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경
- 조회 수 3912
- 댓글 수 7
- 추천 수 0
저에게는 두 친구가 있습니다. 저를 포함해 세 사람이 비슷한 일을 하기에 오랜만에 만나도 어제 만난 듯 교감이 됩니다. 몇 년 전에는 저녁을 먹다가 우울하다는 한 친구의 말에 그 길로 밤길을 운전해 동해안으로 내달렸던 기억도 있습니다. 마음이 적막강산일 때 눈빛만 봐도 심중을 헤아릴만큼 함께 건너 온 곰삭은 세월이 있습니다. 그런데 며칠 전 식사자리에서 두 친구사이에 다툼이 있었습니다. 그 다툼의 이유는 아주 소소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일을 회상하던 두 사람이 극과극으로 다른 표현을 하다 종내는 마음을 상하게 되고 만 것이었습니다.
곁에서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정을 지켜 보게 된 저는 사태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슬며시 번지는 웃음을 참아야 했습니다.
결국 두 사람은 그 상황을 함께 겪은 제게 어떤 기억이 맞느냐고 묻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제가 기억하는 그 상황은 두 사람의 의견처럼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기억상자에 담아 둘만큼 특별하지 않은 평이한 하루였습니다. 제가 웃었던 것은 세 사람이 같은 일에 대해 얼마나 다르게 기억하고 있는지를 발견한 흥미로움 때문이었습니다. 제 대답에 어이없어 하던 친구들은 폭소를 터트렸고, 그 자리는 잘 갈무리 되었습니다.
친구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며, 저는 왜 두 사람의 기억이 상반되는 것인지 내내 생각에 잠겼습니다. 그러다 재미있는 사실을 발견 했습니다. 그 상황이 좋았다고 기억하는 친구는 낙관적인 표현을 잘 쓰며 후일을 자주 기약하는 미래지향형이었고, 그 상황이 나빴다고 기억하는 친구는 작은 실수에도 자주 의기소침해지는 과거지향형의 품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또한 자칭 미래지향형이라고 생각하는 친구는 이야기를 할 때도 "무엇무엇을 했네" 라고 동의를 구하듯이 묻는데, 과거지향인 친구는 "무엇무엇을 했지?" 라고 따지듯이 추측하는 질문을 던집니다. 두 사람 사이에 사소한 다툼이 잦은 것도 그런 표현의 차이 때문이라는 것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자주 만나 의견을 교환하는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서로 다름에 이끌리는 모양입니다. 또 두사람은 저를 무채색이라고 놀리기도 합니다. 저 또한 그 말이 듣기에 나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는 상황에 대하여 특별한 기억이 없는 저는 누구일까요. 과거지향도, 미래지향도 아닌 현재지향형일까요. 이 편지를 받는 그대는 어떤 기억을 간직하고 싶으신지요. 문득 궁금해지는 아침입니다.
장마가 시작된 수요일, 앤의 편지였어요.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716 | 아무 것도 못버리는 사람 [2] | 단경(소은) | 2009.08.04 | 3568 |
715 | 초심이 첫눈처럼 녹아내릴 때 [3] | 신종윤 | 2009.08.03 | 3323 |
714 | 슬픔에 기쁨으로 응답할 때 [1] | 부지깽이 | 2009.07.31 | 3263 |
713 | 낙과(落果)의 교훈 – One get, One lose [12] | 김용규 | 2009.07.30 | 4055 |
712 | 공감도 능력 [6] | 게시판 관리자 | 2009.07.29 | 3304 |
711 | 책임= response + ability | 단경(소은) | 2009.07.28 | 4673 |
710 | 나의 욕망은 진짜인가? [3] | 신종윤 | 2009.07.27 | 2806 |
709 | 어리석은 꿈 하나 품고 사는지요 ? [3] | 부지깽이 | 2009.07.24 | 3312 |
708 | 칠성가스와 신풍각 사장의 기업가 정신 [10] | 김용규 | 2009.07.23 | 3831 |
707 | 당신이 새로운 일에 미치는 기간 [6] | 게시판 관리자 | 2009.07.22 | 3451 |
706 | 경계를 넘어서 -제1회 시민연극교실 [2] | 단경(소은) | 2009.07.21 | 3259 |
705 | 모든 기회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3] | 신종윤 | 2009.07.20 | 3281 |
704 | 외로움을 감내하는 '나만의 법칙' [6] | 부지깽이 | 2009.07.17 | 3920 |
703 | 위험한 동거 [8] | 김용규 | 2009.07.16 | 3647 |
702 | 당신안의 킹콩 [2] | 게시판 관리자 | 2009.07.15 | 3183 |
701 | 단식은 칼을 대지 않는 수술이다 [3] | 단경(소은) | 2009.07.14 | 4248 |
700 | 내 인생의 기우제(祈雨祭) [2] | 신종윤 | 2009.07.13 | 3568 |
699 | 당신의 꽃 [2] | 부지깽이 | 2009.07.10 | 3946 |
698 | 인내 - 나무처럼 견디고 풀처럼 살라 [10] | 김용규 | 2009.07.09 | 3369 |
» | 미래지향형과 과거지향형 [7] | 우경 | 2009.07.08 | 39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