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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2월 6일 17시 51분 등록
휴일날 아침 - 샘터, 2월호, 2004

휴일날 아침은 늘 배가 고픕니다. 나는 언제나 새벽에 일어나기 때문에 아침밥을 일찍 많이 먹는 편입니다. 아이들이 학교갈 때는 애들과 함께 밥을 먹으면 아주 적당합니다. 그러나 휴일날 아침에는 큰 아이도 작은아이도 늦잠을 잡니다. 아내도 덩달아 늦게 까지 잡니다. 그러나 나는 늘 일어나던 그 시간에 일어나 글을 씁니다. 아침을 먹어야 하는 그 시간이 되어도 아무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휴일 날에는 늘 아침 배가 고픕니다.

배가 좀 고픈 것은 괜찮은 일입니다. 이상하지만 그건 꽤 건실한 생활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니까 바라기만 하면 언제고 곧 채워질 아주 구체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다는 즐거움을 줍니다. 배고픔처럼 절실하고도 쉽게 채워지는 욕망이 어디 있겠습니까 ? 무엇을 이룬다는 것이 하나도 쉬운 것이 없는 세상에서 이렇게 쉽게 절실한 욕망 하나를 매일, 그것도 세 번씩이나 채울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행복입니다.

어렸을 때 우리 집은 아주 가난했습니다. 아버지는 누런 봉투에 되빡쌀을 사들고 들어오곤 하셨습니다. 그때 대부분의 아버지들처럼 우리 아부지도 가난한 아빠였습니다. 특히 가난한 아빠였지만요.

그러나 그 당시 나는 돈은 없었지만 가난하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어쩐 일인지 모르지만 그때 내겐 가난은 하나의 꿈과 낭만 같은 것들과 혼동되기도 했습니다. 좋은 집에 살고 맛있는 것을 먹는 것이 싫은 것을 아니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약간의 결핍과 불편은 오히려 정신적 깊이를 더해 줄 수 있으리라는 책들 속의 말들을 잘 믿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책을 본다는 것은 내게 가장 중요한 오락이었고 탈출구였고 자부심이었습니다. 책 한 권을 사기 위해서 며칠 씩 부실한 식사를 해야한다는 것은 아주 멋진 낭만적 스토리였습니다.

젊었을 때 내가 느꼈던 것은 비참한 가난이 아니라 가난 속에서 나를 일으켜 세운다는 신나는 모험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건 기름덩이 미끈거리는 부유함에 대한 은은한 적대감이기도 했습니다. 천박하지 않게 인생을 산다는 것, 그런 것들이 참 좋았습니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아이들을 키우면서 아이들이 가난하다는 느낌을 받게 하지는 않았던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가 경제적으로 나아지면서 먹고사는 것들은 대부분 아주 많이 좋아졌고 나 역시 그 평균적 상승에 동참했습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생활은 훨씬 나아졌지만 우리는 더욱 가난해 졌다는 생각이 종종 확실한 증거를 들이대며 달려듭니다. 가난을 참지 못함으로 가난을 두려워하고, 물리적 가난이 부끄러움이 되고, 부자가 되는 것이 인생 최고의 목표가 되는 지나친 집착들이 주위를 둘러보면 심심찮게 발견됩니다.

부유함은 좋은 것이지만, 부자병은 치료를 요하는 심각한 질병입니다. 그건 다른 사람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 밤낮없이 노심초사하는 것이며, 가족과 잘 지내는 법을 잊는 것이며, 이해의 관점만이 사람을 사귀는 숨어있는 동기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는 여유를 잃게 하는 것이며, 가장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가 늘 나중의 것으로 밀려나게 하는 것이며, 자신의 기준을 상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치와 철학이 통하는 작고 아름다운 자신의 세계를 포기하게 되면 무엇이 남을 지 잘 모르겠습니다.

기름기가 좀 적은 건강한 밥 생각을 했더니 배가 더 고파집니다. 아침밥 기다리는 휴일 아침은 기분이 좋습니다.













IP *.229.14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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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3 14:22:38 *.212.217.154

부유하지만, 건강한 삶,

가난하지만 풍족한 인생.


어떻게 다음세대에서, 

부유함이 아닌 건강한 가치와

노동의 고단함이아닌, 땀이 되돌려 주는 삶의 찬란함을 선물해 줄 수 있을까요?


2016년 새해가 밝아옵니다.

새로운 목표를 향한 큰 꿈을 꾸면서,

작지만 가치있는 고민을 모른척 하지 않기를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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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7.11 12:36:39 *.143.63.210

나는, 당신의 이런 긍정적인 에너지가 참 좋습니다.

나와 많이 닮아있어 더욱 그러합니다.

삶에대한 긍정, 그 에너지를 함뿍 얻어 즐거웁게 하루를 시작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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