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수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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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조직을 위한 꿈 _ #2 준비없는 이별
2014. 12. 21
내가 말하는 ‘따뜻한 조직’이라는 것이 굳이 말하자면 ‘따뜻한 피신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꼬박꼬박 월급나오고, 간간이 농땡이 피워도 눈에 띄지 않으며, 대충 묻어가면 중간은 한다는 … ‘우리가 남이가?’ 식의 끈적함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조직을 위한 개인’이 아니라 ‘독립된 개인들의 합이 조직’이 되는 것은 가능하지 않는 것인가? 조직안에서의 개인은 개성을 상실하고 중요성이 거의 없는, 상호 교체 가능한 하나의 단위로서만 존재할 뿐인가? 융이 말하는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처한 곤경은 피할길이 없는 것인가?
‘따뜻한 조직’이 가능하다면 그런 조직이 기능할 수 있다면 이 엄동설한에 조직밖으로 떠밀려 알몸으로 쏟아져 나오지 않아도 좋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 가정은 불행하게도 기각되어야 할 것 같다. 조직은 더 이상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더 급박한 것은 사람이 이제 혁신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 조직은 당신의 진액을 빨다가 언제든지 혁신의 칼을 들이댈 수 있다.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가면의 속살이다. 조직은 이제 당신의 평생을 고용하지 않는다. 조직과의 이별은 당신과 나의 피할 수 없는 현실 문제가 되었다.
내 앞 세대, 그러니까 아버지 세대는 아버지 혼자 벌어서 온 가족이 먹고 살았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소 팔고 논 팔아 큰 아들 공부시켜 놓으면 이 아들은 커서 그럭 저럭 괜찮은 회사에 취직했다. 이제 이 가족은 큰 걱정 없이 살 수 있게 되었다. 크지 않지만 마당 딸린 집에서 부족하지 않게 먹을 수 있었고, 알뜰한 아내와 함께 자식들 키우며 부모님 공양하고, 동생들 시집 장가보내며 살 수 있었으니 꽤 괜찮은 가장의 삶이다.
나는 아버지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번다. 그러나 일 하는 시간과 양은 족히 몇 배 더 많을 것이다. 그런데 웬일인지 마당 딸린 집은 고사하고 내 식구 먹고 살기도 빠듯하다. 더불어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두 배쯤 더 작은 것 같다. 물론 이런 비교는 상대적인 것이긴 하지만 그 때 아버지 보다 나은 것 같지가 않다. 그리고 한가지 더, 아버지 보다 압도적으로 불안한 고용환경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의 경우 평생토록 6~7번 이직을 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500대 기업을 조사해 보았더니 평균근속연수가 고작 10년 남짓이다. 30대 기업으로 좁혀보면 9년 언저리에 그친다. 죽을 동 살 동 바둥거려서 대기업에 취직해 봐야 고작 10년이다. 또 다른 통계에 따르면 출처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우리나라 임금근로자 가운데 계약직 비율이 60%대에 육박하는 것으로 보고된다. 10대 기업군으로 좁혀봐도 36% 정도이고 보면 웬만한 회사에 가서 마주치는 사람 셋중에 둘은 장그래란 이야기다. 내년(2015년)엔 정년퇴직자만 52만명이 넘는다. 겨우 삶의 반에 닿았을 뿐인데 그들은 벌써 직장문을 나와야 한다. 그나마 이 분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나는 꼬박 16년을 직장인으로 살았다. 한 직장에만 있었다. 그리고 내발로 걸어나왔다. 말이 좋아 프리랜서지 실업 상태에 가까운 삶 속으로 걸어나온 것이다.
나는 동료들 보다 면접을 두번 더 보고 입사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골라서 취직할 수 있는 입장이었고 때문에 제법 당당했던 모양이다. 임원 면접에서 “이 회사를 3년만 다니겠다.”고 말했다. 담당 임원이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그때쯤이면 매너리즘에 빠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회사나 내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중에 그 임원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면접을 두번이나 더 보게 된 이유가 이 놈을 뽑아야 되나 말아야 되나 판단이 안서서 그랬다고 한다. 어쨌던 면접을 두번이나 더보게 되면서 나는 약이 올라 이 회사를 택했고 이 회사는 별난 놈이다 싶어 뽑았다. 이 임원과는 이 후 십여년쯤 함께 일하게 되었는데 뻑하면 “3년만 있다가 간다던 놈이 십년이 넘었는데도 안간다."고 놀리곤 했었다.
내 직장생활은 비교적 주도적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떠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이 곳이 내가 담길만한 그릇이 아니라는 교만은 나를 강하게 했지만 언제나 조직과 일정한 거리를 만들었다. 조직의 최적화를 위한 개선과 혁신, 교육과 관련된 일을 하면서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에 관한 꿈을 만들었고 구체적인 준비도 제법 할 수 있었다. 경력이라든지, 자격이라든지 교육의 기회 따위를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시간은 흘러갔고 머리가 둘이었던 조직은 점점 더 정치색이 짙어져 갔다.
내게 중요한 것은 직장인이 아니라 직업인으로서의 삶이었다. 나는 내가 하는 일에 독보적이었고 간섭을 원하지 않았다. 나는 자의든 타의든 조직화 될 수 있는 종류의 인간이 아니었다. 새로 부임한 CEO는 조직의 이름으로 칼을 빼 들었다. 원하지 않는 보직으로의 인사명령을 나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동안 닦아 놓았던 모든 것들이 무너졌다. 이제 떠날 때가 된 것이다. 늦었다고도 생각 했지만 돌이킬수 없는 것이었고 지금이라도 내가 결정할 수 있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조금 더 지체 하면 순치의 치욕을 강요당하거나 조직의 쓴 맛을 보게 될 것이 훤히 내다 보였다. 결정의 순간에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
풍찬노숙의 삶을 선택한지 2년하고도 반이 지나가고 있다. 제법 잘 해나가고 있지만 계획대로 꿈꾸는 대로의 시간을 보내지 못했다. 나는 내가 배우고 경험하고 성공하고 실패했던 여러가지 모형들을 실험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들떠 있었다. 그러나 동물원에서 배운 재주가 사바나에선 쓸게 별로 없다는 것을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품새 따위를 가지고 사냥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은 시작부터 박살이 났다. 한방에 떡실신이다. 어설프게 견디는 것보다 처음부터 이렇게 한방에 나가 떨어지는게 내상이 덜하다.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사바나에서 살아남으려면 사바나식으로 배워야 한다. 고통스럽지만 이 고통은 나를 더 단단하게 한다. 한겨울 칼바람 속에서 새벽을 맞는 기분과 닮아있다. 나는 이것을 ‘생산적인 고통’이라고 한다. 찌들어 빠진 ‘소모적인 고통’과는 대별되는 것이다.
바람찬 들판은 언제나 춥고 외롭다. 자유는 아름답고 고귀하나 허허벌판엔 숨을 곳이 없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기차표를 끊고 경비처리를 하면서 내가 처한 상황을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하고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나는 이제 ‘갑’이 아니라 ‘을’이거나 ‘병’이거나 심지어 ‘정’이었다. 이런 사소함 속에 야생을 함의 하고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 아침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경이로운 사실은 이 모든것을 상쇠하고도 남는다.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나는 속절없이 풍찬노숙의 거친 세상속으로 던져지는 직장인들을 만나고 있다. 그들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에게 직장은 아직 아버지 세대에 머물러 있었다. 준비 없이 닥친 이별은 더 아프고 참혹한 법이다. 세상은 이제 우리의 기대와 상관없이 인생의 2막…아니 5막, 6막을 살라한다. 그렇게 되게 되었다. 이제 직장인은 모두 죽었다. 직업인만 살아 남는다. 그들만이 주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되었다. 이 것은 몸이 직장에 있고 없고의 물리적인 것에 관한 물음이 아니라 삶의 태도와 철학에 관한 물음임을 상기해야 한다.
직장인에 관한 통계자료를 하나 더 보자. 기획재정부가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09년부터 지난해(2013년)까지 연평균 실질임금 증가율은 1.28%로 같은 기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인 3.24%의 절반도 채 되지 않았다. 쉽게 풀어서 말하자면 같은 생활수준을 유지 하려면(더 나은 생활이 아니라는 것에 유의하라.) 더 일찍 출근하고 더 늦게 퇴근해야 한다는 말이다. 직장이 이제 밥도 너끈하게 해결해 주지 못하게 생겼다는 것이다.
이별이 피할 수 없는 미래의 현실이라면 대비할 수 있다. 진실이 불편하다고 외면하는 것은 어제까지다. 직장은 이제 정주형이 아니라 유목형이다.
덧: 내가 떠난 그 곳은 내가 없는데도 잘 돌아간다. 믿기 싫지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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