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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월 5일 11시 26분 등록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잘 쓰여집니다

 

2015.01.05

10기 찰나 연구원

 

 

새벽 4, 새벽 별, 도량석, 새벽 예불, 발우공양, 소임, 휴식, 마음 나누기, 명상, 일상에서 깨어있기, 바라지. 영하 10, 칼바람, 법사, 행자, 공양간, 해우소, 100일 출가, 49일 문경살이, 저녁 예불, 수행 법회, 입재식, 수련원, 대강당, 고행상, 가피, 명심문 , 활동가, 지도 법사, 공동체, 동지, 크리스마스, 대중, , 송년 법회, 33번의 타종, 새해 첫 예불, 회향식, 상주 …….

 

   2주간 봉사활동을 마치고 왔다. 그동안 나만을 위해서 살아왔다면 지금과는 조금 다르게 남을 위해서 살아보고 싶었다. 복직을 앞두고 이런 시간을 내기가 어려울 것 같아 마음 내어 해보기로 했다. 요즘은 돈으로 남을 도와야 남을 돕는다고 생각하는 것이 많이 있지만 돈 말고도 다른 사람을 위해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세상에는 많이 있었다. 나의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도 조그마한 보탬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봉사활동은 법륜 스님과 함께하는 명상 수련’ 45일 진행을 위해서 사전 준비작업과 명상 기간 동안 내부 팀 지원, 사후 마무리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문경 수련원 전체를 누비면서 수련장등의 내부 시설물들과 명상이 진행되는 대강당 200개 방석 세팅, 발우 소독 및 세팅, 눈이 오는 날에는 눈 치우기 등 평소에 하지 않은 많은 일들이 이루어졌다.

아침 기상은 새벽 4시다. 예전부터 새벽 4시에 일어나고 싶었지만 마음뿐이었고 제대로 일어난 적이 거의 없었는데 새벽 4시에 도량석(道場釋)소리를 듣고 일어나서 새벽 예불을 해야 했다. 처음에는 일어나는 것조차 힘들었는데 며칠 지나자 어느덧 눈이 뜨이기 시작했다.

  새벽 예불을 한 후, 발우 공양으로 아침 식사를 마치고, 휴식을 취한 후에 아침부터 자신의 소임이 주어진다. 어떤 일이 주어지든 예 하며 합니다라는 명심문(銘心文)을 가지고 일에 임하면서 자신의 업식(業識)을 보는 것이다. 일을 하면서 왜 나는 이런 상황에 화가 나고 짜증이 나고 흔들리는 것일까 생각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깨어있기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냥 스쳐 지나가는데 마음은 그걸 어느 순간 쌓아놓게 되는 것이다.

   몇 명 안되는 인원으로 45일 명상 수련을 위해서 45일동안 사전 준비작업을 하였다. 모두 같이 작업을 하는데, 200개의 방석 세팅, 200개 발우 소독 및 정리, 발우대 세팅, 눈이 오면 눈 치우기, 각 수련장의 걸레 및 물품 구비, 안내 표시 세팅 등, 물품 이동 등 여러 가지 일들이 주어졌다. 그 동안 여러 수련을 참관했지만, 돈을 내고 수련에 참관했기에 사전 준비작업에 대해서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어느 덧 받기에만 익숙했고 돈을 낸 것에 대한 당연한(?) 권리라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준비가 사전에 있어야 하는지 이번에 새삼 알게 되었다. 나에게 주어지는 것을 당연하게만 생각하고 왜 나한테는 그게 없지 하면서 욕심만 내고 있던 나를 다시 보게 되었다. 나한테 주어진 것에 대한 소중함, 감사함을 잊은 채 나한테 없는 것만을 계속 채우려고 했던 것이다. 욕심에는 끝이 없어 깨진 독에 물 붓기처럼 채우려고 해도 채워지지 않았다. 어느 순간 멈추고 싶어도 이미 그렇게 살아온 삶의 관성으로 멈출 수가 없었다. 늘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마음만 가지고 바쁘게 분주하게 살아왔지만 무엇을 위해 그러는지도 모른 채 그냥 그렇게 살아온 것이다.

   사전 준비가 마무리 되고 드디어 45일의 명상이 시작되었다. 200명이 모였지만 이 명상기간 모든 것이 묵언으로 진행된다. 봉사자들도 최소한의 필요한 말만 서로 주고받고, 걸음걸이도 명상에 방해가 될 수 있기에 조심해야 했다. ‘깨어 있기의 최절정의 시간들이었다. 이 기간 동안돕는 이로서 명심문은 사용하는 사람의 마음을 헤아려 잘 쓰여집니다.’이다. 내가 평소 때 일을 할 때 남의 마음을 얼마나 헤아려 했을까. 다른 사람을 배려한 다기 보다는 내 생각에 옳으면 하고 옳지 않으면 아니다 생각하고 그 사람의 마음을 배려하기보다는 내 마음이 매사 앞섰다. 그러기에 부딪치는 것도 많았고, 투덜거리기도 많이 했다. 팀장이 일을 잘못한 것에 대해서 얘기를 하면 나를 비난하거나 비판한다고 생각하고 마음 아파하곤 했는데 역시나 똑같은 업식과 마주치게 되었다. 그것이 나를 비난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잘못된 것을 얘기하는 것인데 팀장들의 표정과 목소리 톤과 크기에 영향을 받아서 나를 비난 한다고 생각했다. 나의 업식을 제대로 알게 되니 그 다음부터 팀장과의 일이 수월하게 진행이 되었고, 내 마음도 편해졌다. 물론 다시 그런 업식을 마주쳤지만 그때는 그 업식에 넘어지지 않고 오뚝이처럼 벌떡 일어나라는 스님의 법문을 마음에 새기면서 더 이상 마음 아파하지 않기로 했다.

   명상 수련 기간 동안 매 순간 깨어있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조용히 걷고 조용히 말을 해야 하고, 필요할 때는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데 그동안 40년 넘게 익숙한 발걸음은 신발을 신고 나서면 어느덧 쿵쿵거리며 걷고 있었고, 작게 얘기해야 한다고 생각은 하는데 막상 말하는 것은 크게 말하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이틀간은 잘 안되다가 삼일 째 되어서야 조금씩 나아지는 것을 보았다. 자신이 의식하지 못하고 어느 덧 습관에 길들여져 있는지도 모른 채 살아왔는데 이제 조금씩 그것을 보게 되었다. ‘깨어 있기가 이렇게 힘든 것이고 계속 노력을 해야 하는 것임에도 너무 쉽게 생각하고 한순간에 다 되는 것이라 착각을 했던 것이다.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의 중요성을 다시 알게 되었다.

    200명이 넘게 참석하는 큰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어디서든 큰 소리가 나오지 않고, 침착하게 행사가 진행되는 것을 보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회사에서 200명이 넘는 대규모 행사를 치르다보면 정신없이 하게 되고, 큰 소리가 나오게 마련인데, 명상 수련에 참석하는 많은 분들이 수행을 오랫동안 하신 분들이라 큰 소리가 날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침착하게 처리하시는 것을 보고 저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또한, 늘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 세상의 속도와는 달랐다. 천천히 진행하면서도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다 같이 하였다. 늦게 하는 사람보고 왜 이렇게 늦어!” 하면서 비난하지도 않고 기다렸다가 그 사람이 다 마친 후에 다음 일을 진행하였다. ‘느린 속도에 갑갑해 하면서 분주히 왔다 갔다 하다가 조금씩 속도를 늦추게 되었다. 속도를 늦추거나 멈출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이번 명상 수련 기간 동안 속도를 조금씩 늦추거나 멈추는 것을 할 수 있게 되었다.

    45일의 명상 수련이 마무리 되고, 연말 송년회와 새해 첫 예불을 법륜 스님과 함께 할 수 있었다. 봉사활동기간 동안 이런 일이 있을지 생각하지도 못한 특별 보너스였다. 33번의 타종과 첫 예불로 새해를 열었다. 2주간의 명상 수련 봉사 활동이 새해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삶에 큰 보너스가 될 것 같다. 남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으로 돕는이의 자세로 살아가다보면 세상의 의미와 가치를 알게 되고, 현재 내게 주어진 조건들도 그리고 이렇게 살아 온 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할 일임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세상에는 하찮은 일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일임을 알고, 각자의 역할에서 최선을 기울이는 자세의 중요함 또한 알게 되었다. 남을 위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봉사였지만 결국에는 그것이 자신을 위하는 것이고, 남을 위해서 쓰일 때 보람도 더욱 커지는 것이다.

  

   문경에서의 보낸 시간들을 뒤로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에움이 있는 상주로 향했다. 그 동안 몇 번이나 가보려고 했다가 시간 때문에 도저히 못했는데 이번에 못가면 더 가기 어려울 것 같아 상주에서 서로 만났다. 상주에서 만나니 또 다른 감회가 있었다. 그 동안 채식위주의 식사를 할 것을 알고 에움이 고기집으로 데리고 갔다. 상주의 갈비살이 어찌나 맛있던지 고기가 살살 입에서 녹고, 그동안의 피로도 살살 녹는 것 같았다. 산책과 커피 한잔을 하면서 수다를 떨다보니 하마터면 서울로 가는 막차를 놓칠 뻔 했는데, 열심히 뛰어서 간신히 차에 오를 수 있었다. 차를 타고 올라오면서 그동안의 시간이 마치 꿈을 꾸고 일어난 것 같았다. 2주뿐만이 아니라 1년 휴직기간동안 어떻게 시간이 간지도 모른 채 지내온 시간들이었고 너무 기쁜 순간들이었다. 서울에 도착하니 서울의 온기가 느껴지고 가족의 소중함에 감개무량하였다. 이렇게 소중한 것들을 얼마나 놓치며 살아왔는가. 이제는 똑같은 실수는 하지 않고 살아가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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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5 15:32:08 *.70.47.227
언니의 1년은 정말 곰삯은 젓갈처럼 쓰임새가 충분할거 같아요 기대됨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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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12 11:21:17 *.94.41.89

'곰삯은 젓갈 '  표현이 죽이네~~ 고마워 참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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