 신화읽는 시간이 택배로 도착하였다. 그 책의 속지에는 구본형 선생의 친필로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동에게

덕분에 좋은 여행

 

구본형

2012년 여름

 

저도 덕분에 좋은 인생 여행하고 있습니다. 2012년 시칠리아 여행은 나에게 나를 돌려 주고 나를 경험하는 시간이었고 새로이 나를 찾아 떠나는 인생의 출발점이 되었다.

 

- 끝 -

 

프로필 이미지
2012.09.15 05:27:40 *.35.252.86

Congrats! you did it~ FINALLY!!

 

희동님 축하합니다~ 짝짝짝!!!

편의점까지 뛰어가서 우산을 배달한 보람이 있군요.

명작가님의 데뷰작에 이렇게 등장인물로 오르다니 ^^*

 

지난 한달 동안 희동님의 시칠리아 여행기 읽은 재미에 빠져 다른 독서는 전혀 안했는데.

이제 독서에 몰두할 수 있겠지만 희동님의 맛깔라는 필체는 어디서 볼 수 있을까?!

앞으로는 단군일지에 매일 매일 뭔가 한편씩 올려줄 거라 기대하며 ㅋㅋ

 

좋은 글 넘넘 재미있게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수고 많으셨고 고맙습니다~ 꾸벅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44 [단군 7기 현무부족 출사표] 번개의 질주는 시작된다 [7] 번개 2012.05.07 3847
243 [단군 7기_청룡부족_출사표] 나를 발견하고, 나를 사... [6] 당위의가능 2012.05.06 3776
242 [단군7기_현무부족_출사표] 재미있게 살기위해 잠을 덜... [26] 센티 2012.05.06 4246
241 [단군7기_청룡부족_출사표] 호시고운의 호시절 : 첫번... [15] 호시고운 2012.05.06 4020
240 단군 7기_현무부족_출사표,WOW..AMAZING*^^* [134] 꿈쟁이소 2012.05.06 4132
239 [단군 7기 청룡부족_출사표] 인생 2막을 위한 새로운... [73] 라비나비 2012.05.06 4603
238 [단군 7기_청룡_출발_출사표] 매일매일을 인생의 유의... [11] 출발 2012.05.06 3881
237 [단군7기_현무부족_출사표]남의 시선에 흔들리지 않는 ... [152] 햇살가루(박신해) 2012.05.06 4826
236 [단군7기_청룡부족_출사표] 새벽의 주인 - 내 삶을 주... [26] JKIM 2012.05.06 4054
235 [단군7기_청룡부족_출사표] 내안의 나 만나기 [150] Jammy 2012.05.06 4581
234 [단군7기_청룡부족_출사표] 새벽을 달구어 나만의 칼을... [243] 다독다독 2012.05.06 6105
233 [단군7기_현무부족_출사표] 작은 것을 매일하는 힘. [115] 토마토샘 2012.05.05 5099
232 [단군7기_현무부족_출사표] 새벽기도를 통한 소명을 발... [160] 스티브성 2012.05.05 5088
231 [단군7기_현무부족_출사표] '새벽'이란 든든한 지원군의... [139] 땠쑤 2012.05.05 4453
» [단군7기_청룡부족_출사표]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동희... [200] [2] 희동이 2012.05.04 8448
229 [단군7기_현무부족_츨사표]몸을 깨우는 새벽, 나를 리... [3] 참나무 2012.05.04 3985
228 [단군7기_현무부족_출사표]하고 싶은 일 하기 [270] molly 2012.05.03 5114
227 [단군7기_현무부족_출사표]나의 천복을 찾아떠나는 여행 [85] 봄연 2012.05.03 4278
226 [단군6기_청룡부족_차정원] 될때까지 도전하기! [52] 차정원 2012.01.08 4599
225 [단군6기_현무부족_출사표] 아름다운 내모습 되찾기 1... [33] 터닝포인트 2012.01.08 44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