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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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스럽게도 구본형선생님께서 같은 말을 반복한다고 생각했던 시점이 있었다. 연구원 2년차일 때, 출발은 늦었지 당장 무엇이라도 이루고 싶어 마음이 급해지는데, 선생님께서는 늘 나지막한 목소리로 '하루 경영', '새벽 2시간의 자기 수련', '미래풍광' 같은 지론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는 그것이 성공의 바탕이라는 믿음이 있었으니 어떻게 해서라도 후진들에게 쥐여 주고 싶어 강조하셨을 것이고, 나는 이 세상 지식을 다 삼킬 듯한 기세였으니, 동어반복으로 여겼을 것이다.
오래지 않아 나의 불경스러움을 뒤집은 것은 선생님 자신이다. 느린듯 꾸준한 걸음으로 변화를 시도한 그의 모습은 어느 순간 달라져 있었고, 변화의 속도는 나날이 빨라졌다. 목소리는 여전히 낮고 느렸지만 그 속에 담긴 코멘트는 갈수록 깊고 예리해졌고, 언제 어디서나 일상을 축제로 만들어버리는 풍류가 무르익었다. 사람을 좋아하고, 극진하게 대하니 연구소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나 작은 마을을 이루고도 남았다. 이제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받아들일 수 없는 것 사이에 아무런 경계가 없어 가히 살아가는 것이 춤이 된, 자유인의 풍모를 보며 나는 알았다. 그의 인생이 그가 원하는 대로 되었음을. 그의 삶은 고스란히 한 평범한 사람이 위대해지는 과정을 그린 진화도이다.
그렇게 인생의 역할모델로, 마음의 스승으로 모시며 지내던 중 느닷없이 그의 죽음을 맞게 되었다. 우리 나이로 60세, 너무 이르거니와 발병이후 진행이 빨라서 엄청난 충격 속에 그를 보내며, 안그래도 욕심없는 나는 무엇이 되고 싶다거나 이루고 싶다는 생각을 아예 놓아 버렸다. 돌연 불이 꺼지면 사라지고 말 환영처럼 삶에 현실감이 없었다. 한동안 무기력에 시달리다 겨우 기운을 차려도 이내 슬럼프가 찾아오곤 했다. 그러다 가을의 초입에 선생님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는데, 몇 번씩 읽은 책들이 여전히 나를 뜨겁게 달구어주는 것에 놀랐다.
“로댕의 말을 잊지 말라. ‘사랑하고 감동하고 전율하면’ 그 삶은 매혹적인 것이다. 날마다 그렇게 살아라. 하루하루를 잘 살아야 좋은 인생이다. 그러므로 하루를 바꾸지 못하면 변화에 성공할 수 없는 것이다.”
--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174쪽
그러면서 자문하게 되었다. 내가 언제,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고 생각한 ‘하루의 혁신’을 위해 노력한 적이 있었던가? 마음대로 사는 것이 자유의 표본인 양 즉흥성을 사랑하며 정해진 시간에 수련해 본 적도 없지 않았던가! 그렇다보니 출근하지 않아도 되고 살림도 단출하면서 글을 쓰기 시작한 지 7년 동안 2권의 책을 내는 데 그쳤다.
“나를 변화시켰다는 구체적인 증거는 내 하루가 바뀌었는지를 물으면 확실해진다. 오늘을 놓치면 삶을 놓치는 것이다.”
-- 마흔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298쪽
이보다 무서운 말이 또 있을까? 선생님께서는 15년간 19권의 책을 쓰셨다. 그것이 얼마나 부지런해야 이룰 수 있는 일인가를 조금은 안다.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읽고 쓴 자만이 이룰 수 있는 성과, 말이 그렇지 15년을 하루같이 자신의 선택에 헌신한 사람, 무서울 정도의 성실성이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아아! 내가 ‘하루 경영’을 머리로 받아 들이고 말았다면, 선생님께서는 몸으로 살아냈구나. 그러고보니 그가 한 말은 모조리 삶으로 증명된 것이었다.
“인생을 사랑하라. 그리고 사랑과 정열을 가지고 스스로를 점점 자신이 좋아할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가라.”
--익숙한 것과의 결별, 169쪽
2기 연구원으로 인연을 맺은 지 7년이 넘도록 내가 봐 온 것은 바로 이 한 구절이었다. 첫 책에서 토로한 한 구절을 몸으로 살아내며 드디어 이루어낸 한 사람 앞에서 나는 잠시 숙연해진다. 그 비결은 '하루 경영', '새벽 2시간의 자기 수련', '미래풍광' 같은 소신 덕분이었을 것이다. 선생님은 학문을 위한 학문을 하는 분이 아니셨다. 난해한 개념을 열거하며 지식을 과시하는 지식소매상도 아니었다. 오직 ‘좋은 삶’을 위해 꼭 필요한 철학을 추구하고, 그것을 온 몸으로 살아낸 분이셨기에 감화력이 강했다. 빠르게 지식의 외연을 넓히기 보다, 일일이 삶으로 검증하며 가느라 자칫 더디게까지 보이는 행보가 모든 저서에 고루 녹아 있기에, 그의 권유를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면 아직 그를 제대로 읽은 것이 아니다.
그대, 하루를 바꾸었는가? 다시 태어나기 위해 통렬한 죽음을 택하고, 어제의 시체를 내다 버렸는가? 매순간 살아 있는가? 아무리 작은 재능일지라도 인류 전체를 위한 선물이 될 수 있도록 매일 가꾸고 있는가? 죽음이 빼앗아 갈 것은 뼈와 가죽 밖에 없도록, 그대를 다 소진하였는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작은 세상을 가졌는가? 그리하여 마침내, 내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한 대답이 ‘아니’라면, 그대도 나와 함께 다시 구본형을 읽어야 한다. “역사적 성공의 반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내가 막바지까지 내 몰렸나 보다. 달라지지 않고는 내가 나를 견딜 수 없는 지점에서, 선생님의 가르침 1장1절인 '하루'의 경영을 시작할 마음이 드는 것을 보니...... 하나를 깨우치면 다음 것도 알아들을 수 있으려니, 아니 실천할 수 있으려니 설레는 마음으로 그의 책을 쓰다듬는다.
글쓰기를 통해 '최고의 나'가 될 수 있다고 믿으며
'글쓰기를 통한 삶의 혁명' 카페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 http://cafe.naver.com/writingsutra
그대, 하루를 바꾸었는가? 다시 태어나기 위해 통렬한 죽음을 택하고, 어제의 시체를 내다 버렸는가? 매순간 살아 있는가? 아무리 작은 재능일지라도 인류 전체를 위한 선물이 될 수 있도록 매일 가꾸고 있는가? 죽음이 빼앗아 갈 것은 뼈와 가죽 밖에 없도록, 그대를 다 소진하였는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작은 세상을 가졌는가? 그리하여 마침내, 내 삶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사부님 말씀을 되새기는 언니의 글을 읽으며 온몸이 초토화 되어버리는 순간이네요....
문득, 기억속에서 미탄이라는 닉네임 하나가 성큼 걸어나오는 아침이고요.
사부님께선 언제나 미소 가득 머물고서 혹은 예의 그 사슴같은 눈으로 깊이 들여다 보시며 두루 살피고 계실 듯해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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