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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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오프 수업 전 날이 되어서야 숙제를 부랴부랴 끝냈다. 지난 주 예상치 못한 업무의 출현으로 숙제에 온전히 쏟아 부으리라 생각했던 시간을 잃어버렸던 것이다. ‘이렇게 기대치 않았던 일들이 일어날 줄 몰랐단 말이냐?’ 라며 스스로에게 화가 난다. 그간 소재가 잘 안 떠오른다는 이유로, 왠지 글이 안 써질 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에 책상 앞에 앉아 있기를 거부했던 내 자신의 모습도 생각나면서 원망스러움이 커진다. 성실하고 진득한 엉덩이의 힘과 주저함이 없는 글쓰기의 자세를 나는 언제쯤이나 기를 수 있는 것일까? 졸렬함의 가시가 나를 찌르는 듯한 느낌이다.
지난 몇 주간 계속 어떤 이야기를 쓸까 머리 속이 복잡했다. 그러나 쉽사리 떠오르는 경험들은 없었다. 내 인생에 중요한 경험이라고 하면 무언가 시련을 이겨내고 그런 상황들을 통해 배우고 성숙해지고 그래야 할 것 같은데 그나마 생각나는 일들은 너무 소소하고 뻔했다. 그 동안 내 힘으로 제대로 부딪쳐본 일이 없다는 것을 부끄러워하며 글의 방점을 찍고 길을 나섰다.
오랜만에 타보는 기차여행은 1시간도 채 안 되는 짧은 여행이었지만 숙제를 제대로 풀어내지 못한 찝찝함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을 정도로 기분이 날아오를 것 같았다. 철학 이야기를 꺼내 읽고 음악을 들으며 왠지 이 기차를 타고 멀리멀리 여행을 떠나는 길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리고 도착한 천안역에서 만난 데카상스 동기들, 그리고 선생님들의 모습은 어찌나 반갑던지….. 데카상스를 만날 때 마다 늘 동일한 것이 있다. 바로 어제 본 것 같은 친근함과 편안함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만나면 작은 농담에도 계속해서 웃고 또 웃는다. 다들 마치 낙엽이 굴러가는 것만 보아도 웃는다던 여고생들 같다. 그리고 고마운 마음이 용솟음 친다. 늘 우리 수업에 와 주시는 선배님들께도 감사하고 또 서로가 더욱 공헌하겠다며 이리저리 부지런히 뛰어다니고, 늘 환하게 웃어주고 보듬어주는 동기들에게 감사하다.
이어진 맛난 점심은 변경연 식구들의 끈끈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나 또한 나중에 이렇게 내가 아끼는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으면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천안에서도 한 참을 달리고, 또 산 길을 한 참 달려 우리의 아지트에 도착했다. 총무님의 노고로 얻어진 1박2일간 우리의 보금자리는 넓고 쾌적했다. 자연을 싱그럽게 품은 모습에 내 마음까지 상쾌해지는 듯 했다. 바람은 어찌나 살랑이던지.. 낮잠이 간절한 날씨와 분위기였다.
드디어 오프 수업이 시작되었다. 역시 배울 것이 많은 멋진 동기들이다.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꿈을 이루는 모습에 감탄을 하기도 하고, 본인을 가장 잘 알고 나다운 삶을 펼쳐가는 모습에 감동받기도 하고, 꿈에 한 발 한 발 다가가는 모습이 자랑스럽기도 하다. 쉽사리 꺼내기 어려운 속내를 보여주시는 것도 감사하며, 그 속에 담겨있는 아픔을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렇게 아름다운 삶의 흔적들을 보며 내가 부끄러워 진다. 아무 코멘트를 할 수가 없다.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직도 갈 길이 멀었구나 싶다.
고맙게도 연치쌤이 와주셨다. 이 먼 곳까지 발걸음을 해주시다니 정말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는 왠지 한 식구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연극 치료 수업은 늘 재미있다. 오랜 시간 앉아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 보다는 무작정 움직이는 것을 더 즐기는 나이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이번에도 특별한 경험을 했다. 저번 시간에는 나를 탐색하는 여행을 했다면, 이번에는 서로와 교감하는 경험을 했다. 어둠 속에서의 댄스는 내가 마치 베르사유의 궁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로 황홀했고, 서로의 행동을 따라 했던 시간은 무언가 알 수 없는 에너지가 흐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함께한 분들의 배려심을 느끼는 기회도 되었다.
더 시간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느껴진 꿀 같은 휴식의 시간이 지나고 다시 오프수업이 진행되었다. 드디어 내 차례, 순서는 럭키 세븐이었지만 나의 얄팍한 자기 성찰을 아름답게 들리도록 만드는 행운은 없었다. 질문에는 말문이 막혀 횡설수설 해댔고, 나름대로는 새벽에 희열을 느끼며 썼던 글이 다 덧없어 보이기도 했다. 역시 나는 늘 결정적인 순간에 항상 제 실력이 뽀록 난다. 남들이 다 20점씩 올랐다는 희대의 수능 점수 인플레에도 나의 점수는 반대로 하향세를 보여 그간 운빨이었음을 여실히 보여주었고, 대충 마무리한 일에는 늘 허를 찌르는 공격을 받곤 했으니 말이다. 역시 정직하게 살아야 하는 인생이다. 하지만 이제는 난 원래 허술한 사람이야, 난 노력을 많이 안 했으니까 그런 것이 당연하지. 라는 변명에서 벗어나 정면승부를 걸어볼 시간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어쩌면 매사 데드라인의 끝까지 나를 모는 이유는 짧은 시간에 했으니 이 정도의 퀄리티는 어쩔 수 없지. 라는 자기 변명을 위함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계속해서 완벽하게 발가벗겨진 듯한 기분에 나는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리고 혼란스러웠다. 또 화가 나기도 했다. 나를 잘 알기 위해서, 나의 길을 찾기 위해서, 온전한 나로 우뚝 서기 위하여 시작한 길 이었는데 일상의 밥벌이에서 나를 덥친 불안감에 사로잡혀 살아남기 위한 길을 찾아 해멘다. 그리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 혼란스러워 하고, 계속해서 이런 길로 갈까 저런 길로 갈까 고민만 하고 있다. 내가 택할 수 있는 옵션지를 여러 개 만들어 놓고 정작 결정적인 순간에는 모험에의 길을 회피한다. 그리고 나서는 또 현재 순간에 머물러있는 나를 못견뎌한다. 하루에도 수 백번씩 마음이 바뀌고 사람들의 말에 따라 왔다갔다 한다.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하는데 자꾸 사람들의 조언에 기대려고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자꾸 모르겠다. 못하겠다. 쉬고 싶다 라는 생각을 하며 게으름을 부린다. 이렇게 회피할 문제가 아닌데 말이다.
오프수업 후 다행스럽게도 나는 나를 찾기 위한 여행에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문득문득 어린 시절의 모습이 떠오르기도 하고, 그랬었지..라고 생각하는 일이 많아졌다. 과거로 돌아가 현재까지의 나의 궤적을 더듬어보다 보면 조금 더 실마리가 풀리리라. 오늘밤은 좀 더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것들을 마음 속 깊숙이 들여다보리라. 고민이 풀릴 때 까지 치열하게 싸워보리라.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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