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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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요?”
속옷 바람의 아저씨가 나오는 순간 나는 이 일을 그만두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학점을 준다 해서 시작한 설문조사 였습니다. 지금은 어느 기관인지도 잊어 버렸지만 당시엔 방학 동안에 이런 일도 해 보고 학점도 얻을 수 있다며 괜찮은 일이라 생각했지요.
생각보다 쉽지 않았습니다. 하긴 길거리에서 전단지 한 장 건네는 일도 쉽지 않은데 시간이 걸리는 설문지라니요. 더군다나 무선표집법에 의해 추출된 그 당사자에게만 받아와야 하는 설문지라니 쉬울리가요. 잔뜩 경계하는 사람들이 나를 밀어내거나 당사자가 집에 없거나 하는 찰나 아저씨를 만났습니다. 그냥 “죄송합니다. 잘못 알았나 봐요.” 라고 말하며 돌아오고 싶었습니다. 무슨 말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당장 그만두었습니다. 호기있게 도전해서 단 2일이 지났을 때였습니다.
설문조사를 2일 만에 마치고 나니 허탈합니다. 얼마 안 걸리는 동네이긴 하지만 시외버스까지 타가면서 시작했던 일이지요. 일을 시작하기 전에 세미나도 잘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속옷바람 아저씨 때문에 그만두고 말았군요.
집에 돌아와서 아빠게에 그랬습니다. “속옷만 입은 아저씨를 만나서 내가 깜짝 놀랬다니깐. 아빠는 절대 그러지마.” 이렇게 말을 꺼내기 시작해서 잘도 늘어놓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비협조적이더라. 지역이 별로다. 설문조사가 별로다. 누가 처음 보는 어린 여자애에게 차분히 질문에 답을 해주겠느냐. 이건 시간도 많이 걸린다. 엄청난 핑계를 주어 세고 가까스로 내가 이 설문조사를 그만 두어도 되는 이유를 세뇌시킵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은 내가 이번에도 실패를 했다는 거지요.
나는 꽤나 유명한 작심삼일 쟁이입니다. 결심을 해도 오래 가는 법 없고 흥미를 느껴도 꾸준하지 않지요. 헬스 2일, 요가 1주일, 시험계획 반나절. 시작은 창대하지만 언제나 끝은 미약합니다. 고려하기 전에 저지르고, 입방정을 떨고, 막상 하다보면 “어? 이 길이 아니네.” 라고 말합니다. 그래도 나는 그저 나의 길이 아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왜 난 내 길이 아닌 것만 걸려드는 걸까요? 내 길이 아니라도 끝까지 해낼 방법은 없는 건가요?
나는 지난해 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이었습니다. 구본형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는 이 곳은 일주일 마다 일정한 과제를 부여합니다. 정해준 책을 읽고 리뷰와 칼럼을 쓰는 것이지요. 합격 소식에 기뻐하면서도 가족들의 마음은 반신반의입니다. “얘가 과연 얼마나 갈까?”
결과를 말씀 드리자면 나는 1년 동안 이 활동을 지켜냈습니다.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10페이지가 넘는 리뷰를 쓰고 나만의 칼럼을 썼습니다. 쉽지는 않았습니다. 최고 1000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읽을 때면 내용을 파악하는 건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그런 책을 읽고 쓰는 리뷰는 길이도 길어서 타이핑에 팔이 아플 때도 있었습니다. 마감의 기한은 다가오는데 칼럼을 쓰지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르던 날도 있었습니다. 때론 키보드를 부수면 이런 핑계로 합리화를 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포기하고 싶은 날이 여럿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커다란 사고가 있었던 하루를 제외하곤 기한을 어긴 적 없었습니다.
동기들의 힘이었습니다. 함께 연구원의 1년을 보냈건 7인의 동기들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눈에 들어오지 않던 책을 읽던 날도 같은 책과 씨름하는 동기들이 있었습니다. 미친 듯 칼럼이 써지지 않아 키보드를 부수고 싶었던 날도 묵묵히 칼럼을 올리던 동기들이 있었습니다. 서로의 상황에 응원의 멘트 하나 날리지 못했지만 나와 같은 어려움을 겪고 난관에 봉착한 그들이 있어 나는 하루도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같은 시련을 이겨낸 동기들 앞에서 난 내가 힘들어서 하지 못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얼기설기 엮어낸 리뷰라도, 어느 한 구석 조차 마음에 들지 않는 칼럼이라도 쓸 수밖에 없었어요.
대학시절 교수님께선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너희들을 위해서 사는 것 같냐? 너희들을 위해서 사는 거라면 네 맘대로 살아도 되는 거지. 결국은 다른 이들을 위해서 사는 거다.”
그래요. 나의 사정만을 생각했다면 얼마든지 핑계를 댈 수 있었겠지요. 이 책은 일주일 안에 내가 읽기엔 조금 버거워. 이번 주에는 어느 주제로 칼럼을 써야 할지 모르겠어. 라고 말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동기들이 있어서 그럴 수 없었습니다. 전력을 다해 끊어질 듯한 숨을 몰아쉬며 결승점에 도달했는데 저 뒤에서 “나는 내 페이스대로 달릴래.”라며 걸어오는 사람을 발견한다면 얼마나 허탈하겠어요. 전력을 다한 자신이 얼마나 바보같아 지겠어요. 그들은 나를 어떻게 평가하게 되겠어요. 그들의 얼굴 하나하나가 떠오르는 순간 나는 내 할 일을 해내야만 했어요.
함께가면 멀리 갈 수 있습니다. 동행이 있는 길은 힘겨움이 덜어지는 법이지요. 내 옆에 있는 이가 나만큼의 시련을 이겨내고 걷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나 역시 포기할 수 없어지는 법입니다. 서로가 상대방을 보며 기운을 내게 되는 것이지요. 작심삼일이 되는 이유는 이런 것과 같지 않을까 합니다.
나의 계획에는 다른 이들이 없었습니다. 나의 학점을 위해. 나의 유연함을 위해, 나의 탄력성을 위한 계획이었지요. 함께 걷는 이들은커녕 지나가는 행인조차 존재하지 않았지요. 헬스를 같이하며 트레이너의 환상 몸매를 함께 감상할 사람이 있었다면 설문조사를 같이 돌며 속옷 차림의 아저씨의 놀라움을 나눌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아마 그만두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작심을 한다는 것은 마음을 먹는 다는 것입니다. 결연히 일어나 길을 걷겠다는 의지이지요. 의지만으로 버티는 건 딱딱함을 가져다 줍니다. 그 안에 내가 질려버리는 거지요. 여차하면 의무감만을 남길 우려도 있습니다. 함께 간다는건 다릅니다. 다른 이들의 힘듬을 볼 수 있지요. 그 안에서 공감과 위로와 격려를 느낄 수 있습니다.
1000페이지의 철학서를 읽을 때 동기들은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저마다 아우성이었지요. 얼마만큼 읽었는지를 비교하며 너는 나보다 낫다는 말도 주고받았습니다.. 우등생 동기 오라버니가 “이해하려 하지 마세요. 눈에 양보하세요.” 라는 말을 했을 때는 마음이 평안해지기도 했습니다. 나만 힘든 것이 아니었어요. 누군가는 절대적인 시간의 부족이었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이해하지 못한 어려움이었을 수도 있지요. 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같은 시간 내에 비슷한 이유로 함께 힘들어 하고 있었습니다.
그 주의 과제는 성공적이었습니다. 누구하나 기한을 어기지 않았지요. 우리가 서로의 힘듬을 나누었던 순간 우리는 위안을 얻고 해내야할 이유를 얻었습니다. 배신할 수 없는 동기애지요.
모든 일들은 나에게 체화되기 전에 힘든 시간을 거칩니다. 익숙해져서 그냥 그리 되기까지 시간을 거쳐야 합니다. 그 시간은 때로 힘들 경우도 있습니다. 운동의 즐거움을 느끼게 되기까지는 운동의 힘겨움도 견뎌야 합니다. 단 몇 번의 실천으로는 그 행위의 골수인 즐거움을 느낄 수 없습니다. 즐거움을 느낀 순간 부터는 조금 쉬워집니다. 즐거움이 나를 걷게 하기 때문이지요. 중요한 것은 어떻게 힘든 시기를 넘겨 즐거움을 맞이할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작심삼일에 나 조차 나를 믿지 못하게 될 때면 함께 걸어갈 동지들을 만드세요. 나 조차 믿어주지 못한 나의 가능성을 믿어주고, 위로와 공감으로 함께 걸어가줄 동지들을. 지치고 힘든 순간 말이 아닌 행동으로 나를 바라볼 이들. 포기하고 싶은 나를 이끌어 이 자리에 있게 하는 징글징글한 이들 말이예요.
내가 이래뵈도 인정받고 싶은 여자에게
칭찬듣는 여자얌~~ㅋㅋㅋㅋㅋㅋ
언니는 일을 잘 하는 사람이니까. 즐거워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난 운전한지 2년이 넘었지만 아직 초보스티커 안 떼고 있잖아요.
그게 마음이 편해서 그래요.
"난 아직 서투르거든요. 그러니 잘 좀 봐주세요." 그러는 거지요.
일에서도 그런 것 같아요. "난 잘 모르거든요". 이러는 거지요.
그래서 아직은 글에 비중을 더 쏟고 있는 게 사실이기도 하고.
글의 모양새가 어떻든 읽고 쓰는 것이 마음에 들었으니까요.
그래도 슬슬 초보 딱지를 떼야 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언제까지 어린애 처럼 "나 좀 잘 봐주세요." 이럴 수 는 없을 테니까요..
나이가... 나이인지라.... ㅋㅋㅋㅋㅋㅋ
일에서도 그리 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사무실에서 댓글을 다는 것부터 고쳐야 겠지요? ㅋㅋ
시간이 지나 나의 일을 가지게 되면 그땐 "나 처음이예요." 가 통하지 않겠지요.
어른이 되야 하는 때인가 봐요..
그래도 언니를 알게 되어서 회사의 사람들도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ㅋㅋㅋㅋ
루미 내가 한 때 체리에 꽂혀서 엄청 먹기도 하고
가방,우산도 체리로 셋트로 갖고 다녔지.
생각나서 사진 선물로 올려요..
체리 한 알의 이미지는 사부님께서 언급해주신 영화의 이야기였어요.
그 영화를 찾고, 그것을 모티브로 글을 쓰면서
제가 빨간색을 무척 좋아하던 아이였다는 것을 떠올렸답니다.
빨간 파일을 사고, 빨간 다이어리를 샀지요.
20살이 넘어 빨간 체리가 동동 떠 있는 머리핀을 좋아했던 기억도 있군요.
사진을 선물로 받으면서 다시 한 번 주제에 집중하게 됩니다.
하필이면 체리여서 너무 마음에 듭니다.
수박이라거나, 바나나였다면 저랑 안 어울렸을지도... ㅋㅋㅋ
앞으로 체리를 드시면 제가 생각날 거예요~~(ㅋㅋ세뇌랄까???)
요즘 제가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 모르실거예요.
담에 뵙게 되면 찌인~~~~한 뽀뽀라도~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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