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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6월 23일 11시 00분 등록

엄마 바꾸기
10기 김정은



“도덕적인 현상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현상에 대한 도덕적인 해석만이 있을 뿐이다.” 
- 니체, <선악의 저편> -


그 날은 비가 많이 왔다. 이런 날은 꼭 목 디스크가 도진다. 늦잠을 잤다. 큰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고, 병원에 갈 참이었다. 우산이 무거웠는지 아이가 든 우산이 자꾸 삐딱해진다. 이대로 계속 가다간 가방도 옷도 다 젖을 것 같다. 나는 뒤에서 잔소리를 해댔다. 우산 똑바로 들라고.


“엄마 바꿨으면 좋겠어.”


큰 아이가 내뱉은 말이다. 풀이하자면 다른 엄마들은 차가 있어서 비 오는 날 학교까지 태워 준다는 것이다. 아이는 그것이 부러울 뿐이고. 엄마는 차도 없고 게다가 눈도 나빠서 운전도 못 한다. 그러니 비 오는 날 아이는 힘들다. 엄마는 차도 못 태워주면서 무거운 우산을 들고 안간힘을 쓰고 있는 아이한테 잔소리까지 해댄다. 보아하니 딸은 순간 화를 참지 못한 것이렷다!


엄마를 차도 있고, 운전도 잘 하는 친구 엄마와 바꾸고 싶단다. 내 속이 편할 리가 없다. 속상한 마음을 달래며 아이가 올 때까지 기다렸다. 오자마자 물었다. 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 없냐고. 내심 ‘엄마, 미안해.’ 소리를 듣고 싶었던 모양이다. 큰 아이가 꼬깃꼬깃 구겨진 쪽지를 내밀었다. 사과의 메시지가 써 있을 거란 기대와는 달리 내용은 이랬다.


“엄마, 내가 왜 착하게 살아야 돼?”


아침에 엄마 바꿨으면 좋겠다는 말에 나는 나도 모르게 ‘엄마한테 어떻게 그렇게 못된 소리를 할 수가 있어?’라며 발끈했었나 보다. 아이는 하루 종일 곰곰이 생각했었나 보다. 솔직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왜 나쁜지, 그 말이 왜 못된 소리인지, 착하게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자신이 왜 착하게 살아야 하는지.


엄마를 바꾸고 싶다고 했을 때 보다 더 충격이었다. 착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닌가? 왜 착하게 살아야 하냐고 묻다니, 난 여태껏 살아오면서 한 번도 떠올려보지 못한 질문을 내 아이가 하고 있다. 나 또한 갑자기 궁금해졌다. 엄마는 아이에게 온갖 잔소리를 다 하면서 왜 아이는 엄마에게 솔직하면 안 되는지, 그리고 우리가 왜 착하게 살아야 하는지.


아이에게 제대로 된 답을 주고 싶어서 나는 유아교육과 교수와 소아정신과 전문의에게 직접 물어 보았다. 유아교육과 교수는 아이가 ‘엄마를 바꿨으면 좋겠어’라고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이와 엄마와의 관계가 친밀하게 잘 형성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 문제가 없고, ‘내가 왜 착하게 살아야 해?’라고 묻는 것은 어린 아이가 하기 어려운 고차원적인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는 신호이므로 또한 문제가 없다고 했다. 소아정신과 전문의는 도덕성이 높은 부모의 도덕성을 높이려는 교육이 오히려 아이의 자존감 저하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하면서 아이를 훈육함에 있어서 선과 악의 판단은 가급적 내리지 말라고 조언했다.


나는 왜 ‘엄마를 바꾸고 싶어’라는 아이의 말에 그렇게 상처를 받았을까? 그 이유는 해결되지 않은 내 자격지심에 있다. 나는 내 아이가 내 시력이 나쁜 것을 몰랐으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이는 엄마가 시력이 나쁜 것을 이미 알고 있었고, 그것이 원인이 되어 엄마가 운전을 못하기 때문에 비 오는 날 자신이 힘든 것까지 느끼고 있었다. 나의 좋은 면과 나쁜 면을 내가 판단해서 아이에게 내 좋은 면만 보여주려고 한 것이 문제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오롯이 받아들이는 ‘아모르 파티’를 선언했기 때문에.


“비 오는 날 차 태워 주는 친구 엄마들이 많이 부러웠구나. 엄마도 운전할 수 있으면 참 좋을 텐데, 엄마는 아무리 노력해도 시력이 안 돼서 운전할 수 는 없네. 노력해도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잖아? 그건 우리 딸이 인정해줬으면 좋겠어.”


그 동안 나는 내 마음대로 선악을 구분하고 그 기준에 맞춰 내 아이들의 도덕성을 키우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도덕은 사회 구성원들이 양심, 사회적 여론, 관습 따위에 비추어 스스로 마땅히 지켜야 할 행동 준칙이나 규범을 말하고, 도덕성은 도덕현상을 인식하고 도덕규범을 준수하려는, 즉 자신 및 타인의 행위에 대하여 선•악•정•사를 구별하고, 선행과 정의를 실천하려는 심성을 말한다. 사회적 여론이나 관습은 시대에 따라 변하기 때문에 도덕과 도덕성은 절대적이지 않다. 니체가 도덕을 부정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니체는 도덕을 “공동체를 유지하고 공동체의 몰락을 방지하는 수단”으로 보았으므로, 지나치게 도덕적 기준에 얽매이는 것은 개인의 삶을 부정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보았다.
 
“능력 이상으로 도덕적이고자 하지 말라. 그리고 될 법하지 않은 것을 자신에게 요구하지도 말라."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


누가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도덕성을 수단으로 내세워 강자로서의 부모의 권위를 세우려 들지 말자. 또한 그러한 도덕성에 얽매여 구속하지도 구속당하지도 말자. 도덕성 운운하기에 앞서, 내 개인의 삶을 긍정하자. 사회의 여론이나 관습에 상관없이 나는 그리고 너는 소중한 존재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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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3 12:21:57 *.48.194.48
저도 생각을 좀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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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3 20:44:21 *.202.136.113
생각하고 토론하며 한 발 한 발 디디고 있답니다~ 혼자가는 길이 아니라 든든함은 있네요 하지만 이게 맞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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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3 13:14:11 *.253.45.190

참 착한 딸이네요. 우산을 던지면서 성질부리지는 않잖아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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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3 20:50:47 *.202.136.113
그지요? 3년전 처음 애들 데리고 왔을 때 얘기예요... 할머니의 맛난음식 편안한 라이드에 길들여있다가... 음식, 라이드 둘 다 안되는 엄마랑 살래니 힘들었겠지요?? 하지만 이젠 다시는 엄마와 떨어져선 못 산다니 음식도 라이드도 엄마 사랑앞에는 아무것도 아닌듯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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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3 14:21:58 *.62.178.124

역시나 섬세한 딸들. 나라면, 엄마는 니 운명이다, 까불지마라 이러고 협박했을 듯. 깡패같은 아들엄마와 다른 딸엄마의 세심한 접근에 감탄 중이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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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3 20:53:47 *.202.136.113
아들 키우시는 분들 존경합니다~~ 전 원래 섬세한 스탈은 아닌데... 아이들앞에선 섬세해지더라구요~^^ 제 안에 그런 모성이 있는줄은 저도 몰랐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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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3 16:19:49 *.196.54.42

"엄마, 내가 왜 착하게 살아야 돼?" 그것 저도 함 생각해 볼 질문이네요. 성숙하고 당돌한 딸을 두신것 축하^^

"내 자신을 있는 그대로 오롯이 받아들이는 ‘아모르 파티’를 선언했기 때문에." 

이게 젤 어려운 건데....경지에 오르신 것 또한 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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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3 20:57:17 *.202.136.113
구달님 경지 따라갈려면 한참 멀었네요.... 저도 why so serious 경지로 입문해야할텐데... 구달님께서 사주시는 치맥을 먹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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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3 17:09:00 *.113.77.122

변경연 연구원 부부의 내공이 아이들에게 그대로 전달된 느낌인데요 


"내가 왜 착하게 살아야 돼? " 어린아이가 이런 질문을 할 수 있다는것이 정말 놀랍네요.

아이들은 볼때마다 엄마를 가르치기 위해서 온것 같아요. 

엄마가 인정하기 어렵고, 고치기 어려운것들을 자식덕에 많이 고치게 되는것 같아요 


멋진 엄마를 둔 딸은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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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3 21:08:22 *.202.136.113
그지요... 애들에게서 배우는 게 더 많은.... 또 내가 봤던 책을 어느새 아이가 보고 있는.... 3년전엔 워킹맘의 짠한 마음이 많이 있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좋아진 것 같아요... 워킹맘 찰나횽님도 화이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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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3 18:51:00 *.252.144.139

울 딸들도 저한테 불만 많아요.

그 불만들 다 해결해 주려고 노력할 필요 없어요.  

그냥 책 한 권 내고 출간기념회 하는 거 딱 보여주면 '엄마 존경합니다'가 나와요.

그러니 공부 열심히 해서 책 내시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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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3 21:10:40 *.202.136.113
책 한 권 내고 두 딸들로부터 존경받으셨다니.... 일거양득이네요.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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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3 19:05:32 *.23.235.60

ㅍㅎㅎㅎ 일찍이 수민이의 카리스마를 의심치 않았다.

그보다 더 앨리스의 카리스마를 알기에

모녀의 관계가 재밌고 흥미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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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3 21:14:21 *.202.136.113
울 엄니 말씀이 나 어릴적 카리스마가 수민양 못지 않았다는 군ㅋ
그 카리스마 다 받아주시고 같이 고민해주신 울 엄니께 무한 감사 느끼기에....
나도 다 받아줄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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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3 22:40:30 *.218.180.133

"엄마, 내가 왜 착하게 살아야 돼?" 라고 말하는 수민이의 성장에 한표!

근데 왜 진짜 착하게 살아야 돼지?


철학하는 아빠, 시 쓰는 엄마의 딸 답군.

나도 아이를 통해서 많이 배우게 되는데,

혹시 내가 어른이라는 이유로 아이에게 폭력을 휘두르지는 않나

그 아이의 입장에서 항상 생각하게 되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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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5 08:52:57 *.65.152.26

참치언니는 진짜 완벽한 엄마네요...

요리면 요리! 라이드면 라이드!! 고민 상담도 척척!!!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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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9 22:21:49 *.160.136.88

글. 현학적인 내용이 많다는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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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6.29 22:46:46 *.65.153.152

현학적....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 했던 기록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군요.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관점 알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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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9.03 01:21:14 *.139.103.196

아이에게 답을 주기 위해  유아교육과 교수와 소아정신과 전문의에게 직접 물어 보았다는 게 제게는 신선하게 다가오네요.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걸, 왜 내가 아이들 기를 땐 몰랐을까요.

책을 사서는 보았지만, 살아있는 전문가들에게 직접 전화해볼 생각은 못했네요.

앨리스는 눈이 좋지 않다,는 사실도 칼럼 읽고 알게 되었습니다. 

여행 동안 좋은 시를 고르고 낭독해주어서 감사해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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