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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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창조자들은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특히 원만한 삶을 포기하면서까지도 자신의 일에 매진하려고 한다. 이러한 계약의 성격은 사례마다 조금씩 다르다. 금욕적인 삶을 다짐하는 경우(프로이트, 엘리엇, 간디)도 있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끊고 스스로 고립을 자초하는 경우(아인슈타인, 마사 그레이엄)도 있다. …… [중략] …… 이 범상치 않은 협정에는 이런 계약을 강박적이리만큼 충실하게 이행하지 않으면 자신의 재능이 손상되거나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믿음이 서려있다. 실제로 계약 이행이 느슨해지면 창조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수가 있다.
하워드 가드너, 『열정과 기질』 중에서
누구나 알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작품을 고전이라고 한다는 군요. 우스개이긴 하지만 가시가 있는 말이어서 따끔합니다. 그런 의미에서라면 괴테의 『파우스트』는 고전이 분명합니다. 이 작품 속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에게 거래를 제안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알려주는 대신 한 가지를 요구하지요. 바로 파우스트의 ‘영혼’입니다. 파우스트는 악마의 제안을 받아들입니다.
처음에는 탐욕에 눈이 멀어 영혼을 팔아버린 파우스트의 결정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니 그의 결정이 낯설지만은 않네요. 성공과 성취라는 목표에 눈이 먼 많은 사람들이 더 중요한 가치들을 놓치고 있는 모습을 주위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니까요. 아니, 저부터도 이런 혐의에서 자유롭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렵군요.
『열정과 기질』의 저자, 하워드 가드너는 창조적인 업적을 이룬 사람들이 삶의 중요한 부분을 억제하고 자신들의 작업을 해낸 것을 ‘파우스트적 거래’라고 표현합니다. 책을 따라가며 엿보는 창조적 대가들의 삶은 압도적입니다. 뜻한 바를 이루기 위해서 세속적인 즐거움은 몽땅 ‘포기’한 듯한 ‘위대한’ 삶이었다고나 할까요? 기가 질리는 느낌도 있습니다. 존경스럽지만 그들처럼 살고 싶지는 않다는 비겁한 변명도 우물쭈물 몸 속을 기어 다닙니다.
그런데요, 문득 그들이 자발적으로 세속적인 즐거움을 포기한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문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선택한 작업 속에서 다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요? 마치 도박으로 전 재산을 날리고도 카지노 주위를 서성이는 중독자처럼 창조적 대가들 역시 자신들의 일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요?
‘중독’은 어떤 행위를 하면 자신이 원하는 심리적 상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경험적 확신에서 출발합니다. 컴퓨터 게임을 하기만 하면, 도박을 하기만 하면, 술을 마시기만 하면, 자신이 원하는 특정 감정 상태(쾌감)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대상 행위를 반복하게 되지요. 심리학에서는 이를 ‘중독 행동’이라고 표현합니다.
창조적 대가들의 위대한 삶과 업적을 단순히 ‘중독’으로 폄하하는 것은 대단히 무례하고 위험한 발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중독’이야말로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과 창조적 대가들 사이에 놓인 커다란 차이를 해독해내는 열쇠가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의 인생을 걸 무언가를 만났을 때 느끼는 희열, 그 대상과 자신이 혼연일체가 되는 몰입의 짜릿함이야말로 술이나 마약으로는 대신할 수 없는 기쁨이겠지요. 제가 생각하는 ‘행복한 중독’은 여기에서 시작입니다.
행복한 중독에 빠질 수 있다면 여러분도 파우스트와 같은 선택을 하실 건가요? 중독에 대한 고민으로 한 주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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