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형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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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보는 법
토요일 오후, 늘어진 몸을 추스르기에 가장 좋은 명약은 딸들의 환호성이다.
"엄마는 공부하러 나갔으니, 우리끼리 좋은 데 가자! 우리는 어디로 갈까? 음, 과자 사들고 연날리러 갈까?"
"야호!"
두 딸은 춤추고 환호하는 도깨비로 돌변한다.
"그럼 우선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옷 갈아입자!"
"엄마는 공부하러 나갔으니, 우리끼리 좋은 데 가자! 우리는 어디로 갈까? 음, 과자 사들고 연날리러 갈까?"
"야호!"
두 딸은 춤추고 환호하는 도깨비로 돌변한다.
"그럼 우선 세수하고 양치질하고 옷 갈아입자!"
딸 기르는 재미 중 으뜸은 머리를 빗겨 방울로 묶어줄 때다. 딸을 의자에 앉히고 고개를 살짝 뒤로 제치게 한다. 우선 오른손으로 머리카락을 쓸어모아 왼손으로 움켜잡는다. 몇번 반복하면서 잔머리를 최대한 정돈한다. 입에 물었던 방울을 가져와 왼손 엄지손가락으로 한 끝을 누르고, 다른 한끝을 잡아 세바퀴 돌려 준다. 이때 묶는 지점이 너무 밑으로 내려와서도 너무 위로 올라와서도 안된다. 방울을 너무 많이 돌려 지나치게 팽팽하게 묶어서도 안된다. 어차피 서너시간 뒤에 다시 묶어주어야 하기에 너무 팽팽하면 풀기 곤란하다.
딸들 옷을 챙겨 입히고 머리 묶어준 뒤, 공원에서 필요한 물품을 챙겨본다. 차양막, 야외용 돗자리, 생수 한 병을 차에 싣는다. 아파트 후문 옆 마트에 들려 바라보기만해도 입안에 침이 고이는 청포도 한송이를 산다. 물론 과자도 한 봉지 고른다. 큰 봉지로 골라야 놀러가는 맛이 난다.
하늘 맑은 주말에 찾은 임진각 평화누리 공원. 하염없이 푸르고 또 푸른 봄 하늘과 저 멀리 하염없이 펼쳐진 잔디언덕에 삼삼오오 휴일을 즐기는 사람들이 있는 곳. 말그대로 윈도우 XP 배경화면을 실물로 보는 느낌이다. 게다가 바람마저 적당히 불어 일년 사시사철 연날리기 딱 좋은 곳이기도 하다.
6천원을 건네 주고 가오리 연을 하나 샀다. 큰 딸아이는 연에 실을 묶어주기가 무섭게 연을 치켜 들고 저 멀리 뛰어나간다. 이제부터는 내 할 일은 작은 딸을 돗자리에 앉혀 놓고 차양막을 치는 일이다. 주섬 주섬 장비들을 챙겨 차양막과 한 판 승부를 펼쳐본다. 연 날리던 큰 딸도 어느새 연을 제쳐 놓고 차양막 치는데 한 몫 거든다고 나선다. 물론 도와준다기 보다는 흙장난이 본업이다. 한 삼십 여 분 장비들을 주물럭 거린 끝에, 제법 모양새 나는 차양막 그늘을 완성했다.
돗자리를 펴 놓고 청포도와 과자를 꺼내 놓는다. 두 딸과 대화도 별로 필요 없다. 그저 청포도와 과자를 입에 넣고 연신 우물 거린다. 허기가 좀 가시니 온 몸에 힘이 주욱 빠진다. 이제 내 일은 끝났다. 벌러덩 눕는다. 작은 딸도 내 허벅지를 베고 벌렁 눕는다. 큰 딸도 내 옆에 거꾸로 눕는다. 우리 세 명은 그저 차양막 그늘과 차양막 바깥 봄 하늘을 번갈아 천천히 바라본다. 바람도 이마와 머리결을 쓰다듬는다. 내 몸을 베고 누워 있는 건 딸들 이지만, 왠지 나도 어머니 무릎이라도 베고 누운 것 처럼 편안하다. 그저 하릴없이 누워 있기만 할 뿐이다.
'그래, 하늘은 이렇게 보는 거다.'
하늘 보는 법은 단순하다. 온 몸에 힘을 빼면 된다. 하늘을 가슴 가득 받아들이는데 머리 쓸 일은 없다. 눈으로 몸으로 하늘과 바람을 받아들이면 된다. 몸 뉘일 그늘과 돗자리, 허기를 채워줄 포도 한송이와 과자 한 봉지면 충분하다. 그리고 그저 하늘을 보며 감탄하면 되는 거다. 그렇게 하늘을 보고 있으면 곧 알게 된다. 하늘 가득 날아 오르는 연들은 주연배우 '하늘'을 도와주는 훌륭한 조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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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추억을 선물해주는 아빠즘승의 사랑이 느껴지네. ㅎㅎㅎ
아이들이 커서 아빠를 기억할 때
푸른 하늘과 5월의 신록이 깃든 아카시아 향기 맡으며
연도 날리고, 텐트도 치고, 아빠무릎 배고 하늘쳐다보면서
아빠와 이야기하다가 스르르 잠들었던 기억들.....
딸들 머리 묶어주는 즘승은 역시
모습과 형체는 아니마요.
내면은 아니무스 덩어리네.
신체를 움직이는 몸활동을 할때도 힘을빼라하고
악기를 다룰때도 손에 힘을 빼고
고수는 힘을 뺀다 하더니
형선이가 곧 고수로 등극할 날이 머지않았네.
딸과 함께한 일상이 행복이고 순간을 살아가는 지혜를 형선이가 보여주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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