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녕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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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체 뭐하고 있는 거야? 이제 그만 좀 책보고 자라.” 이 말은 내가 어릴 적 가장 많이 듣던 말이다. 아마 여느 부모님들은 책을 본다며 잠을 안 자는 아이가 있다니! 라며 우리 부모님을 부러워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골목 대장 노릇을 하며 늘 밖에 나가 친구들과 활발하게 뛰놀던 남동생과 달리 나는 늘 책 속에 침잠해있는 아이였기에 부모님의 걱정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부끄러움이 많은 것인지 모르는 아이들과 쉽게 친해지기 어려워했던 것이다. 밖에 나가서 뛰노는 아이들에게 함께 놀자고 말하는 것이 어색했는지도 모른다. 항상 나의 중심으로 돌아가던 집에서의 상황과 달리 동료 집단에서는 내가 주인공이 아니었고, 그것이 나는 못내 껄끄러워 회피하고 싶어했던 것 인 거 같기도 하다.
그렇게 나는 어느 순간 책과 친한 아이가 되었다. 책에 푹 빠져 이불 속에 전등을 켜놓고 책을 보다가 초등학교 1학년 시절부터 안경을 끼게 되기도 했다. 책 속에서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위인전을 읽으며 감동을 받았고 또 그들을 닮고 싶어 애타했다. 나도 이런 모습이었으면 하는 꿈을 꾸게 했다. 세계여행과 관련한 책을 읽으며 이 모든 곳을 내가 직접 가서 경험해보리라 하는 소망을 가지게 되기도 했다. 소설을 읽으면서는 내가 사는 세상과 다른 외국 사람들에 대한 환상을 품기도 했고,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 공상을 하기도 했고, 만약 내가 이런 모습이라면?이라고 상상해보기도 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 누구나가 그렇겠지만 나에게도 책은 웃고 또 즐길수 있는 신나는 놀이터를 선물해주었다.
어른이 되어서는 일이 풀리지 않을 때 마다 책을 보기도 했다. 시험 전 날에 불안한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서도, 남자 친구와 헤어져 우울한 날에도, 매사 의욕이 생기지 않을 때에도, 책에 의지하곤 했다. 책을 읽고 얻은 기운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것은 나에게는 일상화된 일이기도 했다. 웃기지만 모든 일을 ‘글로 배웠다’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가난한 남자친구와 사귈 때는 가난한 남자친구와 사귀어도 될까? 라는 책을 읽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러나 직장에 들어가면서 모든 것이 변했다. 책을 좋아하던 내가 한 달에 한 권을 읽을까 말까 하는 사람으로 변했으니 말이다. 책을 손에 붙잡고 있을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가깝게는 대한민국 경제의 기적을 이룬 김우중이나 정주영의 자서전, 멀게는 잭웰치나 칼리피오리나의 자서전을 읽으며 경영학과를 가서 꼭 세계를 무대로 뛰는 멋진 커리어우먼이 되겠노라 꿈을 키웠던 나는 대학교 1학년 때 부터 직업 탐색에 나설 정도로 밥벌이에 관심이 많았다. 목표 직군에 대한 공부도 많이 했고, 그 직군이 잘 되어 있다는 회사들도 입사 우선순위에 올려놓고 준비했다.
그리고 입사를 하고 미생의 삶을 시작했다. 그러나 고대하던 회사 생활은 녹록치가 않았다. 가끔은 행복한 적도 있었다. 내가 일을 함으로써 소비자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든다는 자부심, 미약한 내가 글로벌 전략을 짜는 과정에 함께 한다는 자랑스러움, 수출 역군으로서 사회에 이바지한다는 보람 등으로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벅차 올랐었다. 힘들지만 모두가 열심히 하는 바쁜 일상도 좋았다. 내가 이 조직의 일원이라는 것이 행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회사 생활은 나에게는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나서기 좋아하던 성격은 소심하게 변화했고 눈치를 보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긍정적이었던 성격은 짜증이 잦은 성격이 되었다. 늘 바쁘다라는 말을 달고 살면서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을 소홀히하기도 했다. 모든 생활의 우선 순위는 일에 맞추어져 가족의 대소사도 뒷전이었던 것이다. 그저 열심히 시키는 일을 했던 탓일까. 기대하지도 않게 조기 진급을 하기도 했지만 이후 기대한 것 대비 실망스러운 성과를 냈다는 멘트와 함께 낮은 고과를 받으면서 절망을 하기도 했다. 존경하는 부서장으로부터 그러한 이야기를 들은 나는 이후 매사 높은 기대 수준을 설정해 놓고 그 기대에 부응해야 하기 위해 스스로를 닥달하는 강박증에 걸리기도 했다. 또한 어느새 나보다 더 잘 나가는 동기들을 보면서 자꾸 자신감을 잃는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욕심 많은 나는 성격인 나는 내가 어쩌다가 이렇게 뒤쳐지게 되었나..라는 생각이 견딜 수가 없었다. 유일하게 자신있던 체력은 결국 스트레스성돌발성 난청에 공황장애의 증상 등이 나타나는 등 약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회사에 대한 로열티와 열정이 넘치던 하루하루가 어느새 권태로워졌고 내가 걷는 이 길에 대한 의미를 잃어버리는 과정이 지속되었다. '내가 행복해지려면 무슨 일을 해야할까?' ‘대체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바쁘게 지낸단 말인가.’ ‘정말 내가 일하면서 나만의 전문성을 쌓았는가?’ ‘나는 계속 여기에서 성장할 것인가? 아니면 외부로도 나가보아야 하는가?’ ‘나는 앞으로 무엇을 먹고 살 것인가?' 등등의 질문들이 마음 속에서 줄을 이었다.
직장인 사춘기가 이어지던 어느 날, 갑자기 부서 인력의 절반 차출이라는 사건이 다가왔다. 혹시 떠나게 될까봐 나는 두려워했고, 떠난 사람들에게 미안함에 괴로워했다. 모든 것이 왠지 힘들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회사에서도 멍하니 모니터만 바라보는 나를 보며 깜짝 놀란 적도 있었다. 결국 이대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고, 나에게 모든 것을 멈추고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을 선물하자는 다짐이 생겨났다. 그 사건을 겪으면서 나는 내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서 불안해하고 있으며 현재의 나에 대해, 그리고 내가 걸어가는 길에 대해 확신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매사에 자신감을 잃은 것도 알 수 있었다. 어느 방향으로 가야할 지 몰랐고 잃어버린 나를 찾고도 싶었다. 이를 가르쳐줄 사람은 없어보였다. 그러다 문득 책이 떠올랐다. 책이라도 뒤져보며 마음의 여유를 찾던 그 때가 기억난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이렇게 힘들다면 다시 책 속으로 침잠할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기로 하고 그 동안 사놓고 읽지 못했던 책부터 시작했다. 그러나 이게 왠걸, 책을 붙잡고 있는 것은 힘들었다. 책을 읽어버릇하지 않았던 탓일까. 책 한 권도 끝내는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책을 읽고 돌아서면 내용이 생각이 나지 않기도 했다. 당황스럽기도 했고 이런 나에게 실망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자체로 가치가 있었다. 예전처럼 자리에 앉아 책 한권을 뚝딱 끝낼 수 있지는 못했지만, 책을 보며 생각하고 느끼는 것들은 많아졌다. 책에 밑줄을 치며 느낀 바를 적는 일은 늘어 났다. 책장을 빠르게 넘기기 보다 간직하고 싶은 문구들이 많아진 것도 예전과는 다른 일일 것이다. 또 예전에 분명 읽은 책인 것 같은데 그 때와는 또 다른 느낌을 갖게 된 것도 분명 또 다른 책 읽는 즐거움이 되어 주었다.
일년이 넘는 시간 동안 100여권의 책을 읽으면서 내 인생에 큰 변화가 있었을까? 나는 갑자기 멋진 사람이 되지도, 빼어난 능력을 갖게 되지도 않았다. 여전히 나는 부족한 점이 많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여전하다. 그러나 이전보다 나를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으며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 나라는 친구와 함께 인생의 굽이굽이를 달려볼 용기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누구나 납득할 만한 이유 없이 이 곳에 와 있는 것 또한 나의 소명이리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이 책은 사회의 시선에 맞추어, 모범생으로 평범하게 살아온, 서른 중반의 직장인인 내가 책을 읽으며
나를 알기 위해 노력하고 나의 소명을 찾기 위해 방황하고 나의 미래를 디자인하기 위해
책을 읽고, 하루하루 일상을 보내며, 기록한 내용들이다. 때로는 책이 읽히지 않아 애태우기도 했고 때로는 책을 읽고 감동을 느껴 멋진 계획을 세운 후 작심 일일로 다짐을 끝내기도 해 괴로운 적도 있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또 생각하고 이를 일기 쓰듯 써가는 그 과정이 나에게는 그 자체로 큰 위로가 되어 주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오래 전부터 나는 과연 내가 진정으로 나의 소명을 따르고 있는지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렇다면 실제로 회사를 옮기거나 부서를 옮기면서 관심 분야를 직접 경험해보고 도전해보아야 했지만 감수해야 할 위험이 너무 크다고 생각하여 부담스러웠던 나는 계속 제자리에 있을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책은 엉덩이가 무거운 나를 움직이게 해주었다. 이렇게 글을 쓰고 책으로 까지 펴낼 수 있던 것은 책의 응원이 아니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다.
미약한 글이지만 독자들도 나를 보며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가 책을 읽으며 나를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듯이, 그대도 그랬으면 좋겠다. 나의 경험담을 모두 까발린 이 글을 통해 여러분이 함께 책을 읽고 수다를 떤다는 느낌으로 즐겁게 읽어주었으면 하는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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