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희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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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입니다. 10분의 시간이 주어져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죽기 전 할말을 할 수 있다니 축복입니다. 수 많은 객사의 순간에 저는 살아났었습니다. 교통사고도 암에 걸려도 물에 빠졌어도 한밤에 강도를 당했어도 술에 절어 행방을 못 찾을 때도 세상은 나를 숨겨 살려두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피할 수 없는 그 순간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나는 이제 곧 죽음을 맞아야 합니다. 숨을 헐떡이며 때론 거칠게 달려온 인생을 마감해야 합니다. 더 잘살지 못한 것이 죄이지만 그나마 여기까지 살아온 제 자신이 기특하기도 합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님 35년 전 헤어지고 이제야 다시 만나게 됩니다. 8살 어린 나이의 저를 두고 떠나신 아버님. 원망도 많이 하였고, 가끔은 그나마 다행이다 생각했던 지난날들이었습니다. 아버님의 살아 생전의 삶도 평탄치 않았지만 저 또한 그리 떠나신 후 어찌 살아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른 채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지나고 보니 아버님보다 더 잘살아보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 그저 시대가 달라서 제가 조금 더 해볼 수 있는 것이 많았을 뿐 더 나아지게 한 것도 없습니다. 살아 남아보겠다는 그 생각만 갖고 지금껏 버텼습니다. 하지만 그나마도 이제 끝났군요. 아버님 곧 뵙겠습니다. 그 동안 돌보지 않고 살았던 많은 인생의 부분들을 아버님께서 너그러이 받아 주시고 더 잘살지 못한 제 인생에 용서하십시오. 살아보니 어느 인생도 그냥 살아온 인생이 없듯이 저 또한 그러하였습니다. 세상을 향해 더 나아가고자 하였으나 한마디 외침도 외쳐보지 못하고 가는 것이 아쉬울 따름입니다. 아버님 그 동안 하늘에서 저를 돌봐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뵙겠습니다.
어머니, 아버님 돌아가시고 삼 남매를 어찌 키우셨습니까? 돌아가신 아버님보다 나이가 많이 들고 보니 어머니의 그 심정이 어떠했을지 조금씩 이해가 됩니다. 고맙습니다. 어머니께서 계셨기에 제가 그나마 지금까지 살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주신 많은 사랑과 믿음으로 전 혼자서 지금까지 헤쳐나올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와 마주 앉아 밤을 새우며 이야기 하던 그 시간들이 지난 날을 회상하며 손잡고 울던 그 순간들이 다시 떠오릅니다. 누나가 자기 길을 너무 일찍 찾아 갔을 때 동생이 세상 모르고 나대다 너무도 무참하게 살아가는 순간에도 아무것도 도울 수 없던 그 순간들이 이제 다 지나가고 다시 어머니 곁에 머무는 것만으로도 전 다행이라 생각합니다. 어머니 이제 전 떠나야 할 순간을 마주하였습니다. 지난해 암 수술 후 걱정을 많이 하셨는데 결국 오늘 이제 죽음을 맞이하게 되어 죄송합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집을 떠나 24년 동안 곁으로 가지 못했습니다. 늘 곁에서 살고 싶었지만 세상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마산에 계신 관계로 자주 찾아 뵙지도 못했습니다. 어머니 모시고 단 둘이 여행 한번 가고 싶던 저의 바램도 시간에 묻혀 이제 더 이상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장남 걱정이랑 묻어두고 남은 생 편안히 사십시오. 이제 걱정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서로 잘 알고 있으니 제가 떠나는 이 순간에 걱정은 들지 않습니다. 그 동안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 나중에 천천히 하늘나라에서 뵙겠습니다.
선화야 20년을 같이 살았구나. 내 인생의 거의 절반이다. 참 많이도 싸웠다. 지나고 보면 다 나 자신과의 싸움인데 네게 나를 주고 너와 싸웠구나. 그 많은 시간을 받아줘서 고맙다. 외람되지만 20년 전 내가 너와 사랑을 시작할 때 난 너를 내 인생의 하늘로 여겼다. 그렇게 나의 인생을 구원할 여인으로 너를 내 인생으로 맞이하였단다. 너는 내 인생을 받아들인 죄로 그 많은 시간을 힘들게 살아야만 했구나. 네가 불쌍하구나. 네 삶을 끝까지 지켜주지 못한 내 죄가 크다. 암 수술 때도 의연하게 나를 지켜주었고 매사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 당신이지만 누구보다 여리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당신도 이겨내야 할 인생이 있는데 잘 도와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한스럽구나. 내 하는 일 욕심 내며 양보를 바랬고 아이 키우느라 자신의 꿈을 펼치지 못하였구나. 선화야 그나마 취미로 하던 스쿠버다이빙을 직업으로 발전시킨 네가 자랑스럽단다. 시작할 때 제대로 못 도와주고 힘들게 했던 것이 참 미안하구나 속 좁은 놈을 용서해다오. 마음 속 깊이 묻어 두었던 고맙다는 말은 꼭 해야겠구나. 남은 삶이 내가 없어서 더 고달파질까 걱정이다. 좋은 것도 못해주었는데 떠나게 되어서 미안하다. 남은 삶은 더 잘살길 바란다. 아직 젊으니 좋은 사람 만나 더 행복하게 살고 건강하길 바란다.
지연아 네 이름을 부르니 목이 메이는 구나. 아비가 네 나이 때 아비를 잃었는데 너도 같은 운명이 되었구나. 아비 없이 사는 인생이 어떻다는 것을 잘아는 나로서는 네게 정말 못할 짓을 하는 구나. 살아서 나를 돌보는데 소홀하였는데, 그 죄가 크다는 것을 네 이름 앞에서 알게 되는구나. 딸아 그래도 아비는 네게 말할 수 있단다. 삶은 어떤 순간에도 살아볼 가치가 있다는 것을 비록 지금 아비가 떠나가지만 슬퍼하지 말거라. 언제나 네 옆에서 네가 잘되길 지켜보며 도울 것이니 말이다. 대신 흔들리지 말고 네 삶을 굳건히 살아가길 바란다. 지금까지 네가 보여준 성정으로 보아 넌 잘 할 수 있을 것이다. 네 엄마 말만 잘 들어도 인생 걱정 없을 테니 네 엄마 말 잘 듣거라. 아비가 떠난 뒤 네 엄마를 지켜줄 것은 너밖에 없으니 지금처럼 엄마의 좋은 딸도 되고 좋은 친구도 되어드려라. 네 결혼식에 손잡고 네 지아비 될 사람에게 전해주지 못해서 미안하구나. 마지막으로 책을 가까이 하고 늘 즐겨 읽거라. 그 것은 네가 힘들 때 널 일으켜 줄 것이고 길을 잃을 때 네게 등불이 되어 줄 것이다. 부디 좋은 책을 만나 좋을 삶을 배우고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길 바란다.
동희야 그 동안 고생 많았다. 네 삶도 짧지만 멋졌다. 네가 소원하던 멋진 노인이 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멋진 인생을 살았다 생각하자. 참 많은 사람이 나를 도왔는데 나는 아무도 돕지 못하였구나. 그 부분이 가장 아쉽구나. 동희야 참 잘 했다. 네가 살고 싶던 삶을 찾아 너를 놓지 않고 지금껏 열심히 살아온 네게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말이다. 네가 힘들 때 네 주위에 많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은 것은 네 잘못이다.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너를 더 열어 나누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리하면 더 가까워졌을 것을 말이다. 더 다정하게 살지 못해 아쉽구나. 지나고 보니 지킬 것도 없었고 나누지 못할 것도 없었구나. 마지막으로 그토록 바라던 책 한 권 쓰지 못하고 죽는다고 생각하니 내 인생에 죄를 지은 듯하구나. 그토록 중요한 나의 꿈이었는데 더 소중히 생각하고 더 나를 그 곳에 쓰지 못하였구나. 하루 하루의 달달한 월급 인생에 목이 묶여 그 꿈을 이루지 못하였구나. 빨리 깨닫지 못하고 빨리 시작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미련한 인생은 떠남에 굼떠서 늘 머뭇거리다 가게 되었구나. 한 사람의 인생으로서 미안하다. 이 세상이 더 좋아지게 만들지 못한 데 미안하다.
먼 미래의 아들 딸들아 내 너희들에게 더 큰 도움을 될 일을 못하고 가는 것이 죄인이다. 오늘까지 삶을 죽여 나의 삶을 이어 왔건만 다음 세대의 너희들에게 도움될 일을 하지 못하고 죽으니 내가 짐승과 다르지 않구나. 그러니 너희들도 나와 같은 삶을 살지 않도록 늘 경계하고 살기를 바란다. 앞서간 사람의 허망한 삶 속에서 너희의 희망을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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