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종종
- 조회 수 2830
- 댓글 수 0
- 추천 수 0
Book Review
스티브 잡스
저자에 대하여
월터 아이작슨
저자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은 1952년 미국 뉴올리언스 출생. 전문 전기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워싱턴 DC 소재 초당파적 교육 및 정책 연구 기관 애스펀 연구소의 CEO로 재직 중이며, 《타임》 편집장과 CNN의 CEO를 역임했다. 「보이스 오브 아메리카」와 「라디오 프리 유럽」등 미국의 국영 국제 방송을 관장하는 미 방송위원회의 회장직을 수행하기도 했다. 『아인스타인- 그의 인생과 우주』, 『벤저민 프랭클린- 한 미국인의 삶』, 『키신저 전기』 등을 집필했으며, 에반 토만과 함께 『현명한 여섯 친구와 그들이 만든 세계』를 공동 집필했다. 현재 부인과 함께 워싱턴 DC에서 살고 있다.
스티브 잡스
1955년 2월 24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났다. 태어나자 마자 양부모 폴과 클라라에게 입양되었다. 양부모는 기독교
신앙을 가진 미국서부의 농부였다. 그의 양아버지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군인이 되었으며 캘리포니아 주
해안경비대에 들어가 경비정 기관사로 근무했었다. 전역 후 클라라와 결혼하였고 자동차 정비, 할부금 수금원 등의 직업을 가졌고 아이가 없자 스티브 잡스를 입양하였다. 잡스는
성인이 되어서 작가로 활동하는 모나 심프슨(Mona Simpson)이라는 여동생과 대화 치료사였던 어머니와 정치학 교수였던 아버지의 존재도 알게되었다. 하지만 그는 친부모에 대해 냉담하게 반응하며, 언제나 양부모를 친부모로
여겼다.
스티브 잡스가 3살 되던해 그의 가족은 아버지의 직장(자동차
영업, 부동산 중계)을 따라 사우스 샌프란시스코의 산업단지에
들어선 주택가로 이주하였고 주변 전자회사에 다니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성장하였다. 이때 전자 분야에 관심이
많았던 동년배 빌 페르난데스, 5살이 많았던 스티브 워즈니악(Steve Wozniak)을 만나 교류했으며
스티브 잡스에게는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들은 모두 학교에서는 낙제생이자 독선적인 성격을 가진 외톨이였지만 전자적인 지식과 집념 그리고
유쾌한 성격은 비슷했다. 이당시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고 당시 미국 히피문화에
흠뻑 젖어있었다고 회고하였다. 홈스테드고등학교를 마친 뒤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 있는 리드대학교에 입학하였다. 그는 마약을 중단하고 새로운 이상을 찾아 동양철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1년만에 학교를 그만두고 캘리포니아로 돌아가 아타리(Atari)라는 전자게임 회사에 취업하였다.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고 스티브 잡스는 히피차림으로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 수개월간
인도 북부 히말라야 일대를 여행하였지만 그가 기대했던 내면의 정신적인 만족감을 얻지못한 채 미국으로 돌아가 아타리사에 복직하였다. 그는 컴퓨터 게임을 만들었으며 이때 다시 워즈니악과 친분을 쌓았고 전자분야의 지식이 해박했던 그의 도움을 받았다. 사업적인 수완과 마케팅 감각이 뛰어난 스티브 잡스는 천부적인 전자 엔지니어였던 워즈니악의 도움이 있어야만 그의
아이디어가 실현 가능했고 각각의 장점을 합쳐 두사람은 1976년 컴퓨터(회로기판)를 제조하는 회사를 공동창업을 하였다. 회사 이름인 애플(Apple)에
대해서는 스티브 잡스가 컴퓨터를 만들 때, 사과를 한입 베어물고 컴퓨터 위에 올려놓았던 것을 상징화한
것이라는 설, 사과가 좋은 의미(성취, 지적 호기심, 건강)를
담고 있어 지었다는 설, IBM이 '썩은 사과'를 신문 광고에 내고 애플을 비꼬자 다음날 애플이 '썩은 곳이 도려내진 사과'를 신문에 내어 응수한 사건 때문에 자사
로고까지 바꾸었다는 설 등이 여러가지 이야기가 있다. 그러나 스티븐 잡스가 죽은 뒤 공동 창업자인 워즈니악은
‘스티브 잡스가 오리건 주의 선불교 수행을 하던 장소였던 사과농장을 연상하여 애플(Apple)이라고 지었다’고 밝힌 바 있다.
회로기판만 있는 퍼스널컴퓨터 '애플Ⅰ'을 만들어
발표했으며, 당시 퍼스널컴퓨터 시장이 주목받게 되자 곧 새로운 컴퓨터 플랫폼인 애플Ⅱ를 만들어 냈다. 확장슬롯으로 기능을 향상시킬 수 있었고 획기적인 운영체계를 적용하여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도 불편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영세한 업체로서는 사업여건이 불리했다. 스티브는 이런 환경에 굴하지 않고 자신 믿는 비전을 열정적으로 설득해나갔다.
마침내 그들이 만든 퍼스널컴퓨터는 시장에서 큰 반응을 보이며 판매에 성공했고 그에 힘입어 1980년에는
주식을 공개했다. 그는 억만장자가 되었으며 미국에서 최고 부자 대열에 합류했다.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연인관계였던 크리스 앤과
사이에서 리사(Lisa)라는 딸을 두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친부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고 친자확인 소송에서 패소한 이후 리사가 친자라는 것을 받아들였다. 또한 그는 모순된 성격과 인색함으로 어려운 시기에 힘이 되었던 친구들에게서 외면받게 되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태도와 생각을 바꾸지 않았고 이상적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더욱 집중했다. 회사내에서는 매킨토시와
리사 컴퓨터를 개발하면서 애플사의 핵심 엔지니어와 경영진 사이에 반목이 심해졌고, 스티브 잡스는 이런
불화를 조화롭게 리드하지 못했다. 스티브 잡스 자신이 주도했던 리사 프로젝트에서 밀려나자 새로운 컴퓨터를
개발하는 매킨토시 프로젝트를 추진하였다. 하지만 그를 믿고 따랐던 매킨토시 프로젝트 담당
엔지니어들은 노력에 비해 형편없는 연봉을 받고 있다는 불만이 고조되었고 스티브 잡스에 대한 배신감으로 표출되기 시작했다.
마침내 1984년에는 IBM에 대항하여
매킨토시 컴퓨터를 선보이고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었지만 회사 내부에서는 실패한 리사 프로젝트팀과 파워게임이 벌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메킨토시 발표 후 얼마 동안의 시간이 지나자 사람들은 맥(Mac)에서
사용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가 부족하다는 사실을 알았고 판매는 급속하게 줄었다. 스티브 잡스의 독특한
스타일과 분위기와 함께 매킨토시에
매료되었던 사람들은 이제 불편함을 호소하기에 이르렀다. 1985년 1월 19일 워즈니악과 함께 백악관에 초빙되어 레이건 대통령이 수여하는 국가기술훈장을 받았지만 워즈니악은 회사를 떠나고
말았다. 마침내 스티브는 현실성없는 망상가이자 회사를 도탄에 빠뜨린 인사로 지목되어 1985년 5월 경영 일선에서 쫓겨났다.
애플을 떠난 뒤 넥스트(NeXT)社를
세워 세계최초의 객체지향 운영체제인 넥스트스텝(NeXTStep)을
개발하였고 1986년에는 조지 루카스 감독으로부터 픽사(Pixar)를 1000만 달러에 인수하였다. 차세대 운영체제를 갖춘 그래픽 전용 컴퓨터를 개발하여 의료업계에 판매하려고 시도했으나 두 회사 모두 수익을
내지 못하고 스티브 잡스를 위기로 몰았다. 그러나 픽사를 담당했던 엔지니어와 그래픽 아티스트들은 하드웨어 사업을 포기하고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것을 잡스에게 제안했다. 잡스는 이에 기대를 걸지 않았지만 그의 생각과 달리 픽사는 애니메이션 영화로 회생의
기미를 보이기도 하였다. 1991년 3월 18일 요세미티 국립공원에서 로렌 파월이라는 여성과 결혼했으며 3명의
아이를 낳았다. 그는 결혼과 자녀를 양육하는 문제를 두고서는 스스로에 대한 자신과 확신을 가지지 못했지만
예전의 모습과는 확연하게 변해있었다. 가정은 행복했지만 그의 사업은 점점 벼랑끝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미국의 거부 로스 페로와 일본 캐논(Canon)사를
통해 투자를 받으며 겨우 버텨나가고 있었고 회생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픽사의 존 레스터가 감독한 '토이스토리(Toy story)'의 원형이 되는 '틴토이(Tin Toy)'를 만들어 아카데미상 단편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하며 세간의 관심을 받게되었다. 하지만 아직 큰 돈을 벌지는 못했기 때문에 이때까지 잡스는 픽사를 인수한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1996년 적자에 허덕이며 새로운 운영체계를 원했던 애플이 넥스트 사(社)를 인수하면서 스티브 잡스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13년만에 다시 애플로 복귀하였고 경영 컨설턴트로 역할하며 4억달러 흑자를 내는 데 공을 세웠다. 또한 쓸모없는 회사로 생각했던 픽사는 존 래스터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토이스토리의 대대적인 성공에 맞추어 주식시장에 상장하여 거의 빈털털이에 내몰렸던 스티브 잡스를 단번에 억만장자에 올려놓았다. 2006년에 월트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하면서 잡스는 월트 디즈니의 이사회 임원이 되었다.
스티브 잡스가 애플의 CEO로 복귀한 2년
동안 애플은 자본이 20억 달러에서 160억 달러로 증가했으며
픽사는 연이은 흥행 성공으로 애니메이션 역사상 가장 성공한 영화사로 기록되고 있었다. 한층 여유로워진
스티브 잡스는 새로운 미디어인 인터넷과 접목한 새로운 제품 개발에 눈을 돌렸으며 그 대상은 음악이었다. 그는
항상 제품에서 모양과 색깔 등의 디자인 결정을 매우 중요시 여겼다. 아이튠즈 개발에 이어 아이팟라는
MP3플레이어를
개발하여 세계적인 히트상품 반열에 올려놓았다. 그는 이제 사업가에서 세상을 바꾸는 인물로 인지되고 있었다. 많은 청중들 앞에서 청바지에 검은색 셔츠로 연설하는 그의 모습은 바뀌어가는 세상의 서막을 알리는 행사로 각인되었고
사람들은 그가 만든 제품에 열광했다. 2007년 맥월드에서 아이폰이 발표되고 전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애플은 약 500억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특히 아이폰은
통신업계 전반을 뒤흔들어 놓았고 문화적인 파급 효과도 지대했다. 또한
2010년 발표된 아이패드라는 태블릿 컴퓨터를 발표하면서 스티브 잡스가 주도하는 변화는 가속화 되었다.
스티브 잡스는 IT업계에 큰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되며 성공가도를 달렸으나, 개인적으로는 희귀암 발병 등 건강 문제에 시달렸다. 2004년 췌장암으로 수술을 받고, 2009년 간 이식 치료를 받았다. 2011년 8월 24일
병세 악화로 애플 CEO직을 사임했고, 사임 후 2달이 채 지나지 않은
10월 5일에 향년 56세로 사망했다. 사인(死因)은
췌장 신경내분비종양이었다
<두산백과>에서 발췌
내 마음에 들어온 글귀
25. 버림받음, 선택받음, 그리고 특별함. 이러한 개념들은 잡스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고 스스로를 바라보는 하나의 방식이 되었다. 그의 가장 친한 친구들은 한결같이 출생 직후 버림받았다는 사실이 그에게 모종의 상처를 남겼다고 말한다. “무엇을 만들든 완전히 통제하려 드는 그의 집착은 출생 직후 버려졌다는 사실과 그의 성격에서 직접적으로 비롯한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동료인 델 요캄의 말이다. “그는 주위 환경을 조종하고 싶어 하고, 자기가 개발하는 제품을 자기 자신의 확장으로 간주합니다.” 대학 졸업 직후 잡스와 친해진 그레그 칼훈은 또 다른 영향에 대해 얘기한다. “스티브는 버림받은 것과 그것이 자기에게 안겨 준 고통에 대해 많이 얘기했어요. 그게 스티브를 독립적인 사람으로 만들었지요. 비유하자면 그는 다른 드러머의 비트를 따라간 셈인데, 자신이 태어난 세상이 아닌 다른 세상에 속해 있다는 인식이 있었기에 그럴 수 있었던 겁니다.”
35. 곧, 잡스는 천성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권위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그동안 경험했던 것과 다른 종류의 권위를 경험하게 된 거지요. 그게 제 마음에 안 들었어요. 그들은 강압적으로 누르려고만 했어요. 제 안에 있는 모든 호기심을 다 없애 버리려 애썼지요.”
36. 폴 잡스가 교사에게 말했다. “학생이 공부에 흥미를 갖지 못한다면 그건 선생님들 잘못이지요.”
45. “각 종교는 동일한 집에 들어가기 위한 각기 다른 문이라 생각해요. 어떨 때는 그 집이 존재하나다고 생각하지만, 또 어떨 때는 안 그래요. 엄청난 미스터리지요.”
71. 그의 모든 접근 방식은 순전한 미니멀리즘적 미학과 강렬한 집중이 특징이라 할 수 있는데, 그게 다 선에서 얻은 겁니다.” 잡스는 또한 불교에서 강조하는 직관적 통찰에도 깊은 영향을 받았다. “직관적 이해와 자각이 추상적 사고와 지적 논리 분석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79. 캘리그라피 수강은 잡스가 의식적으로 자신을 예술과 기술의 교차점에 세워 놓으려고 시도했음을 보여 주는 또 하나의 사례이다. 그는 나중에 자신이 만드는 모든 제품에서 기술에다 멋진 디자인과 외양, 느낌, 품위, 인간미, 심지어 로맨스가지 결합하려 애썼다. 또한 친근한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를 창출하려는 노력의 선두에 서기도 했다. 캘리그라피 수강은 이런 면에서 상징적인 의미를 지녔다. “제가 만약 대학 시절에 그 수업을 접하지 못했더라면 맥은 그렇게 다양한 활자체와 비율에 맞게 공간이 할애된 폰트를 결코 갖추지 못했을 겁니다.
92. "제가 보기에 직관에는 대단히 강력한 힘이 있으며 지력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이 깨달음은 제가 일하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서구에서 중시하는 이성적인 사고는 인간의 본연적인 특성이 아닙니다. 그것은 후천적으로 학습하는 것이며 서구 문명이 이루어 낸 훌륭한 성취이기도 합니다. 인도 사람들은 이성적인 사고를 학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른 무언가를 터득했는데,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이성 못지않게 가치가 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직관과 경험적 지혜의 힘입니다.“
108. Stay Hungry, Stay Foolish.
136. "위즈는 놀라운 기계를 설계했지만, 스티브 잡스가 없었다면 아마 그 물건은 컴퓨터 애호가들이 드나드는 상점에만 남아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애플 11가 위즈의 창조물로 여겼다. 이것이 잡스로 하여금 자신만의 것을 부릴 수 있는 또 다른 창조물을 만들도록 자극했는지도 모른다.
136. 마쿨라는 애플의 마케팅 철학을 ‘종이 한 쪽’으로 정리했다. 이 문서에서 그는 세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는 ‘공감’이었다. 즉 고객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고객과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였다…둘째는 ‘집중’이었다. “우리가 모교로 하는 일을 훌륭하게 완수하기 위해서는 중요하지 않은 것에서 눈을 돌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원칙은 ‘인상’이었다. 사람들이 기업이나 제품이 전달하는 신호와 분위기를 토대로 그 기업이나 제품에 대해 특정한 의견을 갖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원칙이었다. “사람들이 책을 판단할 때 가장 먼저 기준으로 삼는 것은 표지다. 우리가 최고의 제품, 최고의 품질, 가장 유용한 소프트웨어를 갖추고 있다 해도 그것을 형편없는 방식으로 소개하면 그것은 형편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창의적이고 전문가다운 방식으로 소개하면, 그것이 최상의 품질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 주게 된다.”
137.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146. "워즈는 훗날 놀라운 기계를 설계했지만 스티브 잡스가 없었다면 아마 그 물건은 지금도 컴퓨터 애호가들이 드나드는 상점에만 남아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들은 애플 Ⅱ가 워즈의 창조물이라고 여겼다. 이것이 잡스로 하여금 자신만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또 다른 창조물을 만들도록 자극했는지도 모른다.
162. 이 연구 센터의 선구적 인물 가운데 앨런 케이가 있었다. 그는 잡스의 마음속에 깊이 각인된 다음 두 격언을 남긴 인물이기도 하다. "미래를 예측하는 최고의 방법은 스스로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 "소프트웨어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스스로 자신의 하드웨어를 만들어야 한다."
166. 애플이 PARC의 기술을 가져다 쓴 것은 IT 업계 역사상 각장 의미심장한 도둑질로 간주되곤 한다. 잡스는 때때로 그것을 자랑스럽게 인정했다. “요약하면, 역사에 등장한 최고의 아이디어를 찾아내서 자신이 하는 일에 접목해 활용하려는 노력이라 할 수 있지요.” 언젠가 잡스는 말했다. “피카소는 ‘좋은 예술가는 모방하고 위대한 예술가는 훔친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훔치는 것을 부끄러워한 적이 없습니다.”
170. 앳킨슨은 회상한다. “모르고 덤비는 도전이 지닌 힘을 깨달았어요. 불가능하다고는 아예 생각조차 안 했기 때문에 결국 해낼 수 있었던 거지요.”
200. 물론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왜곡한다. 잡스의 경우, 그것은 종종 무언가를 달성하기 위한 술책이었다. 술책에 능한 잡스와 달리 선천적으로 정직했던 워즈는 잡스의 그러한 능력이 발휘하는 효과에 대해 늘 놀라워했다. “미래의 일과 관련해 비논리적인 비전을 품을 때 그는 현실을 왜곡하곤 하지요. 브레이크 아웃 게임을 단 며칠 안에 설계할 수 있다고 저한테 거듭 강조했던 게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당연히 불가능하다는 걸 저도 알았지만, 어쨌든 스티브의 주장에 끌려갔고 그걸 해냈잖아요.”
207. "잡스는 스스로를 예술가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설계 팀에도 그런 식으로 생각하라고 독려했어요" 허츠펠드는 말한다. "경쟁에서 이기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게 목표였던 적은 한 도 없었어요. 가능한 한 가장 위대한 일을 하는 것, 혹은 거기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것이 목표였어요" 잡스는 심지어 팀을 데리고 루이스 티파니의 유리 제품 전시회를 보러 맨해튼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을 찾은 적도 있었다. 대량생산할 수 있는 위대한 예술품을 창출하는 티파니의 예에서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루이스 티파니가 제품을 손수 제작하는 대신 어떻게 자신의 디자인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수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어요." 버드 트리블은 회상한다. "스스로 이런 다짐들을 했어요. '어차피 뭔가를 만들 거라면 이왕이면 아름답게 만드는 게 좋지 않을까?'"
12. 디자인 ― 진정한 예술가는 단순화에 목숨 건다
212. 미스 반데어로에와 그로피우스가 가르친 금언 중에는 “신은 디테일 속에 존재한다” 와 “적은 게 많은 것이다” 같은 것이 있었다. 예술적 감각을 대량생산능력과 결합하는 것이었다.
213. 단순함이란 궁극의 정교함이다.
… “우리 디자인의 주안점은 소비자들이 제품을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215. "유행을 타지 않는 클래식한 느낌을 줘야 해. 폭스바겐의 비틀처럼 말이야. 위대한 예술품은 사람들의 취향을 따라가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확장시키지."
222. 잡스는 열정적인 장인 정신의 특징은 숨어 있는 부분까지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철저를 기하는 것임을 아버지에게서 배웠다. 이 철학의 가장 극단적이고 두드러진 실천 사례는 잡스가 칩과 다른 부품 들을 부착하고 매킨토시 내부 깊숙한 곳에 들어갈 인쇄 회로 기판을 철저하게 검사한 경우였다. 어떠한 소비자도 그걸 볼 일이 없었다. 하지만 잡스는 인쇄 회로 기판을 심미학적인 토대로 비평하기 시작했다. …
“아름다운 서랍장을 만드는 목수는 서랍장 뒤쪽이 벽을 향한다고, 그래서 아무도 보지 못한다고 싸구려 합판을 사용하지 않아요. 목수 자신은 알기 때문에 뒤쪽에도 아름다운 나무를 써야 하지요. 밤에 잠을 제대로 자려면 아름다움과 품위를 끝까지 추구해야 합니다.”
223. 마침내 디자인이 완성되었을 때, 잡스는 매킨토시 팀을 모아 자축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진정한 예술가들은 작품에 사인을 남기지." 그가 말했다. 그러곤 제도용지 한 장과 펜을 꺼내 모두가 자신의 이름을 쓰게 했다. 그들의 서명은 모든 매킨토시 내부에 새겨질 것이었다. 내부를 들여다볼 일이 있는 수리공이 아니라면 아무도 보지 않을 터였다. 하지만 팀원들은 모두 자신의 서명이 컴퓨터 속에 들어 있음을 알았다. …
"바로 그런 순간을 통해 우리가 우리 작품을 예술로 보도록 한 겁니다."
285. 천문학에서는 두 별이 중력의 상호작용 때문에 궤도가 서로 얽히는 것을 가리켜 연성계라고 한다. 인류의 역사에서도 궤도를 선회하는 두 거성 간의 관계와 경쟁의식으로 한 시대가 형성되는, 연성계와 유사한 상황을 간간히 볼 수 있다. 20세기 물리학 세계의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과 닐스 보어, 또는 초기 미국 정계의 토머스 제퍼슨과 알렌산더 해밀턴을 예로 들 수 있다.
314. 사람의 생각들은 머릿속에 마치 임시 구조물을 세우는 것처럼 모종의 패턴을 형성합니다. 사실은 화학약품으로 패턴을 에칭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집니다. 대부분의 경우, 사람들은 레코드판의 홈과 같은 그런 패턴에 끼어서 다시는 빠져나오지 못합니다.
383. 어느 기자가 잡스에게 컴퓨터 출시가 왜 그렇게 늦어지는지 묻자 잡스는 이렇게 답했다. "늦은 나오는 게 아닙니다. 이 컴퓨터는 시대를 앞서서 5년이나 빨리 나오는 셈입니다."
423. 상처를 받았다고 야심까지 버릴 수는 없었다. “내가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나 자신이 정의되는 거야.
451. 월트 디즈니는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는 것은 신나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것은 바로 잡스가 지향하는 유의 태도이기도 했다. 잡스는 디테일과 디자인을 중시하는 디즈니의 철학을 존경했고, 픽사와 디즈니 영화 스튜디오가 자연스럽게 들어맞는 무언가를 공유한다고 느꼈다.
485. 그에게는 엘리슨의 과다한 소비 욕구도, 빌 게이츠의 박애주의적 충동도, 포브스 부자 리스트에서 순위 경쟁을 벌이려는 욕심도 없었다. 그 대신 그는 자아 욕구와 개인적인 동기들로 인해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낼 만한 유산을 창출함으로써 만족을 얻으려고 했다. 사실 그는 두 가지 유산을 남기고 싶어 했다. 혁신과 변혁을 선도하는 위대한 제품을 만드는 것, 그리고 영구히 지속될 수 있는 회사를 구축하는 것, 이렇게 두 가지였다. 그는 에드윈 랜드와 빌 휼렛, 데이비드 패커드 등과 같은 인물의 반열에 오르고자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애플에 복귀하여 자신의 왕국을 되찾는 것이었다.
520. “다른 것을 생각하라”라는 끝내주는 아이디어가 우리 앞에 나타난 순간을 떠올리면 말입니다. 이따금 영혼과 사랑의 순수함은 제 안으로 파고들어와 저를 사로잡았지요.
521. 미친 자들을 위해 축배를. 부적응자들. 반항아들. 사고뭉치들. 네모난 구멍에 박힌 둥근 말뚝 같은 이들.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사람들. 그들은 규칙을 싫어합니다. 또 현실에 안주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당신은 그들의 말을 인용할 수도 잇고, 그들에게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으며, 또한 그들을 찬양하거나 비난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이 할 수 없는 한 가지는 그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세상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인류를 앞으로 나아가도록 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들을 보고 미쳤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천재로 봅니다. 자신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을 만큼 미친 자들…….바로 그들이 실제로 세상을 바꾸기 때문입니다.
529. 잡스가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한 가지는 바로 오랜 세월 존속하는 영속성 있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그는 10대 시절 여름방학 동안 HP에서 일하면서, 창의적인 사람 한 명보다 체계를 갖춘 훌륭한 기업이 훨씬 더 커다란 혁신을 일궈 낼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기업이 최고의 혁신을 만들어 내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기업을 어떻게 조직하고 운영하느냐가 중요하지요… 기업 하나를 일궈서 훌륭하게 성장시킨다는 것, 얼마나 멋진 일입니까?”
532.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판단하는 것은 해야 할 일을 판단하는 것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이것은 회사 차원에서도, 제품 차원에서도 중요합니다.”
576. “그는 제가 더 열심히 하도록 몰아 붙였고 결국 저는 스스로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었습니다. 저는 그게 스티브 잡스가 애플에 미친 중요한 영향 가운데 하나라고 믿습니다. 그는 탁월한 수준이 되지 못하면 자신이든 다른 사람이든 절대 용납하지 않습니다.”
620. 결국 아이팟은 곧 애플이 지향하는 모든 것의 정수가 되었다. 시와 공학의 결합, 예술 및 창의성과 기술의 교차, 대담하면서도 단순한 디자인이 바로 그것이었다.
643. 나이가 들수록 동기부여가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합니다. 준이 시시한 이유는 마이크로소프트 사람들이 음악이나 예술을 우리처럼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승리한 이유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음악을 사랑해서입니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위해 아이팟을 만들었습니다. 당신이 스스로를 위해, 또는 절친한 친구나 가족을 위해 뭔가를 한다면 결코 게으름을 피우며 대충대충 하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누구든 진정으로 좋아하지 않는 뭔가를 할 때는 특별히 더 노력하거나, 주말에 일을 하거나, 현재 상태에 과감히 도전하려 애쓰지 않겠지요.
683. 디지털 세상에 살고 있음에도, 혹은 어쩌면 그것의 고립 가능성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에 잡스는 직접적인 만남을 열렬히 신봉했다. 그는 말했다. “이런 네트워크 시대에는 이메일이나 아이챗을 통해 아이디어들을 발전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싶겠지요.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창의성은 우연한 만남이나 무작위적인 논의에서 나오는 겁니다.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 일의 진행 상황을 묻고 진심 어린 반응을 보여 주다 보면 곧 온갖 종류의 아이디어들로 요리를 하게 되지요.”
720. 뿌리의 작가 알렉스 헤일리는 연설을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제가 이야기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라고 했다. 강의는 아무도 듣고 싶어하지 않지만 이야기는 누구나 좋아한다.
721. 내가 곧 죽는다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은 인생의 중대한 선택들을 도운 그 모든 도구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외부의 기대와 자부심, 망신 또는 실패에 대한 두려움 등 거의 모든 것이 죽음 앞에서는 퇴색하고 진정으로 중요한 것만 남더군요. 자신이 죽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은 아까운 게 많다고 생각하는 덫을 피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우리는 이미 알몸입니다. 가슴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지요.
736. "자신이 쓰고 싶은 물건을 만든다는 것, 그것이 최고의 동기부여라 할 수 있지요."
739 "스티브는 그 자리에서 곧바로 의견을 내놓는 성향이라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에게 무언가를 보여 주는 데 신중을 기해야 합니다. '쓰레기야'라는 말로 그 아이디어를 끝장낼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아이디어라는 건 아주 연약한 것이라서 개발 단계에서는 조심스럽게 다뤄 줘야 합니다. 그는 그 프로젝트에 대해 망신을 주면 정말 슬플 것 같았습니다. 그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았으니까요."
829. 20년 전에 우리는 서로를 잘 알지 못했지요. 우린 그저 직감에 끌렸어요. 당신은 나를 황홀하게 했어요. 아와니에서 결혼식을 올릴 때 눈이 내렸지요. 수년이 지나 아이들이 태어났고, 행복한 적도 있었고 힘들었던 적도 있었지만 나빴던 적은 없었어요. 우리의 사랑과 존경은 점점 더 커졌지요. 많은 것들을 함께하고 이렇게 20년 전에 시작한 그곳으로 돌아왔네요. 좀 더 늙고 좀 더 현명해지고 얼굴과 가슴에 주름도 늘었지요. 이제 우리는 인생의 기쁨과 고통, 비밀, 경이로움을 많이 알게 되었고, 그리고 여전히 이렇게 서로를 마주하고 있어요. 나는 황홀하지 않은 적이 한 번도 없답니다.
850. "비범한 재능을 타고난 많은 위인들이 그렇듯이 그도 모든 영역에서 비범하진 않아요.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본다거나 하는 사회적 배려는 없어요. 그 대신 인류에게 권능을 부여하는 일이나 인류의 진보, 인간의 손에 훌륭한 도구를 들려주는 일에 깊이 관심을 쏟죠." 7860 경제 및 정치의 안타까운 상태로 화제가 바뀌자 그는 전 세계에 걸쳐 강력한 리더십이 부족하다며 두세 가지 예리한 의견을 제시했다. 그가 말했다. "오바마한테 실망했습니다. 그는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이나 화를 내는 일을 주저해요. 그래서 적절하게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지요" 그러고는 내 생각을 읽은 듯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시인했다. "그래요. 난 그런 문제가 전혀 없었죠."
861 우리는 ‘집중’에 대해 많은 얘기를 나눴어요.
…내가 가장 강조한 것은 집중이었습니다. 구글이 어떤 회사로 성장하길 바라는지 파악해라, 구글은 이제 전 세계 어디에든 존재한다, 당신이 가장 집중하고 싶은 다섯 가지 제품은 무엇인가? 나머지는 모두 제거해라, 그렇지 않으면 구글은 쇠약해질 것이다.
867. 우리 아이들이 나에 대해 알았으면 했어요. 아이들이 나를 필요로 할 때 항상 곁에 있어 주질 못했지요. 그래서 아이들이 그 이유를 알기를, 내가 무엇을 했는지 이해하기를 바랐습니다. 그리고 몸이 아프기 시작하니까 내가 죽고 나면 다른 사람들이 나에 관한 책을 쓸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그들이 뭘 알겠습니까? 제대로 된 책이 나올 수가 없을 겁니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직접 내 얘기를 들려주어야겠다 싶었지요“
873. 잡스가 만든 제품들에는 그의 성격이 반영되었다. 1984년 원조 매킨토시부터 한 세대 후의 아이패드에 이르는 모든 제품에서 애플의 핵심 철학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엔드투엔드 통합이었듯이, 스티브 잡스 자신의 철학도 그러했다. 그의 성격과 열정, 즉 완벽주의, 비범한 재능, 열망, 예술성, 악마성, 통제에 대한 집착은 그의 비즈니스 접근 방식 및 거기에 기인한 혁신적인 제품들과 얽혀 있다.
880. 그가 똑똑했던 것일까? 아니다. 예외적으로 똑똑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천재였다. 그의 상상력은 직관적이고 예측 불가하며 때로는 마법처럼 도약했다. 실제로 그는 수학자 마크 카츠가 불쑥불쑥 통찰력이 쏟아져 나와 단순한 정신적 처리 능력보다는 직관력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일컬어 말한, 이른바 '마법사 천재'의 전형이었다. 그는 마치 탐험가처럼 정보를 흡수하고 냄새를 느끼며 앞에 펼쳐진 것들을 감지할 수 있었다.
881. 우리의 일은 고객이 욕구를 느끼기 전에 그들이 무엇을 원할 것인가를 파악하는 것이다. 헨리 포드가 이렇게 말한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고객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면 고객은 '더 빠른 말!'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사람들은 직접 보여주기 전까지는 자신의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 그것이 내가 절대 시장조사에 의존하지 않는 이유이다. 아직 적히지 않은 것을 읽어내는 게 우리의 일이다.
885. 혁신을 꾀하려면 언제나 끊임없이 밀어붙어야 한다. …그들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나아가면서 그들의 예술을 갈고닦았다. 진화, 바로 그것이 언제나 내가 노력하며 시도한 것이다. 끊임없이 나아가야 한다. 딜런이 말했듯이 태어나느라 바쁘지 않으면 죽느라 바쁠 수밖에 없는 것이다.
886. 그는 죽음에 직면하니 내세를 믿고 싶은 욕망 때문에 그 가능성을 과대평가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시인했다. “죽은 후에도 나의 무언가는 살아남는다고 생각하고 싶군요. 그렇게 많은 경험을 쌓았는데, 어쩌면 약간의 지혜까지 쌓았는데 그 모든 게 그냥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그래서 뭔가는 살아남는다고, 어쩌면 나의 의식은 영속하는 거라고 믿고 싶은 겁니다.”
….그는 오랫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냥 전원 스위치 같은 것일지도 모릅니다. ‘딸깍!’ 누르면 그냥 꺼져 버리는 거지요.” 그는 또 한 번 멈췄다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마 그래서 내가 애플 기기에 스위치를 넣는 걸 그렇게 싫어했나 봅니다.”
저자의 입장에서 다시
목차
서문―이 책은 어떻게 탄생했는가
1 어린 시절 ― 버려지고 선택받다
2 뜻밖의 커플 ― 두 명의 스티브
3 자퇴 ― 환각과 성찰 63
4 아타리와 인도 ― 게임 설계 기술과 선
5 애플 Ⅰ ― 켜고 부팅하고 교감하라
6 애플 Ⅱ ― 새로운 시대의 여명
7 크리스앤과 리사 ― 자신이 버림받은 사람이었기에……
8 제록스와 리사 ― 그래픽 유저 인터페이스
9 기업공개 ― 부와 명성을 모두 얻은 남자
10 맥의 탄생 ― 혁명을 원한다고 말하라
11 현실 왜곡장 ― 자신만의 규칙을 고집하는 보스
12 디자인 ― 진정한 예술가는 단순화에 목숨 건다
13 맥 만들기 ― 여정 자체가 보상이다
14 스컬리를 영입하다 ― 펩시 챌린지
15 매킨토시 출시 ― 우주에 흔적을 남기자
16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 두 궤도의 교차
17 이카로스 ― 올라가는 것은……
18 넥스트 ― 사슬에서 풀려난 프로메테우스
19 픽사 ― 기술과 예술의 만남
20 보통 남자 ― 사랑이라는 두 글자
21 토이 스토리 ― 버즈와 우디 구조대
22 잡스의 재림 ― 마침내 사나운 야수가 돌아오다
23 부활 ― 지금의 패자는 훗날 승자가 되리니
24 다른 것을 생각하라 ― iCEO 잡스
25 디자인의 원칙 ― 잡스와 아이브의 스튜디오
26 아이맥 ― 반가워 (다시 만나서)
27 CEO ― 그렇게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유별난
28 애플 스토어 ― 회청색 사암과 지니어스 바
29 디지털 허브 ― 아이튠스에서 아이팟까지
30 아이튠스 스토어 ― 피리 부는 사나이
31 뮤직 맨 ― 그의 인생이 담긴 사운드트랙
32 픽사의 친구들 ― …그리고 적들
33 21세기 맥 ― 애플을 차별화하는 것
34 1라운드 ― 메멘토 모리
35 아이폰 ― 혁신 제품 세 가지를 하나로
36 2라운드 ― 암의 재발
37 아이패드 ― 포스트 PC 시대로
38 새로운 전투들 ― 그리고 예전 전투들의 메아리
39 무한대를 향해 ― 클라우드, 우주선 그리고 그 너머
40 3라운드 ― 말기의 분투
41 유산 ― 가장 밝게 빛나는 창조력의 천국
인터뷰
참고 문헌
주석
인명사전
스티브 잡스 연대기라 이름해도 될 자서전이다. 월터 아이작슨은 이 시대의 천재를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 참 집요한 작업을 했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쓴다는 것은 얼마나 막막한 일인가. 그 막막한 작업에 뛰어들게 만들 만큼 매력적인 인물을 만난다는 것은 또 얼마나 행운인가? 참 어렵고 부러운 행운이다. 잡스에 대해서도, 아이폰이니 아이패드니 하는 제픔에 대해서도 호환성이 없다는 이유로 나는 전혀 관심을 가진 바가 없다. 다만 매킨토시는 유학 시절 학교의 컴퓨터가 딱 반반으로 나뉘어 있었고 한번만 사용해봐도 맥이 훨씬 우수했기에 내게 익숙한 첫 컴퓨터가 맥인 건 사실이다. 그리고 스탠포드에서 했다는 연설 정도가 내가 그에 대해 아는 바였다.
인터뷰로 책을 써볼 생각을 하는 이 마당에, 내가 이 책의 구조와 컨텐츠를 눈 여겨볼 이유는 분명히 있다. 그러나 이런 방대한 작업으로 한 인간의 일생을 아우르는 글쓰기는 아직 내 깜냥으로는 하고 싶지도 않다. 사람의 학교 컨셉으로 진행하고 싶은 인터뷰 기반의 책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도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잡스의 성장과정에서 형성된 심리적 기질과 그 원인, 그리고 그의 개인적인 생활사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그의 커리어 역사가 씨줄날줄처럼 엮여서 천 페이지가 조금 못 되는 책이 후루룩 넘어간다는 것은 보통 내공은 아닐 터. 언젠가 이런 사람을 만나면 이런 책을 쓰고 싶어질 수도 있을까? 나는 왜 사람을 좋아하면서 매혹되지는 않는 걸까. 보는 눈이 없어서인가? 엄한 자괴심 때문인가? 흠... 나는 이 책에서 무엇을 내 책에 반영해야 할 지 잘 모르겠다. 그의 디자인에 대한 집요함과 완벽주의에 있어 일부 내 모습을 발견했다는 내용적인 공감 외에 내가 저자의 입장에서 봐야할 점은 그저 작가의 집요함과 전체로서 한 인간을 바라보는 마무리가 아닐까 싶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4432 | #35 - 코끼리와 벼룩 - 이동희 | 희동이 | 2014.12.21 | 2284 |
4431 | 코끼리와 벼룩_구달리뷰#35 | 구름에달가듯이 | 2014.12.21 | 2282 |
4430 | #35 코끼리와 벼룩_정수일 | 정수일 | 2014.12.21 | 2344 |
4429 | 3-19. 살아있는 미로 - 제레미 테일러 | 콩두 | 2014.12.21 | 3982 |
4428 |
코끼리와 벼룩_찰나리뷰#35 ![]() | 찰나 | 2014.12.20 | 2551 |
4427 |
스티브 잡스(Steve Jobs)_찰나리뷰#34 ![]() | 찰나 | 2014.12.16 | 3821 |
» | 스티브 잡스 | 종종 | 2014.12.16 | 2830 |
4425 | 스티브 잡스 | 앨리스 | 2014.12.16 | 2914 |
4424 | 스티브 잡스 | 에움길~ | 2014.12.16 | 2806 |
4423 | 스티브잡스_월터 아이작스 | 어니언 | 2014.12.16 | 2462 |
4422 | 스티브잡스_구달리뷰#34 | 구름에달가듯이 | 2014.12.16 | 3839 |
4421 | #34 - 스티브 잡스 - 이동희 | 희동이 | 2014.12.16 | 2787 |
4420 | #34 스티브잡스_정수일 | 정수일 | 2014.12.16 | 2523 |
4419 | #34 스티브 잡스 | 왕참치 | 2014.12.16 | 3574 |
4418 | 스티브잡스 | 녕이~ | 2014.12.16 | 2393 |
4417 |
바디샵의 영적인 비즈니스_찰나리뷰#33 ![]() | 찰나 | 2014.12.08 | 2342 |
4416 | 영적인 비즈니스 [1] | 앨리스 | 2014.12.08 | 2241 |
4415 | 바디샵의 영적인 비즈니스 | 녕이~ | 2014.12.08 | 2295 |
4414 | 영적인 비즈니스 | 종종 | 2014.12.08 | 2328 |
4413 | #33 영적인 비즈니스_정수일 | 정수일 | 2014.12.08 | 2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