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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2월 1일 15시 22분 등록

 

두 건의 살인사건이 있어요. 나는 겨울 빈 들판을 보면서 KTX 순방향 창가에 앉아 남쪽으로 가고 있어요. 늦게 와서 예매해두었던 차를 놓쳤어요. 15%의 벌금을 물고, 다음 차 자유석 표를 끊었어요. 지각 습관에 대한 차지입니다. 줄을 섰더니 자리가 다행히 자리가 나긴 했어요. 고단하게도 서서 가는 사람들이 십 여명 있네요. 벌렁거리는 심장을 가라앉힌 뒤 노트북을 열었어요.

 

첫번째 사건은 아들이 누이와 공모하여 어머니를 살해한 것이예요. 자식이 어머니를 죽이는 존속살해의 사유는 어머니가 아버지를, 그러니까 남편을 죽였기 때문이예요. 자식이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복한 거죠. 아들의 이름은 오레스테스, 딸의 이름은 엑렉트라, 어머니의 이름은 클뤼타임네스트라, 살해당한 아버지는 아가멤논이예요. 이건 그리스연합군 사령관이었던 아가멤논 집안에 있었던 흉사예요. 그리스신화 트로이전쟁 이야기예요. 도시국가들이 연합하고, 신들이 편을 갈라 전쟁을 했어요. 그리스연합군과 트로이간의 전쟁이었죠. 트로이 왕자 파리스를 따라 도망간 여자 헬레네는 아가멤논의 동생 부인, 제수씨였어요. 트로이전쟁은 개인의 치정사건이 아니라 영토정복전쟁이었을테지요. 아테나, 헤라는 합법적 남편의 편을 들었고, 아프로디테는 사랑의 도망꾼들 편을 들었죠. 이 전쟁은 9년을 끌었어요. 결국 그리스연합군의 승리로 끝이 납니다. 아가멤논은 전쟁에는 이겼지만 돌아온 날 아내에 의해 자기 집에서 살해당합니다.

 

클뤼타임네스트라가 아가멤논에게 원한을 가진 건 남편이 큰 딸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쳤기 때문이었어요. 그리스연합군의 함대가 움직이려는데 바람이 불지를 않죠. 아르테미스 여신 신전에 사람을 보냈어요. 이피게네이아를 제물로 바치라는 부조리한 신탁을 받아왔어요. 고심하던 아가멤논은 큰 딸을 그리스의 영웅인  아킬레우스에게 시집보내려고 하니까 꽃단장을 해서 보내라아내에게 전갈합니다. 아버지 아가멤논은 딸을 희생제물로 바치고 사령관의 지위를 다집니다. 제물로 바쳐지는 찰나 아르테미스 여신이 사슴으로 바꿔치기를 했고 이피게네이아는 먼 데로 피신시켰다는 말도 있죠. 남편이 트로이전쟁에 참여한 동안 클뤼타임네스트라는 정부와 함께 칼을 갈았어요. 돌아온 첫날 목욕탕에서 없애 버립니다.

 

원한이 대를 이어 이어집니다. 딸인 엘렉트라는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걸 맹세합니다. 남동생 오레스테스를 멀리 보내어 보호하는 한편 아버지의 원수를 갚도록, 그러니까 어머니를 살해하도록 동생에게 정서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결국 그렇게 되고 말았어요. 살모의 죄에 대해, 오레스테스는 아테나 법정에서는 면죄부를 받았어요. 배심원의 판결이 동점에 이르자 아테나가 캐스팅 보트를 던졌거든요. 제우스의 머리에서 태어난 아테나 여신은 말했어요. “나는 어머니 없이 아버지만으로 태어났으므로 양친 중 아버지를 죽인 죄가 더 크다.” 법정 판결과는 무관하게 오레스테스는 마음의 평안을 얻지 못하고 떠돌아다닙니다. 신화에 의하면 오레스테스가 구원을 얻은 것은 누이 이피게네이아가 아르테미스 신전의 사제가 되어 있는 걸 본 뒤였어요. 사건의 최초발단자, 장소로 돌아간 것입니다. 오레스테스, 엘렉트라는 굳이 말하면 아버지의 용병이었어요. 용병이 뭡니까? 자신과는 아무런 이해 관계가 없는 이들에게 싸움용으로 채용된 병사가 아닙니까?

 

 

아테나신은 아버지의 의지를 실현하는 딸이었어요. 아폴론신 역시 그러했습니다. 제우스는 자신을 보호하는 암양 아말테이아의 가죽으로 만든 보호대 아이기스를 오른팔인 아테나에게 물려줍니다. 아폴론도 오레스테스에게 아버지가 더 중요하니 살부의 죄가 살모의 죄보다 가볍다면서 오레스테스의 편을 들었지요. 신화 속 아버지의 용병 말고 현실에도 그런 예는 많습니다.

 

강준만 <어머니 수난사>에 의하면 1950년대의 어머니들에게 가해진 것은 전쟁 미망인을 감시하라였다고 했어요. 전쟁에서 남자들이 사망하자 어머니들은 생존을 위해 강해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들에게 정조를 강조하고 연애를 금지하는 풍조가 횡행한 겁니다. 살아있는 가부장제의 입김이지 않습니까?

 

나는 아버지의 용병까지는 아니지만 어머니와는 별다른 관계를 가지고 자라지 않고, 아버지와 감정적으로 잘 통하는 딸로 자라왔습니다. 마음이 짠하고, 이심전심인 관계 말입니다. 심정적으로 그래서 아버지의 편이었어요. 이것이 나쁘다는 게 아니라 아버지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엄마를 보는 건 어른인 나에게는 맞지가 않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두번째, 살인사건입니다. 니오베의 일곱 아들과 일곱 딸 사건이예요. 사연은 이러해요. 그리스 중부의 도시 국사 테베의 완비 니오베에게는 열 네 자식이 있었어요. 딸 일곱과 아들 일곱은 몹시 아름다고 번듯했나 봅니다. 니오베는 테베 시민들의 레토여신 숭배에 딴지를 걸었어요. 레토여신에게는 겨우 남매 뿐이지만 자신에게는 멋진 아들과 딸이 이토록 많이 있다면서 자랑을 합니다. 제대로 빡친 분기탱천 레토여신이 두 자식 아르테미스여신과 아폴론신을 부릅니다. 두 궁수 신들은 은궁으로 니오베의 마지막 자식까지 쏘아 죽입니다. 하나는 말을 달리다 화살에 맞아 떨어지고, ksk는 마차를 타고 가다 화를 당했고, 또 하나는 공부를 끝내고 씨름장으로 가던 중에 화살을 맞았으며, 둘은 서로 가슴을 맞대고 서 있다가 하나의 화살에 둘의 몸이 꿰뚫려 죽었어요. 또 하나는 쓰러지는 동생을 구하려다 화살을 맞았고, 또 다른 하나는 두 팔을 올려 신에게 살려달라고 기도를 드리다 죽고 말았고요. 순식간에 일곱 아들을 잃은 니오베의 남편은 슬픔으로 자살해버렸습니다. 니오베의 교만은 아들들의 장례식에서도 여전합니다.

레토여, 내가 비록 남편과 아들들을 잃었지만 나는 여전히 정복자인 당신보다 부유합니다.” 상복을 입은 니오베의 딸들이 차례로 화살에 맞아 쓰러졌어요. 막내딸 하나만 남았을 때 신에게 애원하며 온몸으로 딸을 감싸안았지만 이 딸 역시 화살에 꿰뚫려 죽고 맙니다. 니오베는 고통으로 눈물흘리다 바위가 되고 말았어요.

 

니오베는 감히 신들 앞에서 자식자랑을 한 과오가 있었습니다. 자식 가진 이는 다른 이들의 자식에 대해 이런저런 말을 삼갑니다. 교만이었어요. 그건 니오베가 돌아봐야 할 일이고요 아르테미스 입장에선 또한 살펴볼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아르테미스여신이 고통받는 어머니를 구하러 달려갔다고 하지만 사실 이건 매우 불공평한 게임입니다. 니오베는 인간이고 레토여신은 불생불멸의 신이었거든요. 아르테미스여신은 어머니가 요청하면 가치판단을 하지 않고 실력행사를 하는 듯 해요. 어머니를 대신해서 무차별 살상하고 있거든요. 그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아폴론신 역시 마찬가지였구요. 아르테미스여신의 분노는 멧돼지에 버금갑니다. 그녀가 칼뤼돈에 멧돼지를 풀어놓았다고 하는 건 그녀 안의 멧돼지를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르테미스는 어머니의 명예를 위해 조금치의 주저도 없이 달려가 살상했습니다. 어머니를 대신해서 어머니에게 위협을 가하는 사람을 향해서는 어머니를 위해서라면외의 어떤 이유도 필요하지가 않습니다. 어머니를 보호하기 위해, 또는 어머니에게 힘있는 딸이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실력을 행사합니다. 니오베의 자식들을 겨누는 아르테미스의 화살은 자기 같은 방패, 화살을 가진 딸이 있다는 걸 만방에 떨쳐 알리면서 어머니 앞에 진을 치고 대신 싸워줄 의향의 깃발입니다. 그녀는 어머니의 용병이었어요.

 

현실에서는 아버지의 용병노릇이 많을까요? 어머니의 용병 노릇이 많을까요? 가부장제 안에서 아버지는 강한 사람이고, 어머니는 나약해 보이니까 약자인 어머니를 위해 딸이나 아들은 아버지와 대항합니다. 또는 직살나게 고생하는 어머니에 대한 의리 때문에 아버지를 대적하곤 합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어머니의 용병들이 더 많을 것도 같네요. 이건 좀 더 살펴봐야 할 것 같구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용병이었던 그 딸과, 아들의 이야기를 해 보고 싶습니다. 엑렉트라는 남동생과 함께 어머니를 죽입니다. 엘렉트라와 오레스테스 두 사람의 가장 큰 에너지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분함을 갚고, 아버지를 대신하여 살인하는 일에 사용되었습니다. 그건 딸과 아들이 가진 아버지에 대한 사랑때문이었습니다. 그녀가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의 일에 끼어들어 자신의 인생을 그 목적에 사용합니다. 나의 꿈, 나의 소망, 욕망을 이루는 게 아니라 내 어머니나 아버지의 용병 노릇을 하는 게 더 가치있고 의미있는 삶의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그 딸과 아들의 인생에서 가장 가치있는 목표일 수 있을까요?

 

아르테미스가 똑같은 자식이면서 단지 이란성쌍둥이 중에서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어머니가 아폴론을 낳는 걸 거들었던 것처럼 엄마의 자식농사, 그리니까 남동생에 대한 엄마의 역할을 일부 거들고 있는 것입니다. 취약한 어머니가 부를 때마다 달려가서 어머니의 일을 해결해주고, 보호자 노릇을 하고, 형제들에 대해서도 맏누이, 맏언니 노릇을 해낸 딸의 일생이 얼마나 고단한 지 눈에 보이는 듯 합니다. 중년이 되어 인생에서 내 삶의 몫을 요구하게 되는 나이가 되면 자신이 텅 비어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엄마를 보호하는 역할에서도, 엄마 대신 동생들의 대리 부모 노릇을 하는 것에도 지쳐서요. 자기 인생을 살아야 하거든요. 그녀가 텅빈 껍데기처럼 되고 난 뒤에야 시작되는 살핌인 거죠.

 

나는 엘렉트라, 오레스테스, 아르테미스를 아버지의 용병, 어머니의 용병 노릇을 하느라 자기 인생을 살지 못했던 사람들로 봅니다. 집안에 있었던 죽음, 살해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만약 내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였다면요 그 전에 내 아버지가 내 누이를 죽이고, 내 어머니가 아버지를 죽인 커다란 비극이 이 집안에 있었죠. 과연 그 엄청난 일에서 자손들이 잘 살아남으려면 과연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아르테미스의 용병 노릇에, 니오베의 자식들이 죽었습니다. 아르테미스의 방식은 인간에게서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죽이지는 않더라도 아버지를 위해서 엄마의 복수를 하는 경우 제법 있죠. 대개는 감정적 친밀함으로 인해 엄마의 용병이 되는 경우가 더 많은 듯 해요. 그 자식들은 어떻게 이 짐에서 자유로와질까요? 어떻게 하면 부모 인생의 별책부록이 아니라 나의 책을 될까요? 소한에 내린다는 눈이 녹는다는 대한, 여전히 쌓여 있는 눈을 보면서 나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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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2.05 12:44:53 *.131.205.46

여즘 건강과 사주에 관한 책을 읽었습니다. 고미숙 작가의 책들을요.

거기선 집을 떠나라고 하더군요. 자식은 크면 부모를 떠나는 게 순리인데, 아직도 어린애로 행세하면서 안떠난다고요.

가족이라는 것에 묶여 있어서 좁게만 좁게만 자꾸 자신을 좁은 곳으로 몰아가서 힘들어진다구요.


아버지 어머니께서 부부싸움을 하실 때, 아버진 제게 엄마가 잘못한 것을 이르고, 엄마는 엄마대로 아버지의 잘못한 것을 일렀습니다. 그래서 듣다 못해서 당시에 저는 20대 초반이었었는데, 자식 때문에 산다는 소리 그만하고 그만 갈라서라고 했지요. 자식들도 다 컸으니까 둘 중에 누굴 하나 선택해서 따라가든지 따로 살든지 할거라구요. 그후로 사네 못사네 하는 소리는 안하시는데, 여전히 서로가 서로를 저에게 이릅니다. 옆에서 감당할 힘이 없어서 독립할 여건이 되어서 쭉 집나와서 삽니다.


얼마전엔 밥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 사는 게 어려운데, 집에가서 얘기할까'하다가, 결혼한 자식이 집에 와서 남편하고 사네 못하네, 시댁식구가 서운하네 어쩌내 해도 늙은 부모 속이 상하고 힘든데, 그걸 부모가 어린 자식에게 시댁식구들이 어쩌네 저쩌네, 남편이 어쩌네 저쩌내 미주알고주알 일러바치고 속상하다 하는게 얼마나 유치하고 어리석은 일인지. 어린 자식에게 못할 짓을 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건 생각만 하고 부모님께는 직접 말하지 못했지요. 지나간 일인데, 그걸로 내가 상처를 많이 받았네 어쩌네 하는 것도 못할 짓이지요. 서로가 미워하는 사람의 피를 반쪽씩 가지고 있어서 내 아버지를 미워하는 어머니를 용서하기 힘들었고, 날 낳은 어머니를 미워하는 아버지가 미웠습니다. 부모를 미워하는 제 자신이 엄청 미웠습니다. 그런데 그게 뭐라고, 그렇게 미워할 것도 없는 것을. 


누구를 대신해서 사는 건 정말이지 지랄같습니다. 대리전. 저는 그게 지옥이라고 봐요. 자신과 함께 옆에 있는 사람을 같이 지옥으로 끌고 들어갈게 아니라 살 궁리를 해야죠. 자신도 살고, 사랑하는 가족도 사는 궁리를. 사람만 그런가요. 강대국 틈에서 대리전 하느라 제주땅을 군의 기지로 내주고 자식들에게 전쟁의식 고취하고 사는 것. 그게 바로 누군가를 대신해서 거대한 지옥을 짓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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