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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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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1월 28일 17시 36분 등록

“하나의 사회적 단위로서 개인은 개성을 상실하고 통계국의 추상적인 숫자로 전락하고 만다. 그러면 개인은 중요성의 거의 없는, 상호 교체 가능한 하나의 단위로서만 존재할 뿐이다. _ 칼 구스타프 융”


따뜻한 조직을 위한 꿈 _ #1 배려와 존엄

2014. 11. 27


2014년 11월 26일, 삼성그룹이 화학과 방위산업 계열사 네 곳(삼성테크윈, 삼성종합화학, 삼성탈레스, 삼성토탈)을 한화그룹에 팔았다. 언론에 공개된 내용들을 종합해 보면 전격적으로 진행된 듯 하다. 삼성에서는 ‘계륵’ 같은 존재인 비주력사업을 정리하는 차원이지만 한화에서는 화학과 방산이라는 핵심 주력사업을 더 강화하는 차원이라는 점에서 두 그룹 간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거래란 평가가 일반적이다. 이들은 서로 이기는 거래를 한 것일까!


뉴스 헤드라인 키워드를 모아보니 우리들의 현주소(수준)을 보는 것 같아 씁슬하다. 지배구조개편, 후계구도, 그룹지배력 강화, 경영복귀, 이미지 쇄신, 선택과 집중, 정기인사 … 따위의 단어들로 도배되어 있다. 누가 빅딜을 지휘했는지, 이 거래가 두 그룹에 미칠 역학관계나 이로 인한 시장의 영향, 삼성의 후계구도, 한화의 오너 경영복귀 등이 중요 관심사였다. 해당되는 네개 회사의 직원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기사에 따라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네개 회사의 직원 수는 8천명 내외가 되는 것 같다. 이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하룻밤 사이에 소속이 바뀌게 되었다. 삼성직원으로 출근했다가 한화직원으로 퇴근한 사람들이다.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더 필요하단 말인가! 


매스컴에서는 빅딜이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전격적인 인수합병의 모습을 닮았다. 삼성은 금 긋기해서 경계밖으로 밀려난 사업군을 버린 것이고 한화는 버린 것을 주워 먹었다. 8천여 명의 직원들이 함께 도매금으로 처리되었다. 두고봐야 겠지만 한화는 점령군으로써 자신들의 기업문화와 시스템을 이식시키려 할 것이다. 의도가 있건 없건 그렇게 될것이다. 주요 자리에 ‘믿을 만한’ 임원들을 보내게 될 것인데 이 사람들은 속속들이 한화스러운 사람들일 것이고, 삼성적인 그들과 부딪치게 될 것이다. 점령군과 부딪친다는 것은 죽음이거나 굴욕 말고는 기대할 것이 없다.


“지금부터 우리는 한화맨이 됐으니까 한화맨 답게 살아갑시다.” 인수 합병이 있기 전날 한 회사 사장이 사내방송 마이크를 잡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SBS, “그 동안 감사했습니다.” 메일 한 통이 그렇게 어려울까?, 김범주 기자, 2014. 11. 27). 아침까지 가족이라고 불리웠던 사람들에게 한 말이라고는 믿기 어렵다. 초일류 기업을 지향한다는 기업에서 취한 행보라고는 이해하기 어렵다. 삼성인으로 살아왔을 그들의 ‘자긍심’ 따위는 아랑곳 하지 않은 처사다. 경영상 이유로 기업을 사고 파는 것이 자유시장경제체제하에서 일어나는 비일비재한 잔혹이라 하더라도 8천여 명의 직원을 문화나 시스템이 전혀 다른 곳으로 팔아넘기는 일을 이 따위로 처리한다는 것은 아무리 너그럽게 생각해봐도 또 다른 잔혹일 뿐이다. 이 상황을 지켜보는 남은 자들의 마음은 또 어떨까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세계 최고를 지향한다는 기업에서 자행된 일이다. 


주주들은 기업의 가장 큰 위험세력이다. 그들은 오로지 이해관계에 따라서만 움직인다. 기업이 흥하면 머물고 기업이 어려우면 신속하게 떠난다.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 가운데 연결 끈이 가장 약하지만 가장 강력한 권한을 행사하는 역설 가운데 있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단기적인 경영성과의 단물을 실컷 빨아먹는 것 말고는 관심이 없다. 기업의 지속가능한 생존 따위는 그들에게 고려대상이 아니다. 경영상의 애로로 인한 구조조정이란 것만해도 그렇다. 경영자들이 개판 쳐 놓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피고용인의 몫이다. 이들은 경영자 그들이 시키는대로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 사람들이다. 경영자들의 실수나 욕심으로 닥친 경영상의 애로 때문에 이들은 하루 아침에 직장을 잃어야 한다. 이것은 정의가 아니다.


기능이 중첩되고 문화가 충돌하는 곳에서 다툼과 잉여가 발생한다. 많은 사람들이 본인의 의지와 관계없이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희망퇴직, 권고사직, 고용승계, 분산, 지리멸렬의 순으로 구조조정과 동조화 작업이 진행될 것이다. 삼성인으로 살아 온 사람들에게는 더욱 가혹한 겨울이 될 것이지만 ‘직업인’으로 ‘전문가’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그나마 충격이 덜 하겠다. 조직은 따뜻한 피가 흐르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따뜻한 피가 흐른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피고용인들끼리 더 잔혹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가족기업이란 이름으로 얽혀있는 먹이사슬의 아랫 단계에 있는 수 많은 작은 기업들에게도 거래선이 바뀌는 청천벽력의 상황에 처하긴 매한가지다.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채 변화하지 못하면 도태될 뿐’이라는 명제는 이런 상황에서 너무 가혹하다.


이 일은 염려하고 걱정하던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건이다. 인간에 대한 배려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의사 결정사항의 실행 수준이 이정도라면 그 기업의 미래는 기대하지 않아도 좋을 듯 하다. 그들은 분명 지금보다 멋있는 이별을 할 수 있었다. 인문학(이상)을 경영과 공학(현실)으로 데려와 따뜻한 조직을 만들겠다는 꿈은 현실과의 거리가 멀어질수록 커져만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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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1 19:54:14 *.103.151.38

이번 달 주제가 피울님에게도 제게도 좀 의미심장한 듯! 생각이 많아지고 할 말이 많아지고... 어차피 그런 조직 현실에 없으니 내가 만들고 싶어지기도 하고... 엄두는 안 나면서 꿈만 꾸는...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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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1 21:59:51 *.182.55.111

다음편이 종종씨 칼럼이랑 맥이 같을 것 같은데...아마도 수준이 ㅠㅠ

부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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