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지깽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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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노래로 데메테르의 딸 * 을 홀리리라.
죽음의 왕도 무너뜨리리라
내 음악으로 그들의 심금을 울려
기필코 사랑하는 이를 죽음으로부터 되찾아 오리라
이 노래는 음악의 달인 오르페우스가 일찍 사별한 아내 에우리디케를 찾아 죽음의 지하세계로 내려가기 전 전의를 다지는 심정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는 수금을 타며 지하세계로 내려 갑니다.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스틱스 강의 사공 카론을 울리고, 머리가 셋에 꼬리는 뱀의 모습을 한 저승 입구를 지키는 개 케르베로스를 달래고 어두운 하데스의 영토 곳곳을 감미로운 그의 노래로 가득 채웠지요. 그 노래는 너무도 감미로워 지하세계에서 벌받고 고통 받는 자들의 영혼을 그 날 하루 동안만은 기쁘게 달래 주었습니다. 마침내 저승의 왕과 왕비도 감동하고 도취하여 인간에게 한 번도 허용되지 않은 특혜를 베풀었지요. 하나의 조건과 함께.
하나의 조건, 그것은 아주 단순하고 쉬운 것처럼 보였습니다. "네 신부를 데려가라. 그러나 너희 둘이 빛의 세계에 완벽하게 발을 들여 놓기 전까지는 절대 뒤돌아 네 신부를 쳐다 보아서는 안된다" 기쁨에 젖어 노래하며 오르페우스는 신부를 데리고 어두운 지하세계를 빠져 나옵니다. 마침내 그는 햇빛이 쏟아지는 지상세계의 입구를 껑충 뛰어 올라 환희에 가득 차 신부를 향해 뒤돌아섭니다. 그러다 그는 너무 빨리 몸을 돌렸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에우리디케는 막 햇빛 속으로 발을 옮겨 놓으려는 찰라였으니까요. 그녀는 순식간에 넘어져 다시 어둠 속으로 사라져 갑니다. '안녕히'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말입니다. 그리고 죽음은 그들을 영원히 갈라 놓았습니다.
왜 오르페우스는 마지막 순간에 그렇게 비극적인 실수를 저질렀을까요 ? 이미 신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죽은 자를 다시 데려가는 예외를 짐짓 허락했던 것일까요 ? 많은 추측과 해석이 난무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아마도 에우리디케가 그와는 별개의 독자적 운명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오르페우스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까닭일 것입니다. 사랑의 힘으로 저승 깊이 들어 갈 수는 있으나 한 번 어긋난 사랑으로 다시 되돌아 갈 수는 없는 것이라는 의미인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지금 사랑, 그 사랑이 어긋나지 않도록 죽도록 사랑하세요.
자기 혁명은 사랑입니다. 자신을 데리고 저승 끝까지 가보는 사랑이지요. 어두운 지하세계를 거쳐 껑충 빛의 세계로 뛰어 오르는 것입니다. 비록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미 성공과 실패의 차원을 넘어서 있습니다. 그것은 안타깝고 이름다운 당신의 삶 자체니까요.
* '데메테르의 딸'은 죽음의 왕 하데스의 아내가 된 페르세포네입니다. 하데스는 페르세포네를 납치하여 강제로 자신의 아내로 삼았지요. 성장과 추수의 여신 데메테르가 강제 납치에 강하게 항의하자 중간에 선 제우스는 페르세포네가 반은 지하세계에서 하데스와 함께 있고, 반은 어머니 데메테르와 지상에 머물게 만들었습니다. 가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그녀는 지하의 하데스에게 되돌아 가야합니다. 추석은 페르세포네가 어머니와 함께 보내는 한 해의 마지막 풍성한 축제의 시간입니다. 맘껏 즐기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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