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용규
- 조회 수 2908
- 댓글 수 0
- 추천 수 0
얼마 전 한 기업의 신입사원들을 만났습니다. 좁은 취업의 문을 열고 들어온 그들을 나는 진심으로 축하했습니다. 문 밖은 춥고 그곳에는 아직도 넘쳐나는 청년 백수들이 서성이고 있는데, 그동안 갈고 닦은 열쇠를 저 문의 열쇠에 찔러 넣고 돌려 문을 열었고, 그 결과 이렇게 따뜻한 공간의 한 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게 되었으니 기꺼이 축하받고 기뻐할 일이라며 진심으로 축하를 건넸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들에게 한편 이 시대에 ‘운이 참 좋은 청년들’이라고 언급하며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문 밖을 서성이는 사람들 중에도 회사의 문을 여는 데 필요한 비슷비슷한 열쇠를 가진 사람들이 참 많은데, 그대들이 찔러 넣은 열쇠에 때마침 문이 열린 행운인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한 것이었습니다. 언짢아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상당히 많은 청년들이 공감을 표시하며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참 착하고 겸손한 청년들이었습니다.
또한 앞으로 직장인들에게는 십몇 년 동안 갈고 닦아 마침 문을 열고 들어설 수 있었던 그 열쇠의 유효기간이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해주었습니다. 특히 첨단 기술의 영역에 기반한 회사이니 새로움을 따라잡지 못하는 열쇠는 언제든 새로운 문을 열지 못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제대로 공부를 시작하라고 권해주었습니다. 선생님이나 세상이 제시한 보기 중에서 답을 잘 고르는 것이 실력으로 인정받는 시간은 입사와 함께 종말을 맞았으니 보기 밖에서 답을 찾을 수도 있어야 하고, 나아가 스스로 문제를 내고 스스로 문제를 풀어낼 수 있을 만큼 성장하는 시간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당부했습니다.
특히 철학을 잊은 시간을 보내온 청춘이라면 철학을 세우는 작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철학을 공부하고, 철학을 하다보면 분노가 커질 것이라고 일러주었습니다. 그간은 저 문을 열어야 한다는 절박감에 철학을 잊고 자연스레 분노마저 잊은 시간을 살아온 청춘이라면 이제 스스로 마주하는 중요한 사안들에 대해 틈나는 대로 궁극적 질문을 던지고 궁극적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꼭 거치라 보탰습니다. ‘직장이란 무엇인가? 사랑은 무엇이고, 일은 또 무엇인가? 부모는? 배우자는? 돈은? 행복은? 그리고 삶은 정말 무엇이란 말인가? ...’
이런 말도 덧붙여 주었습니다. ‘나는 청춘의 시절에 분노가 컸었다. 그런데 이 시대의 청춘은 분노를 잊고 사는 것 같다. 88만원 세대라고 명명되고 있는 청춘의 자화상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고민하기 보다는, 오직 그것을 불변의 조건으로 받아들이고 취업의 문을 열 열쇠 하나를 갖는 일에 크게 몰두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다. 운 좋게 문을 열고 안온한 자리 하나를 얻은 자신을 다행으로 여기는 청춘이 많아지는 세상은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 직업정신이나 청년정신, 나아가 시대정신은 무엇으로 대치되고 있는가? 유효기간이 그리 길지 않은 열쇠 하나 가진 지금이 지나고 그때서야 분노를 품는다면 그건 너무 늦을 것이다. 무서운 무기력감과 다행감만이 재생산되는 세상은 얼마나 절망적인 세상인가? 그러니 이제 분노가 일고, 그 분노가 정신으로 승화될 수 있도록 수련하는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그날은 청년들에게 쓴 소리를 했지만 돌아보니 실은 나 역시 한 동안 분노를 잊은 시간을 보내온 아저씨로 살았구나 반성하는 하루였던 것 같습니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810 | 마음을 모아서 보고 싶다 | 승완 | 2013.12.17 | 2651 |
1809 | 건강 관리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 연지원 | 2013.12.16 | 2888 |
1808 | 그건 진정한 것일까요 [1] | -창- | 2013.12.14 | 2750 |
1807 | 가슴에 뜬 카시오페아 | 단경(旦京) | 2013.12.13 | 2985 |
1806 | 난관을 대하는 하나의 자세 | 김용규 | 2013.12.12 | 13209 |
1805 | 실천력을 3배 높여주는 방법 [2] | 문요한 | 2013.12.11 | 4185 |
1804 | 물은 흐르기 위해 바닥부터 채운다 | 승완 | 2013.12.10 | 3987 |
1803 | 아는 것에서 이해하는 것으로 [1] | 연지원 | 2013.12.09 | 3448 |
1802 | 인생 1막 [2] | 해언 | 2013.12.07 | 3014 |
1801 | 뭐, 어떻게든 되겠지 | 오병곤 | 2013.12.06 | 4494 |
» | 분노를 잊은 시간 | 김용규 | 2013.12.05 | 2908 |
1799 | 삶이 달라지지 않는 이유 | 문요한 | 2013.12.04 | 4100 |
1798 | 나는 읽은 책을 무엇으로 변화시키고 있는가 | 승완 | 2013.12.03 | 2844 |
1797 | 두 사람을 사랑하려고 목포에 왔다 [2] | 연지원 | 2013.12.02 | 3039 |
1796 | 일상을 기록하기 [2] | 콩두 | 2013.11.30 | 2863 |
1795 | 내 인생은 내가 원하는 대로 되었다 [4] | 한 명석 | 2013.11.29 | 2709 |
1794 | 그게 삶이 잖아요. | 김용규 | 2013.11.28 | 3583 |
1793 | 활동 속으로 도망치는 사람들 | 문요한 | 2013.11.27 | 3144 |
1792 | 치유와 창조의 공간 | 승완 | 2013.11.26 | 2820 |
1791 | 하이에나 독서가가 읽은 책들 [2] | 연지원 | 2013.11.25 | 26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