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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8월 22일 01시 44분 등록

 J에게

 

여름에 집에 가지 않았다. 그래도 될 것 같았다. 미안한 일이었다. 이제는 가족들도 나 없이 잘 살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살짝 미안하고, 한편으로는 집에서 조금 더 멀리 떨어져 살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도 했다. 조금 더 멀리, 해외에서도 살 수 있겠구나 하는.

 

한 여자와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이 꿈인 남자가 있었다. 그 남자는 자신이 바라는 그것이 누구나 원하는 것이지만 아무나 가질 수 없는 것이기에 위대한 꿈이라고 했다. 그 남자는 전쟁터에서 동료에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했다. 그 상황이 그래서였을까 그건 정말 위대한 꿈으로 보였다. 그 남자의 말처럼 모든 남자가 꿈꾸지만 모두가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 남자는 나중에 자신이 말하던 그 여자와 결혼을 했고, 예쁜 딸을 낳았다. 남자는 행복했다. 남자는 항상 아이와 아내사진을 가지고 다녔고 만나는 사람들 모두에게 그 사진을 보여주며 자랑을 했다. 그러나 남자에게 주어진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남자는 불의로 사고로 일찍 죽고, 그의 아내와 아이는 슬퍼했다. 

 

막내 동생이 둘째를 낳고, 둘째의 첫돐이 될 때, 돌잔치를 크게 했다. 첫째 아이 돌잔치에는 시댁식구와 친정식두들끼리 밥을 먹었는데, 둘째 때는 달았다. 부페 식당이었다. 동생은 옷을 예쁘게 차려 입었다. 제부도 그랬다. 첫째 아이도 어린이 양복을 입었다. 그날의 주인공도 흰색 드레스를 입었고, 머리에 힌 리본 머리띠를 했다. 너무 어려 얼굴이 머스마인지 기집애인지 모를 얼굴이여서 옷을 그리 입혀 놓으니 기집애같았다. 나는 동생가족들이 사진을 찍기 전까지는 그날의 주인공이 둘째 아이인 줄 알았다. 제부가 첫째를 안고, 동생이 둘째를 안고 사진을 찍었다. 그제서야 나는 그날의 주인공이 그들 모두인 것을 알았다.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둘째의 돐을 축하해주기 위해 모인 것이 아니라, 그들 부부가 안정된 가정을 꾸린 것을 축하하는 자리였던 것이다.

 

막내 동생은 모든 것을 가진 듯이 보였다. 나에 비하면 그렇게 보인다. 남들은 아이 갖기 위해 마음 졸인다는 데 그럴 것도 없이 결혼전에 아이가 생겨서 결혼을 했다. 남들은 아들 못나 서럽다는 데 첫째로 아들을 낳았다. 또 어떤 사람들은 무뚝뚝한 아들은 있으니, 이쁜 짓하는 딸내미 있었으면 한다는 데, 내동생은 그런 아이도 낳았다. 남편은 직장이 있고, 남편은 차가 있다. 그리고 괜찮은 아파트도 샀다. 시댁 부모님은 두 분다 건강하시다. 아직 결혼 안한 시아주머니가 있고, 아직 결혼 안한 시동생이 있다. 남편의 사촌들이 가까이 살고 있다. 내 동생에게는 부모님이 모두 건강하고, 오빠가 있고, 또 언니도 있다. 제부나 내 동생이나 학벌은 둘 다 4년제 국립대를 졸업했다. 내가 보기에 보통 사람들이 없어서 고민하는, 있다고 고민하는 그런 것들을 그냥 다 가지고 있다. 막내동생은 어떤 사람들은 눈물로 갖고 싶다고 호소하는 그런 것들을 축복처럼 받아버린 것 같다.

 

내 막내동생의 삶을 나는 가끔 부러워한다. 몇 년전에는 '다 지복이다'라는 것으로 결론이 나는 이야기를 보았을 때, 뭐 이따위가 있나 했었다. 그런데, 이제는 사람마다 복은 제각각이다라는 말에 동의한다. 어떤 날에 태어난 사람은 금의 축복을 받고, 어떤 날에 태어난 사람은 은의 축복을 받고, 어떤 날에 때어난 사람은 돌의 축복을 받는다는 것이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인생에 대해서 전하는 말이라고 알랜 B.치넨은 말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욕을 했지만, 지금은 그런가보다한다. 난 늙어버렸나보다. 그런게 인생이라고 받아들이는 내가 좀 거시기하다.

 

한 아이가 있었다. 옆집에 아이가 커다란 방아개비를 가지고 자랑을 했다. 정말 커다란 것이었다. 아이는 자기도 그런 방아개비를 가지려고 뒷산에 갔다. 뒷산에서 모르는 오빠를 만났다. 그 오빠에 이끌려 비닐하우스로 들어갔다. 아이는 동네로 내려오면서 혼자 뒷산에 방아개비를 잡으러 간 것을 후회했다.

 

여자아이는 엄마와 같이 자는 것이 싫었다. 엄마가 누워서 해주는 이야기가 싫었다. 엄마는 자기가 시집와서 겪은 시댁 식구들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빠에게 서운했던 것도 이야기해주었다. 아이는 엄마가 아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듣기 싫었다. 아이는 엄마가 아이에 대해 걱정하는 것이 싫었다. 그건 엄마의 삶이고 아이 자신은 안그럴 거라 생각햇다. 아이는 자신이 여자가 된다는 것이 싫었다. 그리고 엄마가 된다는 것도 싫었다. 아이는 여자도 남자도 아닌 존재이길 바랬다. 그러나 그런 바램따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같은 과에 동기 남자아이가 실험중에 여자아이의 엉덩이를 때렸다. 여자아이는 그게 너무 불쾌해서 남자동기생의 발을 찍듯이 밟아버렸다. 남자아이는 여자아이의 반응에 너무나 기가 막혀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콧김만 내 뿜다가 '너무한 거 아냐'라는 말을 했다. 여자아이는 분이 안풀려서 잡아먹을 듯이 남자아이를 노려봤다. 발이 아니었다면 물어뜯었을 것이다.

 

소개 받은 남자는 건장하고, 여유가 있는 사람이었다. 여자는 그 남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좋았다. 전화를 할 때면 기분이 좋았다. 남자는 멀리서 차를 고속버스를 타고 여자를 만나러왔다. 여자와 남자는 공원 벤치에 앉았다. 남자는 내년 봄쯤에 결혼하자고 말했다. 여자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편으로는 남자와 결혼하면 오랫동안 꿈꿔왔던 것이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꿈을 이룰수 없다는 생각에 이르자 남자와 결혼을 하게되면 현실적으로 풀어야할 문제들이 떠올랐다. 직장을 옮기거나 주말부부를 하거나 고속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머리가 싸하게 식는 느낌이 들었다.

 

가족여행을 하고 싶다는 여자가 있었다. 여행은 그리 긴 것이 아니었다. 하루동안 가족과 함께 꽃놀이를 다녀오는 것이었다. 먹을 것을 싸가지고 아침에 집을 나서서 낮동안에 왁자지껄하게 놀다가 해질녘에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 여자의 꿈은 그리기 쉬울 것 같았다. 참고하게 가족사진을 보내달라고 요청을 했다. 여자가 보내준 가족사진은 참고할 만한 사진이 못 되었다. 여자가 설명해준 것과는 가족구성과 연령대가 달랐다. 보내준 사진은 두고, 인터넷 서핑으로 모은 사진을 참고해서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보니 그 누구의 꿈이라도 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이것이 꿈을 그려달라고 한 여자가 원하는 것이 맞는가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림 속 사람은 그녀의 가족을 닮은 것이 아니었다. 그냥 보통 사람일 뿐이다. 그림 속 장소는 그녀의 추억이 있는 장소도 아니다. 인터넷에서 찾은 벚꽃이 좋은 어느 언덕빼기이다. 꽃놀이 그림에는 그녀가 들어있는 것일까?

 

그녀는 꽃놀이 그림을 좋아할까? 나는 잘 모르겠다. 그녀는 말을 아꼈다. 나에게 그것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이야기해주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짐작해야했다. 지난번 전시회에서 꽃놀이 그림은 네가 사갔다. 그 꽃놀이는 내가 원하던 것이다. 그녀는 정말 꽃놀이를 원할까? 너는 꽃놀이가 어떤 점이 마음에 들어 사간거냐? 그녀가 내게 뒷산 방아개비와 엄마와 실험실 동기와 공원 이야기를 해주었다면 나는 꽃놀이를 그려달라는 것을 이해했을까? 나는 짐작한다. 그 꽃놀이는 전쟁터의 남자가 한 여자와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겠다고 소망하는 것과 같은 것일 거라고. 누구나 원하지만 아무나 갖지 못하는 그것을 그녀가 간절히 원한다고. 어찌보면 가족과 함께하는 꽃놀이라는 어느 누구에게는 너무나 사소한 것이지만, 어느 누군가에는 꼭 한번 해보고 싶은 것이라고. 그리고 그것은 자신이 행복하다는 것을 나타낼만한 어떤 것이라고. 누군가에게는 그 사소한 것이 행복을 말하는 기준이 되어버리 아니러니다. 

 

꿈그림을 그릴 때 모든 장면을 파노라마처럼 그리지 않는다. 그중에 한 컷만을 뽑아서 그린다. 그래서 누군가의 꿈그림이 모든 사람의 꿈그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나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그녀)로부터 시작한 꿈그림이란 생각이 덜 들어서이다. 나는 그림과 함께 이야기를 갖고 싶어하나보다. 그 장면을 그려달라고 한 딱 한 사람의 이야기. 그런데 그림에는 그 이야기를 담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그 이야기가 궁금하다. 그(그녀)가 그걸 원하는 이유를 알고 싶으니까. 그(그녀)가 부여하는 의미를 알고 싶다. 그래야 그걸 그려달라고 한 사람의 꿈을 그렸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내가 원하는 게 아닌, 그 사람이 원하는 것을 그렸다는 확신이.

 

IP *.39.14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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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3 14:52:47 *.43.131.14

이 그림이 있나 궁금했어요 정화님. 근데 어제 살롱9에 갔다가 이야기를 들었지요.

다른 사람이 시각화시키지 못한 미래의 핵심적 장면을 그림으로 그려주는 건 그가 가진 꿈을 명확하게 만들어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도록 만들어 주는 작업일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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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4 00:02:48 *.39.145.21

여기에 나오는 꽃놀이는 이겁니다. 

꽃놀이-1.jpg

오늘 기타강습후에 집에 돌아오는 길에.. 도윤이 묻더군요. 'J에는 그림은 안붙여요?'라고. 그 질문 받기 전까지는 그림을 넣을 생각을 못했어요. 그림을 넣어봐도 좋을 듯 합니다. 


꿈그림은... 미래의 핵심적 장면을 그렸으면 했어요. 콩두님이 말씀하는 그거 꿈을 마음속에 담도록 하는 것이 맞아요. 그래서 그걸로 나가게 하고 싶어요. 

그런데, 제가 벽에 부딪혔네요. 꿈보다는 치유가 필요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이게 당신이 진짜 원하는 건가?하는 질문을 하기가 두려워졌어요. 꿈을 얘기하러 와서는 자신의 발에 족쇄만을 한탄하네요.

그래도 물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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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3 20:34:38 *.244.220.253

지난번 살롱에 갔는데... 책은 사기 싫고, 네 엽서가 눈에 띄더라...

처음으로 네가 만든 엽서에 메모를 남겨서.... 고객에게 보내봤다. 반응, 괜찮네~ msn034.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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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8.24 00:05:00 *.39.145.21

고마워.

음... 그런데... 엽서보다는 손글씨여서 그럴지도 몰라. 

난 요즘 손글씨가 그립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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