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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월 21일 11시 55분 등록

나에게 신화란 무엇인가?

 

 

저 질문,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린데. 뭐지? 이 익숙함은.  나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나에게 시란 무엇인가?’ 오호라, 작년 연구원 레이스 기간에 써야 하는 칼럼 제목이었지. 나는 1월 들어서 저 질문을 내 안을 향해 손나팔을 만들어 소곤거리고 있다. 마음의 동굴에서 바람소리가 메아리처럼 들려 나온다. 오늘 새벽에는, 성장과정, 그림책 읽어주는 특수교사, 신화든 뭐든 이야기에서 힘을 얻은 어른여자의 개인사를 돌아보면 어떨까 싶으다.  

 

그 방의 옛날 이야기

 

피 양육자의 시절을 스무 살 때까지라고 한다지만 실질적인 유년은 열세 살 까지가 아닐까? 그 시절의 나에게 (하늘이) 쟁인 보물 몇 가지. 하나는 자연 속에서 동네방네 놀러 다닌 경험, 또 하나는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한테 저녁마다 옛날 이야기를 들었다는 거다. 학교 국정교과서와 아라비안나이트 딸랑 1권 말고는 책이라고는 읽지 않았던 내가 이야기를 좋아하게 된 건 아버지와의 그 시간 때문이다. 테레비도 보고 싶었지만 우리 집은 산 밑이고 유선을 넣지 않으면 잘 안 나오는 난시청 지구였다. 한 푼이 아까운 엄마는 당연히 유선 안 달았다. 지네를 절단낸 총각, 사모하던 총각네 부엌에서 살짝쿵 된장찌개를 만들던 우렁각시, 버들낭자를 따라 갔더니 동굴 속에 있던 넓다란 마을, 머리에 쓰면 홀딱 몸이 감춰지는 도깨비감투, 어슬렁어슬렁 산에서 느릿느릿 내려오는 미련퉁이 호랑이, 슬겅슬겅 톱질을 하던 다둥이 흥부 내외, 바다에서 떠내려온 상자 속에 들어있던 알에서 나온 남자를 아버지의 입에서 나오는 이야기로 만났다. 소죽 끓이는 아궁이에 묻어둔 고구마를 꺼내 불어 까먹으면서 배를 깔고 듣는 그 시간이 나는 행복했다. 어른된 뒤 형제들과 말을 맞춰보니 이 시간을 나만 세게 기억하고 있었다남동생들은 낮에 앞산에 지어놓고 내려온 땅굴과 아지트가 잘 있는 지, 옆집 형아에게 딱지치기 똘마니를 해주고 개평으로 받은 별딱지가 더 중요했을랑가?

 

이야기를 듣다가  초저녁잠이 많은 나는 스륵 잠들었다. 일찍 잤으니 일찍 일어났다니글거림과 똥마려운 기미를 동반한 어지럼증을 자주 느꼈던 나는 식구들 다 자는 새벽에 혼자 깨어있는 날이 많았다. 옆에서 증조할머니가 풀먹인 호청을 댄 솜이불을 덮은 채 해소기침을 하고, 윗묵 고구마장석에서 흙냄새가 났다. 창호지문 밖이 환히 밝았는데 달 때문이었다. 앞집 옥수수밭이 서걱거렸다. 청량한 바람들이 동네를 내달리는 걸 잠귀 밝은 개들이 참견하는 소리가 들렸다. 누워서 가만히 올려다보면 지붕과 벽지들이 빙글빙글 무너지고 미끄럼을 탔다. 어제 들은 이야기들의 주인공들과 같이 미끄럼을 탄 적도 있었을까? 그 때 내가 덮었던 이불에 그려진 그림, 벽지를 이렇게 저렇게 조합해서 만들어낸 지도를 가지고 상상을 하며 어른들이 일어나길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초등학교 졸업이 학력의 전부였다. 중학교는 돈 없어서 못갔다내가 들은 이야기들의 재료는 뭘까? 월남에서 죽은 큰아버지가 사다주었다는 아버지의 중학교 검정고시 교재에 나오는 것에 살을 붙인 걸까? 어떤 날은 이 이야기와 저 이야기를 섞어찌개를 하고? 우리집에는 식구 중에 키가 제일 큰 아버지만 닿을 수 있는 높은 책시렁이 있었다. 양장으로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세익스피어전집, 노자, 장자, 성경 같은 게 꽂혀 있었다. 아버지의 은사님이 선물로 준 책이라 했다. 폐병으로 일찍 퇴직을 해서 같은 동네에 사시던 아버지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었다. 매해 골목에다 과꽃을 곱게 가꾸던 그 댁에서 책을 빌려다 볼 때 신문지로 싸서 고이 보고 돌려드렸다고 들었다. 그 선생님은 육이오 유복자였던 아버지한테 양부 역할을 해 주던 남자어른들 중 한 분이리라. 얼마 전에 아버지한테 그 책들을 다 읽으신 거냐 물어보았다. 그렇다고 하셨다. 그 책시렁 덕분에 책에 대한 선망과 존경을 가지게 되었다. 책은 높이, 소중히 간직해야 하는 귀한 무엇이었다. 

 

그림책 읽어주는 특수교사

 

초등학교에서 특수교사로 일하게 된 지 12, 그 전에는 조기교육실에서 3년 일을 했다. 가장 감동적인 건 장애가 이 아이들의 아이스러움을 조금도 해치지 못한다는 거였다. 아이는 아이였다. 생명답게 열려있다. 사랑스럽다. 나는 아이들과 있는 시간의 나를 다른 상황의 나보다 좋아했다. 나로서는 신대륙 발견과 맞먹는 놀라운 발견이었다. 소발에 쥐 잡았은 셈이다. 대학교에서 공부를 열심히 안한 나는 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뭘 해얄 지 몰랐기 때문에 이것 저것을 시도했다. 특수교육은 뭘 가르치고 어떤 재료를 사용할 지에 좀 더 융통성이 있다. 그러다 그림책을 매일 읽게 되었다이게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 중 제일 재미있었다. 국어교육과로 장래희망을 중학교 고등학교 6년 동안 썼었다교통사고처럼 만난 특수교사의 길이었다. 아마도 그림책은 거기서 찾아낸 유일한 접점이었으리라. 이런 분석 따위 유용하지 않다. 그때는 그냥 저절로 그렇게 흘러갔다.  

 

공립학교로 직장을 옮겨서 내가 쓸 수 있는 예산이 늘어난 다음에는 전근 가는 학교마다 그림책을 구해 놓았다. 시공주니어 출판사의 <우리 옛이야기><세계 옛이야기> 시리즈를 전집으로 사다 놓고 읽어 주곤 했다. 존 버닝햄 전작주의를 했다이 영국 그림책 작가의 책 중 한국에 번역된 것을 모두 사다 아이들과 읽었다. 존 버닝햄의 책 중 상상을 많이 해야 하는 건 지적 장애가 깊은 아이에게는 어려워서 외면당했다

 

내가 초등학교 특수학급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지적장애, 자폐성장애 학생들이 많았다. 둘 다 지적 제한이 있어서 받아들일 수 있는 양이 한정되고 수용할 때까지 무한 반복을 해 주어야 한다. 이건 지적장애 학생들의 기억의 문제 때문이다. 단기기억이 약해서 금방 잊어먹는다. 이걸 장기기억으로 집어넣으려면 인이 배기도록 반복을 해야 한다. 일단 장기기억의 창고에 골인을 하면 아이들의 재산이 된다. 재미있는 것이 아니면 무한반복하기가 어렵다. 주의집중에 한계가 있으니 그림이 복잡한 책은 아웃이었다. 아이들이 그림의 어디다 집중을 해얄 지 몰아한다. 그러면 나만 힘들다. 접시에 담아둔 가벼운 과자에 선풍기를 틀어버리듯 아이들은 바로 자리를 뜨거나 움직여 버린다. 일단 책상에 앉혀야 했다. 나는 읽어주고 나서 아이들 집중도, 반응을 봐서 중간에 들썩거리는 아이가 있으면 '깡총깡총 뛰어볼 사람?' '데굴데굴 굴러볼 사람?' 미션을 준다. 공식적으로 돌아다닐 기회를 주는 거다. 한 페이지 읽고 한 가지 동작을 시킨다. 호랑이 똥구멍을 쑤시고, 귀 아픈 시늉을 따라 한다. 그런데 또 쉬운 걸로만 선택하자면 하드보드지로 된 2세 미만 영아들 책이 있는데 그건 또 아니다. 왜냐면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비록 지적인 한계가 있더라도 생활하는 나이는 초등학생 나이니까. 그러니까 나는 영아들 책처럼 그림이 단순하고 명확하면서, 유아들 책처럼 생활기술을 훈련하면서, 재미있고, 우리 아이들의 나이를 모독하지 않는 책을 골라야 했다. 한 권을 가지고 마르고 닳도록 읽어야 하는 교사인 나도 생각해야 한다. 그림책들은 대부분 그림이 흥미롭지만 그 책들을 매일 읽어서 2년간 주구장창 읽어주고, 학교를 바꾸어 다시 만나는 아이들과 읽으면서도 지루하지 않자면 진짜 아름답고 깊은 책이어야 했다. 나는 검증된 이야기에 관심이 갔다. 아직 목록을 다 찾지 못했지만 모든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읽게 되는 고전류였다좋은 그림책에 주는 칼데곳상을 받은 책 중에 의외로 민족과 나라, 인종을 아우르는 보편적인 이야기를 아름답고 단순하게 그린 책들이 많았다. 굳이 내가 노력하지 않아도 매일 반복해서 읽다 보니까 아이들이 저절로 선택을 해 주었다. 매일 읽는데도 매일 아이들이 읽어달라고 골라서 들고 오는 책들이면 확실했다. <팥죽 할멈과 호랑이><구름빵><안돼 데이빗><태양으로 날아간 화살> 같은 그림책이 거기에 든다.

 

아이들 그림책을 읽으면서 어른여자인 내가 교훈을 얻는 일이 많아졌다. 라푼젤을 좋아하는 2학년 여자아이에게 연거푸 읽어 주다가 마녀의 탑 위에 갖히는 게 성장기에는 누구나 필요하다는 걸 생각했고, 버리데기를 읽다가 모든 길 떠나는 이들이 하게 되는 밭 갈기, 빨래, 나무 하기가 뭘 상징할까 궁금해졌다. 결혼이 언제나 언제나 언제나 함께 있고 싶어서 하는 거라는 걸 거스 윌리암스인지 루스 윌리암스인지의 토끼그림책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어떤 그림책은 쉽지만 결코 얕지 않구나. 나는 아이들에게 글과 그림을 만든 사람이 어느 나라 사람인지, 어떻게 그림책 만드는 사람이 되었는 지를 말해준다. 부모의 이혼, 왜 자신은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지 같은 주제도 그림책으로 다룬다. 이혼해서 혼자 아이를 기르는 아빠의 아홉살 아이는 지적장애 3급 복지카드를 가지고 있었다. 나에게 어느날 뜬금없이 물었다. "엄마 어디 갔어?" 그 아이 이후다.          

 

이야기에서 힘을 얻는 어른여자

 

스무살에 재수하러 서울에 온 뒤 교회에 다니면서 듣게 된 예수님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해석하는 목사님들이 그의 삶을 줄기로 이렇게 저렇게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어찌나 다양하게 삶에 적용을 하는 지 흥미롭게 들었다. 아마도 옛날이야기 듣는 느낌이었을 거다. 나는 잘 안 믿기는데 무조건 믿으라고 해서 결정적으로 어그러져 버렸지만 성경읽기를 좋아했었다그러니까 신자가 아니면서 '가라사대' 버전과 공동번역으로 2번 통독을 했겠지. 이걸 좀 더 자랑자랑 떠벌리고 싶은데 성경은 그렇게 읽는 책이 아니예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기도한 다음에 읽는 거예요.’ 누군가 말한 뒤로는 우사당할까봐 참고 있지만 이렇게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는다.  

 

스물두 살부터 절에 가니까 이번에는 고타마 싯다르타 이야기를 한다. 인도 배경이다. 교회와 절에 간 건 구원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구원이라니 너무 거창한가? 나도 이런 거창한 '간증'투의 말투 싫다. 암튼 그 당시가 너무 힘들어서 숨쉴 데가 필요했다. 내가 겪는 것들을 설명해주고 견딜 힘을 주는 체계, 비빌 언덕으로서의 사람들이 필요했던 것 같다. 신의 집, 도를 말하는 이들의 회당에 그런 게 있을 거라는 막연한 기대가 있었다. 이 주제는 늘 나의 관심이었지만 그 시절 내 눈빛은 너무 흔들리고 집중력은 하찮았다. 절에도 옛날 이야기 해주듯이 자분자분 해주는 스님이 계셔서 20 30최소 주 1회씩 절에 가서 지루한 줄 모르고 듣고 들었다. 전생담에 이르면 야한게 없고 즉답적인 교훈 스멜을 풍기지만  황당하기는 거의 아라비안 나이트 급이었다.     

 

카드로 책을 지르는 자유와 힘을 누리는 어른 책소비자가 된 후에 읽은 책 중에 현경의 빨간책 <미래에서 온 편지>, 외계인과 채널링하는 <가슴 뛰는 삶을 살아라>, 조셉 캠벨 <신화의 힘> 같은 것에서 ‘FOLLOW YOUR BLISS’ 메시지를 반복해서 들었다. 이 말은 나에게 북소리고 선동이며 분홍신이다. 그 말을 내 삶으로 따라 나서고, 살아보고, 춤추고 싶다. 그런 일들이 뭐가 있는 지가 진심 궁금하다. 서른다섯에 스스로 지은 내 이름 콩두에 동음이의어로 새겨두었다.  그런데 조셉 캠벨의천복이 현경과 다릴 앙카의 ‘bliss’였다. Bliss board를 만들고 있다. 근데 실행력이 형편없이 떨어져서 목록을 만들고만 있다. 아직 이륙이 안된다. 책값이 많이 들지는 않는다. 나는 읽었던 책을 달달달 읽는 걸 좋아라 한다. 연구원 1년차에 주마간산으로 읽은 책들도 평생동안 되풀이해서 읽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신화의 여신과 남신에서 여성과 남성의 원형을 찾아내어 이야기하는 정신과의사 진 시노다 볼린의 <우리 속에 있는 신들> 시리즈도 재미났다. 나는 나에게 관심이 있다. 내 안에 어떤 여신이 거하시는지, 어떤 남신이 거하시는지, 그리고 나이든 할머니가 되었을 때 어떤 여신이 꽃 피어나실건지 눈밝게 알아보고 싶다. 그래서 그걸 참고로 살아보고 싶다. 나는 내 안에 판테온 신전 보다는 집과 신전을 아늑하게 하는 헤스티아의 화로를 둘러싸고 누가누가 이 인간여자를 주로 움직이는 지를 그려보길 원한다. 나라는 여자사람에게서 가장 목소리가 큰 여신과 남신이 누구신지 찬찬히 볼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정진의 불과 온기를 잘 켜들어 그 화로 또는 모닥불 주변에 둘러앉은 신들의 이야기를 내가 알아들길 원한다. 그 책들에 있는 프시케신화나 아틀란타신화, 그리고 여러 신들의 이야기에서, 자기 삶의 주인공으로 살아가려는 여성의 여정에 대한 설명에서 많은 힌트를 받았다. 프시케처럼 나도 날마다 뒤죽박죽된 곡식더미를 앞에 두고 골치 지끈거리지 않나? 무엇보다도 신이 내 안에 거하신다, 원형은 씨앗같다는 개념 자체가 멋지다.

 

절에서 기도할 때는 단군신화의 웅녀의 동굴 고행이변화를 위한 숙고의 시간으로 받아들여졌다. 백일기도, 3년 기도 이런 게 다른 이들에게 무척이나 생소하겠지. 나도 이 경험을 어떻게 말을 해얄 지 모르겠다. 암튼 어느 새벽 나는 아프고 싫은 날 억지로 일어나 울면서 염불을 하다가 웅녀의 동굴을 떠올렸고 그녀의 견딤이 내게도 힘이 되었다.  마늘과 쑥의 시간이 내게도 있다면 콩쥐의 두꺼비와 도깨비감투, 인디언기우제를 내 생활 속에서 찾아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겠다어릴 때 아무 생각 없이 듣고 읽었던 이야기들이 희안하게 사용되는 것 같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조셉 캠벨의 어떤 책에서 지금도 어디 사거리 신호등 아래에서 신화 속 인물 누구누구가 신호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럼 그 일은 미국, 조셉 캠벨의 시대가 아니라 지금, 내 옆에서도 일어나는 일일테다. 또한 그는 아이들의 동화책에도 신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럼 굳이 많이 읽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어른이 되어서 신화와의 인연을 회상하려니 말이 꼬이고 걸음이 올바르지 않네. 이건 별다른 사연이 없거나 중요치 않다는 말이 아닐까? 억지로 지어낼 필요는 없겠고. 내가 어른여자로서 이야기에서 힘을 얻은 경험이 부분을 다루기 싫은 건 절에서 들은 이야기든, 뭐든 그걸 삶에 적용해 단서를 얻어 걸어간 어른여자로서의 이야기를 하자면 내가 힘들었던 걸 말해야 하는 게 어디 상담을 갈 때마다 개인사를 반복해야 하는 것처럼 지루하기 때문이다. 남들에게는 참고사항일 뿐이지만 나에게는 그 과정에 만만찮은 에너지 상납이 있다.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 두번이지. 또 집단무의식과 원형을 다룬 융의 책을 아는 체 해야 하고, 그러자면 여기 붙들려 한참 공부를 해야 하는 게 귀찮다. 근데 요건 비중이 적다. 앞의 것을 논리적으로 핑계대려고 가지고 온 이유다.  

 

이런 저런 것들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아야겠다저 질문에 대답을 해야만 1월 오프수업에서 내가 김학원 대표님한테 받은 숙제를 할 수가 있다. 그게 내 책에게로 접근하는 문을 여는 첫번째 키다. 그 분은 나더러 왜 첫 책을 신화에 대해 쓰려고 하는지 서문부터 먼저 죽 써보라고 했다. 그게 아직 내 안에만 있다고 했다. 책을 쓰는 것은 그걸 객관화, 사회화 하는 거라고 하셨다. 엉터리겠지만, 나야 원래부터 뭉툭한 야매이니 계속 숙제해 볼 참이다.

 

이 칼럼을 내야할 제출 시간에 또 못댔다. 한참 지각했다. 제목만 달랑 내놓고 수정을 열라 졸라 하고 있다. 자존감 확 떨어진다. 벌점 버는데 어쩌자고 이러시나. 겨울방학이어서 시간 많았는데 북리뷰도 날림이다. 일리아드/오디세이아는 진도를 못 빼서 이번 주도 패스다. 연말정산도 하러 가고, 병원에 염증약도 타러 가야 하고, 천안에 숙박연수도 갔어야 하고, 결혼식장 예약도 해야하고 징징징징징. 내가 노아의 홍수가 있던 때 짐승이면 방주에 못 탔겠다. 배를 놓쳤으면 어떡하지? 암수로 짝을 지어 나타난 두 마리들 말고 다 홍수에 떼밀려 죽어버렸을까? 이건 딴 소린데 성경 홍수시대 노아 부부는 그리스로마신화의 제우스가 아끼던 노부부와 닮았다. 제우스도 직심스럽게 신을 믿던 그 부부만 빼고 물로 쓸어버렸댔다. 홍수는 여러 신화에서 반복해서 나타나는 걸로 봐서 지구에서 있었던 일일 가능성이 많댔지. 성경에서는 노아의 방주가 구원의 배가 되어 주었고, 다른 데서는 어떤 기준을 가진 생명체가 구원되었을까? 나는 쪼르르 옆방으로 건너가 <세계의 신화>를 뒤적거린다. 이 책은 그림책이다. 세르기우스 골로빈, 미르치아 엘리아데, 조셉 캠벨 공저다. 홍수, 홍수, 홍수 어디 있더라? 못 찾았다. 이 책이 아닌가? 책을 벼락치기로 필사하다보니 건성건성 소가 핥듯이 읽게 된다. 제깍제깍 인용문 인출이 어렵네. 누굴 탓해. '이야기'의 족보에서 신화와 설화와 민담과 전설의 촌수를 헤아리지 못하더라도 그걸 알아가는 과정을 포함하여 내가 이 주제를 재미있어 한다는 건 알겠다. . 홀연히. 화들짝. 문득? 이런 류의 단어 중에 제일 임팩트한 건 벼락같이’ ‘천둥같이. 이건 사부님 책의 기출단어다. 나는 이나 화들짝이 좋다. 얼음장 갈라지는 소리잖아. 또 팔랑팔랑하니 경박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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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22 05:27:58 *.39.134.221

무엇이 콩두를 잡고 있는 걸까.

지난주에 박수건달봤다. 박수무당이 남자라는 걸 알은 것은 그리오래되지 않았다.

내가 굿을 해보면서 알았으니까. 사실 무당이란 캐릭터에 대해서 관심이 좀 덜했다고 해야겠지.

좀 터부시 하는 면이 없지 않았으니까.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주인공이 처음 점집과의 인연이 되어지는 장면이 있다. 신문광고지가 자꾸 따라오는 거야. 마치 바람이 사람인것처럼

나중에 보니 아이 귀신이 들고 따라오던거였거든. 그 사람을 알아보고,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으로, 신내림을 받아 곧 자신을 알아볼수 있다는 것을 알고 말이야.

이런 영화를 보고나면 드는 생각이 있지. 귀신의 존재. 신의 존재라고도 할수있고, 이부분은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기는 하지만

콩두를 잡고 있는 그것이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보통 습이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의미일텐데, 시간의 문제가 아님은 분명한것 같고.

어딘가에 네가 걸려 넘어져서 주저앉아 있는 무엇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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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2.13 06:34:43 *.154.223.199

행님 늦은 댓글을 답니다.

늦는 습에 대해 고찰하기 시작했어요.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했어요.

다음에 만나면 말씀드릴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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