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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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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29일 12시 02분 등록

가족끼리 만나는 한 연말 모임에서 과제가 주어졌다. 바로 2014년도 가족의 10대 뉴스를 선정해보고, 15년도의 계획을 짜오는 것이다. 늘 반복되는 새해 결심에 지친 나는 몇해 전 부터는 새해계획도 없이 살았었기에 그 과제가 큰 부담으로 다가 왔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우리 둘이 힘을 합쳐 가족의 계획만이라도 잘 세워고 지켜보면 좋겠다는 소망도 있어 남편과 나는 오랫만에 둘 만의 시간을 가지며 지난 한 해를 돌이켜보기 시작했다.

 

가장 기억에 많이 남는 것은 바로 우리가 엄청나게 싸웠다는 것이다. 특히 내가 회사를 쉬게되면서 우리의 싸움은 점점 늘어만 갔다. 나는 왠지 모를 심적인 부담을 느끼면서 이제 돈도 못 버는데 집안일을 열심히 해야만 할 것 같았고, 집이 조금이라도 지저분하면 깔끔한 성격의 남편에게 미안함을 느꼈다. 매일 커피 한 잔을 사먹으면서도, 혹은 외식을 하면서 조차 죄책감에 시달렸다. 특히 매사 최대한 지출을 줄이는 남편을 볼 때면 '내가 이런 쓸데 없는 짓은 왜 해가지고!' 라는 자괴감이 커지곤 했다. 그러면서 또 한편으로는 이런 감정을 왜 내가 느껴야 하는지 화가 나기도 했다. '남편이 이런 걱정이 없도록 나를 만들어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마음에 가끔 내 생활이 구질구질하게 느껴질 때면 욱 하고 화를 내기도 했다. 남편은 남편대로 학교를 보내주면 행복할 것 같다더니 여전히 불평만 가득하고, 미안하다는 말만 하면서 집안일은 가끔씩만 하는 내가 짜증이 나는 듯 하였다. 그렇게 우리는 작은 일로 촉발된 무수한 싸움을 하면서 언성이 높아지고 허공에 발길질을 하는 모습 등을 통해 서로에게 안보여줄 모습도 많이 보여주기도 했다. 빨리 싸우고 금방 풀려버리는 나와 달리 화를 내지는 않으나 풀리는 데에 시간이 많이 필요했던 남편, 우리는 싸우고 또 푸는 방식이 달랐기에 서로의 모습을 더욱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손을 잡고 싸우거나 혹은 나 대화법을 사용하는 것이라고 배웠지만, 도저히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는 그것이 불가해보였다. 싸움은 때때로 필요하지만, 서로의 진을 다 빼는 그런 방식 보다는 조금 더 지혜롭게 싸워보기 위한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리고 우선 나는 되도록이면 소리를 크게 지르기 전에 한 번 참고, 남편은 소리 지르는 나에게 똑같이 대응하는 것을 참아 보기로 했다.


그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것은 바로 여행의 추억이었다. 요즘은 서로 주말마다 각자 스케쥴을 소화하느라 바빴지만, 상반기에는 나름대로 바쁘게 이곳저곳 많이 돌아다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새해 첫 날을 태백산에 올라 일출을 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1월에는 매주 산으로 바다로 놀러 다녔고 6월에는 지금도 감동 깊은 독도 입항을 해보기도 했다. 8월에는 변경연 식구들과 긴 휴가를 내고 스페인을 다녀오기도 했다. 언제 다시 갈 지 모르니 간 김에 모든 것을 빠짐 없이 보고 경험하고 와야 한다는 주의인 우리 부부는 여행을 가면 늘 짧은 시간에 많은 일을 소화하느라 눈코뜰새 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곤 했었다. 하지만 능숙한 가이드분과 시간되면 우리를 태워가는 버스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여행에서 우리 부부는 왜 이렇게도 피곤하던지 이제 바쁜 여행은 힘들겠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그리고 내년에는 가능하면 휴양지로 놀러가서 정말 하릴 없이 푹 쉴 수 있으면 좋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사건 사고도 많이 있었다. 남편이 나를 위해 아이스크림을 사오다가 골절상을 당해 119에 실려가기도 했고, 덕분에 2,3월은 집에만 머물러 있어야 했다. 눈길에 미끄러져 차 사고가 나기도 했고, 초보운전인 내가 호기롭게 핸들을 잡고 달리던 출근 길에 차에는 아무런 흠집이 없을 정도의 매우 가벼운 부딪침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운전자가 목을 잡고 달려나오는 바람에 과다한 보험료 청구를 당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특히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는 해이기도 했다. 연구원을 시작했고 휴직을 했고 학교에 입학했으며 이로 인해 부부 사이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매일 같이 출근을 하고 가끔은 저녁을 같이 먹거나 퇴근을 하고 심야영화를 보러 가기도 했었던 우리였는데 이제는 각자 출퇴근 시간이 다르다보니 서로 얼굴을 보기 힘들 정도가 된 것이다. 주말에도 매주 어디론가 나들이를 가던 우리였는데 집에만 머물러 있는 시간도 늘어났다. 그러다보니 대화도 줄어들고 불필요한 오해가 생겨 더욱 싸움이 많이 일어난 것도 같았다. 자기계발에 쏟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일주일에 최소 1일은 온전히 부부만의 시간을 갖기로 합의했다.   


여느때 보다 다사다난하고 바쁘게 보낸 것 같은 1년이었는데 10개를 채우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잊고 있었던 일들도 기억해보며 서로 웃을 수 있어서 행복하기도 했다.  서로 스쳐지나가면서 했던 이야기이긴 하지만, 무언가를 함께 배워 부부만의 취미를 만들어보자는 약속도, 매일 가계부를 쓰자는 것도, 아침 일찍 일어나서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해보자는 것도 지키지 못했다. 결국 이 약속들은 다시 15년도의 계획으로 미뤄졌고 16년도의 계획으로 이전되는 일은 없기를 간절히 바래보았다. 15년도 계획을 세우는 일은 예상보다 쉬웠다. 역시 나는 바라는 것들을 나열하는 데 명수이다. 내년도 우리 부부의 가장 큰 소망은 2세를 만드는 것이고 또한 각자의 커리어패스를 고민하여 뚜렷한 길을 찾는 것이다. 어려운 과제이고 의지만으로 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년 말에는 모두 다 이루었노라 라는 희소식을 데카상스들에게 전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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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9 12:48:16 *.104.9.216
나를 들볶지 말기.
2015년 내 미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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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9 13:27:10 *.124.78.132

저도요 ^^ 그냥 좀 편안하게 대해주는 연습을 좀 해야겠어요. 저의 심각한 질병인 결정 장애도 완벽하게 결정하려고 해서 오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새해에는 조금 더 막 살기!가 필요한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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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9 14:39:01 *.196.54.42

"내년도 우리 부부의 가장 큰 소망은 2세를 만드는 것이고..." 추카추카!!

'이대로는 못살겠어, 얘를 낳던지 취직을 하던지 해야겠어'... 결혼 10년차에 아내의 말이었죠.

아내는 자기 말대로 아이를 가졌고... 술마시는 남편과의 전쟁은 그걸로 끝나고 눈코 뜰새 없는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죠.

아이는 부부의 사랑이 수렴하여 진정한 가정을 이루는 초석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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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9 15:01:53 *.119.88.145

ㅎㅎ... 녕이 다운 연말 에세이. 왠지 흐뭇하여 미소가 절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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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9 20:40:40 *.160.33.145

ㅎㅎ 이제는 언니 칼럼만 읽어도 옆에서 읽어주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ㅎㅎ 다사다난한 2014 함께 해서 즐거웠습니다! 

2015년도 잘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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