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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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이 여행을 가도록 해준 나의 여자친구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이 글을 조금 더 수정하고 올리려 했지만 그때의 나의 감정과 서투른 부분까지 그대로 올리는 것이 나를 더욱더 채찍질 하는것이기에 무수정본을 Ver.1 로 삼아 글을 올립니다. 앞으로 수많은 수정이 있겠지만 이번 여행에서 내가 느꼈던 감정들은 지금 이대로 수정없이 이어지기를 바라며..
* 2019년 12월 27일 나의 꿈벗동기들을 만나기 전날 10년을 년단위로 회상하며 간단히 기록한 글입니다.
2010년
2009년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 이후 내가 달라지게 된 해였다. 다른사람과의 경쟁이 아닌 나만의 것을 얻기위한 일정이 시작되었다. 내자신을 전문화 시키기 위해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공부를 하면서 내 자신이 전문가의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여자친구에게도 밝은 소식이 생기게 되었다. 지금까지 아파오던것을 해결할수 있는 의사를 찾게 되어 치료를 시작하게 된것이다. 그때까지 가족과는 좋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일단은 건강을 찾을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게 된 해였다.
2011년
여자친구의 치료가 끝이 났다. 완전한 건강을 찾기위해 운동을 시작했다. 매일 걷고 요가등의 운동을 하며 건강회복에 힘을 썼다. 그와 동시에 여자친구의 가족에게 연락을 다시 시작했다. 어머님, 언니들, 형부, 조카 에게 여자친구의 치료가 끝나고 운동에 힘쓰고 있음을 알렸다. 그런데 그들이 달라져 있었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던것 때문에 생각을 많이 했던것인지 따뜻하게 받아주었고 예전의 문제들을 얘기하며 가족관계가 회복되게 되었다. 건강을 찾기위한 운동은 더욱더 빨라졌고 그해 말 나의 여자친구는 더 이상 환자가 아니게 되었다.
2012년
회사에서 나의 위치가 확고해졌다. 아직 나의 전문성은 내가 원하는 만큼은 아니었지만 회사에서 나의 능력을 절대 필요로 하게 되었다.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난 계속 자신을 개발하기 위해 힘썼다. 업계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나와같은 전문가를 찾고 그들과 교류하며 여러정보들을 수집하게 되었다. 그렇게 나의 인적자원을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2년 해에 드디어 여자친구와 만난지 12년 만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양가 가족들, 친구들, 꿈벗동기들, 회사 동료들이 모여 축하를 해주었고 주례는 구본형 소장님이었다. 이렇게 나의 큰고민 하나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2013년
계속 전문가가 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되었다. 가상의 회사들을 설립해서 그들의 사업에 필요한 네트워크 보안구성을 진행했다. 대기업 1개와 중소기업 1개를 모델로 실제 구성설계를 하였고 이런 가상의 노력들을 통해 난 전문가로 점점더 다가가게 되었다. 그해 보안감사에서는 동종업계중 1위를 다시 탈환하는 기쁨을 누렸다. 5년만이었다. 나의 노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2014년
아마추어 합창단에 가입했다. 내가 먼저 만들고 싶었지만 보통의 아마추어 합창단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정확히 알기위해 가입했다. 그 생활은 즐거웠다. 함께 노래를 할수 있다는것이 그렇게 좋을수가 없었다.
물건들도 만들기 시작했다. 평소에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물건들을 만들어보기 시작했고 실패도 있지만 재미 있었다.
나의 아내도 일을 가지게 되었다. 평소 아이들을 가르치는것을 좋아하던 아내는 과외 전문의 일을 하게 되었는데 즐겁고 활기차 보였다. 그 모습이 나를 더욱더 힘을 내도록 하는 자극이 되었다.
2015년
꿈벗동기들과도 계속 만나왔다. 각자 노력하는 모습들을 보여주며 서로를 격려 했고 변하는 모습들을 보며 즐거워했다. 그리고 나에게도 예쁜 자식이 생기게 되었다. 남들보다 늦게 보았지만 많이 기뻤고 행복했다. 아내가 나이가 많고 초산이라 우리는 입양을 결심했고 예쁜 딸을 입양하게 되었다. 부모님께도 잘 말씀을 드려 허락을 얻어내었고 우리는 더욱 행복한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2016년
하고자 하는 보안 전문가가 되었다. 새로운 정보를 얻는 나름대로의 루트도 생기고 여러 비슷한 업종의 사람들과도 많이 알게 되었다. 하지만 안주하면 뒤쳐지는 것이기에 나만의 특화점을 개발하기 위해 계속 노력하는것은 잊지 않았다.
나의 모습을 보고 후배들도 잘 따라 주었고 회사에서도 전폭적인 지지를 해주었다. 이런모습을 가지기까지 힘들었던것이 아니라 즐거웠기에 더욱더 기분이 좋았다.
2017년
아마추어 합창단을 직접 만들기 어려워 현재 있는 아마추어 합창단을 변화시켰다. 누구나 올수 있었다. 그곳에서는 작게는 중창으로 길거리에 나가보기도 하고 1년간 연습한것으로 주변친지들을 초대해 공연을 하기도 하였다. 너무 즐거웠고 행복했다. 꿈벗동기들도 꼬셔서 함께했다. 그들에게도 이런 즐거움을 가르쳐주고 싶었다. 다행히 모두들 즐거운 시간을 함께 할수 있었다.
2018년
드디어 물건을 하나 만들었다. 돈이될만한 물건은 아니었지만 나의 다른재능을 썩히지 않았다는것이 매우 기뻤다.
내 딸도 재미있어했고 아내도 즐거워했다. 집에 쓰레기 놓지말라며 구박하는것이 아니라 전폭적으로 지지해준 아내에게 너무 감사했다.
2019년
꿈벗 동기들과도 계속 만났다.
박종열 회장님(큰형님)은 강점개발전문회사를 차려 사람들의 인생의 방향을 잡아주고 계셨고
정호형은 항상 환자중심의 진료를 하는것으로 유명해져 국민주치의로 이름을 날리고 있었다.
미옥이누나는 더 이상 자신의 아이디어들을 재워두지 않아도 책을 써내는것마다 빅히트였고
지영이누나는 강점개발전문가로서 발명학교를 세워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헌신하고 있었으며
나라는 기상기후 전문가로써의 일도 훌륭히 하고 있었고 그와 동시에 소외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훌륭한 여성으로 메스컴에 오르내렸다.
동희는 기술컨벤션 전문가로 업계에서 고동희 하면 절대 필요한 업무파트너로서 인식이 되어있었고 여러업체들을 매칭시켜 우리나라 경제가 살아나는데도 이바지 하고 있었다.
고운이는 자신이 원하던 아프리카로 가서 보건 교육을 하고 있었고 제2의 테레사수녀라는 애칭으로 현지에서 존경을 받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나는 보안 전문가로서 여러곳에서 나를 필요로 하게 되었고 합창단으로서 너무나 재미있는 삶을 살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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