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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8월 15일 07시 42분 등록

  니체의 철학은 차라리 하나의 아름다운 시다. 그래서 윌 듀란트는 '그것은 철학이 아니라 시일 것'이라고 말한다. 1844년 니체가 태어난 날은 마침 프로이센의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의 생일날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이 우연한 일치를 기뻐하여 아들에게 프리드리히라는 왕의 이름을 지어 주었다. 아버지는 일찍 죽었다. 어려서 '꼬마 목사'라고 불렸다. 자존심이 강하고 불굴의 인내력을 가지고 있었다. 어려서 겪은 가장 특이한 일은 학교 친구들이 무티우스 스케볼라 * 1의 전설을 믿으려 하지 않자 한 묶음의 성냥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다 탈 때 까지 손을 움직이지 않은 사건이다. 이 사건은 아마 가장 니체다운 특성을 보여주는 행위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는 '소녀의 혼이 무사의 갑옷을 입고 있는 듯'했다. 틀림없이 그는 철학계의 잔다르크 같은 영웅이었다. 그는 자신에게서 '초인'을 바라고 있었다.

니체가 가장 그 다운 길을 걷게 된 것은 1879년 장년의 절정기에서 병으로 죽을 뻔 기간을 벗어나면서 부터일 것이다. 죽음을 가까이 둔 생활은 죽음과의 투쟁에서 얻은 의지뿐 아니라 태양과 생명, 웃음과 같은 삶의 긍정성도 돌려주었다. 그는 제법 부드러워 졌고, 여성을 그리워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에 둔 루 살로메는 그의 사랑에 응하지 않았고 니체는 고독과 침묵 속으로 도망간다. 그리고 쓸쓸한 고원에서 그의 최고작을 쓰기 시작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1883) 은 이 때 쓰여졌고 이렇게 시작한다.

차라투스트라는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고향과 고향 호수를 떠나 산으로 들어 갔다. 10년 동안 산에서 지내는 동안 그는 자신의 정신세계와 고독을 즐기느라 지루함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마음에 변화가 왔다. 붉게 물든 동녘 하늘을 보며 일어난 어느 날 아침, 그는 태양을 보며 말했다.

"위대한 태양이여,... 매일 아침 당신을 기다렸고, 당신에게서 넘쳐나는 것을 받았고, 감사와 축복을 보냈다. 나는 나의 넘치는 지혜에 싫증이 났다. 너무 많은 꿀을 모은 꿀벌처럼. 이젠 도움을 달라는 손길이 필요하다. 나의 모든 지혜를 나누고 싶다...그리하여 나는 저 아래로 내려가야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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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그의 걸작이다. 이 책은 니체의 복음서이며 그 후에 쓰여진 다른 책들은 모두 이 책의 주석에 지나지 않는다. 신은 죽었고 초인이 살기를 원한다. 이제야 말로 인간이 스스로 표적을 세우고, 인간이 그 지고한 희망을 심을 때라고 외친다. 이것은 무서운 교의이며, 인생을 긍정하는 가장 용감한 형식의 선언이었다. 그러나 책은 40 부 밖에는 팔리지 않았다. 그 중에서 7 부는 기증본이었다. 시대는 그를 이해하지 않았고 그처럼 고독한 사람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그 동안 15권의 책을 썼지만 나는 삶에 대하여 더 확실해 지지 못했다. 늘 스스로에게 '지금 내 마음을 흔드는 최고의 관심사'에 대하여 책을 쓰라고 주문해 왔기 때문에 나는 내 책의 주제에 마음을 빼앗긴 최초의 독자이기도 했다. 내 책의 최초의 독자가 나라는 사실을 나는 늘 고맙게 생각하고 즐거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한권이 나오면, 나는 더 확실해 지는 것이 아니라 여전히 불확실한 곳에 서 있곤 한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저 우두커니 갈 곳을 몰라 서 있다가 고개를 흔들며 확실하지는 않으나 가야한다고 생각하는 길을 향해 발을 옮기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내 책은 나에게 미지의 길에 대한 하나의 이정표 같은 것이었다. 가 보지 않은 길에 대하여, 때때로 길도 없는 곳에 한참을 서서 망설이다 마음 속에 스스로 팻말하나를 꽝꽝 박아두고 떠나야 하는 삶의 나그네, 그에게 얼마나 많은 확신이 있을 수 있겠는가 ?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때 그곳에서 이 길을 선택했기 때문에 삶은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얼마전에 윌 듀란트의 '철학이야기'를 다시 읽었다. 머리말을 읽으며 나는 경탄한다. 그 말들을 읽는 동안 나는 다시 젊어지고 있었다. 내 머리는 검어지고 내 육체는 팽팽해 졌다. 내 마음은 삶의 충동으로 가득 찬다. 거기에는 이런 말들이 살아 펄펄 뛰고 있었다. '생존의 조잡한 필요에 의해 사상의 언덕에서 경제적 투쟁과 획득의 시장으로 질질 끌려 내려올 때 까지' 철학은 얼마나 즐거운 매력이었는가 ! 늘 사람들은 투덜거린다. 철학자가 쓴 책 처럼 어이없는 것은 없고, 철학은 장기처럼 무익하고, 무지처럼 애매하다고 말이다. 그래서 과학은 늘 전진하는 것처럼 보이고 철학은 언제나 쇠퇴하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철학의 탓이 아니다. 과학이 철학으로 시작하여 기술로 끝나고, 가설에서 일어나 업적으로 흐르는 대신, 철학은 여전히 과학으로 대답할 수 없는 것들, 즉 질서와 자유, 선과 악, 삶과 죽음같은 것들을 껴 안고 있기 때문에, 철학은 승리의 과실은 그 딸인 과학에게 주고 자신은 숭고한 불만과 불확실한 미지의 세계에서 발을 빼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그것은 '이해의 기쁨이라는 고귀한 즐거움'인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다시 알게 된다. 철학에서 멀어지면 삶은 먹고 과시하는 저자거리의 인생으로 전락한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철학이 없으면 우리는 삶에서 멀어 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철학이 없는 뛰어난 인물은 없다. 아니,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철학은 질문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의심하지 않고 질문하지 않는 사람이 도대체 어느 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이 될 수 있겠는가 ? 그러므로 야스퍼스의 말은 옳다. '철학이란 도중에 있는 것이며, 질문은 대답보다 중요하며, 모든 대답은 새로운 질문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생활 속에 있다. 그러므로 제대로 살고 있다는 것은 철학을 한다는 뜻이다. 그것은 내적인 대화이기 때문에 플라톤과 헤겔의 책을 뒤적이지 않아도 좋다. 세상은 질문을 좋아하지 않을 지 모른다. 그러나 삶은 질문 없이는 살 수 없다.

철학이 삶에 수많은 질문을 던지는 동안, 우리는 오랫동안 세속적으로 성공하지 못할 지도 모른다. 당연히 가야할 길 앞에서 멈춰서거나, 편하고 검증된 길을 마다하고 길없는 길을 헤매게 하기도 한다. 니체의 선동과 유혹은 길 없는 길을 가게하고 모든 사람이 가는 흔해 빠진 결론을 거부한다. 마음에 불을 지르고, 기존의 삶을 파괴하라 외친다. 기존의 신이 죽었듯이 종전의 선도 죽었다. '선악에 있어 창조자가 되지 않을 수 없는 자야말로 먼저 파괴자가 되지 않으면 안되며 따라서 모든 가치를 먼저 부숴버려야한다'고 말할 때 이미 그는 선악의 피안에 서 있는 초인을 새로운 대안으로 생각했다. 초인은 안전제일을 미워하며, 먼 여행을 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위험없는 인생을 사는 것을 싫어한다. 평범한 군중의 일부가 되기 싫으면 자신에게 엄격해야한다.

니체는 1900년에 정신병원에서 죽었다. 어머니가 돌봐 주었지만, 그녀가 죽은 후 3년 동안은 누이동생의 보살핌을 받았다. 죽기 전 어느 날 정신이 맑아졌을 때, 그는 기쁨에 찬 어조로 말했다고 한다. "아, 나도 좋은 책을 몇 권인가 썼었지" 그렇다. 그는 자신의 책처럼 살다 갔다. '늘 자신을 넘어서 있는 자신을 창조해 가려 했고, 그런 후에 장렬하게 단명한 목숨을 끝내고 몰락해 가는 자를 사랑하 듯' 그는 그렇게 살았다. 막판의 삶은 그에게 지독한 고통이었던 모양이다. 언젠가 그가 이렇게 말했다. " 나는 인간이 왜 웃는 지 알고 있다. 웃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만큼 심각하게 괴롭기 때문이다" 그는 웃음조차 참기 어려운 신경쇠약에 걸리고 말았다. 그러나 막판의 니체가 불행했던 것만은 아니다. 그가 미친 것은 자연의 자애로운 배려였고, 젊어서 그렇게 완강했던 저항대신 쇠잔한 평화와 안정을 얻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렇게 써 두었다. " 내 자신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 두 서너 가지는 죽은 뒤에 나타날 것이다" 그는 자신의 천재성에 혹독한 댓가를 치룬 고독한 사내였다.

생각이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 그러나 생각이 우리를 위대하게 한다. 확실한 것은 평범을 넘어선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따른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 볼 수 있는 제 세상 하나를 가진 자, 그들이 바로 평범을 넘어 자신을 창조한 인물이다.

* 1 무티우스 스케볼라 Mutius Scaevola - 전설 속 로마의 용사로 에트루리아의 왕 포르센나를 죽이려다 붙잡혀 오른손이 제단의 불길에 태워졌으나 의연하게 맞서며 자신과 같은 용사가 로마에는 300명이나 있다고 말하여 포르센나가 로마의 포위를 풀고 돌아가게 했다고 한다.

(터닝 포인트 일곱번 째 이야기   동아 DBR 2009년 8월  )

IP *.160.33.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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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윤
2009.08.17 09:34:47 *.20.125.86
철학~!  질문~! 생각~!  이 말을 가슴에 품고서  한 주를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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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17 12:17:06 *.206.74.100
사람마다 철학이 필요하다는 거, 이번 여행을 통해서도 절실히 배웠습니다...
죽는 그 순간까지 제 가슴이 펄펄 끓어오르는 철학을 지니고 살아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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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전략
2009.08.17 14:02:06 *.121.106.107
자기계발이 지향하는 것도 결국 '자기 자신이 되어 사는 인생'(주도적인 삶)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성장기 인간의 교육은 대부분 세계라는 큰 배의 '선원'이 되도록 하는 교육이지요 - '선장'이 아니고...
여기에 인간의  안락과 불행의 묘한 공존과 긴장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영웅의 모험은 불가피한 것인가 봅니다. - 이걸 좀 더 일찍 알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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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븅
2009.08.17 16:16:56 *.196.12.18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가끔 들리는 이곳은 무언가 얻고 갈꺼라는 기대감을 져버리지 않은곳이기도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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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8.26 10:07:56 *.51.12.117
선생님, 기어이 로그인을 하게 되는군요.
컴퓨터를 켤 때마다 제일 먼저 펼치게 되는 공간, 슬쩍 눈도장만 찍고 가려다
도저히 한 줄 남기지 않고는 견딜 재간이 없어 이렇게 덧글을 올리고 있어요.

오늘의 글을 가슴 속에 잘 담아 가려구요.
아직 저는 니체를 알지 못하지만 조만간 그의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려 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역시 질문하고 생각하는 삶의 힘을 조금씩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고맙습니다.  참 좋은 글.  참 좋은 여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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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03 14:18:38 *.212.217.154

자연, 인간, 신

죽음, 사랑, 삶과 고독

이 모든것에대한 질문들, 질문에 대한 질문들.

그 질문이 바로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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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9.08 23:35:13 *.36.2.161

세상의 편견을 이겨내는 용기를 가진 자 만이,

자신만의 온전한 세상 하나를 탄생시킬수 있겠지요.

그 고난한 여정속에서 선생님의 좋은 글이 작은 등불이 되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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