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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7일 09시 40분 등록

책을 못써도 괜찮아. Enjoy your dream!

-웅녀는 단군신화에서, 호랑이는 다른 데서 사람된다-

 

 

 

어제 꾼 꿈입니다. 그림으로 그렸습니다.

 

떡국떡.jpg

 

정지방입니다. 부엌과 안방 사이의 냉방인데 식재료들이 보관되어 있어요. 쌀독 앞에 금방 썰어둔 떡국떡이 한 다라 있습니다. 나는 왼쪽 문 너머 안방에 있는 식구들에게 밥을 차려주고 뒷심부름을 하다가 그걸 발견했어요. 꾸덕꾸덕 하니 떡국 끓이면 맛나겠어요. 방 구석탱이에는 검은 비닐봉다리 안에 콩찰떡이 들어있습니다. 그 찰떡을 기름에 지져주까 물어보니 먹겠다고 하네요. 놀로리하게 지져다 주었습니다. 식구들이 맛나게 드시는 걸 보며 흐뭇해 하다 일어났어요.

 

볼펜으로 그리고 수채물감으로 색칠했더니 번지지 않았어요. 새벽부터 재미났어요. 그리다 보니 이것과 비슷한 꿈을 연구원 1학기 말에 꾼 기억이 있어요. 같은 곳을 배경으로 했어요. 똑같이 쌀과 떡이 주제였고요사부님의 댓글이 달려있었지요. 7월 오프수업 덕분에 물쌀이던 니가 떡이 될 수 있다 하셨지요. 꺼내봅니다.

(http://www.bhgoo.com/2011/index.php?mid=r_column&page=12&document_srl=356465)

 

그림파일은 엇다 꿍쳐놓았는지지 못 찾겠고 꿈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나는 정지방에 들어갔다. 뒤란으로 열린 들창으로 비가 들이쳐서 쌀 독 두 개중 왼쪽 것에 물이 들었다. 나는 쌀을 다 버릴까봐 바가지로 왼쪽 것을 다 퍼낸다. 떡을 해서 보관하면 될 것 같다. 바닥까지 펐는데 밑에 고인 물이 검고 그 안에 실지렁이 같은 것들이 수도 없이 꼼지락 댄다촌말로 오양물이라고 부르는, 매우 오염된 물 같으다. 나는 매우 찜찜해서 저 쌀을 다 쓸 수 있을까 어쩌나 걱정한다.”

 

연구원 1학기말 7월에는 물 쌀이던 내가 2학기 다사다난했던 12월을 보내고 새해, 인제 자기가 고른 책을 읽는 첫 주를 맞으면서 떡국떡이 되었나, 책을 읽고 소화하는 내공이 좀 늘었나, 나 유리한 대로 생각해봅니다. 그 생각에 기분이 대뜸 좋아질라, 웃느라 입꼬리가 올라갈라 하네요. 이번 주 토요일 오프수업이 있습니다. 나도 그 출판사의 책을 사서 읽어본 적이 있는 출판사의 편집전문가가 오셔서 조언을 해준다고 했습니다. 떨리고 무서워서 죽을 지경입니다. 신화에 대한 책을 쓰겠다고 내지르긴 했어요. 뭘 어찌해얄 지 모르겠거든요. 무섭다기 보담 싫은 건 두 가지 때문입니다. 첫째는 책을 못 써내면 수업료 천 만원을 내는 거, 둘째는 책을 내면 인간 되고, 책을 못내면 실패라는 평가 부담이요낯선 곳에 던져진 데다 갈아야 할 밭은 많고 나무호미는 부러진 콩쥐가 이런 기분일까요? 나도 콩쥐처럼 이때 퍼질러 앉아서 하늘과 땅을 향해 울어볼까요? 그럼 나에게도 검은 소가 나타나 줄까요?   

 

나는 곰처럼 곰곰히 생각해봅니다. 책을 쓰지 않아서/못해서 수업료를 내는 걸 아깝게 생각할 필요가 있을까? 거 왜 어떤 왕이 숨 넘어가는 찰라, 유명한 학자를 불러다가 세상 학문을 한 마디로 요약하라 하니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고 하더란 이야기가 있잖아요? 세상을 많이 살지 못했고, 학교와 절을 왕복하며 살았던 반경이라 경험 폭도 좁지만 이 말은 맞는 것 같아요. 듣기에 연구원 과정을 마친 후 책을 낸 이들은 20% 정도라 했습니다. 그럼 내가 20%에 들어서 책을 내게 되면 축하금으로 수업료 면제를 받는 거고요, 아니라서 공부한 대가를 내는 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싶습니다. 이렇게 마음을 고쳐먹기로 했습니다. 어느 대학원에서 목표를 성취했다고 학비 전체를 장학금으로 주더냐, 게다가 적립식 수업료 납부 방식이니 목돈 내는 것보다 내겐 좋습니다.

 

두번째, 책을 써야만 인간이 된다고 했습니다. 과연 그럴까 생각해봅니다. 소설가 박진규씨는 장편소설 <수상한 식모들>에서 단군신화에서 곰과 함께 쑥과 마늘을 가지고 들어갔던 동굴을 뛰쳐나왔던 호랑이의 후일담을 호녀신화로 새로 쓰고 있습니다.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에서는 정상에 오르는 여러가지 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요. 박진규씨가 만들어낸 호녀신화에서 호랑이는 환웅을 통해서 인간이 된 게 아니라 스스로 인간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 적생자로서 단군을 기른 것은 아니지만 우리 사회의 양모, 대체모성으로써 기능해왔습니다. 20%의 사람은 단군같은 책을 낳아 웅녀가 되고, 80%의 사람은 호랑이가 되어도 이걸 실패, 성공으로 가늠할 순 없을 듯 합니다. 그건 변경연, 이 커뮤니티가 지향하는 '대안을 만들어가는 공간, 광장'의 기능에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곰, 호랑이, 여우, 늑대, 카멜레온과 뱀, 근두운을 탄 손오공과 카페에서 토론하는 이들...다양한 이들이 머무는 곳의 다양성을 풍부하게 하는 하나가 나이면 될 것 같습니다.  

 

나는 생각합니다. 단군신화를 통해 인간이 될 이는 그렇게 하고요, 그러지 못하면 다른 신화, 다른 활동을 찾아 인간이 되면 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나는 인간이 되겠다는 나의 꿈을 버리지는 않을 것입니다나를 여기로 이끈 것은 인간이 되겠다는 나의 꿈이었을 겁니다. 또 삶의 어느 시점에서 없어져 버렸지만, 잠재된 꿈이었던 읽고 쓰기를 해보고 싶었지요. 나는 새해를 맞이한 나에게 말해줍니다. “책을 못써도, 안써도 괜찮아, Enjoy your dream!”  

 

박진규씨가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호녀신화를 같이 읽어보시죠. 재미있습니다.  

 

 

곰과 호랑이가 환웅에게 벌어 굴에서 마늘과 쑥을 먹으며 버틴 이야기는 누구나 알고 있다. 곰은 약속한 날짜를 다 채우고 결국 아름다운 여인이 되어 고조선의 시조 단군을 낳았다. 하지만 호랑이는 마늘과 쑥만 먹는 나날을 견디지 못해 결국 굴 밖으로 뛰쳐나오고 만다. 수상한 식모들의 시조는 바로 이 호랑이다.

호랑이는 굴을 빠져나오자 마자 온 산을 뛰어다니며 온갖 동물들을 다 포식한다. 토끼, 다람쥐, 고라니 등등, 과식한 탓에 배가 땡땡하게 찬 호랑이는 지독한 갈증을 느끼지만 주위에는 작은 샘물 하나 보이지가 않는다. 더구나 갑작스런 포식으로 위장은 쓰려오고, 호랑이는 그만 정신을 잃고 언덕 아래로 데굴데굴 구르고 만다. 너무나 운이 없게도 언덕은 가시나무 천지였다. 호랑이의 몸뚱이에는 온통 가시가 박히고 사지는 자갈에 긁혀 온몸이 상처투성이로 변한다.

호랑이가 비틀대며 당도한 곳은 다행히 샘가였다. 호랑이는 몸을 일으켜 목을 축이려고 샘 가까이에 다가갔다. 그러나 샘에 얼굴을 비춰보곤 자기 몰골에 경악해서 뒤로 물러서고 만다. 이어 밀려오는 후회. 지금쯤 곰은 아름다운 여인으로 태어났겠지. 그리고 환웅과 결혼했겠지? 이렇게 짐승의 숨만 쉬고 있는 나는 뭐람 (중략)

여자는 호랑이 가죽을 여며 옷으로 만들어 입고 산을 내려갔다. 사람들은 그 여자가 입은 옷을 보고는 범녀라고 불렀다. 범녀는 사람들을 이끌고 다니며 사냥하는 법과 노래하는 법을 가르쳤다. 춤을 가르쳐주기도 했으며, 산에서 자라는 약초가 무엇인지 알려주기도 했다. 또 버려진 여자아이들을 산으로 데려가 자기 수양딸로 키우기도 했다. 사람들은 범녀를 따랐으나 알 수 없는 모함을 당해 범녀는 마을에는 다시 접근하지 못하고 산에서만 머무는 운명에 처했다.

왜 범녀가 수상한 식모들의 시조가 되었을까? 나는 단군신화의 의미에 관한 몇 가지 연구 자료를 살펴보았다. 제일 설득력 있는 해석은 곰 토템 부족과 호랑이 토템 부족 중 전자가 지배권을 얻게 되었다는 가설이었다. 그렇다면 범녀는 지배당한 호랑의 부족의 리더쯤 되지 않았을까? 그녀는 그 후에도 지배집단에 항거하는 어떤 자세를 보여줌으로써 집단에서 축출당하고 산으로 내쫒겼던 것은 아닐까? 집단에 속하지 못하고 배회하고 소외된 여인들의 삶, 그곳에서 우리 수상한 식모들의 씨앗도 발아하였으리라. 이후 조선시대 말엽까지 그녀들은 범녀, 혹은 호랑아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수상한 식모들이란 명칭은 일제시대가 되어서야 생긴 명칭이었다. (박진규, 수상한 식모든, 3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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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9 14:44:34 *.0.6.69

호녀신화 아주 재미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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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5 13:09:19 *.154.223.199

그렇지요? 이헌님^^

재밌어하는 분을 만난게 반가워 막 복사해 왔어요.

마녀와 비슷한 것도 같고요. 호랑아낙 한 번 해보고 싶어지는데요. 하하

 

 

 

 

범녀신화가 있긴 하지만 그녀들의 본격적인 활동이 이력을 파악하려는 시도는 무모하다고 할 수 밖에 없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호랑아낙들은 체계를 갖춘 집단이 아니다. 그렇다고 사당패처럼 무리를 지어 다니며 재주를 보이는 것도 아니었다. 그들은 각기 다른 자기의 신분을 방패로 삼아 본모습을 감추고 지배계급을 농락했다. 호랑아낙의 신분은 대부분 참수당할 때에나 세상에 드러났다. 다만 구전되어오는이야기에 따르면 민란이나 학살 혹은 혼란이 일어날 때마다 호랑아낙들이 늘어났다고 전해지기는 한다. 지아비 혹은 가족들이 몰살당한 경우에 갈 곳을 잃은 어린 여아나 부녀자들 중 몇몇이 호랑아낙의 길에 들어섰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을 이끄는 것은 기존에 몰래 활동하던 호랑아낙들이다.

 

주로 입이 무겁되 겁은 없으며, 딸린 식구가 없는 여인들이 호랑아낙으로 뽑혔다. 그 범녀들은 구전되어 오는 호랑이 신화를 듣고, 또 선대 호랑아낙들의 활약상을 듣고 그들 특유의 비방까지 전수받는다. 어떤 비방의 재주를 가지느냐는 어떤 선지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일이다.

조선 영정조시대에는 호랑아낙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었던 시기였다. 이것은 조선시대의 짧았던 영화와도 맞물려 있다고 여겨진다. 이 시기에 범녀들은 다시 산으로 들어가 혼자 굴에 숨어 생을 보냈다. (중략)

 

당시만 해도 호랑아낙들은 신분을 떠나 다양한 계층에 두루 존재했는데, 어떤 이들은 왕실의 궁녀나 상궁으로 살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연산군 폐위시 재빠른 역할을 했던 이들이 대부분 왕실의 호랑아낙들이었다. 또 광해군을 도왔던 이들도 대부분 왕실의 호랑아낙들이었다고 한다.) 사대부 부인들 중에도 호랑아낙이 있었다. 물론 그녀들에게 호랑아낙의 신화와 삶을 전한 것은 주로 노비나 상인, 광대패 출신의 천인 호랑아낙들이었다. 상대적으로 행동이 자유로웠던 하층민 호랑아낙들은 양반 가문이나 왕궁의 호랑아낙들의 밀서를 가지고 발빠르게 움직이곤 했다. (수상한 식모들, 33~35)

 

109 호랑아낙의 역사에는 많은 직업과 사상들이 명멸하는 면도 있다. 호랑아낙은 때로는 점을 치는 무속인으로, 때로는 동학혁명에 참여하거나, 천주교 신자로 활동하다 순교하거나, 약초와 마법을 연구하며 그들의 삶을 지탱해왔다. 그러다가 그 수가 조선조 영정조 시절에는 현저하게 감소하였다. 또 조선이 패망의 길로 나아갈 때 그 수가 급증하여 동학혁명의 참여자들 대다수가 그들이었다. 호랑아낙의 신분 역시 상궁이나 사대부 부인, 노비나 상인들 등 다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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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0 16:16:54 *.146.26.24

그림 참 구엽습니다..

꼭 들어갔으면 좋겠다요..

 

콩두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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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5 13:10:58 *.154.223.199

우산님^^

'구엽습니다' 말씀이 더 많이 구엽습니다.

 

우산님의 칭찬에 궁뎅춤 추고 있어요. ^^

 

응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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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3 22:45:33 *.97.72.143

콩두는 동화를 쓰면 어떨까? 자신이 그린 그림을 직접 삽입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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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15 13:12:03 *.154.223.199

써니언니^^

 

언니, 그그그래 보보볼까요 아하하하하

 

동화를 읽기만 했지 써보겠다는 생각은 못해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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