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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13일 10시 33분 등록
J에게

지난주 금요일부터 어제까지 20여통의 엽서를 보냈다. 8월 1일자로 엽서값이 30원 올랐더라. 처음에 시작할 때는 220원이었는데, 두 번이 올랐다.

너를 포함해서 그동안 알고 지내고 계속 엽서를 보내고 받고 하는 사람들과 이번에 블로그를 통해서 신청한 사람과 그리고 계속 그림으로 후원하고 싶은 단체의 리더에게 보냈다. 그동안 알았던 사람들에게 모두 보낸다면 100통은 넘어야할지도 모르겠다. 이번에는 몇명만, 그리고 다음에 또 기회가 되면 또 보내지 뭐. 계속 할꺼니까 그 사람이 살아만 있다면야, 아휴 참 '살아만 있다면'이라고 하니 갑자기 슬퍼지네. 꼭 보내고 싶은 사람이 또 있어서.

Love Virus라는 이름으로 시작한 것은 몇 년전이야. 한 5년쯤 됐을까? 2008년인가, 2009년인가 변경연에서 단군의 후예라는 걸 한다고 해서. 너도 알지. 그 새벽기상과 함께 새벽에 뭔가 하는 거. 나는 그때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고, 시간이 많이 나니 그림을 많이 그렸지. 그러다가 이왕 그리는 거라면 지인들에게 엽서 보내자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 이전에 이것에 대해 이야기를 준 사람도 있어. 필리핀으로 어학연수와 취업을 떠나면서 작은 후원을 해달라고 한 친구가 있어. 자신은 1년에 걸쳐서 필리핀의 그림엽서(관광엽서)와 작은 선물들을 보내겠다고 약속했지. 그러면서 그녀는 자신이 엽서를 사서 보내는 것보다는 그림엽서를 직접 그려보내고 싶은데, 자신은 그리는 능력이 안되어서 그런다며, 나보고도 해보라고 하더라. 그래서 그거 좋겠다 싶었지.

처음엔 몇 명이서 시작하고 그게 자꾸 늘어나길 바랬어. 내가 다 보내는 걸로 늘어나는 게 아니라 편지를 주고 받다가 마음에 들면 자신의 주변 사람에게도 편지쓰고 엽서 쓰고 했으면 하는 거였어.

우리는 친구한테 편지 받는 즐거움을 한번쯤을 가져본 사람들이잖아. 난 친구와 여러차례 편지왕래로 행복하기도 했구. 그래서 다른 사람들도 그랬으면 했거든. 그리고 그게 자연스럽게 퍼질 줄 알았지.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그림엽서를 보내는 동안 난 심각하게 고민했던 적 많아. 얼마나 오랫동안 엽서를 보내야 하는가였어. 처음에 6개월, 나중에는 3개월을 약속했지. 6개월에 12번은 좀 벅찼거든. 그리고 처음에 가볍게 5명으로 시작하려 했는데, 접수를 받아보니 10명이 넘어버렸어. 그리고 개인적으로 계속 보내고 싶은 사람도 있어서 자꾸 부담되더라구. 약속했던 기간이 지났는데도 계속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고. 다음번에 다시 신청하는 사람도 있었어. 내가 처음에 어떤 취지로 시작했는지는 다 잊혀졌나봐. 처음에 내가 보내지만 나중엔 받는 사람 자신이 직접 지인들에게 써보내는 것을 생각했는데, 여전히 받는 것을 너무 좋아하다구.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했어. 어떤 지인은 이제는 자기는 그만 보내고 다른 사람 보래달라고 하기도 했는데, 그런 경우는 아주 특이한 경우였지.

난 나와 그사람, 그리고 거기에 다른 사람이 하나 더 들어오길 바랬는데, 그게 몇 년이 지나도 잘 안되는 경우도 있더라구. 솥은 다리가 3개여야 설 수 있는데, 그 하나의 다리를 만들어 내는 게 쉽지가 않네.

그리고 또 난 보내는 사람이고, 상대는 받는 사람이 되고 보니 뭘 써야 할지 막막한 경우가 많았어. 그래서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었어. 사소하고 가벼운 것을 썼지. 그리고 아주 일반적인 것을. 날씨가 어떻게 변했다던가하는 이야기를. 그런데, 그게 영 마음에 안들더라구. 그래서 조금 더 사소한 것으로 들어갔지. 나중엔 정말 사소한 것이 되어버렸어. 지금은 개인과 개인을 이어주는 것은 그 사소함이 아닐까 생각한다. 집에 천정에 달린 형광등이 나갔는데, 그걸 뚜껑을 열지 못해 의자위에 올라서 손을 들고 몇분이나 벌을 서듯이 애를 먹었던 것. 재미난 양말을 구입했는데, 회사에 신고가기가 쑥스러운 것이든가, 공룡 피규어를 샀는데 그걸 그렸다는 그런 사소함을 넣었지. 그런 이야기는 아무렇지도 않을 때 하는 거잖아. 정말 아무렇지도 안을 때 말이야.

우리는 그런 것을 그리워했는지도 모르겠어. 모닝페이지에 앞부분에 글쓰기 강좌 이야기가 나오는데, 자신의 할머니는 시시콜콜한 것을 편지에 써보냈다는 것이 나와. 화단에 장미를 심었다든가, 벌레를 잡았다든가, 날씨가 바뀌니 어떠하다 하는 식의 사소한 것을 편지에 써보내는 할머니. 나중에 방학을 해서 집에 갔더니 할머니가 자신의 손을 이끌고 화단으로 끌고가서 뭔가를 보여주었다고 하더라. 할머니는 일상 속에서 사는 모습 그대로를 편지에 썼고, 그리고 자신이 반면이나 집을 떠나 있었지만 꼭 같이 살았던 사람처럼 대해주었다고 말이야. 그림엽서에는 그런 게 담겨야 할 게 아닌가 생각했어. 우리는 그런 것을 그리워하잖아. 멋진 그림엽서가 아니라 사소한 그림엽서 말이야.

자신만을 위해서 단 하나만 만들어진 것에도 기쁨이 솟지만, 반대로 그것이 너무 애쓰지 않고 만들어져서 일상중에서도 자신을 생각한다는 것을 알게되었을 때의 기쁨이 큰 것 같아.

그래서 난 그림엽서를 멈출 수가 없었고, 보내는 사람이 계속 늘어났어. 난 내 지인들과 그런 것을 나누고 싶어져 버렸거든. 처음에 의도는 아주 많은 사람이 같이하길 바랬지. 영화 '아름다운 세상을 우하여'처럼 한 사람이 세 사람에게, 그리고 그 세 사람이 각각 세 사람에게 뭐가 좋은 일을 해주면서 커져가는 것 말이야. 난 그런 것을 생각했는데, 그건 어찌 되는지 알 수없는 것 같아. 단지 난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계속하는거지. 그게 어찌될지는 모르고 말이야.

엊그제 정숙이가 아이를 낳았다고 해서 뭔가 선물을 해 보내고 싶은데, 경제적 형편은 안되고 해서 그림엽서 보내겠다고 주소를 물어보고는 보냈다. 예전에는 회사로 보냈는데, 지금은 출산휴가 중일테니까 물어봤지. 문자로 보내온 주소는 신혼집이 아닌 친정집 같더라. 주소를 폰에 저장하는데 이미 저장된 주소와는 달라서 그리 짐작해본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친정집에 가 있다니 정말 다행이다.
엽서엔 정말 사소한 것은 쓸 수 없을 때도 있다. '친정집에 가 있다니 다행이다'라는 말을 쓸 수가 없더라.

난 좀 바보같다. 엽서엔 많은 것을 담을 수 없는데, 그 조그만 지면에 글을 쓰다가 자꾸 생각이 많아진다. 그래서 가끔은 좁은 지면을 핑계로 그 이야기는 다음번에 쓰자 한다. 그리고는 까먹어 버린다. 까먹어서 적당한 거리가 유지되기도 한다. 그런 건 정말 바보같다.

가벼운 것. 엽서. 나뭇잎 한장에 전할 수 있는 말. 정말 적지. 그래서 오래오래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5년쯤이 되었는데, 그래도 처음에 생각했던 대로는 안되다니 이상하다. 그런데, 그게 이상하게도 당연하다고도 느낀다. 그 시간이면 짧지. 보통은 사람이 뭔가를 하겠다는 게 3일 간다고 한다. 그런데, 그게 30일쯤 되면 할만한 것이도 한가보다. 석달쯤(100일)쯤 계속된다면 뭔가를 하나 이루기도 한다고 하고, 관계가 좋아진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성과를 보고 싶다면 3년쯤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거기다가 더 심하게 한다디 더 붙이더라. 그걸로 성공한 사람은 30년쯤 처음 마음 버리지 않고 계속 했다고. 이런 미친 일 있나. 안그러냐? 그사람의 젊은 한 때를 몽땅 다 잡아먹고 서야 이룩되는 거라는 말에 기가 막힌다. 단 한번 뿐인 인생인데, 가장 좋은 시기를 몽땅 다 바쳐서 되는 거라잖아. 이러고 보면 참 쉽다. 그게 싫으면 안하면 되니까.

싫으면 안하면 된다, 이 얼마나 편해. 그런데, 이제는 아닌 것 같아. 좋은 이유, 좋아하는 이유, 괴로운 것, 피해가는 것을 알아버려서 몇 년쯤 계속해도 괜찮을 것 같다. 또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시시콜콜 궁시렁궁시렁 써보내도 되는 친구가 몇 생기기도 했으니까.
IP *.61.23.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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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6 16:58:24 *.153.23.18

아티스트 후원 이런 것 조직 해보면 어떨까요? 정화님

맨 처음 그 분도 자신의 후원자들에게 엽서를 보낸 거였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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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7 22:56:11 *.39.145.21
조직까지는 모르겠구요, 인연이 닿으면 그리될지도 모르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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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18 08:19:28 *.39.145.21

콩두님 관심 고맙습니다. 

현재 제게 엽서는 '매우 사적인... 소통' 이라서 후원과 연결시키고 싶지 않구요, 그림은 무거운 거라서 감당하기가 어렵네요. 

그림의 무게를 감당할 각오가 서면 그때 엽서건 뭐건 거리낌없이 연결시키겠습니다. 


그림엽서 그 사소함에 대하여....... 전 그게 지금은 아주 사적인 것이었으면 해요. 조직이나 뭐 그런 거 아니고, 조직이 된다면 그때는 그건 제꺼가 아닌 여러사람의 것이 되었길 바랍니다. 전 그중에 1/n 쯤의 사람이길 바랍니다. 

혹시 그림엽서가 열매 같은게 되었다면 그걸 제게 쓰고 싶지 않습니다. 괜찮은 열매라면 다른이에게 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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