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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6
나쁜 천재들
강종희
2014. 5.26
열정과 기질.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 지를 가늠하는 두 가지 척도로서 손색이 없는 두 가지의 특질. 이것은 천재가 되었던 범인이 되었든, 크게 다를 바 없는 인생의 키워드일테지요. 내용에 대해서는 백지이지만, 열정과 기질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과 700페이지 짜리 고급 하드커버에서 풍기는 우아한 분위기에 나름 기대를 안고 시작한 독서였는데, 책장을 덮고 나자 왠지 모르게 부글부글… 가슴 속에 끓어 오르는 것이 있었습니다.
뭐라 설명할 지 모르겠어요. 일단 주말 내내 잠을 설쳐가며 투자한 시간에 아랑곳없이 이 책은 저에게 별다른 감흥이나 깨달음을 선물하지 않더라고요. 어찌나 허탈하던지… 그러다 문득 이 감흥 없는 책을 가지고 제가 해야 할 숙제들이 오롯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깨닫자 슬금슬금 짜증이 밀려 올라왔습니다. 새로 개봉한 영화 한 편도 안 보러 가고 이 좋은 날씨에 방구석에 틀어박혀 고생 고생하며 읽었건만, 나의 생각 창고와 감정의 현은 책장을 열 때의 그 백지… 상태 그대로였습니다. 아, 배신도 이런 배신이 없습니다.
경계인으로서의 정체성, ‘개인-타인-장’이라는 창조성의 탄생과 인정을 위한 발판들의 비동시성, 모더니즘의 탄생 배경으로서 ‘현대’의 시대적인 의미, 이런 저런 주제들을 친절히 설명해주는 서문과 마무리가 있었지만, 그 내용은 그렇게 독창적이지도, 고개를 끄덕이게 할 만큼의 통찰로도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아마도 하워드 가드너라는 이 저명한 교육심리학자가 주창한 가설들이 이미 보편화되어 그것이 누구의 것인지도 모른 채 일반화된 지식으로 제게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그런 있어보이는 이론과 가정과 논증에는 그닥 눈이 가지 않았지만, 이 천재적인 위인들의 인생을 파노라마처럼 정리한 5단계에 관심이 갔습니다.
아이의 기질을 적당히 지지할 줄 아는 중산층의 가정에서 보낸 유년기. 어느 순간 집안을 벗어나 제 2의 부모, 또는 정신적 지지자를 찾아 자신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청년기. 고독하게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고립된 영웅의 시기, 찬란한 성공과 영광의 전성기, 그리고 창조성의 꽃은 져도 성숙해가는 통찰로 살아가는 그 너머의 시기.
책에 등장한 일곱 명 위인들의 삶은 예외 없이 위의 5단계를 거쳐 변화합니다. 그 시기의 도래와 기한이 조금씩 다르다 해도 순서와 양상은 일치한다는 거죠. 저는 이런 단계는 저 같은 범인에게도 수식하는 구절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비슷하다고 보았어요. 부모의 지지가 삶의 중심축이 되는 유년기, 부모로부터 경제적, 정서적 자립을 모색하는 청년기, 독립된 삶과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분투기, 일과 가정에서 균형을 찾는, 또는 일정한 고지에 올랐다 생각하는 전성기, 전 같지 않은 체력과 지력에도 새로운 가능성에 눈뜨는 중년 이후의 삶. 뭐 그런 거죠.
저는 요즘 자꾸 조바심이 납니다. 이제 저는 통찰력이 익어가는 계절, 새로운 가능성에 눈 뜨는 마흔을 누려야 하는데, 그게 허락되지 않는 것 같아 부아가 치밉니다. 진짜 뼈 빠지게 일하여 가정을 건사하고 하루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많은 마흔들과 선배들에게 욕먹을 일인 거 알면서 고백합니다. 그간 이런 저런 고생도 하고 변화도 있었건만 그저 제자리 걸음만 한 듯한 이 느낌은 뭘까요? 분명히 남들은 ‘이제 다 키웠네. 아휴, 부럽다’며 제게 이제 하고 싶은 거 하면 되겠다는데. 두 사내 아들 녀석은 여전히 ‘엄마, 물 한잔, 양말 한 짝’을 외칩니다. 남편은 풀타임으로 일하던 때와는 다른 잣대로 아내를 평가하며 불만이 많은 눈치입니다. 무엇보다도 그 바쁘던 회사를 그만뒀는데, 월급이 보장되지 않는 프리랜서가 되었어도 딱히 일에서 벗어난 것 같지도 않아요. 이건 뭥미….
아, 그러니까 왜 열정과 기질을 읽고 난 소감이 신세 한탄으로 이어지는 것일까요? 제 상황이 이 책을 읽고 허탈하다 짜증이 난 이유와 뭔가 연관이 있는 걸까요? 왜 파우스트적 거래라는 개념에 자꾸 눈길이 가는 걸까요? 적어도 세 번째 질문에의 힌트는 저도 압니다. 저에게 늘 풀리지 않는 숙제가 바로 가정과 하고 싶은 일의 균형에 있었으니까요. 이 천재들과 파우스트와의 계약에서 위대한 업적을 남기려면 버려야 할 그 무언가에 가족들은 거의 제 일착으로다가 차출되지 않습니까. 그런 어마어마한 일을 벌이는 천재들에 경악하면서도 은근 슬쩍 부러운 부분이 있는가 봅니다.
이 어마무시한 천재들은 하나 같이 가정 따위, 주변 사람들 따위 아주 무자비하게 내팽개쳐 버리지요. 가족과 사이가 안 좋고 소원한 건 양반, 가장이면서도 가족들 생계나 자녀 양육은 완전 무시, 심지어 자신의 여인들에 대한 정신적 육체적 학대에서 힘을 얻는 피카소 같은 변태놈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은인 같은 지지자나 친구라도 앞길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되거나 수가 틀리면 가차없이 버리거나 파괴하는 행동도 용서를 받았다는 거죠. 뭐, 워낙 인류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니까요. 저는 이러한 감정의 괴물들이 천재적인 창조성으로 인류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는 부분에서 배신감을 느낍니다.
일단 이런 나쁜 놈들이 잘 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잘 되면 그런 사악한 짓도 용서되는 것인가하는 윤리적인 질문이 저를 들쑤십니다. 왜 회사에서 일하다 보면 못된 인간들, 그냥 자기를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남을 해하여 자신을 올리고자 하는 인간들이 있고, 그런데 그런 인간들이 잘 되는 꼴을 종종 보게 되잖습니까. 위로 올라가서 살아남은 놈일수록 독한 놈이라고, 왜 죽음의 수용소에서도 프랭클 박사가 이렇게 이야기 하잖아요? “우리는 우리들 중 가장 고귀한 사람들은 살아남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라고. 물론 우리는 끝을 본 것이 아니니 언젠가는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이 이뤄질 수도 있겠지만, 친일파들의 대대손손 부귀영화나 독립유공자들의 자손만대에 이어진 고생은 또 뭐랍니까. 세월호만 봐도 그렇지 않나요? 착하고 고귀한 사람들은 남들을 위해 희생하다 제 목숨은 못 건지고 가버리잖아요!
얘기를 하다 보니 흥분하여 엉뚱한 방향으로 흐른 것 같습니다만, 요지는 그겁니다. 사실을 말하자면 저는 피카소 때문에 열 받았어요. 이 위대한 화가의 주변에서 죽어나간 목숨이 대체 몇인가요? 그의 그림이 정말, 그 모든 비극을 감수할 만큼 인류에 어마어마한 일을 한 것인가요? 그가 아니면 누구라도 또 다른 화풍과 표현으로 모더니즘의 출현에 걸맞는 업적을 남기지 않았을까요? 다른 천재분들은 뭐 그 만큼들은 아니셨고, 그냥 좀 가족과 데면데면했고 신경을 많이 안 썼다 싶은 아이젠슈타인이나, 오히려 파괴적인 결혼생활을 십 수년씩 참고 감내한 엘리어트 같은 이도 있었지요. 저는 천재라면 ‘파우스트와의 계약’이라는 명목 하에 면죄부를 주는 것처럼 인간성을 저버리는 행위에 대해서도 천재의 특징인양 일반화하는 저자의 시도가 싫습니다. 막상 저자는 그게 좋다 나쁘다 한 것이 아니지만서도, 그것을 천재의 공통 분모라는 식으로 뽑아낸 것만으로도 그런 분위기를 조장한다는 생각이 들어서입니다. 한편, 이런 창조적인 일을 하려면, 위대한 일을 하려면 눈을 감아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을 모른 척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도 결국, 한계가 있는 인간이니까요. 나는 무심하거나 사악한 천재들에 이런 이유로 화가 나고, 또 은밀히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떨치고 훌훌…. 그것은 모든 마흔들의 로망이니까요.
그래도 말입니다. 우리는 창조성의 대가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함께 하고 싶은 위인들을 보고 싶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런 분들은, 이상하게 자꾸 일찍 죽더라고요. 살아 생전 인정도 못 받고요. 죽어서도 욕 잔뜩 먹고요. 그러니까 우리는 그런 인간성에 있어 위대한 사람, 그런 사람들을 천재로, 영웅으로 내세우는 작업을 시도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나쁜 천재들 말고 좋은 천재들도 좀, 만나고 싶습니다!
"뷰티풀 마인드"의 존 내시가 떠오릅니다. 수학을 잘해서 미친 것인지 아니면 미친 사람이 수학을 잘한 것인지. 인과관계(causality)가 좀 헷갈립니다. 정신병에 걸린 것과 수학잘하는 것과 도대체 무슨 인과관계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자기 주장에 맞는 기질을 갖고 있는 천재를 골라내어 논증하는 것이 사회과학의 한 방법이라면 예전 우생학(Eugenics)이 범했던 우를 반복할 여지가 있습니다. 참고로, Empirical(경험적, 실증적)이라는 단어는 16세기에는 사기(fraud)라는 말과 거의 동의어였다고 합니다. 천재들 중에도 소박하고 겸손하게 살아간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열정"이 많다고 해서 "기질"이 괴팍스러울 이유는 없습니다.
교차로의 여신 헤카테와 파우스트적인 거래를 했다고 해서 악마처럼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됩니다. 물론 한 분야에 열정을 다하다 보면 주변을 살피지 못하는 것은 있을 수 있지만 주변을 파괴적으로 망가뜨리는 것까지 천재의 기질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천재"라는 것은 업적에 대한 사후(Ex-Post)적인 호칭에 불과합니다. 마흔이 지나서 느끼는 명예에 대한 열망이 삶을 불태워버릴 정도로 강렬하다고 해서 주변사람까지 땔감으로 사용하려 한다면, "천재"가 되기전에 자기파멸적 상황을 맞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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