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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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주로 아침 저녁 통근 지하철 안에서 책을 읽는다. 얼마 전 ‘세월이 젊음에게’를 읽으면서 마구 어질러진 정신의 방을 깔끔하게 청소하는 기분이 들었다. 특히 자신을 혁명하는 부분에서 아주 재미있는 제안을 발견했다.
삶을 소설처럼 사는 것은 흥미롭다.
주변에서 생기는 크고 작은 일들을 소설가가 이야기를 꾸며가듯 그렇게 재구성해 보라.
다만 고통과 불행을 극화시키지 말고, 행복과 기쁨을 증폭시켜 자신의 인생 이야기가 봄처럼 웃게 만들어라.
– 세월이 젊음에게, 119쪽
생각해보면 참 그렇다. 대부분 잊고 사는 사실이지만, 우리 모두는 각자의 인생이라는 소설의 주인공이다.
인간의 삶을 살며 소설을 짓는 것이 소설가들의 일이니, 우리의 인생도 소설이 될 자격이 있는 셈이다.
고통과 불행을 극화시키는 것보다 인생에서 행복과 기쁨을 더 자세히 기억해보라는 이야기는 결말과 관련이 있는 듯 싶었다.
나는 해피엔딩이 좋다. 그리고 해피하게 끝나는 이야기라는 건 행복과 기쁨이 가득 그려진 인생을 살았다는 뜻일 것이다.
재미있는 놀이를 찾아냈으니 한번 실험해 보고 싶었다. 무엇을 쓸까 하다가 지난 여름 지리산에서 단식을 하며 푹 쉬고 왔던 이야기를 써보기로 했다. 그 경험을 소설처럼 기억한다면 내가 지칠 때마다 언제 어디서든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여름 휴가 때 지리산에 들어갔다. ‘익숙한 것과의 결별’, ‘낯선 곳에서의 아침’ 두 권을 읽고 나자 일상이 갑갑해졌다. 그래서 떠나기로 마음 먹었다.
첫 이틀은 아주 오랫동안 잤다. 자고 나니 몸이 한결 상쾌해졌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는데 부활한 투탕카멘처럼 의기양양했다. 물을 많이 마시고 숯가루를 먹고, 레몬즙을 마셨다. 이곳에서 하는 모든 활동을 몸이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삼 일째부터는 동틀 무렵에 짧은 산책을 하며 매일 태양이 성큼성큼 땅으로 다가와 아침이 되는 경이로움을 보았다. 서울에 있을 때는 아침이 되는 것이 싫었다. 아직 못다 잔 잠, 아직 못다 풀린 피로가 켜켜이 남아있는데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이었다.그러나 몸이 가벼워지니 깜깜한 밤이 끝나고 아침이 된다는 것은 살아있는 자의 축복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쉽게 감동하는 나는 떠오르는 태양에게 오늘도 즐겁게 지내게 해달라고 빌었다.
한낮에 더울 때는 가까운 계곡으로 가서 발을 담그고 나무 사이로 들어오는 햇볕을 쬐었다.계곡물이 흐르는 소리는 바흐의 첼로 연주곡 같았다. 나는 한 줌의 물방울이 되어 바다로 여행하는 꿈을 꾸었다. 거기서 커다란 흰 수염 고래의 등에 올라타 남미 대륙 끝의 거대한 빙하를 둘러보았다. 그러다 더위가 좀 사그러들면 집으로 돌아갔다.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었다."
소설처럼 사는 것이 기준이 되자, 지리산에서의 단식은 남들이 잘 하지 않는 일을 했다는 무용담에서 나만의 힐링캠프로 변했다.
나는 이 놀이를 이미 일어난 일에만 국한시키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내 일기의 마지막에 앞으로 10년 동안 내게 일어날 아주 멋진 사건 10가지를 마치 이미 일어난 일처럼 생생하게 적어두었다. 내가 읽게 될 책, 가게 될 여행, 이루게 될 가정, 쓰게 될 글, 하게 될 강연, 만나게 될 사람들, 느끼게 될 신의 모습을 아주 공들여 적었다. 몇 가지는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랫동안 그려온 꿈은 기회가 왔을 때 내가 최선을 다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이루고 싶은 일을 그려 이미 이루어진 일로 만들고, 하고 싶은 일을 미리 성취하여 그것이 하나하나 이루어지는 현장 속으로 걸어 들어 가보자. 인생 전체를 주도하고, 터지는 환호 속에 스스로를 세워라. 인생의 빛나는 순간들이 시처럼 응집된 아름다운 한 편의 소설이 되게 하라.
– 세월이 젊음에게, 119쪽
해언이 단식 마치고 돌아오는 날, 나는 탕춘대 능선에서 혼자 산책을 하고 있었어요.
갑자기 싸부 생각이 나서 사모님께 전화를 드렸더니, 해언 마중가려고 한다시더군.
내가 다 큰 아이를 버리고 나하고 놀자고 했더니.....
약속을 한 일이라 해언이 기다릴거라고 하셨어.
해언은 싸부처럼, 휴가를 가장 멋있게 보낸 것 같아요.
지리산 유점 마을 곳곳에 싸부의 시선이 가 닿았을것이고
북한산 봉우리마다 싸부의 사랑이 머물렀을터이니
인생의 빛나는 순간들이 시처럼 응집되어 한편의 아름다운 소설이 씌여질때
지리산과 북한산을 다시 불러내주길.......
아버지의 글에 이어붙인 첫 편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해요.
좌샘, 생각나실 때마다 저희를 찾아주셔서 참 좋아요.
모든 일이 시작되었던 곳, 변화경영의 발상지?에 갔었을 때 저는 좀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유점마을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썼던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 없었다면 아마 우리도 만나지 못했을거여요.
변경연도, 꿈벗도, 연구원도, 살롱9도 없었겠죠.
그런 걸 생각해보면 우리는 스스로의 앞길을 계획하지만, 신은 더 좋은 계획을 갖고 날줄처럼 들어와 우리의 씨줄을 엮어 아름다운 인생의 천을 만들어 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믿기에는 크고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느껴지고, 우리가 지금 살아가는 모든 일에 숨겨둔 의미가 있다고 생각되어요.
이런 정신적 촉각을 갖게 하는 것이 휴식의 힘이자, 유점의 교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좌샘의 긴 댓글을 읽고나니 생각이 많아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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