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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 10
강종희
2014. 6.23
이 칼럼을 마치고 나면 점심을 먹으러 갈 수 있다. 요즘 나는 적어도 월요일에는 직접 수고하지않아도 되는, 남이 차려주고 치워주기까지 하는 식사를 하는 것을 낙으로 삼고 있다. 매일 회사를 다닐 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사소한 일상이, 주부와 프리랜서의 삶을 느슨하게 걸쳐놓은 지금에 와서는 좀 미안한 사치가 되었다.
벌써 6월의 마지막 주다. 그러고 보니 2년 전 6월의 첫날에 우리 식구는 생면부지 부산에 이사를 왔더랬다. 아이들과 남편과 가족석을 차지하고 앉은 KTX안에서, 마치 ‘샤이어를 떠나는 호빗’이 된 기분으로 목이 메어 꾸역 꾸역 삶은 달걀을 삼켰던 기억. 그때의 ‘불안과 공포’를 (과장 아니다. 나는 이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내 처지의 조합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전혀 예측할 수 없어서 무서웠다) 돌이켜보면 우리 가족은 얼마나 무탈한가. 지금 나는 얼마나 무사한가. 그런데 무사함은 좋은 것인가? 무탈함은 최선의 결과인 것인가? 니체를 만난 주말의 끝, 불안한 의문이 머리를 채운다.
나는 요즘 수행 중이다. 주부로 사느라 수행한다. 저녁 마다 뭘 먹지 고민하며 양파를 깔 때에도, 삼시 세 때 꼬박꼬박 쌓이는 설거지를 할 때에도, 발 디딜 틈도 없는 큰 녀석의 방, 침대 밑이며 책상 귀퉁이에서 일주일 묵은 양말짝을 끄집어낼 때에도, 밑도 끝도 없는 잠투정을 하는 막내를 깨워 밥, 물통, 로션을 외치며 쫓아다닐 때에도. 아, 이 놈의 수행은 끝이 없다. 사람마다 싫어하는 일, 아무리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일이 있겠지만, 주부이고 엄마인 나의 고역은 다름아닌 살림과 양육이다. ‘재능 없는 일에 매일을 보내야 하는 것은 저주다. 해결책을 찾지 못하면 그것은 너의 능력이 부족한 탓이다.’ 사회적 인간으로서 나는 이런 말을 겁도 없이 했었다. 이런 된장, 입이 방정이었다. 주부와 엄마, 이 두 가지 정체성은 가족을 버리는 만행을 저지르지 않는 이상 영원히 나의 것이다. 커리어에 훨씬 큰 비중을 두고 설렁설렁 엄마짓을 할 때에는 나의 무능력과 무심에도 핑계가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주부와 엄마로서 나의 맨 얼굴과 무능력을 매일 확인하고 있는 중이다. 나 원 참, 쪽 팔린다!
며칠 전 둘째 가라면 서운한 우리 집 최고의 쿨 가이 둘째 녀석이 엄마 가슴을 푹 찌르는 발언을 했다. 아이가 밤늦게 태권도학원에서 혼자 오기 무서우니 자기를 데리러 오란다. 아파트 단지 안이고 매번 왔다갔다하는 길을 뭐 그렇게까지… 라고 생각하면서도 아이가 오랜만에 한 요청이니 데리러 가겠다 약속하였다. 그리고 또 ‘깜빡’했다.
데려가기로 한 그 시간에 문을 쾅 닫고 들어서는 둘째 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화가 나서 씩씩대는 숨소리마저 귀여운 녀석이 “무서웠어? 미안해”하며 호들갑을 떠는 엄마를 쏘아보며 말했다. “엄마는 어쩌면 자식에게 그렇게 무심할 수가 있어? 엄마는 우리한테 밥만 먹여놓으면 다른 건 신경 하나도 안 쓰지?”
허억!!!!! 쟤가 그걸 어떻게 알았지? 입 밖으로 낸 적은 없지만 내 머리 속엔 자식이란 먹을 거만 먹여주고 따뜻한 데서 재워주면 됐지, 그 이상은 지들 할 일이란 생각이 은연 중에 자리잡고 있었다. 그게 그렇게 티 났나? 관심 없고 흥미 없는 집안일은 대충대충, 매일매일 손이 가는 아이들의 뒤치다꺼리는 최소한으로 유지하며 얕은 나의 인내심을 테스트하지 않는 방향으로 무사무탈하게 정착한 나의 주부생활에 ‘빠직,’ 균열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매일을 반복하는 살림의 노고와 매일매일 쌓아야만 효력을 한번이라도 발휘하는 양육의 incremental한 성격은 나 같은 조급주의자들에게 익숙해지기 힘든 장벽이다. 사실 많은 주부들이 이 문제를 극복하지 못해 우울감과 허무함에 시달린다. 매일매일 파도처럼 몰려오지만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치워낼 수 없는 같은 일을 반복하는데 딱히 보상을 찾을 수도 없다. 그 끊임없는 노고의 혜택을 받는 대상자는 당연한 듯 나의 헌신을 착취한다. 이 모든 육체적 정신적 노고의 끝에는 물론 가족의 안녕과 뿌듯한 자식의 성장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지금 당장의 일상과 너무 멀고, 무엇보다도 인간은 이기적 동물이다. 엄마도 이기적 동물이다. 나를 먼저 위하는 인간의 이기적 본성에 어긋나는 일들로 일생의 대부분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이 정신병에 시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주부 우울증이 왜 그토록 흔하겠는가. 이 모든 것들이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느껴질 때, 니체가 말한 악마가 찾아온다.
“새로울 게 없어, 그래도 또 할래?” 악마의 속삭임에는 극도의 피로감이 응축되어 있다. 누군가 그의 속삭임을 한 번 듣는다면 그만 멈추고 싶을 것이다. (니체, 천개의 눈 천개의 길 중에서)
현대 한국사회에서 엄마와 주부라는 정체성은 인간이란 동물의 뼈 속에 새겨진 ‘이기적 유전자’와‘자기방어본능’ 對 유전자의 계승이라는 ‘종족적 본능’, 그리고 여기에 한국적 상황이 낳은 독특한 ‘가족이기주의’의 대립 위에 서 있다. 이 절박한 대립과 피로한 허무를 어떻게 긍정의 순환으로 이행할 것인가? 니체는 나에게 아직 답을 주지 않았다. 24페이지에 달하는 북리뷰를 마쳤는데도 또 숙제만 던져준다.
사소한 것은 사소하지 않다고 했다. 사소한 것들을 ‘하는’ 것이 니체가 말한 긍정의 순환의 시작일 것이다. 한 인간의 성장을 책임지고, 가족의 안녕을 이루고, 사회의 진보를 앞당기는 사소한 행위들. 사소한 행위의 의미와 깊이를 음미하는 일. 그것을 하는 행위의 신성함. 나는 아직 머리로만 알겠다. 하긴 버트란드 러셀도 포기한 주부의 구제를 어찌 내가 한 방에 이루리.
자녀 양육도 큰 문제다…. 결국 이 여성은 엄청난 냥의 자질구레한 일들에 치이게 되고, 얼마가 가지 않아 모든 매력을 잃고 지성의 4분의 3을 잃게 된다. 그렇게 살면서도 매력과 지성을 잃지 않는 여자가 있다면, 퍽이나 운이 좋은 여자다.
꼭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할 뿐인데도 이런 여성들은 남편에게는 따분한 아내, 자녀에게는 귀찮은 존재가 되는 경우가 많다… 자녀들과의 관계를 보면, 이 여성은 자녀를 위해 자신이 치러야 했던 여러가지 희생들이 마음에 남아 있어서 지나친 보상을 요구하게 되기 쉽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질구레한 일에 신경을 쓰는 것이 몸에 배어 쩨쩨하고 까다롭게 굴게 된다. 이 여성이 겪어야 하는 부당한 대접 중에서 가장 치명적인 것은, 가족들 옆에서 충실하게 의무를 수행한 대가로 가족의 사랑을 잃게 되는 것이다. 만일 이 여성이 가족을 소홀히 여기고 쾌활하고 매력적인 생활을 유지했다면 아마 가족들은 이 여성을 사랑했을 것이다. (버트란드 러셀의 행복의 정복에서 발췌, 원문은 진 에일링의 부모 되기에서 일부 참조)
나는 언젠가 이 문제를 불독처럼 물고 늘어져야겠다. 고병관이 감탄했던 루쉰의 스타일, 그 끈덕짐과 억지스러움을 갖고 파헤쳐 보아야 하겠다. 이것은 나의 다음 프로젝트다. 마흔 셋의 겨울이 지나기 전, 열 명 이상의 여성들과 바닥까지 긁어 올리는 깊은 인터뷰를 할 것이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난상토론을 벌일 생각이다. 어떻게? 그건 모른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때는 본인이 차리지 않는 점심을 대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고단한 위기의 여자들을 끌어들이는 데는 잘 차려진 밥상 만한 것이 없다. 나의 수고 없이도 돌아가는 일상의 한가함을, 잠시라도 맛보고 싶은 그녀들과 만나고 싶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떠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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