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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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를 했어요. 집주인이 월세로 돌린다고 해서 급하게 옮겼어요. 다행히 전세를 구할 수 있었어요. 같은 재래시장을 사용하는 옆 동네예요. 오전에 그이들이 이사 나가고 오후에 우리가 들어왔어요. 도배할 틈이 없었어요. 5년 이상 여기 살았던 전 가족의 흔적이 보여요. 창에는 난방을 위한 뽁뽁이가, 벽에는 스티커와 볼펜낙서가 가득합니다. 낙서의 상한선으로 아이의 키와 나이를 짐작해요. 옆방은 결루로 인한 곰팡이 자국을 잡느라 벽지를 뜯어내고 페인트칠을 시작했어요. 집이 난장판입니다. 키우는 나무들을 작은 거실에 집결시켰어요. 화분 70개를 모아놓으니 밀림스럽네요. 전 집의 깨끗한 벽을, 신혼집이라고 방산시장에 같이 가서 고른 꽃무늬 화이트 벽지를 그리워해요. 전등을 갈고, 베란다에 페인트칠을 하며 우리가 살기에 쾌적하도록 최적화했어요. 집주인이 ‘집 비워라, 나가라’니 어쩔 수 없었어요. 나도 집을 사리라, 다음번에는 전셋집이 아니라 내 집으로 이사가리라 맹세했네요.
새 집에서 맞는 첫 새벽입니다. 첫 단추를 잘 꿰고 싶어 일찍 일어났어요. 집과 살림살이를 관장하는 신들이 있다고 믿었던 옛날 사람들처럼, 집의 신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찬 물을 올리고, 두 손을 모으고 허리를 숙여 입방인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이예요. 나의 새벽일과는 모닝페이지를 하고 절을 하는 거예요. 오늘 특별히 지지부진해요. 다른 일거리를 자꾸 끼워 넣기 때문이예요. 화장실에 일보러 갔다가, 부근에만 부려놓은 욕실장의 물건들 좌르륵 정리하고, 타일 바닥을 한 번 철수세미로 닦고 나오는 식입니다. 모닝페이지의 리듬이 몇 번이나 끊겼나 몰라요. 3쪽을 쓰는데 1시간이면 되는 걸 2시간째 잡고 있네요. 방금도 무심결에 정면 산호수에 붙은 솜깍지벌레를 잡으려 면봉을 들고 일어섰어요. 게다가 좀 전에 핸드폰으로 들어간 난임카페에는 나의 댓글을 필요로 하는 이가 있어요. 시험관을 시작해서 과배란주사를 배에 찔러넣고 있는데 시댁에 가서 종일 김장을 했다네요. 수육 삶아서 먹으려는 찰나 시누이가 왔다는군요. 시누이는 어린 애기가 있고요. 시어머니가 며느리더러 시누이 잠 좀 자게 그 집에 가서 애기 좀 봐주라는 겁니다. 며느리가 봉이냐고 댓글로 길길이 날뛰고 싶습니다. 문득 지금 내가 네 번째 과제를 받은 프시케의 자리에 있다는 걸 알았어요.
싸이키라고도 하는 프시케는 ‘프시케와 에로스’ 신화의 여인입니다. 이 신화는 로마 시대에 만들어졌다는군요. 여차저차해서 에로스와 결혼을 해요. 밤에만 와서 자고 가는 신랑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말이죠. 엄마와 언니들을 초대해서 집들이를 하다가 사단이 나고 맙니다. 프시케의 신랑이 누구인지 궁금했던 언니들의 질문에 하루는 중년 남자라고 했다가 다른 날은 젊은 미남이라고 오락가락했거든요. “그 놈은 구렁이가 변신한 요물인 게 틀림없어” 언니들이 말합니다. “자고 있을 때, 몰래 등불을 밝히고 정체를 봐, 혹시 구렁이라면 이 칼로 처치해버려. 안 그러면 너를 해칠거야” 막내동생에게 칼을 줍니다. 언니들은 프시케 안의 궁금증이었겠죠. 프시케는 초에 불을 밝혀 잠든 남편을 봐요. 아프로디테의 아들 에로스임을 알게 됩니다. 그 순간 얄궂게도 뜨거운 촛농이 떨어져 에로스는 놀라 깨어나요. 에로스는 어머니의 집으로 날아가 버립니다. 프시케는 남편과의 재결합을 위해 시어머니를 찾아갑니다. 아프로디테는 네 가지 과제를 줍니다. 첫 번째는 갖가지 곡식들이 섞인 더미에서 곡식별로 골라내는 겁니다. 개미들이 와서 도와주었어요. 두 번째 과제는 황금양털의 털을 모아오는 겁니다. 갈대가 도와주었어요. 세 번째는 천상에서 지옥에 이르는 폭포의 물을 한 컵 퍼 오는 겁니다. 이건 독수리가 도와주었죠. 네 번째 과제는 지옥의 페르세포네에게 가서 아름다움의 묘약이 든 상자를 가지고 오는 거예요. 프시케는 이 과제 해결에 성공합니다. 그녀는 페르세포네의 상자를 무사히 갖고 돌아옵니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녀는 상자의 뚜껑을 엽니다. 상자에서 나온 건 아름다움이 아니라 죽음이었어요. 프시케는 죽어요. 에로스가 날아와 죽음의 잠을 상자에 담습니다. 그런 다음 프시케를 안아서 올림포스 산으로 데려갑니다. 에로스는 제우스에게 이야기하여 프시케를 여신으로 만듭니다. 프시케와 에로스 부부는 딸을 낳는데 이름이 기쁨(joy)입니다. 이게 이 신화의 대단원입니다.
프시케의 네 번째 과제는 다른 것보다 특별히 어려웠어요. 아프로디테가 몇 가지 금기를 두었거든요.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지말라는 게 대표적인 금기죠. 한국인의 금기에 대해 생각할 때 나무꾼이 떠올라요.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에서 나뭇꾼이 목욕중인 선녀의 옷을 도둑질하게 한 뒤 아이 넷을 낳기 전에는 날개옷을 내어주지 말라고 사슴이 당부하죠. 나무꾼은 이걸 지키지 못해요. 아내와 아이들을 잃어버립니다. 은혜가 백골난망이었던 사슴이 가족상봉을 또 한 번 도와주죠. 두레박을 타고 하늘나라로 갔어요. 그런데 그만 어머니가 보고 싶어서 못 견디겠거든요. 선녀는 남편에게 나는 말을 한 마리 주고 절대로 발을 땅에 디디면 안된다고 했죠. 또 다른 금기를 줍니다. 나무꾼은 어머니가 쑨 팥죽인가 호박죽인가를 먹느라 그만 용마의 등에 찔금 흘리고 맙니다. 죽을 직접 쒀본 사람은 압니다. 그게 얼마나 뜨거운지요. 뜨건 불침을 받은 말이 히힝거리며 뛰고 솟죠. 그 바람에 낙마한 나뭇꾼은 아직까지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하늘을 보고 우는 수탉이 바로 그 나무꾼이 변해서 된 동물이고 믿었어요. 남자가 어머니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오기가 얼마나 힘이 드는지를 보여준다고 나는 읽었습니다. 그럼 프시케가 지옥에서 화장수를 얻어 와야 하는 난제를 처리하기 위해 만나는 금기 또한 여성에게는 매우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프시케의 금기는 이러합니다. 프시케는 동전 두 개를 입에 물고 손에 보리빵 두 쪽을 들고 가야 합니다. 다리를 저는 노인이 노새 등에서 굴러 떨어진 지팡이를 주워달라고 하면 거절해야 해요. 스틱스 강에서 나룻배를 타고 건널 때는 죽어가는 자들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고 버둥거리며 내미는 손을 외면해야 합니다. 또 운명의 실로 베를 짜고 있는 세 여성의 도움도 거절해야 합니다. 프시케는 지옥의 문을 지키는 케르베로스에게 보리빵 한 쪽을 던져 주어야 합니다. 케르베로스는 지옥문을 지키는 머리가 셋 달린 개인데 보리빵 한쪽을 서로 먹으려고 싸우는 틈을 타 재빨리 그 문을 통과해야 하거든요. 이 과정에서 프시케는 지하 세계에서 주는 간단한 음식 외에는 아무것도 먹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지하세계로 들어가면서 했던 모든 것을 되풀이해야 합니다. 탑이 프시케의 네 번째 과제, 지하세계로의 여정에 필요한 조언을 해 줍니다. 존슨은 탑을 인간이 발명하고 건설한 것, 전통과 시스템으로 봅니다. 그리스도교는 서양 전통에서의 탑, 요가 수피 신비주의 등은 동양의 탑이겠죠.
말을 절대로 하지 말라, 빵과 물만 먹어라, 불쌍한 사람 넷을 구하기 위해 멈추지 말라는 금기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신화는 상징과 은유를 사용합니다. 시처럼 함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어요. 내가 읽은 건 존슨과 진 시노다 볼린의 해석입니다. 그러나 그이들의 해석을 유일한 답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말 그대로 다층적인 의미일 테니까요. 그이들의 답도 답이고, 나의 답도 답입니다. 그래서 통쾌한 재미가 있어요.
과제가 무척 재미있습니다. 머리가 셋 달린 개는 해리포터 영화에서 제법 본 듯 합니다. ‘옛다, 요거나 먹어라’며 수류탄을 투척하듯 빵을 달랑 1개 던져주어 3개의 머리가 서로 다투는 장면이 재미나요. 지옥에서 음식을 먹지 말라는 것도 쉬 이해 됩니다. 우리가 어떤 이들과 같은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는 건 그와 관계를 형성한다는 의미죠. 그러니 식구라는 말이 생겼겠죠. 운명의 실을 잣는 여자들에게도 ‘아니오’라고 해야 합니다. 여성들은 누군가, 특히 자식들의 운명에 간섭하려는 의도를 경계해야 합니다. 칼릴 지브란이 말한 대로 아이는 부모의 자식이 아니라 생명의 자식이기 때문입니다.
존슨은 네 번째 과제를 통해 여성이 관대함을 표현하지 않는 것, ‘아니오’라고 말하기, 거절하기를 배우는 공부라 합니다. 앞의 세 과제를 통해 힘과 지혜, 관대함을 얻은 여자만이 이 과제에 도전할 수 있습니다. ‘관대함’도 배우지 못한 이가 ‘거절’ 먼저 배우면 곤란한 거겠죠. 여성은 특히 삶의 어떤 시기에는 무분별한 선행을 하면 안된다고 신화는 가르쳐줍니다. 공동선도 행하면 물론 안되고요. 지옥으로의 여정, 내면 작업은 어떨 때 그녀의 모든 에너지를 요구합니다. 항상 스승이나 지도자가 필요하구요.
신화가 나에게 말을 겁니다. 지금 네가 있는 자리가 바로 프시케의 자리라구요. 눈이 오든 말든 나그네에게는 갈 길이 있었던 것처럼, 이사를 하든 말든 나는 오늘 새벽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일어나자마자 모닝페이지는 3쪽 하고, 108배와 명상으로 구성된 1시간 정도의 불교식 정진을 해야 합니다. 시간 제한, 기준이 있는 과제입니다. 새벽일과에 대한 사랑을 커밍아웃하고 싶군요. 나는 다른 이들이 일어나기 전에 내 시간을 확보하며 살 길 원해요. 하면 좋은 일이 아니라 해야만 하는 일이예요. 이상하게도 이 일과를 안 하면 나는 두문불출하거나 과식하거나 잘 안 씻는 경향이 있어요. 집도 잘 치우지 않아요.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모닝페이지와 정진을 하고 나면 하루를 잘 살 수 있어요. 몸의 순환이 더 잘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구요. 다리 잘린 여자, 두 손이 없는 여자가 의족을 달고서 걷기를 연습하고 손 쓰기를 연습하는 느낌입니다만, 나는 열심히 재활해오고 있습니다. 나는 모닝페이지를 ‘쓰기명상’으로 받아들여요. 모닝페이지와 정진은 ‘수행자’라는 내 정체성에 맞는 일입니다. 나에게 에너지를 주는 시간입니다. 모닝페이지와 명상은 모두 내면작업에 대한 것입니다. 새벽시간에 글을 쓰는 건 나의 꿈에게 몸을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오랫동안 잃어버리고 있던 꿈을 마흔이 되어서야 다시 만났어요. 잃어버렸다 다시 찾았기 때문에 더 소중합니다. 나는 읽고 쓰면서 살고 싶었어요. 어떤 현명한 이를 불러 왕이 물었어요. 세상의 진리를 단 한 마디로 축약하면 뭐냐고요. 고명한 학자는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고 대답했다죠. 탈무드에서 읽었나봐요. 꿈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될 겁니다. 매일의 실천이 없다면 꿈은 허공에 지은 집이며 신기루일 뿐입니다. 실천이 빠진 머릿속의 관념인 ‘꿈’의 이름은 ‘망상’입니다. 낮에 꾸는 꿈만이 실현 가능합니다. 상상력이 미리 본 미래는 반드시 몸과 시간을 써야 이루어집니다. 1만 시간을 쓰면 자기분야에서 전문가가 될 수 있다고 하죠. 나처럼 살림을 살고 직장을 다니는 생활인이 자기 꿈에 투자할 시간은 새벽이거나 특별히 구분된 시간일 겁니다. 그 시간은 그것에만 투자되어야 합니다.
프시케의 네 번째 과제가 내 모습을 보여줍니다. 백설공주 동화의 마녀가 물었던 거울처럼요. 나는 내면작업을 방해받으며 습관적으로 나에게 돌봄을 요청하는 이들을 돌보고 있습니다. 아이가 없는 나에게는 식물은 반려식구입니다. 내면작업에 써야할 시간에 나는 산호수에서 솜깍지벌레를 잡고 있네요. 이건 아이가 있다면 아이, 또는 가족을 돌보는 시간일 수도 있겠지요. 전통적으로 여성의 영역이었고, 여성들이 사랑과 인정을 받는 주요 장입니다. 또 하나 인터넷 사이트에서 댓글을 다느라 이 일이 한없이 미뤄지기도 합니다. 오늘도 시험관 시작한 며느리는 허리 부러져라 김장을 마쳤다네요. 시누이가 6개월된 아기 있다고 김장 다 끝나고 늦게 왔고요. 딸이 잠 못 잔다니 저 집 애기 봐주라고 시어머니는 며느리에게 말합니다. 거기 말을 보태고 싶습니다. 여자의 우물가가 온라인 커뮤니티가 된 게 요즘입니다. 나는 그 우물가의 입이 되려고 합니다.
나는 스승님에게 이야기를 들었어요. 25살 때입니다. “자기를 잃어버리지 않는 게, 자기를 아름답게 가꾸는 일, 너에겐 인생에서 이게 가장 중요하다. 살면서 1순위가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이걸 0순위로 삼거라.” 그 말을 들은 지 18년이 되었습니다. 스승님의 저 얘기가 프시케신화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납니다. 지옥에 다녀올 동안 아무와도 말을 섞지 마라, 너에게 구원을 요청하는 존재 넷을 모른 척 해라. 돌봄과 관대함을 강화받으며 살았던 여성에게 거의 ‘투쟁’급의 과제입니다.
투쟁에 대해 할 말이 있습니다. 얼마 전에 갔던 제주도에서 김영갑개러리에 갔었어요. 그가 사랑했던 중간산 용머리오름을 20년간 매일 오르며 찍은 그의 사진 속 오름은 경이롭게 아름다웠어요. 나에게 더 감동을 준 건 작가의 모습이었어요. 루게릭병으로 투병하던 그는 건강할 때부터 병세가 악화되어 마지막 전시회에 참여할 수 없었던 때를 모두 영상으로 담아놓고 있었어요. 2005년 3월에 마지막 전시회를 하고 5월에 세상을 떠났어요. 사진을 찍을 수 없게된 사진가가 할 수 있는 일은 이전에 찍어둔 자기 사진을 보면서 위로를 받는 거였어요. 그리고 자신이 손수 가꾼 페교를 가지고 만든 갤러리의 마당을 산책하는 것 뿐이었어요. 루게릭병은 전신이 굳어가는 병입니다. 한 걸음씩 떼는게 지구를 드는 것처럼 고통스런 일이었을 겁니다. 그게 그의 투쟁이었어요. 루게릭병 환자가 걸음마 연습을 하듯 프시케의 과제 역시 투쟁을 필요로 합니다. 우물가에 나가 수다를 떨고, 누군가를 돌보는 대신, 여성이 자신의 내면을 탐구하는 걸 우선해서 시간을 보내는 일은 투쟁이 필요합니다.
모든 영웅은 내면탐색을 하면서 죽음의 순간을 통과합니다. 고래의 뱃속, 깊은 우물이나 동굴로 표현됩니다. 요나는 성경 속의 고래에게 먹혔고, 요세프 할아버지가 만든 목각인형이었던 피노키오는 고래 뱃속을 통과하고 난 뒤에 살아있는 아이가 되었어요. 오늘 새벽 나의 삶의 패턴에 대한 발견이 하나 있었어요. 프시케신화를 읽어두어 다행입니다. 이럴 때 신화가 재미있어요. 고고학 박물관의 케케묵은 화석이 아니라 오늘 나의 일상에서 신화가 힘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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