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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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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6월 9일 09시 21분 등록
8일간의 단식과 8일간의 보식이 끝난지 벌써 3일째다. 보식이 끝났다고 하니 사람들이 그런다. 좋겠다고..이제 고생했으니 먹고 싶은 거 많이 먹으라고. 사실 보식 끝나면 먹어야지 했던 음식이 없는 건 아니다. 대표적인 게 초밥, 옥수수, 족발, 시원한 맥주인데 초밥과 옥수수는 이미 먹었다. ^^ 특히 보식이 끝난 다음날인 그저께는 잘 마쳤다는 성취감과, 드디어 끝났다는 해방감이 컸다. 그래서 음식섭취에 자유를 많이 주었다.

하지만 이번 16일간의 여행은 여행 자체보다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의 변화에 보다 초점이 맞추어진 것이었기 때문에 식습관과 생활습관 개선을 위한 노력은 아직 계속하고 있다. 즉 음식에 대한 나의 욕구를 아직 관찰 중이며, 몸이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 먹으려 주의하고 있다는 뜻이다.

단식을 했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대체로 다음과 같다. 의지가 대단하다, 힘들었겠다, 살 빠지니까 좋겠다 등등. 그런데 조금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단식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발견과 배움의 즐거움으로 넘쳐났던 시간이었다. 그것은 내가 단식을 한 목적이 자기발견과 성장에 있었지, 자기와의 싸움이나 한계극복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후자를 목적으로 삼았다면 나는 매순간 식욕을 억누르느라, 음식에 대한 시각적•후각적 그리움을 몰아내느라 나 자신과 싸워야 했을 것이고, 성공적이지 못한 순간들에는 자책하고 후회했을 것이다. 사실 단식 동안 내 머릿속엔 음식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나의 자연스런 욕구나 감정을 아무런 비난없이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단식을 통해 내가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나에게 어떤 가능성이 있는지 상상하느라 바빴다.

매슬로는 식욕을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로 보았고,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다면) 기본욕구가 충족되어야 그보다 상위의 욕구인 자기존중, 자기실현, 자기초월 등에 도달할 수 있다고 보았다. 매슬로의 욕구위계설은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타당한 원리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본적인 생물학적 욕구 (식욕, 성욕, 수면욕 등)과 소속에 대한 욕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욕구불만을 느끼고 고립감을 느낀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다. 평생을 물만 먹거나 금욕적인 생활을 통해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고, 사회에서 떨어져 나와 자기만의 세상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도 있다.

단식을 통해 나는 새로운 삶의 형태가 가능하다는 것을 배웠다. 자연주의, 유기농, 생명존중사상 등 내가 몰랐던 세계가 있었다. 그 동안 나는 내 몸을 너무 혹사시켜 왔음을 알게 되었고 내 몸에게 진정으로 미안함을 느꼈다. 내가 먹은 그 많은 음식들을 분해하고 소화시키느라 나의 위장은 지쳐있었다. 우리는 너무 많이 먹고 너무 많이 소비하고 있다. 그것도 환경을 파괴하고 다른 생명들을 짓밟으면서 생산되었고, 이익창출에만 급급한 뻔뻔한 시장논리에 의해 가공•유통된 음식들을 말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러한 사실조차 모르고 살고 있다.

적게 먹고 적게 소비할 때 우리는 먹고 버는데 써왔던 심리적, 신체적 에너지를 자기성찰과 배움으로 전환할 수 있다. 진리와 깨달음을 얻고 보다 만족스러운 삶을 살 수 있다는데, 음식이나 잠에 대한 잠깐의 욕구가 덜 채워지는 것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소식과 생활단식을 꾸준히 실천함으로써 나는 계속 나의 몸과 마음의 목소리를 들을 것이다. 단식은 끝났지만 참나찾기는 끝나지 않았다. 이제 겨우 첫걸음이다. 첫걸음을 잘 뗐으니 이미 반은 끝난 셈이다. 이번 단식을 계기로 한 앞으로의 변화가 더욱 기대된다.

<< 단식 보고서 >>

1. 단식중

① 즐거운/행복한 순간들
- 쏙 들어간 윗배를 만질 때
- 톡 터지는 신선한 포도맛
- 몸에 집중하고 긴장을 모두 풀어내는 요가시간
- 먹지 않아도 힘이 넘치던 것
- 숯가루 먹고 까매진 입술 사진찍기!
- 글쓰기
- 몸무게 재기
- 책읽기
- 시간이 많아 여유로웠던 점

② 기특한 점
- 코칭스터디, 수업, 실습 하나도 안 빠진 것
- 포도량 절대 넘기지 않은 것
- 식사시간, 물섭취량 등 매뉴얼을 모두 지킨 것
- 3일째의 위기를 잘 넘긴 것
- 참나를 매일 의식하며 지냈고, 참나찾기에 대한 나름의 진리를 발견한 것
- 힘들수록 몸을 많이 움직였던 점
- 5시간 30분~6시간 정도의 수면에도 낮잠은 거의 안 잔 것

③ 아쉬운 점
- 없음

2. 보식중

① 즐거운/행복한 순간들
- 현미밥이 맛있다. 특히 보식 첫날 점심때 먹은 현미밥 맛은 잊을 수 없다
- 야채 샐러드 드레싱 만들기
- 식사때마다 사진찍기

② 기특한 점
- 매끼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했다. 예쁜 접시에 먹을 양을 담아 그 양을 넘기지 않았다
- 정말 천천히 씹어먹음
- 속이 불편해서 두번 정도 저녁 거름
- 힘들고 복잡했지만 콩물을 직접 만들어 먹음

③ 아쉬운 점
- 3일째부터 일기를 쓰지 않음. 일상생활로 돌아가버린 느낌
- 기상/취침 시간이 다소 해이해짐
- 식사량을 점검받지 않고 자의적으로 했는데, 내 몸에 무리였음

3. 단식/보식 후의 외적 변화

① 몸무게 2.5kg 줄었음
② 피부가 맑아졌음
③ 생활습관 변화
- 요가 날마다 1시간 이상
- 11시전 취침, 5시 기상, 새벽 2시간 글쓰기/공부 확보
- 화학제품 사용 절반으로 줄임
④ 식습관 변화
- 현미밥, 야채 위주의 식단
- 천천히/오래 씹고 소식함
- 싱겁게 먹고 자극적인 음식 안 먹음
- 고기 거의 안 먹고, 인스턴트/가공 식품 안 먹음
- 식사 전후 1시간 물 안 마심
- 외식 줄었음

4. 단식/보식 후의 내적 변화

① 몸과 마음의 이완이 쉬워짐
② 판단이 보다 명료해졌음
③ 조급함이 줄었음
④ 외부자극에 대한 반응이 줄고, 내적엔진에 의해 움직임
⑤ 느낌과 욕구를 더 잘 알아차림
⑥ 누구를 만나도 나의 존재감을 느낌
⑦ 참나를 항상 의식하고 지냄 (겉과 속의 일치가 더 강해짐)
⑧ 나의 한계는 내가 정한 경계일 뿐임을 알게됨. 두려움에서 벗어날 때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알게 됨

5. 배운 점

① 새벽 나만의 글쓰기 시간이 나의 의식을 풍성하게 해준다
② 몸이 가벼우면 기분이 좋고 활동력이 커지며 진취적으로 된다
③ 내 안의 변하지 않는 내가 있다. 그것을 알아차려 바깥으로 드러나게 하자. 그것이 나를 강한 사람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④ 의미는 얼마든 재정의될 수 있으며 가치있는 것 또한 달라질 수 있다. 나만의 의미와 가치 붙이기 작업을하자

6. 유지/강화하고픈 습관

① 소식, 싱겁게, 천천히 먹기
② 아침시간 2시간 글쓰기
③ 생명, 생태계, 우주에 대한 관심
④ 요가와 명상
IP *.187.230.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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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7.06.09 10:44:24 *.209.121.43
지혜님의 글을 읽으면, 내용도 좋지만, 형식에서 내 눈길을 끌지요.
나를 포함해서 많은 여성들의 글쓰기가, '쏟아내기'에 비중이 많이
가 있는데, 지혜님은 상당히 분석적이고 정보위주의 글을 쓰거든요.

우리 연구소가 새로운 경험을 받아들이게 되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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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쌤
2007.06.09 11:00:51 *.207.221.12
허~~ 훌륭해요.
저는 헬쓰로 몸을 다지고 있습니다.
지금 근육을 제대로 붙여 놓지 않으면 나이 들어 몸의 활력을 잃기 쉽지요.
단식과 요가도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단식은 아직 한 번도 해 본 적이 없어요.
올해 꾸준히 몸의 "바깥" 근육을 가꾸고 내년 후반기 부터는 단식으로 몸의 "속" 근육과 마음을 헬쓰해 보려고 합니다.

지혜님께서 많이 도와주실 걸로 믿겠습니다. ㅋㅋㅋ
지혜님인 고로 지혜로울 수 밖에 없는(^^;) 꼼꼼하고 성찰적인 이 단식일기만으로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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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환
2007.06.09 12:13:07 *.143.170.4
우~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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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9 14:27:27 *.176.129.180
지혜님의 <단식일기>를 소중하게 읽었습니다.
아직 젊은 분인 것 같은데, 자신의 몸과 맘과 정신을 허투로 하지 않는 모습이 읽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단식의 목적이 '자기발견과 성장'이라는 자의식 보다는 '발견과 배움의 즐거움'에 두었다는 자연스러운 기쁨에 대한 성찰이 놀라왔습니다.

단식/보식 후의 내적 변화를 스스로 정리한 것도 그렇지만,
'나의 한계는 내가 정한 경계일 뿐임을 알게됨. 두려움에서 벗어날 때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알게 됨'이라는 귀절에선 잠시 멈추게 하는 군요.

단식하기도 쉽지 않겠지만, 이렇게 자신을 관찰하고 정리하는 것도 왠만한 내공가지고는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이렇게 나눠 주신 일입니다.

단식과는 거리가 있는 과객이지만,
지혜님의 행위와 글과 나눔에서 아주 예쁜 '인간'을 발견한 기쁨에 한 자 적습니다.

여러 모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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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9 17:10:56 *.176.129.180
지혜님의 <단식일기>를 소중하게 읽었습니다.
아직 젊은 분인 것 같은데, 자신의 몸과 맘과 정신을 허투로 하지 않는 모습이 읽는 사람에게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단식의 목적이 '자기발견과 성장'이라는 자의식 보다는 '발견과 배움의 즐거움'에 두었다는 자연스러운 기쁨에 대한 성찰이 놀라왔습니다.

단식/보식 후의 내적 변화를 스스로 정리한 것도 그렇지만,
'나의 한계는 내가 정한 경계일 뿐임을 알게됨. 두려움에서 벗어날 때 무한한 가능성이 있음을 알게 됨'이라는 귀절에선 잠시 멈추게 하는 군요.

단식하기도 쉽지 않겠지만, 이렇게 자신을 관찰하고 정리하는 것도 왠만한 내공가지고는 어려운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점수를 주고 싶은 것은 이렇게 나눠 주신 일입니다.

여러 모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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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2007.06.10 08:54:28 *.252.102.245
잘 읽었습니다. 정말 스스로가 기특하고 대견할 것 같아요^^ 생각은 많아도 선뜻 나서기 쉽지 않지요. 그리고 무엇보다 본인이 생각한 "참나찾기"에 성공하셨다니 부럽습니다. 사람들이 보편타당하다고 믿는 진리가 때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음을 저도 일상의 생활을 통해 느끼고 있네요. 다음에 혹시 다시 한번 만나게 되면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더 빛나는 지혜님을 만나게 될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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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귀
2007.06.10 09:04:24 *.201.25.7
한동안 지혜님의 글을 기다렸는데, 이제 마무리를 하시고 글을 올리셨네요. ^^

생각이 깊으신것 같아요. 자신의 글에 대한 체계를 갖고 계시고, 본인이 하고자하는 부분에 대한 강조, 보고서 틀 등....

글을 쓰실때, 어떻게 써야겠다라는 깊은 고민과 생각, 형식이 몸에 배어 자연스레 써나가시는 것 같아요. 명석님의 말씀처럼 새로운 글쓰기에 대한 경험이 되는 것 같습니다.

감사드리구요. 응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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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2007.06.10 19:14:30 *.187.231.172
명석님, 2.5kg를 정확히 알고 계신 이유가 있었군요 ^^;
제 글이 분석적이고 정보위주이군요. 몰랐습니다.
아마 직장에서 기획서, 보고서 쓰던 저의 첫 글쓰기 경험이
지금 많은 영향을 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 계속 저다운 글을 찾아가게 되겠지요.
감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리쌤님, 전 이상하게 헬쓰기 재미가 없던데,
사람마다 재밌어하는게 다 다른가 싶기도 하고..
또 타이밍의 문제이기도 한 것같고 그렇네요.
단식을 하신다면 얼마든지 도움을 드리겠습니다.
헌데 구체적인 정보는 선생님 책에 거의 다 나와있습니다 ^^
어쨌든 단식 내내 응원해 주신 점 정말 감사드립니다.

경환님, 놀라셨나 봐요 ㅋㅋ

연님, 글 소중하게 읽어주셨다니
참 고맙고 뿌듯하고 그렇네요.
저의 글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니..
그건 글쓰기 자체의 즐거움에 따라오는 뽀나쓰 같네요.
저는 소통과 공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라
나누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저에겐 힘든 일이지요.
여기에 나누는 것이 단식에 큰 힘이었습니다.
피드백을 주시는 연님같은 분 덕분에 더 좋구요.
앞으로도 더욱 예쁜 인간이 되겠습니다.

앨리스님, 다음에 혹시 다시 만나면이라니요.
저희는 써포터즈, 당연히 자주자주 뵐 수 있죠!
당장 다음주 월요일 (18일)에 정기모임잇잖아요.
거기서 뵐 수 있따면 참 좋겠네요.

귀귀님, 제 글을 기다리셨군요.
조금 게으름 피운 스스로가 반성됩니다 ^^
글을 쓸 때 저는 마인드맵을 많이 사용합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의 틀거리를 먼저 만들어 놓고
살을 붙이지요. 특히 보고서는..마인드맵에 정리한 걸
텍스트문서로 전환한 거라서 한 30분 정도밖에 안 걸렸습니다.
형식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내용이 넘실거리도록
글을 쓰고 싶은데, 아직은 내용보단 형식이 더 그럴싸한 것 같습니다.
내용에 좀더 집중하고 있는 요즘입니다.
응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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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깽이
2007.06.12 11:43:13 *.128.229.230

노란 백합은 색깔도 향기도 매우 진했다. '찐하다'는 표현은 그래서 있나 보다. 얼마전 부안에 갈 일이 있어 볼 일을 보고 돌아 오는 길에 '미당시 문학관'에 들렀다. 들이 넒고 산은 낮고, 흙은 붉어 이 양반이 전라도 김치처럼 그렇게 찐하게 살았나 보다 했다. 그래서 욕고 많이 먹고 시도 그렇게 짠하고 육자백이 가락에 동백꽃 뚝뚝 지듯 그렇게 살았을 것이다 .

꽃은 향이 강해 문을 여는 순간 그것이 무엇인가 했다. 창문을 조금 열어두고 잠을 잤다. 아침에 햇빛이 대낮처럼 빛나는데, 꽃은 모두 만개해 있었다. 꽃은 그 곳에 두고 왔다. 예쁘게 꽂아 두었기에 그 꽃은 그곳에, 그 많은 꿈벗들이 하루밤 하루 낮을 즐겼던 곳에 남겨 두었다. 우리들이 모두 떠난 다음에 그곳에 그 향기로 남아 있으라고 했다. 꽃을 보내주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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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혜
2007.06.17 16:05:08 *.187.234.107
그날 아침 손에 꽃이 들려 있지 않으시기에,
향기만 남기기 미안해 두고 오셨나 보다 싶었습니다.
집에까지 굳이 가지고 가지 않으셔도,
다른 이들이 즐길 수 있다면 그걸로 족하지요.
찐한 향기에 밤잠 설치진 않으셨을까 걱정했는데,
그러진 않으신 것 같아 다행입니다.
선물하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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