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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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시에서 제법 세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숲에 사는 지금도 나는 그 세속함을 완전히 씻어 지워내지 못했습니다. 나는 이따금 식물들처럼 내 몸에도 엽록체가 있어서 햇빛과 물과 공기만으로도 밥을 만들어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공상을 합니다. 초식과 육식을 기반으로 살아야 하는, 다시 말해 날마다 다른 생명을 취해 살아야 하는 인류의 숙명을 거역하는 이루지 못할 꿈에 대해 상상해 보곤합니다. 멈추지 못하는 나의 세속함이 그 숙명에서 발원하기에.
자연에서 다시 시작한 내 삶의 유형은 은퇴형이 아닙니다. 도시에서 축적해 놓은 재산을 자연에서 쓰며 사는 삶이 아니라, 이곳에서도 먹고 살 돈을 마련해야 하고, 하고싶은 농사짓기를 삶의 한 축으로 하는 귀농형입니다. 그러면서도 가녀린 내 영혼은 《월든》의 헨리 데이빗 소로우나, 《조화로운 삶》의 니어링 부부의 삶처럼 ‘오직 지금 이순간’만을 누리는 삶을 끝없이 그리워합니다. 나는 도회적 삶과 교육방식을 버릴 수 없어 그것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는 가장입니다. 이 아름다운 숲에서 나도 그저 한 포기 풀처럼 한 그루 나무처럼 온전히 숲의 일원으로만 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가장 막강한 사정이 거기 있습니다.
소로우처럼 오직 홀 몸을 건사하면 되는 삶도 아니고, 니어링 부부처럼 삶의 방식에 합일을 이룬 삶도 아니어서 나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깊은 갈등을 운명처럼 지고 살아야 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자연에서 다시 시작한 내 삶은 이상과 현실의 부조화, 바로 그 속에서 적절함을 찾아 평화에 이르러야 합니다. 자연에서 다시 시작하는 내 삶의 첫 번째 욕심은 그것입니다. 밥과 영혼 사이의 이 쉽지 않은 조화를 이루어 허물어지지 않는 평화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나는 충청도 사람의 독특한 특징을 이야기하는 세간의 이야기 하나를 참 좋아합니다. 이런 이야기입니다. 가을걷이 한창인 날에 충청도 어느 국도변에 노점을 차린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밭에서 막 수확한 배추를 쌓아놓고 파는 중입니다. 승용차로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가던 한 아낙이 마침 그것을 봅니다. 미끄러지듯 노점 앞에 차를 세웁니다. 배추가 아주 탐스러워서 몇 포기 사다가 김치를 담고 싶어서 입니다. 할머니에게 묻습니다. “할머니 이 배추 한 포기에 얼마예요?” 할머니가 아낙을 흘깃 살핀 뒤 아주 천천히 말합니다. “살 사람이 금을 알지 팔 사람이 금을 어떻게 알아유?” 서울 아낙이 말을 잇습니다. “할머니, 요즘 가락동농수산물시장에서 배추 한 포기에 600원하던데, 제가 특별히 800원에 사드릴게요.” 할머니가 아낙의 눈을 피해 먼 산을 보며 느릿느릿 말합니다. “냅둬유! 우리 집 소나 믹이게(먹이게)!” 아낙은 결국 정상 가격을 지불하고 배추를 사갔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충청도 사람들이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는 기질을 일컫는 일화로 회자됩니다. 충청도 사람들 특히 충북 사람들에게 그런 기질이 있고, 그 역사적 연유와 정당함에 대해서도 설명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는 할머니가 자신 있게 발휘하는 거절의 통쾌함 때문입니다.
자연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면서 가장으로서의 현실과 자연인으로서 품은 자유롭고 평화로운 영적 삶의 지향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메울 삶의 모델을 나는 할머니의 거절에서 찾았습니다. 땀 흘려 정직하게 농사짓고 그 농작물을 팔되, 유통 상인들의 횡포를 허용하지 않는다. 나의 방식으로 직접 판다. 밥상의 약이 될 만큼 우주의 기운을 가득 머금은 농작물을 생산하는 농사로 자립하는 것, 그 가격과 유통에 있어 세상에 대해 당당할 수 있는 것, 마땅하지 않은 사람과 자리는 단호히 거절할 수 있는 것! 이웃에 농사와 자신의 삶에 대해 자존감 가득한 농부 형님이 그런 삶을 사는데, 내 삶의 한 축도 그렇게 만들겠다는 욕심이 나의 첫 번째 욕심입니다. 내버려둠 농법으로 짓는 산마늘 농사, 감나무와 매실나무를 심은 이유, 토종벌을 모시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올해는 달걀을 꼭 자급하고 싶어서 지난 번에 실패한 닭장을 곧 다시 만들 작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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