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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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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5월 21일 11시 26분 등록

‘2년 전 오늘의 하루

 

-  있나?  

-  행님.

- 그냥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 행님  때가   같습니다.

- 허허자식.

- 그냥 잘 있으면 됐다.

- 운전하는데  산을 보니  목소리가 듣고 싶네

- ...행님...

- 그래...

 

그러니까 2 전 오늘이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왜 나에게 이렇게 벌어지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들숨과 날숨의 간격이 메트로놈의 맨 아래였다. 쉬어지지 않는 숨통을 잡고 이러다 죽겠구나 싶을 때 캠프3에 도착했다. 너무 힘이 들어 ' 목소리가 듣고 싶다'는 그를 안고 목놓아 울었다. 아니해발 7200m 희박한 산소 때문에 울다가 그쳐야만 했다울려면 많은 산소가 필요함을 그때 처음 알았다. 나는 훗날 등정을 마치고 내려와 그에 대해 이렇게  두었다.

 

'그리고그는 내가 아는 가장 휴머니스트적인 산악인입니다까마득한 후배와 어깨를 나누고   아는 사람이고 힘들어 우는 후배와 같이 눈물 흘리며 고통을 나눕니다내가 원정을 가기로 마음먹은 것은 전적으로 그의  인간적인 면모 때문이었습니다우연이었을까요내가 생사를 넘나들던 때는 항상 그가 있었습니다그는 사지(死地)에서 나를 살린 신입니다.'

 

네팔을 떠나오며 나는 오늘 그 형의 전화를 예감했는지도 모른다.

언젠가는 그때가 사무쳐 서로를 부를 날이 있을 거라는 예감 말이다.

그러나, 사지(死地)를 함께 건너온 무뚝뚝한 산재이들에겐 그리 긴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나는 전화를 끊고 난 뒤 수화기 너머 그의 표정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눈을 감으니 그때가 또렷해진다.

 

2010 5 16, 캠프4 (해발 8,000m)

인간은 지상에서 모든 가혹한 곳에 여신의 이름을 붙여 두었다. 초모룽마(티벳), 사가르마타(네팔)대지(만물)의 여신이라는 의미로, 나는 지금 그녀 안에 있다. 뾰족하게 솟은 검은 봉우리에서 일견, 남성성을 연상할 수 있겠지만 여기는 최초의 인종을 낳고문을 닫아버린 죽어있는 세계의 음부. 황폐다.

 

지금의 내 몸 또한 보아 줄 수 없다. 허벅지는 팔뚝의 크기로 얇아져 있고 피부는 노인처럼 주름지고 늘어져 있다. 안 그래도 굵은 입술은 부르트고 터져서 군데군데 피가 말라있고 시커멓다. 설맹으로 충혈된 눈은 눈물이 마르지 않았고 추운 날씨에 얼어붙은 속눈썹이 눈을 찔렀다. 찔려진 눈에 다시 눈물이 흐른다.

 

여전히 캠프 4 (해발 8,000m)

출정을 앞두고 타 들어가는 긴장을 이기지 못했는지 내 몸은 모든 것을 밀어낸다. 텐트를 찢어내는 바람을 등에 지고 피켈을 땅에 박고 똥을 눈다. 한 순간 들어갔던 힘에 호흡은 순간 페이스를 잃어버렸고 미친년 널뛰기 하듯 숨을 헐떡인다. 똥 누다 사람을 잡을 뻔 했다. ‘8천미터에서 똥 누는 인간은 니 밖에 없을 거다라며 대원들은 혀를 내둘렀지만, 똥이 먼저냐 숨이 먼저냐는 고민은 두 번 다시 하기 싫다. 이제 다시는 똥 같은 거 누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그때 그들이 보지 못한 숨막히는 광경을 목도했다. 히말라야의 황혼, 저녁 녘에 뜬 초승달과 그 옆에 빛나는 별, 떨어지는 오랜지 빛 태양, 출정을 앞두고 해발 8000m에서 바라보는 붉은 황혼. 신의 존재를 느낄 만큼의 아름다움이다.

 

1평의 텐트 속 네 명의 남자는 하룻밤을 꼬박 지샜다. 한석규, 고 이은주 주연의 영화 주홍글씨를 기억하는가. 차 뒤 트렁크에 갇힌 남녀가 그 좁고 폐쇄적인 공간에서 지난 사랑의 기억들을 부정하고 서로가 미쳐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 정상을 오르기 전 극도의 긴장감이 마지막 캠프의 텐트 안을 모두 얼려버리고 있다.

 

정상 출발

캠프 4에서 밤 9시에 출발한다. 밤새도록 걸어 다음날 오전 중에 정상에 오르고 남은 힘을 다해 다시 캠프 4로 되돌아 온다는 복안이다. 대원들은 서로를 진하게 안아준다. 눈빛을 교환하며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그 모습을 끝까지 남기려는 눈물겨운 시도다.

 

멋진 벽에 걸려있는 사진이라야 산은 멋지다. 그 산을 오르기 위해 그 안으로 다가가는 것은 여신을, 그리고 여자를 있는 그대로 보아야 하는 것과 같다. James Joyce로 치자면 그의 소설 율리시스에서 주인공 레오폴드 블룸이 그 아름다움에 전율하던 소녀, 거트 맥도웰이 절름발이임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여신은 자신과의 하룻밤을 위해 제 속살의 아찔함을 보여주는 대신 인간이 가진 물리적이며 정신적인 모든 것을 내어 놓게 한다. 제 죽는 줄 모르고 그것을 바친 인간의 오르가슴은 자유다. 거친 숨과 터질 것 같은 심장의 박동만이 자신을 지배하는 자유로운 인간 말이다. 한발, 한발 무릎을 벌벌 떨어가며 내 딛는 발걸음은 지금까지의 모든 구속에서 나를 해방시킨다. 극한의 고통이 인간을 이렇게 자유롭게 하는구나. 오르는 자의 꿈은 결국 이와 같은 자유의 경험이다. 여신을 범하는 대가치고는 꾀 괜찮은 가치가 아닌가.

 

8500m

한참을 오른 뒤 내 발 밑에서 치는 번개를 보았다. 태양신 헬리오스가 사라진 캄캄한 밤에, 제우스가 때리는 벼락에 파에돈이 쓰러지는 장면이 내 발아래서 진행되고 있었다. 그러다 기어이 캉첸중가와 마칼루 쪽에서 해가 뜨기 시작했다. 파에돈은 생을 마감했으나 다시 뜨는 해는 그의 열정만큼이나 붉다. 일순간 대지를 삼키는 붉음이여. 신이 하는 일에 참여하는 흥분과 그 경이로움을 겁탈하는 기분이다. 나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다.

 

8700m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흐라는 사나이를 노랫말 속에 넣어 두었던 조용필은 고흐가 느낀 고통의 크기를 무엇과 견주었나. 오르는 동안 보았던 많은 주검과 공포, 흐트러진 호흡, 숨통이 끊길 듯한 고통, 이렇게 죽는다면,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고흐보다는 큰 고통이겠지.

 

난 마치 웃는 듯 거칠게 호흡하고 있다

제트기류를 피해 올랐지만 살을 파고드는 바람이 계통 없이 불고 있다. 국지적 돌풍이 일었다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1평 남짓 정상에서 난 마치 웃는 듯 거칠게 호흡하고 있다. 고개를 들어 본 광경에 로프에 걸린 벨트를 풀고 뛰어 내리고 싶었다. 그러나 나는 매달린 로프에서 단 1m도 벗어나지 못하는 겁에 질린 인간이었다. 그제서야 정신이 퍼뜩 든다. 나는 인간이었다. 여신과 일을 끝낸 후 밀려오는 자기 인식의 자괴감, 인간인 주제에 예까지 와서 여신을 취하였으니 죄책감에 평생을 시달릴 일이다. 내려가자, 어서 내려가자.

 

그 죄책감은 더러움이 없는 영혼을 가진 소녀의 호소에 터무니 없는 마스터베이션으로 응답한 레오폴드 블룸의 마음이었을까. 그러나 그런 소녀의 눈 속에는 한없이 큰 자비가 있었다고 하니 용서하시라. 나를 고이 내려 보내 주시라.

 

다음날 아침

나는 어떻게 내려 왔는지 모른다 텐트 앞에서 붉은 오줌을 갈기고는 쓰러져 누운 기억밖에 없다 5년 전 부러졌던 왼쪽 발목의 통증이 심하게 아려왔다 8400m 지점에서 산소가 떨어져 엎드려 있던 나를 니 목소리가 듣고 싶다던 형이 일으켜 세워 산소를 퍼 먹였다는 말을 들었다 같이 올랐던 후배는 발가락이 검게 썩어가고 있었다

 

복잡한 감정에 눈물이 나왔다 다시 맞은 아침 우리는 서로의 얼굴에 산소 마스크를 씌운 채 캠프 4에서 부둥켜 안고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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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1 15:22:45 *.114.49.161

산소를 퍼 먹였다.. 산소 마스크를 씌운채 부둥켜 안고 울었다에서 뭉클했어요.

4800 똥에서는 우하하하.

재용이 오른 산이 저렇게 높은 산이군요. 번개가 아래에서 칠 만큼. 대단해요. 멋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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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1 15:51:46 *.36.72.193

그 산을 오르기 위해

오빠의 준비과정엔 무엇이 있었을까?

궁금하다는 생각을 처음해봄.

어찌 올랐을까. 아. 고통스러워라.

얼마나 내려오고 싶었을까. 아. 산은 내려갈때가 더 무섭던데..

 

짱이에요. 성을 짓는데 기가막히가 들어맞는 벽돌을 찾아 끼워넣은 듯한 흔적을 보고 갑니다.

아, 왜 내 글 바로 밑인거야..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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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1 16:31:24 *.166.160.151

고흐가  불행했을까 재용이 더 고통스러웠을까?

글쎄다...나는 고흐도 재용도 아니니 알수 없다 그러나 네가 더 고통스러웠다고 하니 나는 그렇게 생각할란다.

 

언젠가 겨울이었는데 산 이름은 기억에 없어졌다

야간산행...날이 좀 추운 겨울이었어

산행시작하고 이삼십분정도 지났는데 정말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작은거면 좋은데 그것이 아니었어

산행을 하다 화장실이 급해지면 속도 울렁거지쟎아...그냥은 갈수가 없고 일행도 많았는데

이를 어쩌나 싶었다...할수 없었지

일행에서 살짝 뒤로 물러나 천천히 가다가 자리를 보고 볼일을 볼려고 하는데

이놈의 산은 왜 그렇게 급경사이던지...

뒤집어서 앉을수도 없고 바로 앉자니 엎어질것 같고 아슬아슬 볼일봤다.

그날 달이 엄청 좋았었다!!

볼일을 보고나니 날아갈것 같더라...다시 힘을 내서 본류에 합류성공

재용이 글을 읽다보니 그날의 그 달빛이 그리워지네. 싸하게 바람불던 날에 엉덩이 까고 볼일보던일도

생각나고. 아무한테도 이야기 하지 않았었는데...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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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2 01:16:19 *.36.14.34

이런 글을 읽고 나면, 히말라야에 가고 싶어지므로 매우 위험하다. 친북 서적보다 위험한 글일쎄... 난 예전에 동아리 사람들과 800미터짜리 산을 등산한 적이 있었는데 모두들 뒤쳐진 나를 쳐다보며 우두커니 서있곤 했었지. 나는 히말라야라도 오르는 듯 천식처럼 숨을 몰아쉬면서 꼴에 경사를 좁혀보겠다고 직선 코스를 혼자 지그재그로 오르고 있었어. 사람들은 "쟤 뭐냐..."라는 눈치(실제로 그렇게 말했음. 너 뭐하냐.). 음... 그 때 내가 느꼈던 것은 "아 진짜 그만둘 수도 없고!" 요 정도였던 듯. 오빠처럼 심오한 철학을 이야기하기엔 800미터는 지나치게 작았나보이. 한 8000은 올라가줘야 발 아래 치는 천둥을 볼 수 있는 거구나! 완전 뻑이 간다.ㅠㅠ 부러워 미칠 지경이야.

 

그리고 똥 부분에서는 "이게 에피페네인가?"라고 느꼈어.

 

정상에서의 감상은 참 감동적이네. 나라면, "아, 이제 예전의 나로는 못살겠다. 나 해낸거임?" 이런 생각만 했을 것 같은데... 성취감보다 겸허히 존재를 깨닫다니 오빤 영혼이 참 됐어. 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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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2 18:35:13 *.51.145.193

누님과 행님, 세린과 주운~ 댓글에 감사합니다. 그런데...

 

산에 대한 글을 쓰기가 스스로 편하지가 않습니다.

이유는 잘 모르겠는데, 괜한 의미를 부여해야 하는 부담이 있는 것 같아요.

있는 그대로 다큐 관점에서 쓰려고 하는데 어느 순간 방향은 작가적 관점으로

바뀌는 것 같아서 제 글을 보고 혼자 코웃음 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 경험이 파에톤의 태양마차가 아니라 생각하고 있나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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