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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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25■
포트폴리오 인생이려나
어쩌랴. 그냥 웃음이 났다. 소리내어 웃지는 않았다. 가볍게 고개 인사만 하고 바로 뒤돌아서서 자리를 피했다. 어쨌든 서로가 멋쩍을 수밖에 없는 순간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붐비는 시장에서 마주친 사람은 우리 가게 단골,이었던 사람이다. 내가 처음으로 동네 5일장에 나선 길, 그는 장터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내가 그를 처음 만났던 때가 20대 후반이었으니 새삼 오래 알고 지낸 사이인 것도 같다. 처음 그가 인상에 남았던 것은 알루미늄 캔을 모으는 것 때문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알루미늄 캔의 따개를 모으고 있었다. 나도 한때 열렬하게 캔따개를 모았던 적이 있다. 캔따개가 몇 만개 모이면 장애인들을 위한 휠체어로 바꿔준다는 얘기에 지독히도 캔따개를 떼어 내느라 설쳤다. 그리고 오래 지나 그것이 실체도 없는 헛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모아 놓은 캔따개의 몇 배나 되는 허탈함을 느꼈었다. 그랬는데, 아직도 그것을 믿고 캔따개를 모으는 사람, 많이 모아두었다고 말하는 그에게 그거 다 ‘뻥’이야라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 얘길 해주었던 것 같다. 그는 전혀 내 말을 믿지 않았고 더욱 애착하며 캔따개를 모았다. 음료를 마시는 사람 옆에 서서 기다리다 캔따개를 받고, 쓰레기통을 뒤지며 캔따개를 모았다. 그런 그도 어느 순간인가 캔따개를 모으지 않았던 것을 보면 그것이 근거없는 허황된 소문이란 것을 알게 되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쓰레기통을 뒤지며 가게를 들어오던 그를 구걸하러 온 사람으로 알았다. 캔커피를 즐겨 마시는 그는 구부정한 몸에 절룩이는 다리로 거리를 활보했다. 윗이빨이 몇 개 빠져서인지 발음이 새어 불분명한 그는 동네에서 제법 유명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천덕꾸리기 신세인 장애인이라고 해야 할까. 분명한 건 그를 대하는 데는 무조건 싫어하는, 아니 혐오하는 사람, 동정하며 나름 챙겨주는 사람,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의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는 거다. 그가 밥을 제대로 먹었는지 허투루 돈을 쓰고 다니는지 신경쓰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같은 공간에 있는 것, 같은 거리를 마주치는 것만으로도 혐오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다. 혐오감을 혼자서 느끼고 알아서 해결하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꼬옥 티를 내는 사람도 있다. 동네의 할머니 한분이 자녀 결혼식에 동네 사람을 초대했는데 그도 초대자 명단에 있었다. 그는 허름한 옛날 양복을 입고 신나하며 결혼식장을 갔더랬다. 평소 할머니의 잔심부름을 해줬다는 것 같다. 그렇게 행복하게 버스를 타고 떠났던 그는 얼마 안 있어 되돌아 왔고 결혼식 뷔페를 먹은 사람답지 않게 햇반과 즉석짜장을 데워 점심을 먹었다. 아주 허겁지겁. 이유는 역시나 같은 동네에 살며 잔치에 초대받아 가신 어느 할머니가 그가 같은 자리에 있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했기 때문이다. 곳곳마다 혐오감을 드러내고 음식을 먹을라쳐도 진저리를 치며 ‘더럽다’고 해대니 진수성찬을 앞에 두고 되돌아 나온 것이다.
초장부터 그런 모습을 보게 되니 어쩔 수 없이 그에게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오늘 하루도 무사한 삶이었는지. 누구에겐가로부터 이유없이 시달림을 받지 않았는지를. 그럼에도 그는 곧잘 사람들에게 음료수며 술이며를 사준다. 동네 아이들에게 더러 과자를 사주기도 하고. 사람들이 딱히 좋아하는 것 같진 않지만 그렇게 받아 먹는 사람들은 입이 심심할 때면 그를 아는 체 하기도 하더라. 몇몇의 사람들이 그런 그에게 제발 돈 좀 모으라고 언제까지 그러고 살 거냐고 말을 해도 그는 헤벌쭉 웃을 뿐이다. 그렇게 하루 하루 살아갈 모양이었다. 한때는 통장에 돈이 쌓이는 재미를 즐겼던 것 같은데 같이 방을 쓰던 놈이 통장을 들고 나른 후로 늘 통장 잔고는 2,950원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그가 부자라고 했다. 일도 한다고 하니 그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지만, 그들의 표현대로 그가 하는 일은 ‘걸뱅이짓’이다. 그는 시장에서 그렇게 ‘주님’에 관한 노래를 틀어놓고 고무같은 옷으로 몸을 감춘 채 바닥을 기며 구걸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를 알기 전에도 시장에서 그와 같은 사람을 보면 바구니에 동전이 천원짜리 지폐가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가끔 정말 다리가 없는 사람인지 궁금하기도 했었는데. 그렇기에 시장에서 그를 마주치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찌됐든 ‘나는 당신이 조금은 절룩이지만 두 다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지금은 제법 ‘살기가 괜찮다’는 것을 안다는 그런 웃음이었을지 모른다.
사람이란 참 묘하다. 그를 처음 봤을 때만 해도 그가 당하는 설움에 감정이입하고 그의 삶에 안쓰러워 그가 잘 좀 살아가기를 바랐지만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는 과연 그가 저런 일밖에 할 일이 없는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5일장이라고는 하나 동네의 장은 늘 동네의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일텐데 늘 그를 마주하며 사람들이 그에게 또다시 돈을 건넬까하는 의아심도 더불어 생기기도 하고.
내가 잘 모르던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 그의 삶에 변화가 있었다. 그는 돈을 쓰지 않고 돈을 모았고 이빨을 해 넣어서 보기 흉한 모습을 가렸다. 그리고 한칸 월셋방에서 아파트로 거주지를 옮겼다. 그리고 제법 괜찮아 보이는 오토바이를 몰고 다닌다. 소문을 들으니 여자 친구도 생겼다더라. 그 계기야 어떻든 간에 그의 삶의 변화는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여전히 그는 장을 돌며 구걸을 하고 있다. 외적인 환경의 변화는 이루어졌지만 거기에서 더 변화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쉽게 될 리 없다는 것을 안다. 그는 태생적으로 제도적 교육을 받지 못했고 타인으로부터 배척을 당함과 동시에 타인의 도움을 얻어 가며 생활해 왔던 사람이다. 이전보다 조금 생활이 나아졌다고 그의 인생이 엄청나게 변한 것처럼 호들갑떨 일도 아닐 거다. 누구나 힘든 이 시대, 그가 직장을 들어간다는 것도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일이고 그렇다고 장사를 한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그는 그렇게 자신이 살아갈 환경을 이전보다 조금씩 안락하게 바꾸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변화된 인생이 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끔씩 기만당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전적으로 그에 대해서는 아닌데도 당장 풀어낼 곳이 없다 보니 그에게로 향하는 건지도 모른다. 힘든 몸을 이끌고 어떡하든 일자리를 찾아 일을 하고 돌아오는 이들을 볼 때, 송파 세 모녀의 세세한 이야기를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이전에도 지금도 너무 쉬운 방법으로 살아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늘 같은 시장에 가도 별 부끄러움이 없는지, 자신의 신체를 좀더 심각한 상태로 가장한 채로 타인에게 ‘나 불쌍한 사람입니다’를 외치다 뒤돌아서서는 오늘 하루 돈을 많이 벌었다며 술한판 내는 그의 삶을 쳐다보며 이전에 내가 가졌던 그에 대한 연민은 증발되어 버리고 만다.
오래 전에 그가 일을 하러 다닌다는 곳이 어딘가 했더니 누군가가 온 사방을 떠돈다고 하긴 했다. 그렇다고 아주 멀리까지는 아니었을 것 같긴 한데 전라도와 부산까지는 갔다 왔다고 했던 것 같다. 그 때만 해도 오토바이도 없을 때였으니 어떻게 그곳까지 가는지 궁금했더랬는데, 매번 ‘출장’을 나갈 때면 그를 태워다 주는 누군가가 있다 했다. 그를 태워다 주는 누군가는 차를 소유하고 있어 그와 어느 아주머니 한 분을 멀리 태워다 주고는 그와 아주머니가 하루 번 일당에서 몇 %를 받는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다른 지역에서 벌어들이는 수입은 웬만한 가게 수입을 훨씬 넘는, 월급쟁이의 하루 일당의 몇 배가 되는 돈이었다. 생각보다 세상 사람 인심이 나쁘지 않구나 생각하며 그 때만 해도 차량을 소유한 그 자본가를 몹쓸 놈이라며 벼룩의 등을 쳐서 먹고 사는 놈이라 욕했었다. 운전만 해대는 그 젊은 놈은 그렇게 먹고 살아가는 일에서 보람을 느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세상의 소외된 이웃들에게 도움을 주는 착한 사람이라 생각하고 살겠지. 그래서 밤마다 두 다리 더욱 쭈욱 뻗고 자겠지라며 주구장창 얼굴도 모르는 운전자를 향해 욕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금도 그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럼 그들은 그저 공생관계일 뿐이다.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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